2026년 1월호

러시아, 서방 넘어 美 우방국에 ‘그림자 전쟁’ 시작

[Focus] 독일의 러시아 대사 초치, 유럽 전역에 전운(戰雲) 감돈다

  • 채인택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 tzschaeit@gmail.com

    입력2026-01-09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화물·유조선 닻으로 NATO 해저케이블 공격

    • 방화, 폭발, 암살까지 서슴지 않는 ‘그림자 전쟁’

    • 공작원 대신 현지인 고용하는 ‘우버화(Uberfication)’

    • 美 우방인 韓, 보안 및 정보력 강화 착수해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는 NATO 가입국을 상대로 간접적으로 도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는 NATO 가입국을 상대로 간접적으로 도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AP뉴시스

    러시아가 서방을 상대로 은밀히 벌여온 ‘그림자 전쟁(shadow war)’이 급기야 서방과 러시아의 본격적 강대강 충돌로 치닫고 있다. 독일 외교부가 2025년 12월 12일 자국 주재 러시아대사 세르게이 나차예프를 초치해 모스크바가 자국을 상대로 반복적으로 벌여온 하이브리드 공격에 항의하면서다. 이날 독일 국제방송 DW, 영국의 BBC방송,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AP·AFP·로이터 통신은 일제히 이를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독일 정부는 그동안 러시아가 사보타주(sabotage)와 사이버 공격, 그리고 가짜 뉴스 유포를 포함한 적대행위를 벌여왔으며, 일부는 선거에 영향을 끼칠 의도에서 자행됐다고 비난해 왔다. 사보타주는 노동 분쟁에선 ‘태업(怠業)’을 가리키지만 정치·군사 분야에선 체제·정부·조직을 약화시키려고 벌이는 파괴·혼란·방해 공작을 말한다. 

    독일의 주독(駐獨) 러시아대사 초치는 그동안 러시아의 물밑 공격에 대한 서방 진영의 불안과 분노가 이제는 특이점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그간 러시아가 벌여온 물밑 공작에 대해 유럽 국가들이 국가안보와 국민 안전, 그리고 주권과 민주주의까지 위협하는 도발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이번 초치가 앞으로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 국가들이 경제제재를 비롯한 다양한 대러시아 압박을 가중하는 전기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을 들여온 우크라이나 정전 협상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가 서방 상대의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서방은 사실상 전면전 코앞

    러시아는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며 이중 전선을 열었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미사일·공중전력·기갑·포격·보병을 앞세운 재래식 전쟁을 펼치는 동안 유럽 국가들과는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여왔다. 정보전·심리전·사이버전, 그리고 가짜 뉴스와 댓글 공작을 포함한 기만전 등을 총동원한 것이 하이브리드 전쟁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의 한 분야인 ‘그림자 전쟁’은 공식 선전포고 없이 비밀리에, 또는 대리인을 사주해 진행하는 비정규적이고 간접적 적대 활동이다. 사이버 공격이나 요인 암살에 군수품 창고나 집하장, 방산 공장 같은 특수 목표물 파괴 등으로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은 기본이다. 쇼핑몰·철도 등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사보타주나 위협도 강행한다. 대중을 공포에 빠뜨리려는 시도다. 선거 기간에 가짜 뉴스를 대거 확산해 투표 결과에 영향을 주려는 공작도 시도한다. 

    실제로 2024년부터 서방 군사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선 다양한 사보타주가 줄을 이었다. 주체가 모호한 은밀한 공격은 유럽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국가의 지원 의지와 여론을 약화하려는 러시아의 노골적 공작으로 평가된다. 

    독일이 이번에 이렇게 본격적으로 러시아 압박에 나선 것은 그동안 러시아가 서방을 상대로 벌여온 그림자 전쟁 때문이다. 이에 대한 증거가 많은 데다가 최근 들어 러시아의 도발 양태가 더욱 폭력적이고 노골적으로 변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의회와 싱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소(CSIS), 영국의 정보기관인 MI5 등은 러시아의 그림자 전쟁이 위험하다는 경고음을 지속적으로 내왔다. 특히 올해 3월 발행된 CSIS 브리프에 따르면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사보타주는 2022년 3건에서 2023년 12건, 2024년 34건으로 매년 3~4배씩 급증해 왔다.

