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대선 당시의 한반도대운하 조감도.
2007년 5월29일 광주5·18기념문화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경제분야 정책토론회.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간 첫 TV토론 성격의 이 자리에서 홍준표 의원이 이명박 경선후보에게 한 말이다. 오스트리아 ‘빈 동아시아연구소’의 한병훈(47) 부소장은 “독일 운하에서 선박 침몰 사고가 났다는 이 말에 이명박 후보와 그의 선거 캠프는 당시 내색은 안 했지만 거의 뒤집혔다”고 술회했다.
“첫 TV토론 후 뒤집혔다”
한 부소장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자문위원’ 역할을 했으며 이 후보 캠프 대운하팀의 일원으로 운하 관련 내부 회의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대선 당시 그가 직접 보고 들었다는 대운하 관련 이명박 후보 측 내부 동향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 측은 운하를 잘 몰랐다” “대운하 공약은 오류였다” “이 후보 측도 허구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대운하 논쟁은 지난 대선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이어 본선에서도 최대 쟁점이었고 국민의 후보 선택 기준 중 하나였다. 이 논쟁은 현재도 경인운하, 4대강 정비 등 초대형 프로젝트의 실행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한 부소장의 주장은 2007년 대선 및 대운하 논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 그의 말이 대부분 사실이라면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데 참고할 만한 증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공식 발표나 기존 언론보도로는 접하기 힘들었던 한반도대운하 ‘야사(野史)’로 평가될 수는 있을 것이다.
‘신동아’ 취재결과 한 부소장이 이 후보에게 직접 운하 브리핑을 하고 대선 캠프 운하팀에서 활동한 점은 사실로 확인됐다. 당시 이 후보 측 인사는 한 부소장에 대해 “캠프 내에서 운하에 대한 전문식견을 꽤 인정받았다”고 높게 평가했다. 한 부소장의 주장은 그의 주관적 시각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인은 접근하지 못하는 이 후보 측 내부 동향을 자신의 경험과 구체적 정황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고 대운하 문제는 공익적 가치와 알 권리가 큰 사안이므로 보도에 무리가 없다고 ‘신동아’는 판단했다. 한 부소장의 주장에 대한 반론과 추가적 논쟁의 장은 계속 열려 있을 것이다.
한 부소장과의 만남은 그가 먼저 연락해와 이뤄졌다. ‘신동아’ 3월호 ‘경인운하, 서울- 중국 뱃길 못 연다’ 기사를 읽은 뒤 “이명박 정부가 올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는 경인운하와 4대강 정비의 위험성을 경고해야겠다”는 취지에서 인터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 2007년 대선 이전부터 오스트리아에 거주하고 있었나요.
“그렇죠. 볼일이 있으면 한국을 오갔죠.”
▼ 빈 동아시아연구소는 어떤 곳인가요?
“오스트리아 연방정부 등록 연구소인데, 빈 국립대 한국학과 학과장인 라이너 돌멜스 교수가 연구소 소장으로 있어요. 이 대학 한국학과 재학생들과 프로젝트 연구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운하사업에 관여하게 된 계기는 뭡니까.
“연구소 특성상 한국 이슈에 관심을 갖는 편이었죠. 연구소장이 지리학과 출신이라 당시 한국 대선에서 크게 이슈가 된 대운하 문제에도 흥미를 느끼고 있었어요. 2007년 초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의 측근인 권철현 현 주일대사(당시 한나라당 의원)가 내게 여러 번 전화를 해왔어요. 권 대사와는 그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권철현 요청으로 유럽자료 수집
▼ 권 대사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 특보단장 등 중책을 맡았었는데요. 뭐라고 하던가요.
“걱정을 많이 하더군요. MB(이명박 대통령의 영문 이니셜)가 운하 하는데, 자료 좀 조사해달라고 했어요.”
▼ 왜 그런 일을 한 부소장에게 요청한 거죠.
“운하가 가장 발달한 곳이 유럽이고, 내가 유럽에 있으니까…. 자기들보다는 자료 구하기가 용이할 것으로 보고 도움을 구한 거겠죠.”
한 부소장은 라인-도나우 운하,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관련 자료를 수집-분석한 뒤 권 의원에게 첫 번째 보고서를 발송했다고 한다. 보고서는 “이명박 후보 측은 ‘경부운하’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사용해왔다. 해외 사례에 따르면 경부운하는 운하 명칭으로는 부적절하니 사용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한 부소장은 경부운하라는 명칭을 써온 것부터 전문성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2007년 5월29일 광주에서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간 첫 TV토론이 열린 직후 권철현 대사는 한 부소장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왔다. 권 대사의 목소리는 다급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