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물을 마시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만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잘나가는 정수기 업체의 사장’으로만 알고 찾아갔다간 맹물 한 잔 얻어 마시기 어렵다.
김길호는 정수기 전문가가 아니라 물 전문가다. 스스로 그렇게 얘기한다. 그는 물을 물질이나 섭취 대상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로 본다. 여행길에 산촌을 지나다가 좋은 물 한 모금 얻어 마셨으면 큰절을 올려야 한다고도 했다. 글머리에서 그를 세계적인 정수기 장사꾼이라 했거니와, 그는 나와 얘기를 나누던 하루 내내 단 한번도 자신을 정수기를 팔아먹는 사업가라 칭하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는 물의 생산자이며, 물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물박사이며, 또한 좋은 물 살리기 전도자다. 우리가 숨을 쉬는 행위도 공기 중의 수분을 들이마시는 것이라 했으며, 기(氣)가 빠진 물은 갖춰야 할 것을 구비하지 못한 물이라 했다.
“정수가 아닌 물의 환생 시스템”
그는 물의 순환원리를 가지고 불가의 윤회를 설명했고, 굳이 자신이 생산하는 정수기를 일컬어 ‘정수하는 기계’가 아닌, ‘자연 여과방식에 의한 물의 환생 시스템’이라 했다. 그렇다면 그의 정수기로 걸러낸 물은 H2O 따위의 분자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명과 기와 유별난 철학과 종교적 의미까지를 함유한 별난 결정(結晶)이라는 얘긴데.
어쨌든 그를 만나려거든 하다 못해 ‘물은 사람의 영(靈)에도 접촉한다’는 타고르의 고상한 시 구절 하나쯤은 챙기고 나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그를 만나고 난 다음의 생각이었다.
“아직 젊은 놈인데 인생살이에 대한 얘기야 뭐 늘어놓을 것 있겠습니까. 지루하시겠지만 물 얘기나 합시다.”
서울 서초동의 (주)거산 무역부 사무실에서 점퍼 차림의 그와 마주앉자마자 그가 그렇게 말했다. 문제는, 그는 물에 관해서 할 얘기가 ‘지루하도록’ 많은데 비해서, 나는 ‘오늘 아침에 보리차 마시고 나왔다’는 얘기말고는 거의 할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나라 안팎을 넘나들며 공개석상에서 300회 넘게 물 강의를 했는데도 한 번도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한 적이 없다. 그는 살아온 얘기 따위 집어치우고 물 얘기부터 하자고 했지만, 나는 그가 물과 인연 맺은 내력부터 들어야겠다고 했다. 복잡한 구도를 만들 것 없이 마흔 다섯, 그의 삶을 물리적인 시간 순서대로 짚어나가기로 했다. ‘물이 흐르는 순서’도 그러하지 않겠는가.
수원에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부친의 상여가 나가던 날 어린 김길호는 아무것도 모르고 마당에서 뛰어 놀았다. 여덟 살이었던 것이다.
5학년 때 셰익스피어 전집을 독파하고 6학년 때 월탄(박종화)이 우리말로 옮긴 삼국지 다섯 권을 읽어치울 만큼 독서광이었다. 이렇게 속부터 늙어버린 학생의 학교생활이라는 건 순탄치 못한 법. 수원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1학년을 다니다가 ‘재미가 없어서’ 때려치웠다. 공부에는 자신이 있던 그는 대입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과정을 간단히 마쳐버렸다.
돈을 벌겠다고 아르바이트 삼아 취직한 곳이 병원이었다. 원장은 그를 어떻게 보았던지 엑스레이 기사노릇이며 혈액검사, 요(尿) 검사, 결핵환자의 객담 검사 따위를 가르쳐가며 그에게 맡겼다.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 그 전까지만 해도 문학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고 소설책을 끼고 살았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결핵 전문의로부터 각종 검사와 치료과정을 배우면서 자연과학에 흥미를 느끼게 됐지요.”
KAIST에서 ‘기계’ 대신 ‘물’ 연구
KAIST(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에 응시했다. 그는 98명의 응시생 중에서 뽑힌 2명 중 하나였다. 이어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는 전도가 양양한 기계공학도였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그가 화학분야인 ‘물’ 연구에 매력을 느낀 것은 과기원에서 세계적인 물 박사이자 6각수 이론의 창시자인 전무식 박사(당시 과기원 원장)를 만나고서부터.
