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
이는 불과 석 달여 전인 2월25일 정오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날 오전 대통령 취임식을 치른 이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서울시청 광장에서 수많은 시민으로부터 축하의 인사를 받았다. 그는 시민들이 내미는 손을 일일이 받아줬다. 그가 청와대로 향하는 리무진 승용차의 지붕 위로 상체를 내밀고 손을 흔들 때 광화문 네거리의 시민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이렇던 그가 어쩌다가 지금과 같은 처지가 됐을까.
부패·무능·오만의 ‘삼위일체’
지난 100일은 돌이켜 보면 부도덕과 무능의 연속이었고 오만과 독주의 경연장이었다. 부패와 무능과 오만의 ‘삼위일체’ 앞에선 어떤 정권도 견뎌내지 못한다는 점을 이명박 정부는 잘 보여줬다. 청와대와 내각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중용) 인사와 ‘강부자’(강남 부자 중용) 인사, 참모와 각료의 각종 부정부패 전력, ‘명계남’(한나라당에는 이명박계만 남았다) 공천, 박근혜계에 대한 옹졸해 보이는 보복, 일방적 국정 운영과 아마추어리즘(대운하 강행, 영어몰입교육, 환율정책 등), 실세들의 권력 다툼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이 정권 사람들의 기상천외한 발언은 서민의 복장을 뒤집어놓았다. 유류가 급등, 고물가, 수출 부진 등 나빠진 경제 사정도 많은 사람의 신경을 날카롭게 했다. 국민의 불만이 좁은 방안의 가스처럼 꾹꾹 누적되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이를 한꺼번에 터뜨리게 한 불꽃이 미국과의 ‘쇠고기 협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과 버시바우의 관계
이명박 정부는 ‘한미관계의 복원’을 외교의 최우선순위에 뒀다. 쇠고기 수입에서 미국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였다. 이와 관련, 정가에서 주목하는 인물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다. 역사적으로 역대 한국 대통령과 미국대사는 특별한 관계였다. 이 대통령과 버시바우 대사의 관계도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대선 전 이명박 후보와 버시바우 대사는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매우 우호적이었다. 이는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 가장 먼저 면담한 사람이 버시바우 대사였다는 점이 입증하고 있다. 미국은 반미성향 좌파정권의 종식을 고대했고 이 대통령은 미국과의 우호를 원했다. 이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알아온 채널로서 버시바우 대사를 신뢰했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 한미 현안의 변화와 관련된 중요한 예측은 버시바우 대사의 입을 통해 나왔으며 그의 예측이 얼마 뒤 실제로 실현되는 일이 잦아졌다. 이는 대선 후 미국 정부의 입장을 이명박 당선자와 한국 정부 측에 전달하고 조율하는 비중이 현저히 커졌다는 의미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21일 “한미동맹은 세계적인 차원의 동맹이 돼야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평화유지, 팔레스타인과의 중동 문제, 기후 변화, 질병 퇴치 등 세계무대에서 함께 할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명박 당선자 측은 12월25일 “한미동맹은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처하는 전통적 동맹을 뛰어넘는 미래·가치·인간안보를 지향하는 포괄적 동맹체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버시바우 대사의 말에 대한 화답인 셈이었다.
실제로 4월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양국은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과 당선자 측의 발표내용을 그대로 담은 ‘21세기 전략동맹’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한 미국 소식통은 “버시바우 대사는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와 같은 양국의 중요한 현안도 이 대통령 측에 직접 전하고 조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