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년간 한국과 중국을 지켜본 일본 외교관이 펴낸 책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의 한 대목이다. 저자인 미치가미 히사시 씨는 “사실과는 다른 이미지가 하나둘씩 쌓이다 보면 이것이 자기도 모르게 이웃나라에 대한 ‘고정관념’ 혹은 ‘무력감’으로 굳어져 외교·안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비판하면서 “일본과 중국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거기에 한국이 중국, 일본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할 ‘열쇠’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인은 이웃나라와 어떤 관계라고 생각할까. 친구일까 적일까, 아니면 이도저도 아닐까. ‘신동아’는 창간 85주년을 맞아 이웃을 직시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중국과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알아봤다. 표본조사 진행은 온·오프라인 리서치 기업 ‘엠브레인’이 맡았으며, 20세 이상 전국 남녀 1000명이 9월 27, 28 양일에 참여했다.(20~29세/30~39세/40~49세/50세 이상, 남녀 집단별 각 125명 동수).
“과거사 미해결…일본 싫어”

중국과 일본 중 어느 나라와의 관계가 더 중요한지 묻자 응답자의 절반은 ‘둘 다 중요하다’(53.5%)고 답변했고, 그 밖에 ‘한중관계가 더 중요하다’(40.2%)는 답이 많았다. 중국과 일본의 국력 차이를 묻는 질문에는 ‘중국이 더 강국이다’(65.1%)라는 답변이 ‘일본이 더 강국이다’(14.8%)라는 응답의 5배에 육박했다.
먼저 일본에 대한 인식부터 살펴보자. 최근 관객 700만을 동원한 영화 ‘밀정’은 일제강점기 의열단이 주요 시설을 파괴할 폭탄을 경성으로 들여오는 이야기다. 지난해 관객 1200만을 동원한 영화 ‘암살’의 줄거리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암살작전을 펼치는 설정이다. 이런 영화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것은 시대정신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실제로 응답자의 다수는 일본을 ‘친구도 적도 아니다’(48.9%)라고 답했지만, ‘아주 나쁜 적’(7.8%), ‘대체로 나쁜 적’(37.3%)이라는 인식이 친구라는 인식보다 많았다. 둘 중 한 명은 일본을 적으로 여기는 것이다.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묻자 ‘대체로 나쁘다’(80.2%), ‘매우 나쁘다’(6.0%)는 의견이 ‘대체로 좋다’(13.7%), ‘매우 좋다’(0.1%)보다 훨씬 많았다.
한국인이 일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뭘까. 응답자들은 그 원인으로 ‘과거사 청산 미해결’(87.4%), ‘독도 등 영유권 분쟁’(82.0%)을 ‘일본의 국민성에 대한 불만’(14.0%), ‘군사력으로 한국을 위협할 가능성’(18.6%)보다 더 많이 지목했다.
구체적으로 현재 한일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쟁점을 묻자 ‘과거사’와 ‘영유권’이라고 응답한 경우가 많았다.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등 역사 문제’(86.3%), ‘영유권 분쟁’(64.6%)이라는 답변이 ‘한미동맹 미일동맹 등 국제관계’(19.7%), ‘핵 문제 등 북한 문제’(12.3%), ‘수출 무역 등 경제 문제’(11.1%)보다 절대적으로 많았다. 한일 간 과거사 청산이 상당히 진행됐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90%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아니다’(49.5%) ‘전혀 아니다’(40.5%)고 응답했다.

“中은 경제성장 돕는 친구”


중국을 적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북한의 우방이기 때문’(61.2%), 중국을 친구라고 여기는 이유는 ‘한국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기 때문’(55.2%)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현재 한중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쟁점은 ‘사드 배치 등 미중 패권 다툼 문제’(78.3%), ‘핵 문제 등 북한 문제’(55.8%), ‘해상 영유권 및 불법조업 등 영토 문제’(46.0%), ‘동북공정 등 역사 문제’(36.5%), ‘수출·무역 등 경제 문제’(34.5%) 순으로 꼽혔다.
중국이 반발하더라도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10명 중 6명이 동의했다. ‘매우 그렇다’(12.4%), ‘그렇다’(46.2%)는 의견이 ‘아니다’(28.5%), ‘전혀 아니다’(12.9%)는 의견보다 많았다. 핵 등 북한 문제 해결에 중국이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76.4%(‘매우 그렇다’ 16.9%+‘그렇다’ 59.5%)가 동감했다. 다만 중국은 한반도에 갈등이 발생하면 어느 쪽 편을 들 것으로 보는가를 묻는 항목에서 북한(45.0%)을 택한 경우가 절반에 달했다. ‘중립을 취할 것이다’(33.0%), ‘모르겠다’(14.4%), 한국(7.6%)이라고 답변한 경우도 있었다.
군사적 위협에 대한 설문도 진행했다. 한국에 군사적으로 위협이 되는 국가를 묻자 북한(79.9%), 중국(46.8%), 일본(35.4%), 미국(19.8%), 러시아(18.0%) 순으로 답했다. ‘미국과 중국 간 군사적 분쟁이 생겼을 때 한국은 어느 편에 서야 하느냐’고 묻자 중립(47.0%), 미국(34.8%), 모르겠다(16.5%), 중국(1.7%)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10명 중 9명은 한일 간에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먼 미래에 일어날 수 있다’(35.2%), ‘10년 이내에 일어날 수 있다’(28.9%), ‘5년 이내에 일어날 수 있다’(22.2%)는 등 ‘일어날 수 있다’는 의견이 ‘일어나지 않을 것’(13.7%)이란 응답보다 절대적으로 많았다. 10명 중 8명은 한중 간 분쟁 가능성에 손을 들었다. ‘먼 미래에 일어날 수 있다’(38.4%), ‘10년 이내에 일어날 수 있다’(24.6%), ‘5년 이내에 일어날 수 있다’(13.5%)고 내다본 것.

아베, 일왕, 하루키


일본인에 대해선 ‘속을 알 수 없다’(75.2%), ‘성실하다’(23.2%), ‘겸손하다’(22.2%). ‘독하다’(20.4%), ‘무례하다’(14.7%), ‘유능하다’(9.3%)고 생각했다. 일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묻자 후쿠시마 원전사고(63.9%), 전범국(61.9%), 야쿠자(42.4%), 자위대(41.8%) 등 사건·사고, 전쟁 등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한편 애니메이션(42.7%), 후지산(17.5%), 문학(2.9%), 영화(2.4%) 등 문화적인 맥락도 짚었다.





중국과 한국의 경제력 차이에 대한 인식을 묻자 ‘한국이 조금 앞선다’(34.9%)는 응답이 ‘한국이 조금 뒤떨어진다’(23.8%), ‘비슷하다’(22.6%) ‘한국이 훨씬 뒤떨어진다’(13.9%), ‘한국이 훨씬 앞선다’(4.8%)는 답변보다 많았다. 중국과 한국의 소비 등 일상생활의 경제력 차이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국이 조금 앞선다’(51.4%)는 응답이 절반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