“물이라는 게 H₂O지 별거냐, 강물이냐 샘물이냐, 끓인 물이냐 그냥 물이냐, 오염이 됐느냐 안 됐느냐… 뭐 이런 정도만 따지면 될 텐데 그분은 그 단순해 뵈는 물에 매달려서 평생을 연구하고도 아직 물을 잘 모른다고 말씀 하신단 말이에요. 아하, 물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로구나, 그런 판단을 내리고…”
김길호는 ‘기계’는 제쳐둔 채 물을 찾아 나섰다. 처음 찾아간 곳이 남산에 있던 국립도서관이었다. 물에 관련된 자료 목록을 훑어가던 그는 ‘수돗물의 중금속 오염에 관한 연구’라는 재미난 제목을 발견하고 열람신청을 했다. 그러나 서너 시간을 지체한 뒤에 도서관 사서로부터 들은 대답은 ‘공무원 신분증이 없으면 열람할 수 없다’는 한 마디였다. 재차 열람을 요구하는 그에게 도서관 직원은 ‘상부 지시’라며 보여주기를 거부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산업화로 일로매진하던 시절이라 물에 관한 연구도 미미했거니와, ‘정의사회구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수돗물 오염 어쩌고 하는 자료는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다.
김길호는 포기하지 않고 그 논문을 쓴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를 찾아가 기어이 열람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가 내린 판단은 매일 마시는 수돗물에 문제가 있다는 정도.
“그렇다면 물을 더럽히는 중금속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왜 사람 몸에 해로운지를 공부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독성학(毒性學), 생리학, 위생학 할것없이 물 연구에 정신 없이 매달렸지요. 우리 수돗물의 1차적인 문제는 우선 수도관이 낡아서 녹물 찌꺼기와 외부 오물이 스며든다는 점입니다. 녹은 체내에서 활성산소를 만드는데 체내에서 과잉발생하면 세포를 파괴하게 돼요. 또한 살균을 하기 위해 염소를 사용하는데 염소는 독성물질이거든요. 물속에는 유기물과 무기물이 녹아 있는데, 유기물이 염소와 만나면 염소가 반응을 일으켜 트리할로메탄이라는 발암 물질이 생성되고…”
“물은 생명을 이루는 최후의 물질”
그의 물 강의가 너무 일찍 시작돼버렸다. 수돗물에 대한 그의 화학적 분석이야 나 같은 문외한으로서는 뭐라고 사족을 붙이거나 반론을 펼 처지가 못 되고.
어쨌든 그는,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수돗물이 외국에 비해 ‘좋다’고 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평가이고, ‘음용수로 좋다’는 절대평가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물을 ‘물질’로 보고 화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물을 생명체로 보게 됐다는 점이다.
물과 기(氣)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우주는 기로 가득하다, 기가 모여 뭉치면 물질이 되지만 흩어지면 물질을 이루지 못한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물만 물이 아니라 증발하여 흩어져 있는 것도 물이다, 그러니 숨을 쉬는 행위도 물을 마시는 행위다, 오염된 물에서 오염의 원인물질을 걸러냈다고 해서 결코 살아 있는 물이라 할 수 없다, 기가 없는 물은 살아 있는 물이 아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이 부분은 훗날 그가 맥반석을 이용한 정수 시스템을 고안하는 이론적 바탕이 된다.
그는 기계공학 공부를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물에 매달린다.
“사람의 생명이 극한적인 한계상황에 도달했을 때 찾는 것은 물입니다. 단식을 한다는 사람도 물은 끊지 못하잖아요. 마지막 순간까지 내 생명을 이루는 최후의 물질이 물인데 생명유지에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물에는 국가든 개인이든 투자를 소홀히 한단 말예요. 그래서 물에 나를 투자해보자, 하고 덤벼든 것입니다.”
그는 그 때부터 점퍼 차림으로 청계천이며 을지로통을 돌아다니며 당시 한국에 들어와 있던 외제 정수기를 구해서 하나하나 분해하면서 정수 시스템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엇나가기 시작한 그를 두고 미친놈이라 했다.
