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주와 장진영은 둘 다 1997년에 데뷔, 올해로 연기생활 9년째를 맞았다. 김현주가 주로 드라마를 통해 인기를 얻은 반면 장진영은 영화로 이름을 알렸다. 발랄하고 꿋꿋한 캐릭터를 단골로 연기해온 김현주는 SBS 드라마 ‘토지’에서 열연, 정통 사극연기에서도 합격점을 받아냈다. 영화 ‘싱글즈’의 흥행 성공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장진영은 ‘원톱’으로 나선 영화 ‘청연’을 도약대 삼아 주연배우로 굳건히 자리매김할지 주목된다.
김현주가 MBC 드라마 ‘상도’에 출연한다고 알려졌을 때도 반응은 비슷했다. ‘상도’에서 김현주가 연기한 ‘다녕’은 미모와 총명함을 겸비하고 이재에도 밝은 장사꾼의 여식이다. 사람들이 걱정한 것은 ‘다녕’의 캐릭터 때문이 아니었다. 김현주의 이미지가 사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일종의 선입견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김현주는 ‘상도’에서 비교적 안정된 연기를 보여줬다. 뛰어난 평가를 받진 못했지만, 댕기머리를 한 김현주는 생각보다 사극에 잘 어울렸다.
‘상도’에 이어 사극 ‘토지’에 캐스팅되었을 때 김현주는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최서희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김현주는 기자에게 “열이면 아홉이 제가 최서희에 안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하며 세간의 반응에 대한 심경을 씁쓸히 털어놓았다.
사실 ‘토지’의 최서희는 누가 맡더라도 적잖은 부담을 안고 출발해야 하는 역할이다. 1대 최서희를 연기한 한혜숙과 2대 최수지의 색깔이 워낙 선명하기 때문. 두 번째 ‘토지’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될 당시 19세이던 신예스타 최수지는 이 작품을 통해 톱스타로 급부상했다. 그래서 ‘최서희는 곧 최수지’라는 공식이 만들어졌을 정도다.
두 배우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은 김현주는 “다른 색깔의 최서희를 연기해 보이겠다”고 장담했다.
“일부러 이전의 ‘토지’를 보지 않았어요. 한혜숙 선배님이 했던 것은 기억도 안 나고, 최수지 선배님이 출연한 ‘토지’는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아주 강한 서희였더라고요. 제 이미지 때문인지 이번 작품의 서희는 덜 표독스러운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작은 일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이라 일부러 인터넷과 기사도 보지 않았어요. 칭찬 열 개에 지적 한 개라도 그 지적만 마음에 걸리거든요. 인터넷에서 네티즌이 올린 글을 보고 연기에 참고하는 배우도 있다고 하는데 전 그릇이 작아서인지 그렇게 안 돼요. 이왕 하기로 마음먹은 거고, 전 제가 서희 역에 잘 어울린다고 자신하거든요(웃음).”
‘토지’가 방영되기 직전에 한 인터뷰에서 김현주는 이처럼 기다렸다는 듯 당당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 자신감만으로도 대작인 ‘토지’를 충분히 이끌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연출을 맡은 이종한 PD는 최서희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김현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한다.
그러나 ‘토지’의 성공이 전적으로 김현주의 공은 아니다. 누구보다 악역 ‘조준구’를 연기한 김갑수에 대한 시청자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이 밖에 상대역 유준상과 도지원, 이재은 같은 조연진의 탄탄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토지’가 흥행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김현주가 털어놓은 콤플렉스
김현주는 발랄한 캐릭터를 연기하기에 적합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여배우로서 눈에 띄는 미모는 아니지만,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런 이미지는 김현주의 연기세계에도 분명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출연작 중 SBS 드라마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는 김현주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그가 연기한 ‘은재’는 조금은 망가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배역이었고, 이를 보고 시청자들은 어느 때보다 더 유쾌해했다.
억척스럽게 돈을 모으는 은재의 모습에는 김현주가 SBS 드라마 ‘유리구두’에서 연기한 ‘선우’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툭툭 털고 일어나 웃을 수 있는 낙천적인 모습 말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김현주의 연기에 마음을 연다. 철없는 발랄함보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씩씩한 발랄함이 김현주의 얼굴에 담겨 있다.
‘토지’ 후반부에서 최서희가 50대 중반을 넘어선 할머니가 됐을 때도 제작진은 김현주에게 무리한 노인 분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김현주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작단계부터 할머니가 된 최서희를 ‘곱게 늙은’ 모습으로 그리자는 계획이 서 있었다.
