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멘토는 덩샤오핑, 경영철학 멘토는 피터 드러커
- 영업 실적 좋아도 한자 3급 합격 못하면 승진 안 시켜
- 중졸이 고학력자 이길 방법은 독서밖에 없었다
- 자식 아닌 ‘창업 DNA’ 이어갈 직원에게 회사 물려줄 것
김 회장은 이력도 남다르다. 중졸 학력으로 친환경·자원재활용이라는 21세기형 신사업을 일궜는가 하면, 늦깎이 대학생이 되더니 환갑이 넘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경영철학도 특이해 직원들에게 독서와 학습을 강요한다. 영업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학습 실적이 나쁘면 승진을 안 시킨다. 한 달에 한 번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직접 인문학 강의도 진행한다. 젊은이들 유행어로 ‘뭐ㅇ미?’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小平小道를 거닐다
▼ 덩샤오핑 평전을 펴냈다.
“중국에서 15년 정도 사업을 하면서 많은 중국인을 만났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 세 명 있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덩샤오핑, 마오쩌둥(毛澤東)이다. 저우언라이는 중국인의 어머니로, 덩샤오핑은 중국인을 먹고살게 해준 지도자로, 마오쩌둥은 중국인을 해방시킨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 관심을 갖고 자료를 모았다. 5년 전 저우언라이에 대한 책을 썼고, 이번에 덩샤오핑 평전을 완성했다. 앞으로 마오쩌둥에 대한 책도 쓸 계획이다.”
▼ 정치인이야 중국 지도자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기업가가 사회주의자에게 관심 갖는다는 게 뜻밖이다.
“덩샤오핑은 자본주의 DNA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혼합해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정치사상과 관계없이 그분 인생 자체가 훌륭해 경영인으로서 배울 점이 많다.”
▼ 어떤 점이 그런가.
“그는 자신이 가는 길이 옳으니까 지금은 어려워도 반드시 잘될 거라는 낙관을 가졌다.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신념이 있는 낙관이었다. 그게 경영자의 덕목이 아닐까 싶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덩샤오핑 같은 분도 있는데 이 정도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위안을 하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 책까지 쓴 이유는.
“젊은 친구들에게, 그리고 은퇴를 준비하는 50대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70세가 넘은 나이에 권력을 잡았으며, 20년 동안 나라를 잘 이끌어갔다. 나이 들어서도 값진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들려주고 싶었다.”
▼ 책 제목 ‘소평소도(小平小道)’는 무슨 뜻인가.
“덩샤오핑이 걷던 오솔길을 말한다.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으로 난창에 귀양을 갔는데, 홍위병들이 해코지를 할까봐 저우언라이가 군부대 안에 머물게 했다. 군부대에서 그가 일하는 공장으로 가는 길이 2km 남짓한 오솔길이었다. 베이징대를 나온 엘리트 아들이 홍위병들에게 맞아 불구가 됐다.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서 3년 4개월을 그 길을 걸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좌절과 절망의 길이었겠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라디오 하나 없는 노동자들의 빈곤한 삶에 마음 아파하며 오직 중국 인민을 잘살게 할 구상만 했다. 1978년 권력에 오른 그가 중국을 개혁한 기본 구도는 바로 그 길을 걸으며 구상한 것이다. 지난해 여름 나도 그 길을 걸으며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나태해졌던 마음을 다잡고 힘을 얻었다.”
그는 오랜 시간 덩샤오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웬만한 전문가 못지않은 깊은 식견을 느낄 수 있었다.
114정신
김 회장은 원래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다. “집이 가난했던 것도 있지만 공부를 안 한 것도 이유였다”며 웃었다. 그러다 끌려간 군대에서 그는 인생의 전환을 맞는다.