김길호는 일단 일제 정수기 판매회사에 외판원으로 취직한다. 그는 정수기 외판으로 상당한 돈을 벌었으면서도 자신은 ‘물과 건강’에 대한 강의를 하러 다녔지 정수기를 팔러 다닌 적은 없다고 했다. 그로부터 정수기를 산(아니 그의 물 강의를 들은) 사람 중에는 쟁쟁한 사람이 많다. 현대 정주영 회장의 비서실에서도 한바탕 물에 대한 설법을 했으며 박세직, 황인성, 최원석 등 공기업의 사장급이나 그룹 회장급 인사들이 그에게 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물에 대해서 한참 설명하다보면 그 사람들이 먼저 ‘그런데 소개하려고 하는 제품이 뭐요?’ 하고 물어와요. 그때 정수기를 꺼내놓으면 즉석에서 현금을 내고 삽니다. 그러고 나서 전무나 이사들한테 ‘자네도 이 사람 물 얘기 좀 들어보게’ 하고 권해요. 어떤 제약회사 회장은 아예 직원 조회 때 나를 연사로 초청해서 물 강의를 하라고 했어요.”
보통 샐러리맨들의 월급이 10여만원쯤 하던 시절, 그는 정수기를 팔아 50만∼60만원을 주급으로 받았다. 82년부터 83년에 걸쳐 1년 동안 정수기 외판을 해서 적잖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정수기 외판만 하고 있을 양이었다면 애당초 물속으로 뛰어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물을 물질로 보고 물리적인 처치만 하게 돼 있는 기존 정수기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 죽은 물을 환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정화다. 땅속으로 스며든 물이 수백 미터의 지층을 통과하면서 지층에 있는 광물질이 녹아들어 미네랄이 풍부한 물이 된다. 따라서 강제적인 힘에 의해서 순식간에 필터를 통과시키는 방식으로는 살아 있는 물을 얻을 수 없다. 역삼투압 정수기의 경우 정수효과는 뛰어나지만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까지 걸러내 증류수처럼 돼버린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가 얻어낸 답이 ‘자연 여과방식’이다.
김길호는 정수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필터 개발에 나섰다. 1단계로 녹찌꺼기나 석회질, 세균 등을 제거하는 전처리 필터를 개발하고, 2단계로 염소 같은 화학물질이나 중금속 등을 걸러내는 주필터를 개발했다. 이 주필터가 바로 92년도에 특허 출원한 ‘매직필터’다. 이 두 단계의 필터를 자연상태에서처럼 천천히 통과하게 만든 것이 그의 정수기다. 그는 이 과정을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수기에 물을 담아놓으면 지구의 중력에 의해 천천히 필터를 통과하면서 물이 스스로 자신의 병든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 했다. 그렇다면 이 두 단계의 필터 통과만으로 자연에서 환생한 물에 가까운 ‘살아 있는 물’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닙니다. 자연여과 방식으로 걸렀다고 하지만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과정에 미네랄 등 우리 몸에 좋은 성분까지 상당부분 걸러져버린 거지요. 무엇보다 이 물에는 기(氣)가 없습니다. 지구 자체가 자석 덩어리이기 때문에,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면서 자력을 받아서 활력을 얻는 거예요. 걸러진 물에 활력, 즉 기를 불어넣지 않으면 살아 있는 물이라고 볼 수 없지요.”
걸러낸 물에 활력을 줄 매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 매체로 그가 택한 것이 맥반석이다.
“서남해안의 노화도 앞바다 해저 800미터 깊이에 일본인들이 세계적인 보물이라고 감탄하는 맥반석 광맥이 있습니다. 이 광산 주인이 나와 친한 분인데 그 곳에서 나는 질 좋은 맥반석이 바로 걸러진 물에 활력을 주는 대단히 중요한 매체입니다. 맥반석은 물을 알칼리성으로 바꿔주고, 미네랄과 산소를 증가시키며, 원적외선 전자파를 물속에 방사해서 물분자를 움직이게 하는데, 그렇게 될 때 전무식 박사가 우리 몸에 가장 좋은 구조라고 얘기한 바 있는 육각수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중금속은 흡착까지 해주는 그야말로 신비의 돌이에요.”