김현주의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는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툭툭 털고 일어나 웃는 낙천적인 캐릭터를 연기해왔고 반응도 좋았다. 최근 종영된 ‘토지’에서 김현주만의 ‘서희’를 무난히 소화하면서 한 단계 올라선 그는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때 방송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도 눈썹만은 절대 못 민다’며 눈썹이 마음에 든다고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배우의 자세가 아닌 것 같아요. 전 제 눈이 마음에 들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세파에 찌들어선지 이상해지는 것 같아요. 주근깨가 좀 있지만 그건 자연스러워 보여서 괜찮은 것 같고요. 귀도 너무 작은 것 같고, 얼굴도 좀 길어요. 얼굴형도 마음에 안 들고….”
김현주의 얼굴을 뜯어보자. 자신의 평가대로 완벽한 얼굴은 아니다. 도톰한 입술은 도드라져 보여 귀여운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물론 얼굴도 작고 실물이 훨씬 예쁘지만, 광대뼈가 약간 튀어나왔고 각진 턱선도 전형적인 미인형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배우로서 자신의 얼굴에 당당한 것도 좋고, 솔직한 것도 좋다. 다 털어놓으면서도 당당한 자세가 바로 김현주의 장점이다. 궁금한 것은 김현주의 발랄한 이미지가 나이 들면서 어떻게 변할까 하는 점이다. ‘토지’의 최서희 역은 그녀가 발랄함보다 성숙함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김현주는 1997년 김현철의 ‘일생은’ 뮤직비디오로 데뷔했고, 이어 MBC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를 통해 브라운관에 진출했다. 데뷔작인 ‘내가 사는 이유’를 통해 김현주는 단숨에 주목받는 스타가 됐다. ‘술집작부’를 맡은 김현주는 극중에서 ‘몰라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데뷔작에서부터 주목받은 행운아 김현주는 스크린 데뷔도 남보다 빨랐다. 1998년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에 박용하와 함께 첫 영화를 찍었고, 다음해엔 김희선, 송승헌과 ‘카라’에 출연했다. CF에도 출연해 한 우동 CF에서 “국물이 끝내줘요”라는 카피로 인기를 끌었다.
“난 킹카가 좋아요”
이후 김현주는 ‘반짝 스타’가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 드라마에 잇따라 출연한다. ‘그 여자네 집’ ‘상도’ ‘햇빛 속으로’ ‘유리구두’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 등이다. 그러면서 김현주는 브라운관에서 흥행을 보증하는 스타로 입지를 굳혔고 영화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다 5년 만에 출연한 영화가 이성재와 함께 한 ‘신석기 블루스’다. 영화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김현주에게 오랜만의 영화출연은 부담과 기대가 큰 도전이었다. 이성재가 추남으로 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그의 곁에 선 김현주는 몸의 연기가 아닌 마음의 연기로 팬들을 사로잡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결국 ‘신석기 블루스’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다행히 김현주는 ‘토지’에 캐스팅되면서 시름을 잊고 연기에 매진할 수 있었다.
김현주의 신인시절을 들여다보자. 그에게 연기를 가르친 연기아카데미 강사 김지수씨는 김현주의 인간미를 높이 평가했다. 무엇보다 김현주는 시간 약속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 김씨는 “현주는 단 한 번도 약속시간을 어긴 적이 없다. 스케줄을 핑계로 종종 약속을 어기거나 연기공부에 소홀한 신인배우들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면모다. 그때 이미 현주가 대성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현주의 인간미는 동료배우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다. 김현주는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 친해지지 않고서는 연기를 못하는 성격이다. 일단 마음이 편해야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것. 작품을 함께 찍으면서도 촬영장을 나서면 남남이 되고, 그러면서도 연기에 철저한 프로가 있는 반면 김현주는 촬영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간혹 상대 남자배우와 스캔들이 나기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유리구두’를 찍으며 친해진 소지섭을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기사가 보도됐을 때도 김현주는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 함께 MC를 맡았던 서경석이 방송을 통해 종종 ‘농담반 진담반’의 사랑고백을 건넸을 때도 김현주는 능숙하게 대처했다.
김현주가 자신의 이상형에 대해 말할 때 필자는 조금 놀랐다. 그는 스스럼없이 “난 킹카가 좋다”고 했다. “나는 누구한테 창피하거나 꿀리는 걸 아주 싫어한다. 남자친구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할 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동료 연예인과 결혼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털어놨다. 사실 킹카를 마다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솔직히 얘기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특히 여배우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이상형에 대해 말할 땐 “성격 좋은 사람이 좋다”고 뻔한 대답을 하는 게 보통이다. 김현주의 매력은 이렇듯 정말 솔직한 성격에 있다.
