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학 과학화 반대는 ‘밥그릇 지키기’ 속셈
- 한의사도 엑스레이, 초음파 등 이용해 진단해야
- 국민 87.8%가 현대 의료기기 사용 찬성
- 한의약법 제정으로 한의학 세계화 전기 맞을 것
- 국민이 수준 높은 한방 진료 받게끔 지원해야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학의 과학화, 첨단화를 통해 세계인을 몸달게 하는 ‘한류 의료’를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으나 현실은 갑갑하다. 중국의 중의학은 이미 세계로 진출한 지 오래다. 중의사, 중성약(탕약을 복용하기 편리하게 형태를 바꾼 것)을 수출한다. 암 치료에 쓰이는 중성약도 적지 않다.
김필건(52)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 회장은 11월 1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해선 법과 제도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법과 제도가 한의학을 100년 전의 그것으로 묶어놓고 있다는 것. 또 “환자의 이득보다 밥그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한 의사단체의 이기주의도 한의학 발전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했다.
김필건 회장은 “한의사가 저용량 엑스레이, 초음파기기 등 현대 의학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제한이 있다”면서 “한국만 현대 한의학의 성취를 무시하고, 맥이나 얼굴의 형태, 색 등 감각에 의존해 진단하라고 강요한다”고 말했다. 또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해 진료하는 게 옳은지, 그른지 국민에게 물어보라”고 거듭 강조했다.
“중의학에 10년 뒤처져”
▼ 법과, 제도가 한의학을 100년 전 상태로 묶어두고 있다는 게 무슨 얘긴가요.
“지난 7월 중국에 건너가 중의학 실태를 살펴보고 왔어요.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요. 법과 제도가 한의학을 지원해줬어도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의사들의 인적 수준은 중의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합니다. 그런데 한의학과 중의학이 처한 상황은 정반대예요. 베이징에 광안문병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중의학으로 환자를 보는 곳인데, 하루 내원 환자가 6000명에 달합니다. ‘중의학이 경쟁력이 있다’ ‘세계적인 상품이 될 수 있다’고 여긴 마오쩌둥의 의지에 힘입어 중의학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중의학 병원은 대부분 연구소 산하에 병원을 둔 형태입니다. 광안문병원도 그런 시스템인데, 중의학으로 암 환자를 치료합니다. 병원 관계자가 데이터를 하나 보여주더군요. 폐암 말기 환자를 중의학으로만 치료했을 때, 서양의학으로만 치료했을 때, 서양의학과 중의학으로 협진했을 때 생존 기간을 비교한 것이었습니다. 서양의학은 6개월, 중의학은 8개월, 중의학·서양의학으로 함께 치료했을 때는 12개월이더군요. 동서양의 의학을 섞어 환자를 돌봤을 때 치료효과가 가장 높았습니다.
산하에 광안문병원을 둔 연구소는 1960년대 중국 각지의 명의를 다 끌어 모았습니다. 명의들이 석사급 중의사들을 도제식으로 가르쳤습니다. 임상경험과 처방 또한 체계적으로 관리했고요. 탕약이 아닌 제제 형태의 중성약을 개발해 암 환자 치료에 사용합니다. 중의사가 그 약을 처방하는 겁니다. 중성약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200조 원 규모에 달합니다. 앞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블루오션이죠. 중의사들은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엑스레이 등 현대 의학기기를 이용해 진단합니다.
그런데 학창시절 수재였고 탁월한 능력을 갖춘 이들이 한의대를 졸업했는데도 한의학이 중의학에 10년 넘게 뒤처져 있는 게 현실입니다. 갑갑한 노릇이죠. 중국 헌법에는 중의학 발전과 관련한 내용이 명시돼 있습니다. 서양의 의료 선진국들도 한의학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하버드대 의과대학 등에서 한의학을 암 환자 치료에 활용하고 있어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한의학은 고사(枯死) 직전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법과 제도 등 정책적 부분에서 철저히 외면받았습니다. 양의사, 약사, 제약회사가 한의학 발전에 걸림돌 노릇을 하는 측면도 있고요.”