맥반석 조각을 정수기 바닥에 깔아 필터에서 오염물질을 걸러낸 물이 이 돌 조각을 통과하는 것, 이것이 제3단계 처리에 해당하는 셈이다.
원리는 찾았으니 이제는 물건을 만들 차례였다. 서울 소공동의 아주 허름한 건물 2층에 조그만 사무실 하나를 얻어 세를 들었다. 그는 혼자서, 순전히 수공(手工)으로 뚝딱뚝딱 정수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을지로나 용산, 청계천을 돌며 재료를 구해다가 혼자서, 그것도 순전히 수공(手工)으로 금형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 과정에 그가 공부한 기계공학이 큰 도움이 되더라 했다. 그렇게 해서 최초로 만들어본 정수기가 20대. 그러나 다 만들었다고 뿌듯해한 것도 잠시. 정수기에 뚜껑이 없었다. 다시 금형을 떠서 뚜껑을 만들자니 너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남대문 시장을 돌며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궁리하던 그가 그릇가게 앞에서 무릎을 쳤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테를 두른 냄비의 유리 뚜껑이 정수기 뚜껑으로 안성맞춤이었다.
혼자 수공(手工)으로 정수기 제조 시작
‘냄비 뚜껑 스무 개만 파시오.’
냄비 몸통은 말고 뚜껑만 스무 개를 팔라고 했으니 미친 사람 취급할 건 당연한 일. 사정 설명을 하고 냄비 만드는 공장을 소개받아서 냄비뚜껑 스무 개를 확보했다. 뚜껑을 씌우고, 외부 틀을 등나무 가구로 만들어 앉히니 근사한 정수기가 완성되었다. 이름 붙이기를 ‘크리스털 큐브’.
그 20대를 싣고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 주방용품 판매상을 하던 이상희라는 사람한테 한바탕 물 강의를 한 다음에 그 역사적인 시제품을 내보였는데, 그의 첫마디는 ‘보아하니 어항 같은데 금붕어는 왜 없느냐’였다. 겉을 등나무로 치장한 데다 바닥에 돌 조각까지 깔려 있어 어항처럼 보였던 것이다. 물을 부어 정수 시범을 보이자 이번에는 ‘그렇게 물이 조금씩 떨어지니 성질 급한 사람 기다리다 목말라 죽겠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일단 놓고 가보라는 주인의 달갑지 않은 반응에 되싣고 올 수는 없어서 두고 왔는데….
‘사건’은 다음날 터졌다. 부산의 이 사장이 ‘그 정수기의 부산 총판 독점권을 내게 줄 수 없겠느냐’고 제안해온 것이다. 정수기 한 대를 집에 갖다 두고 퍼런 맥반석 위로 물 떨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노라니 ‘이게 바로 암반수요, 석간수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무릎을 쳤다는 것이다.
한달음에 부산으로 내려간 김길호에게 이 사장은 총판 계약금을 얼마나 받겠느냐고 물어왔다. 가지고 간 20대를 팔아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한 판에 총판 계약금 운운은 꿈도 꾸지 못한 터였다. 300만원을 염두에 두고 ‘석 장 정도 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오케이였다. ‘1500만원은 당장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 1500만원은 내일 서울에 올라가서 공장을 보고 건네 주겠다’고 했다. 그의 ‘석 장’은 3000만원이었던 것이다.
“현금 1500만원을 받아 쥐긴 했지만 10원도 쓸 수가 없었어요. 다음 날 공장을 보고 나머지를 주겠다고 했는데, 공장도 뭣도 없이 낡고 좁은 사무실에서 정수기 만든다고 뚝딱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줬던 돈도 다시 내놓으라고 할 것 아닙니까.”
최초의 맥반석 정수기로 떼돈
다음날 부산의 이 사장이 소공동으로 찾아왔다. 삐거덕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와 어지러운 사무실로 들어선 그에게 김길호는 공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곳이 공장이며 사무실이라고 실토했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이 사장이 김길호의 통장번호를 물었다. “그러실 줄 알고 어제 받았던 돈 한 푼도 안 썼습니다.” 김길호는 미련없이 1500만원이 입금된 통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나머지 1500만원을 마저 주기 위해서 통장번호를 물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그는 이틀 사이에 현금 3000만원을 받고 꿈을 꾸는 줄만 알았다고 했다.
