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왼쪽),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손을 맞잡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이 탄생한 배경으로는 무엇보다 이 지역의 급속한 경제적 부상(浮上)을 들 수 있다. 일본에 뒤이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이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함으로써 잠재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중국이 개혁과 개방을 통해 이러한 흐름에 합세하면서 동북아시대는 현실감을 더하게 되었다. 한국, 중국 및 일본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은 경제 규모, 보유 자원, 경제 역동성, 역내 거래규모 등에서 미국이나 유럽연합(EU)과 충분히 견줄 수 있는 경제권이라는 점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동북아시대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구체적인 실체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동북아시대를 실현할 수 있으며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련국들 내에서도 체계적인 토론이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 역시 출범 초기부터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현을 국정목표의 하나로 내걸었으며, 이 목표를 위해 대통령 자문기구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금융 및 물류거점 구축, 외국인 투자유치 그리고 역내 경제 및 에너지 협력 등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 후 이 위원회는 2004년 6월 동북아시대위원회로 확대, 개편되었다. 그 이유는 동북아정책의 목표인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려면 활동 영역을 경제적인 면에만 국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대위원회의 설립취지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정착 및 주변 4강국과의 협력외교를 비롯한 군사 안보협력적 기반을 동시에 확립한다는 정부의 방침을 반영하고 있다. 그동안 북핵문제와 같이 새롭게 불거진 군사 외교문제가 동북아 관계에서 핵심현안 중의 하나로 대두되었다. 또 동북아 내 사회문화교류를 포함하는 폭넓은 협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
이 위원회의 활동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물론 동북아 정책의 취지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비전, 접근 및 추진방법 등을 보면 현재의 방식은 재고해야 할 여지가 있다.
한마디로 이 위원회가 추진하는 과제들이 앞에서 지적한 내용들이라면 구태여 ‘동북아’라는 별도의 명칭이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경제적인 면에서 특화산업의 개발, 산업경쟁력 제고, 사회간접시설 확충 및 에너지 협력 등은 한국경제가 당면한 일반적 과제이며, 외교·안보정책 역시 그 대상이 동북아 국가들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통합 돌파구로 외교현안 해결을
동북아시대는 최근 (경제적) 지역주의가 유행처럼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방향이 좀더 분명해지는 것 같다. 쉽게 풀기 어려운 외교·안보 현안을 해결한 후에, 아니면 이러한 노력과 병행하여 동북아 시장통합을 시도한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그 전망은 좀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한중일 경제공동체를 추진하는 한편, 이 테두리 내에서 동북아 내 정치·군사적인 현안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실리적인 동시에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기능주의적(neo-functionalist) 접근과 같은, EU에 의한 유럽통합의 발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접근법은 경제통합을 우선 실현함으로써 유럽국가들이 시장 확대에 따르는 경제적 이득도 얻고 동시에 정치통합의 기반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50여년 동안 꾸준하게 시장통합을 추진하면서 유럽은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였고 이를 통해 이미 하나의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동북아지역은 지역주의의 물결에서 예외였으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만 하더라도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데 이어 싱가포르와 FTA협상을 마감했으며 일본과는 비슷한 협상을 진행중이다. 또 한국-아세안(ASEAN) 국가간 FTA 협상을 2006년까지 타결하기로 합의했다. 중국과 일본도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상을 비롯한 FTA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한중일 3국은 모두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호 경제교류를 많이 실현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FTA 대상국을 주로 아세안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지난 11월 말 ‘아세안+한중일(ASEAN+3)’정상회의에서 장기적으로 동아시아공동체(EAC)의 설립을 추구한다는 데에 합의했고, 이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중일 정상회의는 ‘14개항 행동전략’을 채택했지만 그 내용은 경제 각 부문에 걸쳐 협력을 강화한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정부 차원에서는 한-중, 또는 중-일 FTA가 아직까지 논의되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북핵문제, 남북한 관계 및 중-일의 미묘한 외교관계 등 주로 이 지역에 산재한 외교·안보 현안들 때문이다. 그러나 순서를 바꾸어 경제통합이라는 새로운 틀 속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