‘박경원’이 되어 날다
우리 영화계에서 ‘원톱’으로 주인공을 맡을 만한 여배우는 드물다. 남자배우 위주의 영화가 주로 만들어지는 영화계 주변에선 ‘쓸 만한 여배우가 없다’는 하소연도 흘러나온다. 장진영(31)이 처음으로 원톱 여주인공을 맡은 ‘청연’은 여러 모로 주목되는 작품이다. 한국 최초의 여비행사 박경원의 삶을 다룬 실화라는 점도 그렇지만, 그보다 장진영이 맡은 배역 때문이다. 멜로나 코미디 장르에서 여배우의 활약이 돋보인 적은 있지만, 10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초대형 작품에서 여배우가 독보적으로 나선 일은 없었다.
이번 영화가 장진영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윤종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이다. ‘소름’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윤종찬 감독에게 장진영은 끈끈하고도 두터운 신뢰감을 갖고 있다. ‘싱글즈’의 흥행 이후 수십여 편이 넘는 시나리오를 받은 그녀가 ‘청연’을 택한 것은 윤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장진영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그 어느 때보다 의욕이 넘쳐 있다. 여비행사를 연기하기 위해 머리도 짧게 자르고 일본어도 배웠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위험한 비행 장면을 찍을 때 장진영은 대역 없이 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워 제작진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장진영의 의욕과 달리 ‘청연’의 제작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애초 지난해 겨울에 개봉하려던 계획이 몇 차례나 미뤄져 올가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대적인 제작 발표회를 통해 영화의 장대한 스케일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으나 정작 영화사 내부에서는 이런저런 문제들로 잡음이 일었다. 자꾸만 늘어나는 제작비 때문에 도중에 제작사가 바뀌고 심지어 영화제작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국, 미국, 일본, 중국 4개국을 넘나들며 진행한 로케이션 촬영으로 제작비 부담이 엄청나게 커졌다. 결국 2004년 4월 크랭크인 이후 1년여가 흐른 지난 3월에야 ‘청연’은 마지막 촬영을 마쳤다.
‘청연’은 근래 만들어진 한국 영화 중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다.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미국 LA에서 촬영한 실제 비행 장면이 상당한 볼거리가 될 거라 한다. 요즘 찾아보기 힘든 복엽기(複葉機)를 만들고 이를 조종할 조종사를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역도산’이나 ‘슈퍼스타 감사용’이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청연’이 실화 소재 영화의 흥행 실패 징크스를 깰 지도 주목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장진영이 스크린에 독보적으로 섰을 때 어느 정도의 카리스마를 발휘할 것인지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여성스럽게, 때론 터프하게
장진영은 변신을 즐긴다. 때로는 여성스럽고 때로는 터프하다. 하지만 스타일만 변하는 게 아니다. 영화 ‘소름’에서 남편에게 구타당하며 사는 ‘선영’역으로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한 그는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 ‘국화꽃 향기’ ‘싱글즈’에서 제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 ‘청연’에서 그의 변신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장진영은 몸매가 뛰어나다. 모델로 서기엔 그다지 큰 키가 아님에도(169cm) 그는 패션쇼 무대에서 언제나 섭외 리스트 앞 순위를 차지한다. 어떤 의상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할 줄 아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광고계에서도 그는 높은 점수를 받는 모델이다. 화장품, 카드, 냉장고 등 주요 분야의 모델로 출연 중인데, 특히 한 화장품 회사는 그를 모델로 기용한 뒤 매출이 50%나 증가하는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 광고기획사 관계자는 장진영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여느 배우들에 비해 노출빈도가 적지만 신뢰감을 주고 고급스런 이미지가 있다. 동시에 주로 CF에서만 활동하는 여배우들보다 대중적인 친밀도가 높아 선호하는 광고모델이다.”
장진영의 스타일이 가장 돋보인 작품은 영화 ‘싱글즈’다. 패션 디자이너에서 레스토랑 매니저로 직업이 바뀌는 극중 ‘나난’은 무채색, 중성적 스타일의 의상을 주로 입었다. 영화 속에서 자유분방한 연애관을 가진 엄정화가 입은, 화려하고 노출이 많은 의상과 대비되는 스타일이다. 액세서리도 최소한으로 걸치고, 군더더기 없는 정장을 주로 입은 것도 그 때문이다. 두 여배우의 스타일 경쟁은 영화와는 또 다른 관심거리였으나, 영화 속 승자는 장진영이었다.