“밤에 보초를 서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다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배운 것도 없고, 집에 돈도 없고, 부모님은 연로하고, 어디 의지할 데도 없고…, 퍼뜩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책을 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부터 시작해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독파했다. 스스로 깨우치는 것만큼 좋은 스승은 없었다. 당시 부대장이 내가 공부하는 걸 좋게 생각해 말뚝보초를 서게 했다. 아침에 나가 저녁까지 12시간 동안 계속 보초를 서면서 책만 볼 수 있었다.”
덩샤오핑 동상 앞에 선 김상문 회장.
“군대에서 생각한 게 ‘마흔 살까지는 세상 공부를 하고, 그다음엔 내 사업을 하자. 그리고 60세가 되면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며 살자’였다. 직장을 다니다 마흔 살이 되던 1991년 사표를 내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채석 사업이었다. 당시 200만호 주택 건설 사업과 맞물려 유망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인천에 있는 돌산을 주목했다. 지금 공장과 사옥이 있는 부지다.
“돈도 없었지만 무작정 땅주인을 일주일에 두 번씩 찾아갔다. 처음엔 만나주지도 않았고, 겨우 만났을 때에도 외상으로 달라고 했더니 말도 못 붙이게 했다. 그렇게 1년 2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총 114번을 찾아가니까 나를 믿고 외상으로 팔겠다고 하더라.”
▼ 갚았나.
“6개월 만에 갚았다. 당시는 채석 허가만 받으면 레미콘·아스콘 회사에서 선불을 주고 돌을 선점했으니까.”
114번을 찾아간 당시의 무모한 끈기와 정성을 그는 지금 기업정신으로 삼고 있다.
경영혁신형 중소기업
재미있는 건 아이케이는 친환경 재생산업 회사인데, 시작은 채석 사업, 일종의 환경 파괴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그땐 환경이 뭔지도 몰랐다. 산의 돌을 캐서 골재로 팔았는데, 다른 사업자들은 산을 다 들어내면 다른 곳으로 사업장을 옮겼다. 그런데 돌은 지하에도 있지 않은가. 땅을 파서 돌을 캐면 산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지하 60m까지 채석을 했다. 당시 법에 지하 채석에 대한 기준이 없어 내가 관련 기관에 문의하고 법제처 등에 유권해석을 의뢰해 지하 채석을 할 수 있게 선례를 남겼다.”
더 이상 돌을 캘 수 없게 되면 파내려간 공간을 메워야 한다. 보통은 흙으로 메우는데, 그는 건설폐기물을 중간 처리해 생산한 재활용 골재로 메웠다.
▼ 폐기물로 메우면 땅이 오염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폐기물로 메운 것이 아니라 반입된 건설폐기물은 분리·선별·파쇄의 중간처리 과정을 거쳐 폐기물은 지정된 곳에서 소각이나 매립을 하고,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생산한 골재는 순환골재라 해서 재활용이 가능하다. 이처럼 재활용이 가능한 골재로 메운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골재 리사이클링 사업에 눈을 뜨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사업에 뛰어든 그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세계 최대 규모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 및 순환골재 생산시설을 옥내 공장으로 지었다. 옥내화 시설은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냄새를 차단할 뿐 아니라 비산먼지를 제거해 대기질도 개선하는 말 그대로 친환경 시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기름이나 중금속으로 오염된 흙을 정화해서 깨끗한 흙으로 만드는 토양정화 사업, 해양투기가 전면 금지된 하수슬러지를 고화시킬 수 있는 고화재를 생산하는 사업도 한다. 최근엔 기후변화연구원을 설립해 기후변화 및 에너지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아이케이는 전 직원 100여 명, 연매출 600억 원 규모의 크지 않은 회사다. 하지만 특허등록 13건, 특허출원 1건을 보유할 정도로 기술개발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한국지질연구원, 산업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정부부처와 공동연구도 여러 건 진행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정부에서 경영혁신형 중소기업으로 선정한 이유다.
▼ 경영에 어려움은 없었나.
“적자를 보거나 재정적 어려움을 겪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때도 실패하더라도 회사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 내에서만 진행했다. 올인(all in)하면 전체가 흔들려서 안 된다. 회사 신용도도 AA를 유지한다. IMF외환위기 때도 우리 어음은 유통됐을 정도다.”
