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연과 정(情) 중시하는 사회 풍토가 전관예우 키워
- 고위공직자 취업심사 대상 확대해야
- 소득 목적 위해 변호사 개업할 생각 없다
- 공직자는 퇴직 후에도 공심(公心) 잃으면 안 돼
지난 2월 취임한 김희옥(66)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은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차관을 거쳐 2010년 12월 헌법재판관으로 퇴임할 때까지 34년 동안 법조계에 몸담았다. 전관예우 문제를 깊이 있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만한 위치에 있었다고 하겠다. 그는 2011년 3월부터 모교인 동국대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동국대 총장실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전관예우 문제에 대해 말을 아꼈다. 원칙적인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그 말 속엔 고위공직자에 대한 따끔한 충고와 함께, 고위공직자의 재취업 자체를 ‘전관예우’로 호도하는 일부 비이성적 비난에 대한 반론도 담겨 있었다.
연약사회(緣約社會)
▼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책임이 막중할 것 같습니다.
“30년 넘게 국가 사정(司正)과 법조 관련 공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공직자의 윤리 수준이 국가 발전과 안녕에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헌법과 공직자윤리법 등이 규정한 범위 안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게 엄정하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함으로써 공직자의 윤리를 확립토록 해 국가 정책 수행에 기여할 각오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면.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 증식을 방지하고,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해 공직자의 윤리를 확립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입니다. 공직자윤리법은 1983년부터 시행되었는데, 그동안 내용이 계속 강화되어왔습니다. 법이 정한 권한에 따라 공직자 및 공직후보자의 재산등록과 심사, 퇴직 공직자의 영리 사기업체 취업 여부 확인 및 취업 승인, 공직자의 선물 신고 사항 심사 등을 수행합니다.”
▼ 전관예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관예우란 게 최근 새롭게 제기된 것도,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관예우는 두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퇴직 공무원이 전에 하던 업무와 관련된 기업 등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과, 그 퇴직 공무원이 영향력을 행사해 국가기관과 관련한 사업에서 그 기업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활동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태는 반드시 부작용을 가져오게 됩니다. 공직자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기 때문에 ‘봉사자성(奉仕者性)’을 요구받습니다. 퇴임 후에도 일정한 범위에서 청렴 의무, 비밀엄수 의무, 품위유지 의무 등을 가져야 합니다. 전관예우에 따른 취업과 활동은 봉사자성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퇴직 공직자가 기업에 취직했다 하더라도 일반 사원과 똑같이 일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전관예우가 왜 생긴다고 보시는지요.
“근대 시민사회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최고 가치로 하는 합리적 계약사회입니다. 중세 신분사회에서 계약사회로 진전된 것은 시민 개개인의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계약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나라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기본권 존중 사회이고, 계약의 자유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는 인연이나 연분을 중요시해 연약사회(緣約社會)라는 말도 있습니다. 인연과 정을 중시하다보니 퇴임 공직자를 활용하는 게 효용이 커 기업이나 퇴임 공직자 모두 전관예우에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기업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퇴임 공무원 한두 명은 관리하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퇴직 공무원이 자신의 과거 지위를 이용하려 하는 것도 문제고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 전관예우 관행을 없애려면 퇴임 공직자의 재취업을 규제해야 하는데 현 공직자윤리법에서는 어떤가요.
“실제 운용해보니까 현 규정으로는 퇴임 공직자에 대해 취업제한을 하기가 거의 어렵습니다. 지난해까지 통계를 보면 재취업을 허용해준 비율이 93% 정도로 나타났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위원회는 법에 규정된 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법을 위배하면서 막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국민 여론도 그렇고, 내용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최근 안전행정부에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요.
“법률 개정은 입법부 소관 사항이어서 제가 언급하기가 무척 조심스럽지만, 지금보다는 상당히 진전되었다고 봅니다. 퇴임 공직자의 취업제한 범위를 확대하고, 취업제한 기간도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했더군요. 가장 중요한 게 퇴임 고위공직자의 취업심사 때 업무관련성 판단범위를 현 소속부서(과)에서 소속기관으로 확대한 것입니다. 소속 부서로 한정해서는 취업제한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개정안에도 문제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정도만이라도 신속하게 입법화했으면 합니다.”
▼ 야당과 시민단체는 개정안에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 소위 전문자격자에 대한 취업심사 예외 조항이 그대로 남아 있다며 반발합니다.
“관련 자격증이 없는 퇴직 공무원은 로펌 등에 취업하는 것에 대해 규제를 받지만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격증이 있더라도 차관급 이상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직위에서 퇴임하면 취업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논란이 되는 것은 장의 직위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퇴임한 법조인은 예외 규정을 적용받는 것인데,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 어떤 점이 어렵다는 것인가요.