정치권에서도 한의학의 과학화, 첨단화와 관련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김명연 새누리당 의원은 10월 14일 국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공항 검색대에서 엑스레이를 사용하고 가축의 임신 진단 때도 초음파 기기를 사용한다”면서 “국민이 양방, 한방, 대체의학 중 어느 쪽을 선호할지 모르기 때문에 국민 건강을 위해 모든 분야에서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목희 민주당 의원도 같은 날 “한의약육성법 제4조는 국가가 한의약기술의 과학화, 정보화를 촉진하라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한방의료의 진단과 치료경과 평가에 각종 의료기기를 활용해 현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은 3월 20일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명시하는 내용이 담긴 한의약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정치권에서도 논의 활발
서울 강서구 허준로 대한한의사협회 건물에 정부의 천연물신약 정책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의사들이 엑스레이를 비롯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까닭에 환자를 진단할 때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양의사에게 청진기로만 진단하라고 하면 어떤 태도를 보일까요? 심지어 수의사도 진료 때 의료기기를 사용합니다. 각종 의료기기는 공학적 원리에 따라 개발된 겁니다. 물리, 화학 반응을 이용해 수치나 시각화한 결과를 나타내 진단 및 치료에 활용하게 한 거죠.
현대 한의학은 엑스레이 같은 의료기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사진(四診)으로 상징되는 전통적 진찰과 더불어 현대 공학기술을 의료 현장에 도입하려는데 왜 반발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포스코 공장에서도 강판을 엑스레이로 검사합니다. 초음파는 잠수함 탐지용으로 개발돼 어군탐지기로 널리 쓰이게 된 거예요. 의사가 개발한 게 아니라 물리학자가 만들어낸 겁니다.
전자기파를 활용한 엑스레이라는 의료기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만 사용할 수 있는 엑스레이를 활용한 의료기기까지 당장 사용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안전성이 확보된 엑스레이(이른바 저용량 엑스레이)를 활용한 의료기기를 쓰겠다는 겁니다. 치과의사들도 안전성이 확보된 엑스레이를 활용한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있어요. 의대를 갓 졸업한 사람, 수의사, 치과의사 모두 사용 가능한데 오직 한의사만 사용 못하게 막혀 있죠.
병을 더 잘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겠다는데, 양의사들은 그것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조직적으로 훼방을 놓고 있습니다.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게 옳은지, 그른지 국민에게 한번 물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한국 의사만 동양의학 터부시”
의사단체는 한의학의 과학화, 첨단화와 관련해 한의협과 다른 목소리를 내놓는다.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은 김명연, 이목희 의원 등의 주장과 관련해 “학문적 근거나 면허와 무관하게 국민 선호에 따라 현대 의료기기 사용이 결정돼야 한다면 한의사뿐 아니라 무당, 민간 사이비의료업자, 침구사들도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반박하면서 “현재도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불법으로 사용해 국민이 건강권, 재산권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 의사단체는 한방병원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국민의 건강권, 재산권에 손해를 끼친다는 것인데요.
“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만큼 황당한 주장입니다. 한의대 교육과정을 조금만 살펴보면 그런 얘기를 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양의사들은 초음파나 엑스레이를 사용하고 싶으면 배를 타거나 공항에 가서 검색을 하거나 바다에서 어군을 탐지하라는 식으로 비아냥대더군요.
개인적으로 의사 친구가 많아요. 다들 인격이 훌륭하고 참된 의사예요. 그런데 집단의 이익과 관련해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양의사 수가 10만 명이 넘어가면서 먹고살기가 힘든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전의총의 주장은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의견을 대변한 것 같습니다. 의협이 전의총을 전위로 내세운 것 아닌가요? 현 의협회장이 전의총 출신이에요. 한의학 발전을 깔아뭉개 자신들의 파이를 키우려는 의도인 듯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파이가 커지는 게 아니라 함께 죽게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중국은 중의사와 중성약을 세계에 수출합니다. 일본 양의사들은 동양의학을 이용했을 때 나타난 임상결과를 앞다퉈 논문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외과수술 후 동양의학 처방을 했더니 환자가 빠르게 회복했다는 식의 논문이 부지기수입니다. 한국 양의사들만 ‘과학적이지 않다’는 둥 아무런 근거 없이 한의학을 매도합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고 봐요.
법적으로 애매한 위치
환자를 위해 가장 정확한 진단을 하고 최고의 치료방법을 찾는 것이 의료인의 의무 아닌가요?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해 국민의 건강권이 침해되고 있다고요? 단 한 건이라도 환자가 피해를 본 게 있으면 예를 들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어이없는 주장이죠. 한국 양의사들만 동양의학을 터부시하면서 밥그릇 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김필건 회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수년 전 부산에서 한의사 한 명이 현대 의료기기로 성장판을 측정해 환자를 진단했습니다. 성장기 성장통을 앓는 청소년이 적지 않아요. 아이들이 자랄 때 아픈 게 성장통입니다. 성장통은 엔진과 엔진오일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한창 클 때 골수가 관절 쪽에 많아야 해요.