“나를 믿어준 그 사람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어요. 그러나 그 양반은 이런 계산을 하고 있었어요. 공장도 뭣도 없이 좁은 사무실 구석에서 만든다면 물량에 한계가 있어서 다른 사람한테 줄 것도 없을 것이니 자신이 생산량 전부를 독점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거지요. 어쨌든 나하고 그 사람 둘 다 떼돈을 벌었습니다.”
직원을 늘려 하루에 60대를 만들었는데도 주문량을 맞추기 힘들었다. 하는 수 없이 사무실을 역삼동으로 옮기고 말죽거리에 공장을 차렸다. 전국 판매망을 갖춘 뒤부터는 생산량을 월 5000대로 늘렸는데도 물량이 달렸다. 그런 중에도 그의 물 강의는 계속됐는데, 제품에 대한 가장 확실한 홍보수단은 사장인 그의 물 강의였다. 이 무렵 그와 정수기에 얽힌 전설 같은 일화가 있다.
한번은 대리점을 하겠다는 사람 셋이 그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의 물 강의를 한바탕 듣고 난 다음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네 정수기에 그토록 자신이 있다면 청산가리 탄 물이라도 걸러 마실 수 있다는 얘기요?”
김길호는 두 말 없이 청산가리를 구해왔다. 독극물임을 표시하는 뻘건 해골이 그려진 청산가리 병을 열어 물에 탄 그는 그 물을 정수기에 부어 걸렀다.
“아니, 됐어요. 그냥 농으로 해본 소리요. 그만하면 믿겠으니 제발 치우시오.”
김길호가 그 물을 정말로 마실 태세를 보이자 이번에는 그들이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김길호는 청산가리 탄 물이 정수되어 나오자 지체 없이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들은 독극물을 마신 김길호가 언제 죽나 보려고 겁먹은 눈길로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청산가리의 화학성분과 정수기 필터의 기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에게 그건 모험이랄 것도 없었다.
“울산에 물 강의를 가서 6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우리 정수기의 여과장치를 설명하는데 청중 중에 짓궂은 사람이 구정물도 걸러 마실 수 있느냐고 물어요. 즉석에서 보여줄 수도 있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시커먼 대걸레를 가지고 나가더니 아주 지저분한 화장실 바닥을 닦은 다음에 양동이에 빨고 나서 그 시커먼 물을 가지고 왔어요. 보기 좋게 걸러 마셨지요. 물론 기분은 좀 찜찜했지만.”
유사품 판치자 해외 수출로 물꼬
크리스털 큐브는 5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연매출 40억원에다 정수기 시장의 80%를 석권할 정도로 고속성장을 구가했다. 그러나 (주)거산의 정수기가 날개돋친 듯 팔려 호황을 구가하고 있을 무렵, 정수기로 떼돈 번다는 소문이 퍼지자 정수기 생산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바닥에 맥반석을 까는 것까지 거산 제품을 흉내낸 유사품이었다.
덤핑이 난무하고, 현저하게 질이 낮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언론에는 시중의 불량 정수기가, 정수를 하기는커녕 세균 구덩이라는 등의 비판 기사가 실리고… 정수기 전체에 대한 불신이 만연했다. 아무리 ‘우리 정수기는 다르다’고 해도 먹혀들 상황이 아니었다. 상당수 업체가 부도를 냈고, 타업체의 덤핑 공세 때문에 김길호씨도 직원들의 월급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는 중에 삼성전자가 OEM(주문생산) 계약을 제의해왔다. 까다롭기로 이름난 삼성에서 거산 정수기가 가장 우수하다고 인정해서 협력업체로 선택한 것이다. 안정적인 공급처를 가졌으니 이제는 살았다며 직원들과 함께 걸판지게 회식부터 했다.
