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가을로 접어들면 정기국회에서는 ‘예산전쟁’이 치러진다. 회계연도 시작 90일 전(10월2일)까지 정부가 편성한 새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개전(開戰)되어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그러다 회계연도 시작 30일 전(12월2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면 종전(終戰)된다. 물론 지금까지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인 12월2일은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지난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한 해 나라 살림을 어떻게 꾸릴지에 대한 여야의 입장차는 항상 컸다.
올해도 정부는 9월28일 국무회의를 통해 내년도 예산 규모를 291조8000억원으로 확정하고 10월1일 국회에 정부안을 제출했다. 국회는 11월2일 정부로부터 예산안 시정연설을 들은 뒤 11월12일부터 12월1일까지 각 상임위와 예결특위에서 2010년도 예산 및 기금안을 심사하고 12월2일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처리한다는 일정을 짰다.
하지만 국회 주변에서는 올해도 예산안의 법정시한 내 처리는 물론, 각 상임위와 예결특위의 심사조차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많다. 무엇보다 이번 정기국회가 끝나면 ‘이명박 정부 중간평가 성격’을 띨 내년 6월 지방선거 정국이 조성되는 만큼 일찌감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치논리가 예산안 심사장 곳곳을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예산안 심사 내내 여야가 크게 충돌할 화약고는 역시 ‘4대강 살리기’ 예산이다. 정부가 지난해 12월15일 한강·금강·낙동강·영산강을 정비하는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야당은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위한 전 단계”라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러다 이명박 대통령이 6월29일 2007년 대선 핵심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의 임기 내 추진 포기를 선언하자 공세의 포문을 예산 문제로 틀었다. 이 대통령이 대운하 건설을 포기하겠다고 하면서도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계속 추진할 뜻을 밝혔고, 정부가 관련 예산 편성 작업에 들어간 까닭이다.
서민예산의 블랙홀
실제로 정부는 2010년도 정부 예산안에 4대강 살리기 예산을 6조7000억원 편성했다. 재정 투입비 3조5000억원과 한국수자원공사 사업비 3조2000억원이다. 이후 야당은 다각도로 4대강 살리기 예산의 문제점을 거론하고 있다. 본격적인 예산안 심사에 앞서 열린 각 상임위 회의와 국정감사, 대변인단의 성명 및 논평을 통해 집중포화를 퍼부으며 예산삭감 투쟁을 예고했다.
무엇보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은 “4대강 예산이 서민예산의 블랙홀”이라고 주장하며 4대강 사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의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4대강에 예산을 집중 투입하는 바람에 각 지역의 일반 SOC(사회간접자본) 예산과 복지, 교육 예산이 대폭 축소됐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는 도로건설 예산이 3조원 줄어들고, 교육 예산은 3조5000억원, 산업·중소기업·에너지 관련 예산은 7조2000억원, 기초생활보장 등 취약계층 관련 예산도 4300억원이 준다는 자체 자료를 내놓았다.
여기에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조차 야당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수도권 출신을 비롯해 주로 4대강 사업으로 인한 경기부양 효과를 거의 보지 못하는 지역에 선거구를 둔 의원들이다. 실제로 4대강 예산 가운데 60%가량이 낙동강에 투입되는 만큼 영남권 의원들의 반발은 거의 없다. 김성조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영남 출신 당 지도부는 오히려 ‘4대강 예산 사수(死守)’의 선봉 역을 자임하며 소속 의원들에게 입조심을 당부하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 시비가 일자 이명박 대통령도 진화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9월9일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정몽준 신임 대표와 상견례를 겸한 첫 조찬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4대강 살리기 전체 예산이 16조원인데 22조원으로 잘못 알려져 있고, 그 가운데 8조원은 수자원공사가 맡기로 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4대강 살리기 예산 때문에 내년도 SOC 예산이 줄어든다는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며 “4대강 살리기는 유엔환경계획(UNEP) 성장보고서에서 기후변화와 친환경 녹색사업으로 선정된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6조원 차이의 비밀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민주당은 4대강 사업에 들어가는 총 예산을 22조원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고, 이 대통령은 16조원이라고 했을까. 이는 집계상의 인식 차이 때문이다. 심명필 국토해양부 4대강추진본부장의 설명이다.
“4대강 사업은 본사업과 연계사업으로 나눠지고, 연계사업은 다시 직접 연계사업과 간접 연계사업으로 분류된다. 본 사업에는 16조9000억원, 직접 연계사업에는 5조3000억원이 들어간다. 또 직접 연계 사업비 5조3000억원은 환경부의 수질개선 예산 3조4000억원과 섬진강을 비롯한 다른 사업들에 필요한 1조9000억원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환경부의 3조4000억원은 환경부 수질개선 사업에 투입되는 금액이다. 4대강 살리기가 아니더라도 쓰이도록 이미 짜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이 예산을 4대강 예산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이 대통령과 정부는 본 사업비만 4대강 예산으로 보는 반면, 민주당은 직접 연계사업비까지 합산해서 공세를 펼치는 셈이다(간접 연계사업비는 4대강 유역 산림 정비에 소요되는 돈이다).
어쨌든 ‘사업비 22조원’을 주장하는 민주당의 4대강 사업 때리기는 사생결단식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파상공세를 펼치면서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정책과 관련한 인물들을 대거 증인과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환경노동위·국토해양위·농림수산식품위 등 상임위 곳곳에서 4대강과 관련해 증인·참고인으로 채택된 전문가·교수·환경단체 관계자·정부 관계자만 20여 명에 달한다.
한나라당은 4대강 살리기 정책에 긍정적인 인물들을, 민주당에선 부정적인 사람들을 각각 증인·참고인으로 신청했다. 4대강 살리기와 관련해 증인·참고인을 신청한 이유도 다양했다. ‘4대강 사업 검증’에서부터 ‘국민검증단 활동’ ‘4대강 사업추진에 따른 세계유기농대회 무산위기에 대한 의견’ ‘4대강 사업의 위법성’ 등을 알아보겠다며 증인과 참고인으로 불렀다. 심 본부장도 당연히 포함됐다.
민주당은 ‘4대강 사업 국정조사’도 추진하고 있다. 정세균 대표는 10월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4대강 사업은 당장 그만둬야 할 사업임이 드러나고 있다. 예산편성에 있어 ‘악의 축’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정조사를 통해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으면 예산심사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