    폭력성과 대담성도 더욱 강해졌다. 러시아가 유럽에서 가장 빈번하게 공격한 표적을 살펴보자. 기차·항공기(GPS 교란 포함) 같은 교통 부문(27%)과 공직자·군기지·국경검문소를 비롯한 정부기관 관련대상(27%), 그리고 파이프라인, 해저 광섬유 케이블 같은 인프라(21%)와 방산업체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체(21%)의 순이었다. 

    실제로 독일은 2022년 철도 케이블 절단 사보타주를 당했다. 200년간의 무장 중립을 깨고 2024년 3월 서방 군사동맹인 나토에 가입한 스웨덴은 그해 여러 건의 철도 사보타주를 당했다. 폴란드 철도 시스템도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았다.

    러시아 배후 추정 사보타주 급증, 대상은 광범위

    주목할 점은 최근 들어 러시아가 해저 인터넷 케이블과 파이프라인을 포함한 서방 중요 인프라에 대한 공격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이다. 이를 다룬 CSIS 브리프 내용은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이어서 충격적이다. 

    핀란드 당국은 2023년 10월 러시아 선원들이 운항하는 중국 선적의 선박인 ‘뉴뉴폴라베어호’가 발트해에서 닻을 내리고 해저케이블 2개와 가스 파이프라인 1개를 손상시켰다고 밝혔다. 또 2024년 12월에는 러시아에서 원유를 싣고 출발한 유조선 이글S호가 핀란드만에서 닻을 끌고 90㎞나 항해하면서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잇는 해저케이블 5개를 손상시켰다. 현재 헬싱키에서 재판받고 있는 조지아 국적의 이글S호 선장은 “단순 사고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핀란드 당국은 사보타주로 보고 있다. 

    몰타 선적의 화물선 베전호는 2025년 1월 역시 닻을 끌어 라트비아와 스웨덴을 연결하는 해저 광섬유케이블을 손상시켰다. 이를 해상 사보타주로 의심한 스웨덴은 무장경찰을 출동시켜 선박을 장악했다. 러시아 선장이 탑승한 중국 선적의 LPG 운반선 이펑3호는 2024년 11월 발트해를 항해하다 닻으로 해저케이블을 손상시켰다. 

    방산업체도 러시아의 지속적 공격 표적이다. 유럽 국가 가운데 우크라이나에 군사 원조를 가장 많이 해온 독일과 영국의 업체가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2024년 4월 영국의 방산업체 BAE시스템스의 사우스웨일스 공장에서 폭발이 발생했다. 2024년 5월 독일 방산업체 딜 그룹의 베를린 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이 공장은 우크라이나로 보낼 단거리 공대공미사일(IRIS-T)을 생산하는 곳이다. 

    다른 나토 회원국에서도 의심스러운 폭발이 이어졌다. 우크라이나로 보낼 통신장비를 보관하던 스페인의 창고에서도 폭발이 발생했다. 불가리아의 무기제조·유통업체 EMCO의 탄약 창고에서도 폭발이 발생했다. 불가리아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보내기로 발표한 지 며칠 만의 일이었다. 

    러시아는 가연성이 높은 마그네슘이 포함된 전기 마사지기를 발화장치로 이용해 방화 공작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장치는 독일 라이프치히, 영국 버밍엄, 폴란드 야블로노프에 있는 DHL 물류 허브에서 발견됐다. 정보 당국은 러시아가 이 장치를 항공기에 실어 방화하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당국은 실험 결과 마그네슘에 불이 붙으면 항공기 시스템으로는 진화가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했다. 

    유럽 전역에서 의문의 암살과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에서 암살 시도를 겪었다. 2023년 8월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러시아 헬기 조종사인 막심 쿠즈미노프 대위는 2024년 2월 스페인에서 살해됐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러시아 요원의 암살 공작으로 본다. 

    민간인까지 암살 위협을 받고 있다. 미국 CNN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보기관은 2024년 7월 독일 최대 방산업체인 라인메탈의 아르민 파페르거 대표에 대한 러시아의 암살 시도를 저지했다고 발표했다. 불가리아 탐사 기자로 국제 탐사보도 그룹인 벨링캣의 이사인 크리스토 그로제프도 오스트리아에서 암살 시도를 겪었다. 