“그러나 아니었어요. 거대기업이던 삼성 쪽에서 보면, 정수기 사업 정도는 수백 개 아이템 중 하나에 불과했으니까요. 심지어 일선 대리점에 전화해보면 ‘우리 삼성 제품 중에 정수기도 있던가요?’라고 되물어요. 아하, 그저 구색 갖추기 수준이구나 생각했지요. 판매 실적도 시원찮고 해서 그만둬야겠다고 판단했어요.”
삼성전자와 했던 계약을 취소하고 나니 60여명에 이르는 공장 직원들에게 월급 줄 일이 막막했다.
“살 길은 수출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처음 크리스털 큐브를 내놨다가 국내에서 히트를 했다면 해외에서도 통할 것이다, 이런 판단을 한 거지요. 서둘러 회사 내에 무역부를 설치하고, 브랜드도 회사 이름하고 같은 ‘거산’으로 정한 다음에, 제가 몸으로 뛰기로 작정을 한 겁니다.”
맨처음 간 곳이 중동의 쿠웨이트. 항공료는 어떻게 마련해서 날아갔지만, 호텔비가 문제였다. 콧노래 부르며 떼돈을 벌어들이던 그가, 그 사이에 그 정도로 쪼그라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지갑을 잃어버려야 했다. 실제로 분실한 것이 아니라, 바이어한테 그런 핑계를 대고 호텔비를 신세졌던 것이다.
팔레스타인 지도자인 아라파트와 절친한 한 사업가를 만났다. 그는 PLO(팔레스타인 해방군)의 장성이기도 한 거부(巨富)였다. 쿠웨이트에 있던 영국인 화학자 한 사람을 대동하고 찾아가서 007 가방에서 분석기를 꺼내 그곳 수질을 분석한 다음 한바탕 물 강의를 했다. 그가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웠다. ‘당신네 제품 최고다’. 즉석에서 312만 달러어치를 수주했다. 콘테이너로 72개 분량이었다. 그런 희열은 세상에 태어난 이래 처음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하도 기분이 좋아서, 비행기가 경유지인 인도에 도착해 있는 동안 코냑 한 병을 사서 모두 들이켰다. 술에 취한 그는 공항 대기실 구석에 쓰러지고 말았는데, 승객 한 명이 탑승하지 않고 증발해버리는 바람에 승무원들이 수색작전을 벌이는 등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기도 했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직원들과 또 한 번 회식을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정수기를 수출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상황인데, 그가 첫나들이에서 주문을 뭉텅이로 받아온 것이다. 그러나 잘 풀리는 듯하다가도 뜻하지 않게 엉키거나 매듭을 만나는 것이 세상 일이다. 걸프전이 터진 것이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거산에서 선적해 보낸 정수기들을 압류해버렸다. 노다지가 물 건너 가버린 것이다. 공장 직원들에게 집도 지어 주고 월급도 올려 주겠노라고 회식자리에서 기세 좋게 장담했던 그의 꼴이 우습게 돼버렸다. ‘공항에서 술을 진탕 마셔서 알라신의 노여움을 산 것이었다’며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수출전략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했다. 동남아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반둥에 있는 고급호텔의 컨벤션센터. 한국에서 온 물 박사가 미네랄 워터 시스템을 강의한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의 판매상 300여 명이 모여들었다. 우렁찬 팡파르와 함께 김길호가 등장했다. 물의 분자구조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서, 죽은 물과 살아있는 물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 일장 연설을 마치고 나서 자신의 미네랄 워터 시스템의 여과기능을 소개했다.
그는 청중의 열띤 호응에 흥분하여 자신도 모르게 ‘오줌도 걸러 마실 수 있다’고 해버렸다. 그러자 한 청중이 ‘진짜냐?’고 물었다. 거기서 발을 뺐다간 허풍쟁이 취급을 받을 처지였다.
“좋습니다. 빈 페트병 두 개를 줄 테니까 지금 오줌 마려운 사람 있으면 가지고 가서 채워 오시오.”
인도네시아 남자 두 명이 화장실 쪽으로 가더니 페트병에 자신의 오줌을 담아왔다. 청중들은 숨을 죽인 채 신기하다는 듯 김길호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누런 오줌이 맑은 물이 되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일제히 박수가 터졌다. 다음 순간 오줌 정수한 물을 치켜든 김길호가 그 물을 거침없이 들이켰다. 환호성이 터지고 휘파람이 울려나왔다.
