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후보는 2007년 12월 대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투표율이 매우 낮기는 했지만 경쟁 후보를 사상 최대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사실 선거일 오래 전부터 그의 당선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컸던 만큼 그는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희망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이념 과잉을 비판하면서 자신은 실용정책을 펴나가겠다고 약속했고 국민은 이에 환호했다. 재산 형성과정 등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의구심이 없진 않았지만, 성공한 CEO로서, 유능한 행정가로서 그의 경력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줬다. 이 후보도 선거운동 내내 그런 자신감을 표명했다. 경제회복을 이끌 역량을 믿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집권 후 100일 만에 국민은 그의 역량을 의심하게 됐다. 이처럼 단기간에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한 것은 손쉬웠던 대선 승리가 빚은 오만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승리에 도취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국민의 뜻을 잘못 이해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실용 표방하면서 이념의 틀에 갇혀
이명박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과거 보수세력이 강조해온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시장을 중시하는 경제적 보수의 색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새로운 보수의 모습으로 비친 것이다. 더욱이 이회창 후보가 ‘냉전적 수구 보수’의 이미지를 띠면서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보수의 차별성은 더 분명해졌다.
그런 만큼 이전 두 차례의 대선 패배 때와는 달리 보수이념에 대한 거부감은 크지 않았다. 과거에 노무현의 등장에 환호하고 열린우리당을 지지한 이른바 386세대 유권자조차 거리낌 없이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 있었다. 많은 유권자의 눈에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보수는 과거 권위주의나 냉전 질서에 기반한 보수-진보의 갈등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념적 지향점으로 받아들여졌고, 보수의 자기 개혁으로 비쳤다.
이에 비해 민주화 20년 동안 권위주의 시대의 부정적 유산에 대한 청산작업이 꾸준히 진행된 결과 그동안 진보진영이 외쳐온 자유, 인권, 민주와 같은 가치는 더 이상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됐다. 이명박의 보수가 자기 변혁을 이뤄낸 반면 진보진영은 탈권위주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자기 변화를 이뤄내지 못한 탓에 진보진영은 선거 참패라는 값비싼 비용을 치러야 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지난 20년 동안 진행된 민주화 성과 위에서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며, 이명박식 실용주의에 대한 기대감은 과거의 보수-진보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는 소망의 표출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 측근들은 대선 압승을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심판으로만 생각한 것 같다. 또한 진보진영의 대선 참패를 진보적 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불신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따라서 이명박의 당선을 무능력하고 과도한 이념적 편향을 보인 좌파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사명으로 간주했다. 과거 방식의 보수-진보라는 이념적 틀 속에 자신을 위치시켜놓고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진보의 실패에 대한 응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실용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스스로를 이념의 덫에 묶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