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39년 전북 고창 출생<br>●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UC 리버사이드 박사(정치학)<br>● 육사 교관, 국방대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장 역임<br>● 저서 : ‘신 중국군사론’ ‘한국 안보의 영역, 쟁점, 정책’ 등
참여정부 시절 많은 사람이 외교·국방·통일부 장관 자리를 거쳐 갔다. 이들은 중요한 일을 했지만 참여정부 전체의 안보전략을 꿰는 일은 하지 못했다. 이러한 점에서 주목할 사람이 황병무(黃炳茂·69) 국방대 명예교수다. 황 교수는 참여정부 중기인 2005년 4월부터 대통령 직속 국방발전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노 정부의 국방정책을 조율했다.
노 대통령, 국방개혁 강력히 요구
중국군 전문가이기도 한 황 교수는 한 손에 쥐기 힘든 참여정부 안보정책의 흐름을 설명하고자 했다. 참여정부의 안보정책은 북한 핵실험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보기 힘들다.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참여정부의 안보정책을 점검하고, 그 교훈을 얻기 위해 그와 논쟁적인 인터뷰를 가졌다.
▼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어떤 인물을 국방장관에 임명할지 관심이 쏠렸습니다. 노 대통령은 재임 5년 동안 내내 좌파 대통령으로 몰렸는데, 그는 어떤 기준으로 초대 국방장관을 뽑으려고 했습니까.
“첫째, 군을 개혁하려는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둘째, 한미관계를 중시한다. 셋째, 군심(軍心)을 확보해야 한다. 넷째, 국방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였습니다. 당선자 시절 노 대통령은 다른 부처 장관은 e메일로 천거를 받았으나 국방장관만큼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보고 추천인단을 구성해 추천하게 했습니다. 네 가지 조건 가운데 특히 중시한 것이 개혁 마인드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임명된 인물이 조영길 장관이었습니다. 조 장관은 1년 남짓 재직하고 2004년 7월, 대통령국방보좌관을 하던 해군 중장 출신의 윤광웅씨에게 바통을 넘겼습니다. 그런데 2005년 5월 윤 장관은 노 대통령에게 국방중기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전작권 전환 등은 거론했으나 국방개혁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갑자기 ‘불과 4만여 명을 줄이는 것이 국방개혁의 핵심이냐?’라며 질책성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2005년 9월 국방부가 군 구조 개혁을 골자로 한 국방개혁 초안을 만들어 보고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국방관(觀)은 한마디로 국방개혁을 하겠다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 국방보좌관을 하던 윤광웅씨를 국방장관에 앉힌 것 자체가 ‘노무현식 국방개혁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죠. 윤 장관 임명을 계기로 청와대의 국방담당체제가 바뀌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윤 장관을 임명할 때 청와대에서는 문민 국방장관 임명을 심도 있게 논의했습니다. 윤씨가 국방장관이 된 후 국방보좌관은 공석으로 있다가 폐지되고, 2005년 4월초 저를 위원장으로 한 16명의 대통령 직속 국방발전자문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자문위는 대통령을 자문하고, 국방부가 만드는 개혁안을 검증하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주임무였습니다. 위원 가운데 현역 군인은 없었고 예비역 군인은 7명(육군 출신 3명, 해군·해병대 출신 2명, 공군 출신 2명)이 있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위원회에 ‘국방개혁은 군만 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하는 국정과제다. 이 개혁은 3군 합의를 이뤄 국회를 포함한 국민 동의를 받아가며 해야 하는 과제다. 3개 정부에 걸쳐 추진할 장기계획이니, 2020년을 목표 달성 연도로 정해놓고 법제화하라’는 지침을 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