“자, 오줌 주인들 이리 나와서 직접 마셔보고 다른 사람들한테 맛이 어떤지 증언하시오.”
두 사람이 물컵을 받아들고 주저주저하더니 한 모금씩 들이켠 다음 소리쳤다. “진짜 물이다!”
‘육각수 이론을 제품화한 것’
장내는 환호의 도가니가 되었다. 이튿날 아침 도하 일간지에는 대문짝만한 활자로 ‘코리아에서 온 물 박사’ ‘난생 처음 본 매직 쇼’ 등의 제목으로 김길호를 소개했다. 제품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니 주문이 쇄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이런 홍보 행차는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는 물론 남아프리카의 모리셔스까지 이어져 나갔다. 한 달에 2만여 대의 정수기가 팔려 나갔다. 김길호는 경기도 광주에 땅 2000 평을 사들여 공장을 짓고 본격적으로 ‘미네랄 워터 시스템’의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다.
“그 다음에는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오늘날의 과학 문명을 꽃피운 선진시민들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물은 단물인데 반해 유럽지역 물은 센물입니다. 그냥 센물이 아니라 심각하게 센물이기 때문에 그냥 마실 수 없어서 맥주를 많이 마시는 겁니다. 센물은 무기물이 너무 많이 녹아 있는 물이거든요. 물론 프랑스처럼 물이 아주 좋은 나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역시 지금까지는 ‘정수’ 하면 그저 ‘거른다’는 차원에서만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동양에서 온 사람이 물을 생명체라고 얘기하면서 기(氣)를 들먹이니까 참 신기하게 생각해요. 거기다 전무식 박사가 규명한 육각수라는 그 사람들도 처음 들어보는 희한한 용어거든요. 그걸 과학적으로 설명했지요. 분자도 환경이나 상황 혹은 상태에 따라 끌어안고 있기도 하고 서로 배척해서 떨어져 있기도 한다, 그런데 분자가 육각형을 이뤘을 때가 생명에 가장 좋은 상태다…”
반신반의하던 유럽인들도 보통 물에 꽂아둔 장미가 하루가 지나면 시드는 데 반해, 육각수에 꽂은 장미가 2∼3일 동안 싱싱한 상태로 있는 걸 보고는 ‘미러클 쇼다!’라며 감탄을 했다. 더욱이 동양에 대해 막연한 신비감을 가지고 있던 그들에게, 김길호가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인 ‘생명체인 물’ 논리에 ‘서양의 과학과 동양의 정신이 하모니를 이룬 시스템’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구나 작년에 세계적 물 박사인 전무식 교수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럽 학자들을 상대로 육각수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한 뒤부터는 김길호의 미네랄 워터 시스템이 ‘전박사의 육각수 이론을 제품화한 것’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김길호의 거산 정수기는 작년에 유럽통합 인증마크인 CE를 획득했고, 역시 작년부터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모로코, 이탈리아, 폴란드 등 10여 개국에 본격적인 수출을 개시했다.
“무엇보다 선진 과학문명 당사자들에게 저의 미네랄 워터 시스템을 가지고 물의 분자구조와 ‘생명체로서의 물’을 함께 인식시킨 것이 동남아에서와는 또 다른 자부심을 느끼게 했어요. 외화를 얼마 벌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정신이 서구 과학 문명국 전문가들의 찬사를 유발했다는 것은 가볍게 볼 수 없는 정신적 소득 아닙니까.”
물 팔아 달러 버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그의 자부가 대단하다. 이쯤 되면 그를 단순한 정수기 장사꾼이 아니라고 봐줄 만하지 않은가. 순전히 장사꾼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그는 할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누가 물을 가지고 달러를 벌어옵니까. 수출, 수출하지만 100만큼 수출하면 90은 외국에서 원료나 부품 들여오는 경우가 태반 아닌가요? 저는 100% 국내 자재를 씁니다. 그리고 그 자재들은 공해를 유발할 위험이 없는 천연자재예요. 우리 공장은 팔당댐 근처 상수원 보호구역에 있거든요. 왜 거기다 공장을 짓게 허가해줬겠어요. 우리는 100만큼 수출하면 그 100이 모두 한국에 떨어집니다. 이 정도면 저도 애국자 아닌가요.”
