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애설’ 천정명과는 가끔 밥 먹는 사이
- ‘키스 부르는 입술’이 콤플렉스였다
- 필라테스, 등산으로 군살 없는 몸매 유지
- 사랑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어본 적 있다
- 예쁜 배우보다 아름다운 배우 되고파
희주 역을 맡은 김민정(33)이 민소매 미니원피스를 입고 스트립 걸 같은 포즈로 봉을 잡고 있거나 천정명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빨간 호피무늬 망사 스타킹으로 각선미를 뽐내는 영화 포스터 사진은 이런 영수가 상상하는 아내의 과거 이미지다. 남성의 본능을 자극하는 밤의 여왕.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포스터에 끌려 홀로 극장을 찾은 남성도 적잖다.
“극장으로 무대 인사를 다니며 좀 놀랐어요. 로맨틱 코미디는 여성이 좋아하는 장르인데도 남성들의 환호성이 더 컸어요. 언론 시사회 때도 그랬고.”
김민정은 영화 개봉 전부터 연일 프로모션 활동에 나선 탓인지 목에서 쉰 소리가 났다. 웃음 띤 얼굴에도 피곤한 기색이 뚜렷했다.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준비한 질문을 반도 못했지만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인터뷰를 접었다. 대신 일주일 뒤 전화 인터뷰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날은 목소리가 쌩쌩했다. 대면 인터뷰 때보다 물리적 거리는 멀었지만 마음은 더 열려 있었다.
혹독한 댄스 훈련
영화 ‘밤의 여왕’의 한 장면.
“작품을 같이 한 게 드라마 ‘패션 70′s’에 이어 두 번째인데, 둘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감사하게도 그런 면이 영화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둘이 사귄다는 소문은 사실인가요.
“아니에요, 하하. 잘 어울려서 그런 소문이 났나봐요. 촬영한 영상을 보고 스태프들도 잘 어울리게 나온다고 좋아했어요. 개봉 전부터 그런 소리를 들었죠. 원래 친하게 지냈지만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에요. 친하게 지내는 다른 남자배우들과 마찬가지로 가끔 밥 먹는 정도죠.”
▼ 애정 연기 하기는 편했겠네요.
“아무래도요. 모르던 사람과 할 때보다는 좀 더 편안했어요. 영수랑 희주의 신혼생활은 (천정명) 오빠와 제가 그런 연기를 하기에 적절한 관계여서 잘 나온 것 같아요. 너무 친하면 오히려 손발이 오글거려서 연기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극중에서 그는 세 가지 버전의 섹시 댄스를 선보인다. 타고난 춤꾼이라도 오랜 연습이 불가피한 난도 높은 춤이었다.
▼ 댄스 훈련을 혹독하게 받았다면서요.
“영화에선 축약돼 나오지만 촬영할 땐 장면마다 1분 넘게 춰야 했어요. 안무는 물론 손짓, 눈짓 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해야 해서 연습할 양이 만만찮았죠. 출연이 결정되고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그 기간에 영화 ‘가문의 귀환’을 홍보하면서 춤 연습, 액션 연습을 다 같이 하다보니 몸이 무척 고되더라고요. 그래도 배운 건 많아요. 앞으로 연기생활에 도움 좀 될 것 같아요.”
▼ 촬영장 분위기는 괜찮았나요.
“아주 좋았어요. 늘 촬영 준비로 바빴는데 스태프들이 세심하게 배려해줘서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어요.”
▼ 영화를 보니 군살이 전혀 없던데, 비결이 뭔가요.
“사실 드라마 ‘제3병원’과 ‘밤의 여왕’ ‘가문의 귀환’까지 세 작품을 연달아 해서 운동할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그전에 운동을 꾸준히 해두고, 춤 연습을 하면서 몸을 많이 움직인 덕분에 몸매가 유지된 게 아닌가 싶어요.”
▼ 평소 몸매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나요.
“운동을 좋아해요. 평소 틈나는 대로 움직여요. 작품 할 때는 전혀 못했지만 등산도 좋아하고, 필라테스도 좋아해요.”
‘베이글녀’의 비밀
20대 초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베이글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베이비 페이스에 글래머 몸매를 지녔다는 의미다.
▼ ‘연예계 최고 베이글녀’라고들 하던데.