헬스자전거 타며 독서
그는 지독한 독서광이다. 군대를 제대한 후 지금까지 1년에 150권 이상씩 읽는다고 한다.
“중졸인 내가 고학력자를 넘어설 방법은 독서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책을 안 읽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책을 읽는 것은 지식 몇 개를 얻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끊임없이 다른 각도로 보고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어 더 나은 판단, 더 나은 행동을 하게 만든다.”
▼ 경영에 도움이 된 책이 있다면.
“피터 드러커 교수의 책들이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읽기 시작해 20권 넘게 나온 그의 책을 다 읽었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게 ‘돈 벌려고 사업하지 마라. 사업을 똑바로만 하면 돈은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의 책을 읽으며 경영 목적이 이익 창출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덩샤오핑에게 인생을, 피터 드러커에게 경영철학을 배웠다면, 실천적인 부분은 잭 웰치에게 배웠다. ‘안 되는 것은 빨리 팔아라, 잘되는 것에 집중하라’ ‘희망적으로 보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그의 조언은 순간순간 선택을 할 때마다 지침이 된다.”
▼ 회사 운영도 하고, 대학원 공부도 하면서 책까지 읽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습관만 되면 어렵지 않다. 정기적으로 서점에 가서 책을 여러 권 산 후 차에도 놓고 화장실에도 놓고 거실에도 놓고 침실에도 놓고는 손에 잡힐 때마다 읽는다. 동시에 여러 권을 읽다보니 지루하지 않다.”
▼ 주로 언제 책을 보나.
“우선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까지 읽는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마다 읽는다. 퇴근한 후에 집에 와서는 헬스자전거를 타면서 읽는다. 구양수라는 사람은 마상, 처상, 측상이 독서하기 좋은 장소라고 했다. 말을 타고 가면서, 침상에서, 화장실에서 독서를 한단 뜻인데 나는 말 대신 헬스자전거를 타면서 책을 읽는 셈이다.”
▼ 경영을 하다보면 술 마실 일이 많지 않나.
“술을 많이 안 먹게 된다.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 술이 다 깰 때까지 헬스자전거를 타면서 책을 읽는다. 술이 깬 후에 샤워하고 자면 아침에 개운하다. 술은 119 원칙을 지킨다. 1차에서 끝내고 한 가지 술로 9시까지만 마신다.”
아이케이 건설폐기물 중간처리공장은 국내 최초, 세계 최대 규모의 옥내화 시설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체력이 젊은이 못지않다. 2년 전엔 서양인들이 버킷리스트 1번으로 꼽는다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완주했다. 3년 전엔 중국 골프장을 빌려 하루 동안 144홀을 돌았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기록이다.
“144홀을 마치고나니 발톱이 3개나 빠졌다. 왜 그런 무모한 도전을 했냐고? 나 자신에 대한 도전도 있었지만 직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공부가 됐든 운동이 됐든 목표를 하나 세우고 끝까지 해보는 불굴의 도전정신을.”
그의 열정은 독서에서 멈추지 않는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틈틈이 최고경영자과정, 고위정책과정 등을 수료했다. 2008년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해 2010년 방송통신대 중어중문과에 입학, 늦깎이 대학생이 되기도 했다. 올해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 경영학이 아닌 중국을 선택한 이유는.
“앞으로 중국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영향력은 점점 커질 것이다.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사업을 하든 뭘 하든 성공할 수 있다.”