김길호는 기존 정수기 외에, 세계 시장을 장악할 또 한 가지 아이템을 개발해 두고 있다. KISS(Keosan Instant Superior System)라는 이름인 이 정수기는 휴대용이다. 정수기는 값비싼 물건이며 일정한 장소에 두는 설치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셈인데 ‘언제 어디서든 내가 마시는 물은 내가 걸러먹는다’는 발상이 바탕이 되어 개발한 제품이다.
“외국 출장을 가보면 호텔 미니 냉장고에 생수가 있긴 하지만 너무 비쌉니다. 고급호텔에 묵는 서양 사람들도 물값이 비싸니까 호텔주변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는 사람이 많습니다. 작년 김포공항을 통해서 해외에 나간 사람들이 700만 명이 넘습니다. 곧 1000만 명에 육박할 거예요. 그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물값으로 10달러씩만 지출한다 해도 1억 달러가 나가는 것 아닙니까. 휴대용 정수기 하나만 가지면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 수돗물을 걸러먹을 수 있어요.”
볼링핀 모양으로 디자인된 이 정수기는 기존 거산 정수기와 똑같은 원리와 구조로 돼 있으면서도 크기가 아주 작기 때문에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다. 필터 성능이 4000병을 걸러먹을 수 있도록 돼 있다니 자꾸 바꿀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물론 국내에서는 처음이고 유일하게 미국에서 휴대용 정수기가 나왔으나 그것보다 성능이 뛰어나다는 게 그의 장담이다.
“물에 투자하면 세계 제패가 가능하다”
그는 기 에너지 연구에 권위자인 서울대 이충웅 교수의 이론을 빌려, 한반도의 물이 좋은 이유는 땅 자체가 거센 기가 뭉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와 비슷한 수질을 가진 곳이 역시 반도국인 이탈리아인데, 땅이 비슷하니 수질도 비슷하고, 수질이 비슷하니 그 땅에서 나온 산물(産物)도 비슷하고, 또한 그 산물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성질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로마가 세계를 제패했듯이 비슷한 물을 마시고 자란 우리도 언젠가 세계를 제패할 것이라고 했다. 글쎄, 지금이야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니 로마식 세계제패를 얘기하는 것은 아닐 테고, 어쨌든 적어도 물 하나는 세계적으로 그 질을 자랑할 만하다는 것은 그 방면의 전문가들 사이에도 이론이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사이 석유보다 훨씬 비싼 값에 물을 사 마시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한국에 여행 오는 외국인들이 여행 오기 전에 교통사고를 조심할 것과 수돗물 마시지 말 것을 미리 숙지해야 한다니 문제 아닌가.
“작년 말 UN에서 아시아 국가 중에서 2003년에 물 부족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10개국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 우리나라도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는 물이 얼마나 중요한 자원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무 데나 구멍을 뚫어서 지하수를 마구 퍼 올리다 방치하는 바람에 고갈은 둘째치고 오염이 심각합니다. 지하수는 한 번 오염되면 햇볕이 안 들기 때문에 자정작용이 일어나지 못합니다. 오염된 지하수가 원상을 회복하는 데에는 300년이 걸려요.”
김길호는 자신이 정수기 사업을 하고 있다고 얘기하지 않고 물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근래 벤처기업이다 뭐다에 투자하는 것의 일부만이라도 (국가든 개인이든) 물에 투자한다면 바로 그 질 좋은 물로 세계 제패가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왕조·농경시대에 나라일의 근본으로 여겼던 치수(治水)가 홍수 피해를 막고 농업용수 이용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였다면, 이 시대의 치수는 죽어 가는 물을 살리는 일 아닐까? 김길호 사장 말처럼 기가 왕성하고 맛이 탁월한 우리의 물이 본래 상태를 회복하여 정수기 따위가 쓸모 없게 되는 날을 앞당길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병든 물을 고치는 그의 병원(정수기 공장)은 문을 닫아도 좋을 터인데.
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