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과 결별하고 한나라당에 비판적인 비(非)노무현-반(反)한나라 세력은 정운찬(鄭雲燦·60) 서울대 총장(이하 정운찬) 같은 신선한 이미지의 인물을 2007년 대선 후보로 내세울 것이다. 즉 열린우리당에서 노 대통령과 그 지지자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가 떨어져 나와 고건 전 국무총리, 민주당, 국민중심당 등과 함께 새 이미지의 정치체를 만든 뒤 정 총장을 극적으로 대선 후보로 선출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이른바 ‘정운찬 대세론’이 처음으로 공개리에 거론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87일 후인 지난 4월30일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많은 생각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이번 대선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정치는 비전과 정책 제시만이 아니라 이를 세력화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태껏 그런 세력화 활동을 이끌어본 적 없는 저는…”(정운찬의 대선 불출마 선언문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중)
“대선 구도 무너졌다”
그는 지난 9개월여 동안 ‘정치 안 한다’와 ‘한다’ 사이에서 20회 이상 표현을 약간씩 달리하면서 거취 결정을 유보해오다 이날 범(汎)여권에 결정적 충격을 안겼다. 대통령선거는 ‘구도’의 대결, ‘인물’의 대결인데 정운찬의 ‘드롭’은 범여권엔 이 두 가지 모두의 ‘상실’을 의미했다. ‘호남+충청 vs 영남’의 필승 지역구도, ‘참신한 경제·교육 전문가 vs 기성 정치권의 낡은 야당 후보’라는 인물 우위론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정운찬의 퇴장으로 여권의 후보경선은 이제 ‘도토리 키 재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선 구도가 무너져버렸다”(김부겸 열린우리당 의원), “정운찬이 안 나서면 범여권의 선거는 사실상 끝난 것이다”(김종인 민주당 의원)….
정운찬을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본 한 측근 인사는 최근 기자에게 그의 대권 행보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인사의 증언을 토대로 2007년 대선 판도를 뒤흔들 뻔했던 ‘정운찬의 287일 대권 도전 과정’을 취재했다.
지난해 7월19일 서울대학교와 정운찬은 새로운 역사를 썼다. 서울대 개교 사상 처음으로 정운찬은 직선제 총장 4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이전 총장들은 갖가지 불미스러운 일로 중도하차한 터라 그의 퇴임은 각별했다. 언론은 그의 퇴임을 아낌없이 축하했다.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19일 물러나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외롭게 대학의 자율성을 외친 사람이었다. 세계적 대학의 육성은 시급한 과제다. 대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정 총장의 행보는 그가 퇴임하는 시점에서 더 빛이 난다.’(동아일보 2006년 7월12일자)
당시에도 정운찬 주변엔 스승인 조순 전 서울시장, 김종인 의원 등 정계·재계·언론계의 지인그룹과 후배 교수 등 소장파 지지그룹이 있었다. 정운찬의 적극적 지지자들은 다음의 근거로 그를 이미 ‘대선 잠룡(潛龍)’으로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