“영화 보고 그런 평을 많이 하시던데, 칭찬을 듣고 어찌 안 좋겠어요. 근데 요즘은 얼굴 좀 어려 보이고 몸매가 육감적이면 누구에게나 그런 표현을 쓰잖아요. 저만을 위한 수식어는 아니구나 싶어 좀 아쉽죠(웃음).”
영화에서 그는 생활력 강한 아르바이트생, 나이트클럽을 평정한 댄싱퀸 렉시, 애교 많은 새댁, 3개 국어에 능통하고 호텔 조리사급 요리 실력을 갖춘 현모양처 등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어떤 모습이 실제와 가장 흡사한지 묻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새댁’을 꼽았다.
“희주가 영수와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참 예쁘잖아요. 저도 연애를 하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아기자기하고 살가운 걸 좋아하거든요.”
▼ 원래 애교스러운 편인가요.
“필요할 때 애교를 피우기도 하지만 사랑할 때는 더 애교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영화 속 희주처럼.”
▼ 평소에는 섹시와 청순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나요.
“기분에 따라 왔다갔다 해요. 노출이 과하거나 주렁주렁 달린 걸 안 좋아해서 매니시룩이나 미니멀룩을 즐기는데, 같은 옷을 입어도 그때마다 느낌이 다 달라요. 어떤 때는 되게 여성스러워 보이고, 어떤 때는 중성적인 느낌이 나기도 하고, 때로는 섹시해 보이기도 하죠. 배우를 오래 하다보니까 여러 모습을 다 갖게 된 것 같아요.”
그와 이야기를 하다보니 유달리 크고 맑은 눈망울에 자꾸 눈길이 갔다.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는 배우라 나름의 눈 관리 비법이 있을 터.
“배우들은 메이크업을 한 상태로 먼지 많은 세트장에서 밤샘 촬영을 자주 하다 보니 눈의 피로감을 빨리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전 오래전부터 죽염을 써왔어요. 아침, 저녁으로 죽염을 희석해서 눈에 넣어 헹궈내요. 안약 넣듯이 넣어서 헹궈내면 눈이 시원하고 맑아져요.”
▼ 얼굴이 작은 것도 관리 덕분인가요.
“집안 내력인 것 같아요. 엄마 얼굴이 작거든요. 손댄 데는 없어요. 다 알려진 얼굴이라서 손대면 팍팍 티가 나잖아요.”
▼ 입술도 자연산인가요. ‘키스를 부르는 입술’이라고들 하던데.
“하하, 어릴 때는 입술이 콤플렉스였어요. 스태프들이 제 입술이 두껍다고 놀렸거든요. ‘닭똥집’이라고들 해서 싫었는데 스무 살 넘어가니까 남자 팬들이 제 입술을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키스를 부르는 입술이라며. 그때부터 입술이 두꺼운 게 좋은 거구나, 칭찬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콤플렉스가 아닌 장점이 됐죠.”
▼ 극중에서처럼 학창 시절에 ‘날라리’였나요, 모범생이었나요.
“날라리는 아니었어요. 굳이 꼽으라면 모범생에 가까웠죠. 집, 학교, 촬영장밖에 모르는. 원래 성격이 보수적인 데다 어릴 때부터 남의 시선을 받고 살아서 일탈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 그럼 희주를 연기하면서 대리만족을 했겠네요.
“3개 국어로 육두문자를 날리고 액션 연기를 하면서 대리만족은 실컷 했죠. 그렇지만 희주는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 나쁜 짓을 하는 구제불능 날라리는 아니었어요. 힘든 상황 때문에 방황하면서 클럽을 전전하다 욕이 몸에 밴 거죠.”
배우는 운명
영화에서는 가능한 욕이 드라마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렇듯 드라마는 영화보다 제약이 많다. 대신 촬영하면서 보는 이의 반응을 즉각 감지할 수 있는 건 드라마의 강점이다.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23년간 넘나들며 연기해온 김민정은 어느 쪽에 더 애착을 느낄까.
“드라마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더 애착이 가요. 어릴 때부터 꿈꾸던 직업이 영화배우였어요. 1990년 ‘미망인’이라는 드라마로 데뷔할 때부터 그런 꿈을 꾼 건 아니에요. 이 일을 너무 좋아해서가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자연스럽게 시작했는데, 연기를 몇 년 하면서 영화배우가 제게 잘 맞는다는 걸 느꼈어요. 주변에서도 브라운관보다 스크린이 더 잘 어울린다고 했고요.”