양방엔 성장통을 치료하는 약이 없습니다. 한의학엔 골수를 보충해주는 처방이 있어요. 한의사가 성장판이 어느 정도 열려 있는지, 얼마나 클 것인지를 현대 의료기기로 살펴본 후 치료한 겁니다.
그런데 그 한의사가 고발을 당하고 법적 다툼에서도 패했습니다. 그 한의사의 진료로 피해를 본 환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데려와보라고 하세요. 양의사들은 그 판결 등을 근거로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게 불법이라고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2006년 서울고등법원은 한의사의 CT 사용 등과 관련해 “한의학은 분비물과 배설물의 변화를 관찰하고 환자로부터 나타나는 소리와 냄새의 변화를 통해 진단하는 것”으로 봤다.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제1조 2-1항은 “의료기사란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 아래 의화학적 검사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1년부터 최근 3년간 MRI, CT, 엑스레이, 초음파검사기를 사용한 한의사 18명이 행정처분을 받았다(2011년 4명, 2012년 12명, 2013년 6월 현재 2명). 반면 검찰은 초음파검사기를 사용해 고발된 한의원 14곳에 대해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 이렇듯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법적으로 애매한 위치에 있다.
88%가 의료기기 사용 찬성
“양의사들이 2006년 판결을 내세우며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식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의사가 엑스레이 등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조항은 어느 법률에도 없습니다. 의료법 제2조 1항은 한의사 의사 치과의사 등 5개 직군을 의료인으로 규정합니다. 의료인은 진단의 객관화 및 정확성을 위해 필요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2006년 판결은 한의학의 과학화를 촉진하라는 한의학육성법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김 회장은 “국민 건강 증진과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해 한의약법을 제정해야 한다”면서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제1조 2-1항만이라도 하루빨리 개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대 의료기기로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약 및 침구 치료 등을 하는 게 해외에서는 보편화한 상황입니다. 이런 혜택을 대한민국 국민만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국민 건강권 침해가 아닌가요. 만시지탄의 감이 있으나 이제라도 국민이 높은 수준의 한방의료를 제공받을 토대가 마련돼야 합니다.
예컨대 한의사가 엑스레이를 사용해 인대가 늘어난 건지, 뼈가 부러진 건지, 금이 간 건지 살펴본 후 치료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환자 중심으로 생각합시다.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이 의료인의 의무예요. 이권 챙기기에만 급급해서는 안 됩니다.
양의사들이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대구의 통증 전문 한의사 한 분의 사례를 들어볼까요. 비수술 요법으로 척추 질환 등을 치료하는 분입니다. 이분이 인근 영상의학과 의원에 의뢰해 엑스레이를 촬영한 후 환자를 진료했습니다. 한의사와 양의사가 협진을 한 거죠. 환자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영상의학과 원장과 긴밀하게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김필건 회장은 한방의료기관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 “환자 중심으로 생각하자. 환자에게 어떤 치료가 가장 좋은지 생각하자”고 강조했다.
한의약법 제정이 시급합니다. 우선적으로 의료기기 등에 관한 법률 제1조 2-1조항에 ‘한의사’라는 석 자(字)만이라도 추가해주면 좋겠습니다. 법을 건드리지 않고 복지부 시행령만 바꿔도 되고요. 장관이 결심하면 되는데, 그것을 못해요. 의사단체가 들고일어날 것을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의사단체는 한의학의 현대화, 과학화는 한의학적 원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한방 이론에 따라 만들어진 경락기능검사기, 맥전도검사기, 양도락검사기기 등을 사용하고 발전시키라는 것이다. 한의사가 CT, MRI, 저주파치료기, 전기자극치료기, 레이저치료기 등을 사용하는 것은 현대의학을 불법 도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맥진만 하라는 게 아닌 것이 다행입니다. 한의학적 원리는 뭐고, 의학적 원리는 또 뭔가요? 동양의학은 국내외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임상연구와 기초 한의학 연구를 통해 현대과학과 통합된 진단-의료-평가체제를 갖춰놓고 있습니다. 공학자들이 만든 기기를 왜 양의학의 전유물로 여기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한의학은 수천 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시대마다 당대의 최신 기술을 흡수하며 발전했습니다. 종두법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지석영 선생이 한의사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한의학의 발전 수준을 모르기에 그런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한의원마다 CT와 MRI를 쓰자는 게 아닙니다. 갖춰놓을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양의사들은 한약 먹으면 간에 독성이 생긴다고 한의학을 폄훼합니다. 그런데 간 상태 등을 파악할 수 있는 혈액검사기 같은 간단한 측정기를 사용하는 게 불법 도용이라고요? 저주파치료기는 물리치료기의 일종으로 경혈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침과 같은 원리예요. 한의원에서 허리 아픈 환자의 경혈을 자극해 치료하는 것도 하지 말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습니까. 의료인이라면 결코 그런 주장을 할 수 없죠.”
