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3~14일 북·미 제네바회담의 양측 주역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위)와 김계관 북한 외교부 부부장.
이번에는 이 같은 MB 정부 대북정책의 근저(根底)를 이루는 ‘인식’의 실체를 추적해볼 차례다. MB 정부가 어떤 철학과 논리에 입각해 이 같은 대북구상을 입안했는지 따져보는 것은 정책의 성패를 가늠할 핵심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남측으로부터의 쌀·비료 지원은 북측으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라는 인식. 이 같은 인식은 최근 정부 당국자들에게서도 표출됐는데, 북한은 이를 위해서라도 남측과의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일정 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둘째, 그러므로 남측은 이 기회에 남북관계에서 확실하게 주도적인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 정권 초반에 어느 정도 기 싸움과 교착상태를 감수하더라도 ‘갑(甲)’의 지위를 확고히 해야만 앞으로 경협뿐 아니라 이산가족,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등 민감한 현안들을 남측 의도대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셋째,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시일 안에라도 북미관계가 좋아질 수 있고, 남북관계는 그 후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인식. 이른바 ‘한미동맹 복원→북미관계 개선→남북관계 진전’이라는 단계적 접근법이다. 이 과정에 4월 한미 정상회담이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을 것이다.
MB 대북정책의 저변을 이루는 이 같은 인식들에는 근본적으로 이전 정권들과 차별화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내포돼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는 또 4월 총선 전략과도 연계된다. 최소한 총선 전까지는 북한과 거리를 두면서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할 때 이전 정권과의 차별성도 부각되고 득표에도 더 유리하다는 계산이 서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MB 대북전략 수립과정을 관찰해온 한 전문가의 말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MB 대북정책 역시 효율을 중시하는 ‘CEO 마인드’가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불발로 끝난 ‘남주홍 통일부 장관’ 카드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경보수로 알려진 남씨를 통일부 수장 자리에 앉혀놓으면 쌀·비료 지원을 하게 될 경우 국내 보수진영의 거부감을 상쇄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지 않았을까.”
문제는 이 같은 인식들이 과연 올바른 상황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냐는 점이다. 단순히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에 입각한 판단은 정책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상대방이 있는 남북관계 속성상 남측의 행동에 대한 북측의 반응을 한 방향으로 예단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남북관계의 로드맵을 그리더라도 국면마다 돌발변수에 대한 대책과 대안들을 마련해놓아야 하는 이유다.
그 3가지 인식의 오류
첫째, 북한은 식량·비료를 받기 위해 마지막까지 대화에 매달릴 것인가.
북한이 현재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맞다. 북한 내 암시장 곡물가격도 지난 1, 2년 사이에 천정부지로 뛰었다고 한다. 올해는 국제 유가·곡물가 상승으로 더욱 힘든 고비를 넘겨야 한다. 하지만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북한이 무작정 남쪽에 매달릴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식량위기 때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했음에도 버텨냈다. 2006년에도 핵실험 때문에 식량원조가 중단됐었다. 그런 북한이 제2, 제3의 ‘고난의 행군’을 다시 선언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북한이 남측의 식량·비료지원을 ‘독이 든(조건이 따라붙는) 사과’라고 본다면, 그것을 거부하고 대화를 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