“공무원이 봉사자성에 의해 어느 정도 규제를 받는 게 맞긴 한데, 공무원도 국민이므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 기본권, 특히 직업의 자유와 재산권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국민 기본권과 봉사자성의 충돌을 어떻게 조화할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헌법에 비례의 원칙이란 게 있습니다. 어떤 제도가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는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적용해 최대한 균형감을 갖고 퇴직 공무원의 취업을 합리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 위원장은 지나친 규제 강화는 오히려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과거에도 법조계의 전관예우를 방지한다며 재직기간 15년이 안 된 판사·검사는 최종 2년간 근무지에서 3년간 개업을 제한하는 규정과 검찰총장의 퇴임 후 2년간 공직 취임 금지 규정을 만들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공지자윤리법 17조 제6항 단서조항에서 규정한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직위에서 퇴임한 사람’으로 되어 있는 취업심사 대상 범위를 합리적인 선에서 확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안행부에서는 당초 예외 조항을 없애려 했는데 관련부처에서 반대의견을 개진했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해당 부처에서 어떠한 의견을 냈는지는 아는 게 없습니다. 다만, 정부에서 일할 때의 느낌은 각 부처에 고유의 업무 영역과 이익을 지키려는 관행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례의 원칙
▼ 위원장도 현직에 있을 때 전관예우 부담을 느낀 적 있는지요.
“사건을 처리하면서 선배 변호사들이 선임계를 넣는 경우가 있죠. 그러나 대법원에서 지침으로 정한 사건처리 기준이 있습니다. 거기에 맞추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 가까운 선배 검사 출신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을 처리할 때는 아무래도 심리적 부담이 있었을 텐데.
“저는 사건이 끝난 후에 ‘이래서 이런 형량을 구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을 해줍니다. 검사마다 유형이 있어요. 아예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 검사도 있을 수 있고, 도움을 주는 타입도 있을 수 있고, 저처럼 원칙대로 사건을 처리하되 나중에 설명을 하는 타입이 있을 수 있죠.”
▼ 법피아(법조계+마피아)란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고위직 판검사 출신은 아예 변호사 개업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데요.
“업무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곳에 가지 못하도록 제한 영역을 더 넓힐 필요는 있지만 변호사 자체를 못하게 한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사회에서 육성한 전문가를 활용하는 면도 있다고 봐야 하고요. 물론 과하게 돈을 받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게 이해는 됩니다. 국민적 논의를 거쳐 제한 영역의 테두리를 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 퇴임 법조인들의 대기업이나 로펌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다른 공직자도 그렇지만 법관이나 검사 급여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변호사를 하게 되면 그만큼 충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위직으로 퇴임해도 변호사를 하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의 경우 고위 법조인으로 퇴임하면 공증인을 할 수 있어 전관예우를 기대하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한 반면, 우리는 5인 이상(서울 기준) 변호사가 모여야 공증을 할 수 있어 로펌에 속한 변호사만 가능합니다. 대법관, 헌재재판관 등 고위공직 퇴직자는 변호사 업무를 하지 않고도 기본적인 노후생활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너희는 뭔데 퇴임 후까지 세금으로 먹고사느냐’는 말이 나오지 않겠어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 한 대법관은 퇴임 다음 날부터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평범한 서민의 삶으로 돌아가 화제를 모았지만, 몇 개월 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이라는 맹자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대형 로펌에 들어가 충격을 주었다.
▼ 위원장은 왜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으로 가지 않았는지 궁금하네요.
동국대 총장실엔 ‘淸白家風直似衡 秤頭不許蒼蠅坐’라고 쓰인 족자가 있다. 공직자가 가슴에 새겨야 할 글귀가 아닐까.
▼ 전관예우 문제의 해결책이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는데,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법률이나 제도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국민과 공직자의 의식, 그리고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계약사회의 실현이라고 봅니다.”
퇴임 공직자의 자세
▼ 전관예우가 앞으로 줄어들 거라고 보는지요.
“우리 사회가 그동안 많은 발전을 했습니다. 부패도 과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에서 많이 정화되고 있습니다. 옛날처럼 현직에 있으면서 부패하는 것은 드물잖아요. 전관예우의 폐해도 시민의식의 고양과 나라의 발전에 따라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우리사회에서 제기되는 전관예우에 대한 비판적 여론의 방향이 법률을 통한 제도화로 진전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퇴직 공무원도 전관예우의 폐해를 알고 있으므로 앞으로는 제도와 의식면에서 전관예우가 감소하리라 기대합니다.”
▼ 제도 개선이 급선무이겠군요.
“그렇다고 한꺼번에 모든 걸 때려잡겠다는 것도 현명한 발상은 아닙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퇴임 공무원도 국민 기본권이 있는데, 비례원칙에 맞게 제한해야지 심하게 제한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 공직자의 자세도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공직자는 임용 주체가 주권자인 국민이기 때문에 국민 전체에 봉사하고 책임져야 하는 특별한 지위에 있습니다. 담당 업무가 국가의 공공적인 일이라 직무수행을 하면서 공공성, 공정성, 성실성, 중립성 등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내용은 일정한 범위에서 퇴임 후에도 요구되므로 퇴임했더라도 청렴성이나 품위 유지 등의 의무가 있습니다. 퇴직 후에도 그 공심(公心)을 잃으면 안 됩니다.”
그가 일하는 동국대 총장실에 걸린 족자의 글귀가 마음에 와 닿았다. 淸白家風直似衡 秤頭不許蒼蠅坐(청백가풍직사형 칭두불허창승좌). ‘맑고 깨끗한 가풍이 마치 곧은 저울과 같아서, 저울대에 쉬파리 한 마리 앉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직자라면 공직에 있을 때나 물러났을 때나 가슴에 새겨야 하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