▼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드라마는 너무 정신없이 넘어가 초인의 힘을 발휘해서 찍어야 하는데, 영화는 좀 더 여유가 있잖아요. 캐릭터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배우들과 호흡도 맞춰보고, 스태프들과도 교류할 수 있는, 그런 촬영 현장의 느낌이 좋아요.”
▼ ‘우연한 기회’라면 길거리 캐스팅?
“엄마와 함께 다니다보면 캐스팅 제의를 자주 받았지만 그때마다 엄마가 뿌리쳤어요. 저를 연예인으로 만들 생각이 없으셨거든요. 그러다 이모가 재미삼아 ‘베비라 선발대회’에 제 사진을 보냈는데 제가 1등을 한 거예요. 1등은 해피아이 유아복 광고를 찍어야 해서 생각지도 않던 광고모델이 되고, 그게 드라마 출연으로 이어지면서 운명처럼 배우가 됐어요.”
▼ 연기가 적성에 딱 맞던가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걸 되게 재밌고 신나 하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밤샘촬영 때 아역배우들은 다 재우지만 예전에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성인배우들과 함께 밤새우고 함께 밥 못 먹고 그랬는데, 다른 아이들이 배고프고 잠 못 자서 칭얼댈 때도 저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연기했대요. 그런 걸 보고 엄마도 제가 연기에 재능이 있나보다고 생각하셨대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어릴 때부터 프로 기질이 좀 있었나 봐요.”
▼ 일할 때 완벽주의자인가요.
“예전엔 그랬죠. 지금도 그런 면이 있지만, 이제 좀 즐기면서 일할 때가 된 것 같아서 저를 풀어주려고 해요.”
▼ 연기자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나요.
“그런 시기도 있었죠. 20대 중반에 작품 준비를 하다가 다쳐서 출연을 못했어요. 결국 다른 배우로 교체됐는데 반응이 시원찮으니까 그 책임을 다 저한테 돌려 견디기 힘들었어요. 근데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맞더라고요. 그때는 제 몸이 아파서 저를 탓하는 게 억울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 제 탓이더라고요. 제가 스태프와 제작사, 배우들과 각각 1대 1로 약속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모두와 한 약속이고,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시청자는 제가 출연하는 걸로 알고 있었으니 저한테 책임이 있는 거잖아요. 제 책임이라고 생각하니까 더는 힘들지 않았어요. 그 일을 계기로 제 자신과 일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어요.”
아역배우에서 성인 연기자로 거듭나는 과정엔 적잖은 진통이 따른다. 아역 이미지에 갇혀 있거나 얼굴, 몸매 등 외형적 조건에서 경쟁력을 잃어 섭외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많은 아역스타 출신 배우가 중도에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거나 방황과 좌절의 세월을 보내는 이유다.
아역 스타의 성인식
“저는 다행히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인연기자로 안착할 수 있었어요. 일부러 어른처럼 보이려고 애쓰지 않은 덕분이에요. 고등학교 때도, 성인이 되고 나서도 화장을 진하게 하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적이 없거든요. 화장을 진하게 해서 어른 흉내를 냈다면 보는 이들도 부담스러워하고, 상대 배우도 불편했을 거예요.
20대 초반에 청룡영화제 시상식에 가슴골이 드러나는 일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한 적이 있어요. 어른스러워 보이려는 게 아니라 제 커트머리에 잘 어울려서요.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의상이어서 신문 1면을 장식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어요. 기자들이 ‘성숙해 보이려고 그 드레스를 입었느냐, 반응이 너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제가 야한 옷을 입어도, ‘얘가 왜 이런 옷을 입어?’라고 하는 게 아니라 ‘김민정에게 섹시한 면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여주신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성인배우로 당당히 나서야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도 그때부터예요.”
▼ 힘들 땐 음주가무가 약이 되지 않나요.
“가무엔 능한데 음주 실력은 꽝이에요. 주량이 와인 두 잔 정도…. 주사는 없어요. 술 들어가면 많이 웃어요.”