    최근의 경향은 러시아 사보타주 공작원이 국가 소속 요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러시아는 현지에서 작전 수행자를 자체 조달하는 ‘우버화(Uberfication)’ 전략을 사용한다. 돈과 일자리를 원하는 서방 거주 난민이나 저소득층·구직자 등을 대상으로 인터넷으로 소액을 주고 대리인으로 고용해 사보타주를 맡기는 식이다.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결제만 하면 이동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공유 교통 시스템인 ‘우버(Uber)’에서 따온 새로운 공작 용어다. 영국 국내 정보기관인 MI5 국장인 켄 매컬럼은 2025년 11월 BBC방송에 “올해 유난히 눈길을 끄는 변화는 러시아 요원들이 더러운 일을 시키는 데 대리인을 쓴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국제방송인 프랑스24도 러시아 정보·공작기관인 총참모국(GRU) 등이 서방에 거주하는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그들 세대가 익숙하고 친숙한 온라인을 통해 ‘일회용 공작원’을 모집해 사보타주에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텔레그램 채널, 인기 온라인 게임의 채팅창, 기타 온라인 미디어를 이용해 이러한 개인을 모집하거나, 구직 사이트에 자신의 사연을 올린 실업 청년·청소년에게 접근하고 있다. 

    2024년 8월 독일 검찰은 디터 슈미트 등 러시아계 독일인 3명을 러시아 비밀 요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군이 M1 에이브럼스 전차 운용 훈련을 받고 있던 독일 바이에른주 북동부의 그라펜뵈어 미군기지를 촬영하며 폭탄이나 방화 공격을 계획한 혐의다. 사진은 M1 에이브럼스 전차의 사격 모습. AP뉴시스

    2024년 8월 독일 검찰은 디터 슈미트 등 러시아계 독일인 3명을 러시아 비밀 요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군이 M1 에이브럼스 전차 운용 훈련을 받고 있던 독일 바이에른주 북동부의 그라펜뵈어 미군기지를 촬영하며 폭탄이나 방화 공격을 계획한 혐의다. 사진은 M1 에이브럼스 전차의 사격 모습. AP뉴시스

    러시아 그림자 전쟁, 한국의 대처는?

    러시아가 서방을 대상으로 이처럼 은밀한 그림자 전쟁을 선호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나토의 경제보복이나 확전의 최소화다. 2024년 노르웨이 정보기관은 “(러시아가 그림자 전쟁에 집중하는 이유는) 집단 방위에 관한 나토 헌장 제5조 발동을 피하려는 것이 이유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둘째는 공작 비용과 요원 피해의 최소화다. 사이버전, 전자전(GPS 교란 포함), 영향력 공작의 일부는 자국 영토나 제3국 또는 가상 공간에서도 수행할 수 있다. 오프라인 사보타주도 비교적 소액으로 현지인을 쓸 수 있다. 셋째, 공작이 알려지거나 심지어 대리인이 체포돼도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다. 유럽이 골머리를 앓는 이유다. 

    이러한 러시아의 그림자 전쟁 대상에서 미국의 우방인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군과 미군의 군사기지는 물론 한국 경제의 주축인 반도체·조선 시설부터 사보타주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2026년은 전 세계적 체육행사가 몰려 있어 더 위험하다. 2월에는 이탈리아에서 동계올림픽이, 6월에는 캐나다·미국·멕시코에서 FIFA 북중미월드컵이 열린다. 9월에는 일본 나고야·아이치에서 아시안게임이 개최된다. 사보타주를 비롯한 하이브리드전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전쟁 역량을 강화하고 보안 강화 작업이 시급하다. 그런 점에서 독일 검찰이 2024년 8월 디터 슈미트 등 러시아계 독일인 3명을 러시아 비밀 요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한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군이 M1 에이브럼스 전차 운용 훈련을 받고 있던 독일 바이에른주 북동부의 그라펜뵈어 미군기지를 촬영하며 폭탄이나 방화 공격을 계획한 혐의다. 

    보안은 곧 안보로 직결된다. 보안과 정보력이 취약하면 사보타주 공격에 쉽게 노출되기 마련이다. 최근 쿠팡에서 고객 개인정보 3370만 개가 유출된 사건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이유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