한의협은 여론조사 기관 케이스파트너스에 의뢰해 한의사로부터 한방 의료서비스를 받은 경험이 있는 1000명, 한방 의료서비스를 받은 경험이 없는 500명 등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지난 9월 발표했다. 조사 결과 한방의료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답한 비율은 49.3%에 달했다. 또한 ‘의료기사 지휘권 등 제도적 지원을 통해 활용을 촉진해야 한다’는 응답이 38.5%로 나타나 전체 응답자의 87.8%가 한방의료기관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찬성했다.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은 6.9%에 그쳤다.
▼ 전의총은 “의학과 다른 한의학 교육을 받아 과학적 바탕이 없는 데다 의학적 사고체계가 다른 한의사에게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것은 국민에게 비효율적 낭비와 함께 잘못된 진단과 치료로 심각한 건강상의 위험을 가져올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비상식적인 얘기예요. 한국 양의사들만 한의학의 가치를 폄훼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양방 대형 병원에도 중의과가 필수적으로 설치돼 있습니다. 3000병상급 초대형 한방병원도 여러 곳 있고요. 베이징대, 칭화대 등 이공계 명문대학들이 한의학 연구에 매진합니다. 일본 대학들도 서구의 명문대학과 동양의학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고요. 그뿐만 아니라 의료계 인사들이 앞다퉈 동양의학의 임상활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커리큘럼 50%가 생명의과학”
한의사들도 양의사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6년을 공부합니다. 정부가 공인한 한의사 면허를 갖고 있고요. 한의대 커리큘럼의 50% 이상이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등 생명의과학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혈액검사기조차 사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양의사들은 한의학이 아직 ‘허준 시대’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소변분석기, 혈액검사기, CT, 엑스레이 등이 없다보니 맥진, 얼굴 형태와 색 변화 등으로 진단했을 뿐입니다. 양의사들도 과거에는 청진기만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병원에서 초음파를 쓴 지 얼마나 됐다고…. 초음파는 1970년대에 도입돼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죠. 한의사가 과학적인 진단을 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있는데, 법과 제도가 그것을 사용하게끔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게 정확한 현실 인식입니다.
지난해 건강보험 진료비 46조2000억 원 중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가 15조4000억 원으로 3분의 1을 차지했습니다. 노인 1인당 연간 진료비가 296만8000원으로 2004년 대비 2배 증가했어요. 노인의 만성병과 관련한 검사비가 그중 70%가량이고 약값이 30%쯤 됩니다.
이게 뭘 말하는 걸까요. 병원 갈 때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지 않습니까. 병원들이 그것으로 돈을 벌었다는 겁니다. 양방에선 노인성질환과 만성질환이 ‘고비용 저효율 질환’이지만 한방에서는 반대입니다. 일본은 고령화사회로 가면서 한방전문의를 2만 명으로 늘렸습니다. 한방으로 관리하는 것이 저비용 고효율적이라는 데이터가 논문으로 발표되고 있어요.”
“거시·미시의 협진 요구돼”
김 회장은 한의사를 거시경제학자, 양의사를 미시경제학자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보건의료 정책이 어떻게 하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거듭 강조했듯 서구에서는 동양의학을 흡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서구에서 처음엔 동양의학을 ‘대체의학’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엔 ‘통합의료’라는 표현을 썼어요. 통합은 어렵죠.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협진’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존스홉킨스의 협진진료센터가 특히 유명하죠. 주로 중의사들이 이곳에 가 있습니다. 양의사와 중의사가 정보를 공유하면서 환자를 치료하는 겁니다.
동서의학의 협진은 거시경제학자와 미시경제학자가 모여 경제 정책을 짜는 것과 비슷합니다. 거시경제학과 미시경제학은 관점이 다르지만 결국 두 경제학이 협력해 진단을 내놓습니다. 양의사가 미시경제학자라면 장기 하나가 아니라 복합적 장기를 보고 치료하는 한의사는 거시경제학자죠.
한국도 한의학 세계화에 나서야 합니다. 동양의학이 전 세계에서 엄청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한국엔 동양의학의 원형이 보존돼 있습니다. 법과 제도가 지원만 해주면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어요.
의협이 한의약법 제정에 대해 거센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의료법을 손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한의약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도와주는 법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왜 그렇게 행동할까요. 환자에게 최선의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