영화 ‘밤의 여왕’ 포스터 이미지.
“영화에서는 ‘밤의 여왕’이었지만 실제론 밤 문화를 즐기지 않아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거든요. 촬영 땐 힘드니까 평소에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요.”
1990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작품은 드라마와 영화를 합쳐 40편에 육박한다. 대표작으로는 드라마 ‘카이스트’ ‘아일랜드’ ‘패션 70′s’ ‘뉴하트’ ‘제3병원’, 영화 ‘음란서생’ ‘가문의 귀환’ 등을 꼽을 수 있다. 주로 또래 배우와 호흡을 맞춰왔으니 절친한 연예인도 많을 듯하다.
“연예인 중에는 (현)빈이와 닉쿤(그룹 2PM 멤버)하고 친해요. (김)혜수 언니하고도 서로 연락하는 사이고. 근데 희한하게도 배우보다 스태프들과 더 친해요. 일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코드가 맞으면 금방 친해지더라고요. 그런 절친들과 모이면 맛있는 거 먹으러 잘 가요.”
▼ 노는 문화도 바른생활 숙녀답네요.
“하하, 기본적으로 바르고 모범적으로 사는 건 맞지만 저도 놀 땐 놀아요. 술 안 마시고도 술 취한 사람보다 더 잘 놀 수 있어요(웃음).”
사랑과 결혼
▼ 이제 곧 한 살을 더 먹는데, 계속 솔로로 지낼 생각은 아니겠죠?
“물론이죠. 좋은 남자 만나면 당장이라도…. 일 때문에 결혼을 미루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 ‘좋은 남자’의 기준은.
“존경심이 들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 만나 서로 존중하면서 살고 싶어요.”
▼ 혹시 사랑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어본 적이 있나요.
“그럼요. 감성을 많이 쓰는 직업이라 보통 사람보다 힘든 감정을 더 깊이 진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순수한 건지, 미련한 건지 감정이 무뎌질 때까지 온몸으로 견뎌냈어요. 다른 사랑을 빨리 찾든지, 계산적으로 생각하는 게 천성적으로 안 되거든요. 하지만 앞으로 연애할 때는 좀 더 성숙하고 현명해져야 할 것 같아요.”
▼ 상대가 연하라면….
“연하가 접근한 적은 있는데 연하에겐 잘 안 끌리더라고요. 1년 뒤에는 다른 답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연하가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요.”
▼ 결혼 상대로 배우는 어때요.
“‘나쁘다’는 아니지만 ‘좋다’도 아니에요. 배우와 결혼하면 같은 일을 하니까 이해를 잘해주겠지만, 이왕이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 인생을 나누고 싶어요.”
▼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과 2년 동안 비밀 연애를 했다’고 밝혔던데 현재도 진행형인가요.
“20대 때 일이에요. 지금은 끝났죠. 비밀 연애를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비밀 연애가 됐어요.”
▼ 얼굴이 알려졌는데 비밀연애가 가능한가요.
“그래서 늘 답답한 공간에서 연애를 했죠. 남들처럼 거리를 활보하며 데이트할 순 없으니까.”
▼ 결혼하면 남편에게 과거의 일을 모두 솔직하게 털어놔야 할까요.
“선의의 거짓말은 필요하다고 봐요. 제가 들어서 기분 좋을 얘기가 아니면 남편도 굳이 안 했으면 좋겠어요. 솔직하답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다 하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죠. 지난 일을 알게 돼 연연하다보면 서로 상처를 줄 뿐이니까요. 영화에서는 그걸 로맨틱 코미디로 풀었고, 저도 이제 서른 살이 갓 넘어서 이렇게 얘기하지만 20대 연인들은 서로 엄청 간섭하고 의심하더라고요.”
▼ 어떻게 알았어요?
“‘밤의 여왕’ 개봉에 앞서 20대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봤는데 애인의 과거를 캐봤다는 사람이 80%가 넘었어요. 열에 여덟은 휴대전화를 뒤져봤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캐봤다, 미니홈피의 1촌 관리를 들어가봤다, 예전 사진을 뒤져봤다고 답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영화가 대박 날 줄 알았어요(웃음).”
▼ 남편의 바람직하지 못한 과거 사진을 본다면 어떨 것 같나요.