▼ 그렇게 생각한 계기가 있나.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에서 여러 사업을 했는데 다 망하고 하나 성공했다. 인건비 싸다고 들어갔다간 실패하기 십상이다. 중국이 그렇게 어렵다. 실패 이유가 중국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중국어를 못하니까 통역을 통해 의사를 전달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의사소통이 안 된다. 사업을 하려면 중국인과 말도 잘 통하고, 중국 시도 함께 읊고, 그들의 철학과 내면을 어느 정도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
그는 앞으로 한시를 더 공부해서 중국 사람들이 즐기는 한시 100수를 정리해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후진타오나 장쩌민이 외국에 나가면 시 한 수씩 읊을 정도로 시는 그들의 생활이자 문화다. 중국을 알려면 한시를 많이 알아야 한다. 중국인은 자기 역사와 문화에 소양이 있는 걸 으뜸으로 치고 신뢰한다. 중국에 대한 공부를 그런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후배들에게 그런 인문학적 소양을 전해주고 싶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요즘은 논어를 강의한다. 대한민국을 통틀어 오너가 직접 직원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하는 회사는 여기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이뿐 아니다. 사옥 지하 1층엔 전 직원의 독서카드가 붙어 있어 자신이 읽은 책을 기록하도록 한다. 심지어 승진 기준이 영업 실적이 아니라 한자 3급 시험 합격 여부다. 공부하고 책 읽는 게 싫어서 회사를 그만둔 직원이 있을 정도다.
▼ 왜 이렇게 독서와 학습을 강조하나.
“지식이 차야 지혜로워지고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진다. 인생은 남이 대신 살아줄 수 없다.”
▼ 직원들이 반발하지 않나.
“습관이 몸에 밸 때까지만 강요하는 거다. 습관이 되면 스스로 알아서 잘한다. 나는 회의시간에도 영업이나 매출 이야기는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나머지 시간은 직원들이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가 주제다. 경영 숫자를 이야기하는 것은 잡은 물고기 숫자를 놓고 떠드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게 책을 읽게 하는 것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격려금도 도서상품권으로 준다. 그의 이런 노력 때문일까, 고졸 직원 중에는 독서와 학습 습관이 길러져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림잡아 10명은 훨씬 넘게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다.
진정한 유산
덩샤오핑이 걷던 오솔길 입구.
▼ 100년 기업이 되려면 2세 경영 수업을 잘해야겠다.
“난 내 아들이 이 회사를 맡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 이념인 ‘학습’ 정신과 ‘114’ 도전정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운영해야 한다. 현재 사장이 책임경영을 잘한다.”
▼ 회사 지분은 2세들에게 넘겨줄 것 아닌가.
“자식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몇 %에 불과하다. 내가 가진 지분은 자식들에게 물려줄 게 아니다. 중국 인문학 관련 연구하는 곳이나 젊은 학자들을 후원하는 데 쓸 생각이다. 자식에게 돈을 물려줄 필요가 없다. ‘아버지가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는 것 이상의 좋은 유산은 없다.”
▼ 더 나이가 들면 달라지지 않을까.
“딸이 결혼한 지 8년 됐는데, 지금도 전세로 산다. 딸 부부가 저축한 만큼만 도와줬다. 쉽게 들어온 돈은 쉽게 나간다. 몇 백억 원을 줘도 흥청거리면 사라지는 건 순간이다. 사람만 망가진다. 그런 경우를 많이 봐서 애들은 힘들게 돈을 모으게 해야 한다고 원칙을 세웠다.”
그는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사가 제대로 살아남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세운 창업정신이 회사에 올곧게 남기를 바란다. 회사 식구들에게 항상 이 회사가 망한다면 경기가 나빠서가 아니고 내가 세운 ‘학습’ 정신, ‘114’ 도전정신이 사라졌을 때라고 말한다. 이 정신만 살아 있으면 100년, 아니 1000년도 간다. 또한 우리사주조합과 사내복지기금을 설립해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회사로서 영속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는 GE사가 모델이라고 했다.
“GE는 에디슨이 만든 전구회사로 시작했지만 지금 회사 어디에도 에디슨가(家)의 흔적은 없다. 에디슨 후손이 취직을 하겠다고 하면 약간의 혜택을 줄 뿐이다. 그런데도 창업자 에디슨의 정신은 올곧게 남아 있다. 아이케이도 그런 회사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