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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업 이룬 楚 장왕, 내실 다진 秦 목공의 공통점

통치자의 눈과 귀로 직접 겪은 인재, 적재적소 중용

패업 이룬 楚 장왕, 내실 다진 秦 목공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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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장왕은 음락을 딱 끊고 주위의 간언을 경청하며 나라를 다스렸다. 오거와 소종에게 정치의 실무를 맡기고, 다른 한편 음락과 방종을 부추기며 아부하던 수백명의 간신을 처단했다. 국민은 크게 기뻐했다.

장왕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 그는 집권 직후엔 결코 일을 서둘러 벌이지 않았다. 더구나 새로운 구상으로 개혁에 착수하는 마당에 낡은 중진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 등 구정권의 인적 구성을 답습하지 않았다. 새로 등용할 인재들을 식별하려면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인재들을 자기의 눈과 귀로 직접 고험(考驗)했다.

고급 인재의 등용을 중앙정보부나 인사위원회 등을 통한 천거에 전적으로 의존하면 그렇게 천거된 인재들은 지기지은(知己之恩·자기를 알아준 은혜)을 느끼지 않는 법이다. 더구나 동의하지 않는 사업이나 원치 않은 부서에 인재를 배치하는 짓은 후일 파멸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고려 왕조 말엽에 우왕과 최영이 오판하여 자신들과는 정세 판단이 근본적으로 다른 이성계를 전선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한 대표적인 예다.

개혁 지향과 인재 갈망

내치와 외교는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 국내 개혁이 성공하려면 외교적 안정이 필수적이다. 다른 한편 국제무대에 진출하려면 국내 정치의 내실화와 국력 배양이 선행돼야 한다.



현대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은 이 미묘한 상호의존 관계를 슬기롭게 파악하고 그에 훌륭히 적응함으로써 ‘개혁과 개방’을 통한 현대화 작업에 성공했다. 미국 및 일본과의 외교관계에서 신의를 정립하고, 그것을 당면한 국가 이익에 일치시켰다. 다른 한편 구소련이나 베트남과 빚어진 일시적인 불편한 관계는 감내했다.

춘추시대에는 초나라 장왕이 그와 같은 탁월한 본보기를 남겼다. 장왕의 목적은 중원으로 진출하여 패자(覇者)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이때 라이벌은 진(晉)이었다.

한편 서쪽의 강국 진(秦)의 불신 대상은 진(晉)이지 초가 아니었다. 자연스레 남쪽의 초나라와 서쪽의 진(秦)나라가 사실상의 연맹관계를 이룰 수 있었는데, 그 실현을 위해 장왕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맞서 중원의 진(晉)은 고립을 피하고자 동쪽의 강국 제(齊)나라와 합작을 꾀했다. 그후 진(晉)은 동남방의 신흥 강국인 오(吳)나라에 접근한다.

이 무렵 장왕은 외교적 안정에 힘입어 국내 정치의 개혁에 주력했는데, 문제는 인재 등용이었다. 하루는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장왕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측근들이 까닭을 묻자 장왕이 말했다.

“예로부터 어진 선비를 스승으로 맞으면 훌륭한 왕이 되고, 똑똑한 사람을 벗삼으면 처세에 걱정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해 들어보면 여러분의 능력이 나보다도 못한 수준이니, 어찌 나라의 흥망이 걱정되지 않겠는가.”

때마침 솔깃한 소식이 전해졌다. 기사(期思)라는 변두리 고장에 지혜로운 선비가 피난 와서 살고 있다고 했다. 이름이 손숙오(孫叔敖)인데, 그가 친척과 마을 사람들을 설득, 동원하여 대규모의 관개·수리 공사를 해서 농업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는 것이다.

장왕은 지체 없이 그를 초청하여 대화하고는 곧바로 영윤(令尹)이라는 최고 관직에 임명, 국정을 맡게 했다. 영윤은 초나라 관직의 특별한 호칭으로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벼슬이다.

손숙오의 국정 개혁

손숙오가 펼친 행정지도 특징은 아무리 좋은 사업일지라도 서둘러 벌이지 않고, 사업의 필요성을 납득시키고 협력자를 모으기 위해 교육과 홍보를 선행했다는 점이다. 화합정치, 상하일치의 요체다. 쓸데없는 금지와 규제를 없애고, 모든 일이 막힘없이 진행되게끔 풀어주고 완화해 나갔다. 그리하여 인민이 저마다 스스로 적극성을 발휘하며 안거낙업(安居樂業)했던 것이다.

수공업과 상업에 걸쳐 ‘사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평판이 생겨나며 초나라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공무원은 청렴했고, 기강이 바로 섰으며, 도둑이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史記, 循吏列傳)

손숙오는 정치가이자 기술자였고 경제인이었다. 나아가 군사적 감각이 탁월한 지도자이기도 했다. 오늘날 어떤 정치인이 “정치가 전공이라 군사도 모르고 경제도 모른다”고 공언했는데, 이는 태만한 자의 무책임한 발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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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운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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