“강도가 센 사진이면 저도 영수처럼 충격을 받겠죠. 눈으로 본 이상 묵인할 순 없으니까 와인이나 소주를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것 같아요. 지나온 날보단 현재가, 앞으로 함께 만들어갈 역사가 중요하니까.”
▼ 결혼해도 연기를 계속할 건가요.
“하고 싶어요, 계속. 연기를 해도 현모양처로 살 수 있지 않나요. 연기든, 집안일이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게 현모양처죠.”
배우는 게 즐거운 배우
▼ 배우로서 지향하는 삶이 있다면.
“연기자 중에는 탄탄대로를 걷는 부류가 있고, 당장 운이 좋아서 핫한 부류가 있고, 인기 굴곡을 경험한 부류가 있어요. 제가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인기 굴곡이나 역경을 딛고 오랫동안 일하는 부류예요. 그런 분들은 편하게만 일하지 않았어요. 잘된 작품도 있고, 안 된 작품도 있고, 좋았던 시기도 있고, 어려운 시기도 있었죠. 그럼에도 꾸준히 일한 배우는 아우라가 달라요. 본인의 능력과 운과 여러 가지가 작용해 탄탄대로를 가거나 핫한 분들도 배우인 건 맞지만, 굴곡을 겪었어도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제 길을 가는 분들이야말로 ‘진짜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탄탄대로만 달려온 게 아니기에 그분들의 아우라를 닮고 싶고, 시련이나 갑작스러운 행운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가고 싶어요.”
이런 그의 눈에 든 ‘진짜 배우’는 누굴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한석규, 김혜수, 전지현을 꼽았다.
“어려움 없이 계속 스타 자리를 유지하는 분들은 제 눈에 안 들어와요. 좋은 시기를 겪다가 힘들어도 보고, 그러다 재기에 성공해 잘하고 계신 분들이 존경스럽고 대단해 보여요. 그런 배우를 보고 배우면서 저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죠.”
▼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연예인입니다.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배우를 꿈꾸거나 준비 중인 이들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배우를 천직으로 여기고 평생을 걸 각오가 돼 있다면, 배우 일이 정말 힘들다는 걸 먼저 알아뒀으면 좋겠어요. 배우 하기가 힘드니 도망가라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정말 힘들기 때문에 도를 닦으면서 할 각오가 아니라면 견디기 어려울 거예요.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흥행이 좀 안 됐다고 좌절하지 말고 이런 경험을 통해 뭘 배울 것인지 끊임없이 반성의 발판으로 삼아야죠. 작품이 잘되면 콧대가 높아질 수 있지만 그것도 한순간이니 더 겸손해져야 해요. 배우는 정말 마음을 다스리는 직업인데, 화려한 면만 보고 일할 거면 안 하느니만 못해요.”
▼ 상대역으로 만나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최근 드라마 ‘상속자들’을 몇 번 보면서 이민호 씨가 참 멋있는 배우라는 걸 알았어요. 얼굴도 잘생겼지만 눈빛이 좋았어요. 저는 눈에 사람의 모든 게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 눈빛이 참 선하더라고요. 이렇게 선한 느낌이 나는 배우였나 하고 새삼 느꼈죠. 목소리도 좋아요. 정말 매력 있어요. 언제든 만날 일이 생기면 같이 연기하고 싶어요.”
▼ 23년간 연기하면 연기가 쉬워지나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처럼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고, 알면 알수록 쉬워지는 부분이 있어요. 어려운 일이 닥치면 초심으로 돌아가 배우고 익힌 덕분에 굉장히 쉬워진 부분, 편안해진 부분, 내공이 쌓여 안정된 부분도 있지만 갈수록 더 배워야 할 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회사 다니거나 박사가 된 친구들은 제게 23년을 연기했는데 뭘 더 배울 게 있느냐고 하는데, 계속 배울 게 생겨요.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말이 맞더라고요.”
인생의 8할을 연기에 쏟아 붓고도 여전히 배움에 목말라 있는 천생 배우 김민정. 앞으로 그는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을까.
“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가는 배우였으면 좋겠고, 진부하지 않은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예쁘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좋지만 새해엔 그 틀에 머물지 않고 좀 더 매력 있는 배우로 성장하고 싶어요. 예쁜 배우보다는 아름다운 배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