독보적인 트렌드 세터
장진영이 처음부터 패션 리더였던 것은 아니다. 데뷔 초, 탤런트치고는 큰 키와 골격이 콤플렉스였다고 한다. 그때 장진영이 택한 방법은 그저 단순하게 몸매를 가리는 것이었다. 당시의 화장법은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다. 진한 눈썹라인과 립스틱, 볼터치로 얼굴선을 강조해 지금의 장진영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큰 골격을 오히려 드러내고 자연스러운 화장을 하면서 장진영의 매력이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사실 ‘싱글즈’에서 의상보다 더 유행을 탄 건 바로 ‘장진영 머리’다. 영화 ‘아멜리에’의 ‘오두리 토투 머리’라고도 하는 이 헤어스타일은 그 무렵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렇지만 이 헤어스타일은 아무에게나 어울리는 게 아니다. 멋져 보이지만 따라하기 힘든 스타일이다. 이 머리는 미용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헤어스타일로 꼽히기도 했다.
장진영은 헤어스타일에 관한 독보적인 트렌드 세터다. 영화 ‘소름’에서 선보인 보이시하고 퇴폐적인 분위기의 짧은 헤어커트나, ‘국화꽃 향기’에서의 순수하고 귀여운 뱅 스타일 앞머리에 레이어드 웨이브 모두 감각 있는 여성이라면 기억하는 스타일이다.
장진영은 1992년 미스코리아 충남 진으로 뽑혔고 대학(상명대 의상학과) 졸업 후 모델로 처음 활동을 시작했다.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97년 KBS 드라마 ‘내 안의 천사’를 통해서다. 이후 1999년까지 몇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스크린에 데뷔하고부터다. 1999년 ‘자귀모’, 2000년 ‘반칙왕’ ‘싸이렌’을 거쳐 2001년 ‘소름’에 출연하면서 그는 색깔 있는 배우로 자리잡는다. 장진영 자신도 ‘소름’ 이전의 작품에 대해서는 ‘영화배우’로 불리는 것에 대해 부끄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연기자로서 가능성을 재평가받은 영화 ‘소름’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남편에게 구타당하며 사는 골초 ‘선영’을 연기하는 것에 두려움이 앞섰다. 연기 변신이라는 말은 이럴 때 적합한 표현이다. 선영은 이전까지 장진영이 가진 이미지와 연기의 굴레를 깨야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장진영이 용기를 낸 것은 당시 윤종찬 감독이 건넨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의 인생을 바꾼 한마디인 셈이다. 윤종찬 감독은 “배우라고 해서 모든 역할을 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영은 평생 한 번 맡기 힘든 역일 것”이라는 말로 장진영을 일깨웠다.
담배 세 갑씩 피고, 온종일 얻어맞고
내성적이고 배우로서 끼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던 장진영은 선영을 연기하며 비로소 배우로서 보람을 느끼게 됐다. 하루 세 갑씩 담배를 피워대며 구토하기도 했고, 구타당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하루 종일 얻어맞으면서도 행복감에 젖을 수 있었다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복날 개 맞듯’ 두들겨 맞으면서 말이다.
장진영은 ‘소름’으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과 포르투갈에서 개최되는 판타스포르토 영화제, 스페인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시체스’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주연급 연기자로 올라선 장진영은 이어 ‘오버 더 레인보우’ ‘국화꽃 향기’ 두 편의 멜로영화에 출연한다. 기억 상실증에 걸린 기상캐스터를 사랑하며 예쁜 사랑을 나누는 ‘연희’와 어려움 끝에 결혼해 아이를 낳는 순간 죽음을 맞는 비련의 여주인공 ‘희재’는 ‘소름’의 선영과는 확연히 다른 성격의 인물이다. ‘국화꽃 향기’에 출연하기 전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던 그는 자숙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이 작품을 택했지만 그다지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그에게 두 번째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 2003년에 찍은 ‘싱글즈’다. 덕분에 그는 ‘청연’의 원톱 여주인공에 캐스팅돼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중이다. 장진영은 이 작품에서 여배우로는 가장 많은 4억5000만원의 개런티를 받았다.
올가을에 개봉되는 ‘청연’의 흥행 여부는 장진영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될 것이다. ‘소름’으로 주목받고, ‘싱글즈’로 인기몰이를 한 그가 과연 연기자로서 굳건하게 자리잡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