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북한학 박사 기자가 말하는 ‘북한 리스크論’

‘선·악 패러다임’ 벗어나 한국만의 ‘무위험 대비책’ 찾아야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입력2008-10-07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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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자는 북한을 적이라 말한다. 다른 이들은 북한을 동족이라 말한다. 각기 이념적 틀거리를 등지고 있는 이러한 이분법적 북한관(觀)은 긴 시간 접점 없는 대립 관계였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는 분단 상황을 거치며 남과 북의 체제가 극단적으로 갈린 현 시점에서, 북한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바로 ‘위험요인으로서의 북한’이다. 북한 땅을 밟는 한국인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개인적 위험부터, 섣부른 무력도발로 한국의 대외 신인도에 위험을 미칠 가능성, 나아가 북한체제의 붕괴가 한반도와 동북아에 미칠 파장에 이르기까지, 북한을 ‘리스크’로 보는 시각은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이 리스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북한학 박사 기자가 말하는 ‘북한 리스크論’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서울 증시가 크게 흔들린 2006년 10월9일, 서울 여의도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서 직원들이 급락한 주가 그래프를 살피고 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10년 동안 고집스럽게 추진했던 대북 ‘햇볕정책’(화해협력·평화번영 정책)의 거품이 꺼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햇볕정책은 김영삼 정부 시절 방향을 잡지 못했던 남북관계를 하늘의 구름 위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2007년 12월 보수 진영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 10개월여 동안, 남북관계는 잠시의 반등도 없이 하강국면을 내달렸다. 바닥 없는 추락은 세 단계를 거쳤는데, 단계가 진전될 때마다 하락폭이 커졌다.

    1단계로 이 대통령의 당선 이후 3월26일까지, 북한은 새 정부에 ‘6·15공동선언과 실천강령으로서의 10·4정상선언’의 이행을 촉구하며 관망했다. 새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자 2단계로 북한은 3월27일 개성공단 내에 있는 경제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에서 한국 측 당국자 11명을 추방하며 실력행사에 나섰다. 이후 서해 미사일 발사실험, 이 대통령에 대한 실명(實名) 비난, 군부의 대남협박 등이 이어졌다.

    7월11일 발발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으로 3단계가 시작됐다. 이 사건으로 추락하던 남북관계는 지표면에 충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월26일 북한 외무성이 핵 불능화 중단을 선언하면서 올해 들어 상당한 진전을 보이던 북미관계도 정체 또는 악화될 기류에 휩쓸렸다. 8월27일에는 탈북 위장 여간첩 원정화 사건이 터졌고 군 내부에 침투한 간첩 용의자가 50여 명이라는 사실이 군 수뇌부의 비밀 메모를 통해 밝혀지면서, 추락해 불이 붙은 기체에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 됐다.

    일련의 사건들은 북한이 한국인에게 얼마나 현실적인 ‘위험(risk)’인지를 깨닫게 해줬다. 햇볕정책을 펼친 10년 동안 정부는 같은 민족으로서 북한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데 치중했다. ‘적’으로서 북한의 부정적인 모습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고, 북한이 주는 위험은 무시되거나 평가절하됐다.

    북한학 박사 기자가 말하는 ‘북한 리스크論’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에 대한 현장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이 7월16일 오전 서울 계동 현대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당선 이후 10개월 동안 한국인은 북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야 했다. 첫째, 북한은 여전히 한국인 개개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둘째, 국가 차원에서도 북한은 부단히 한국 내부를 분열시키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고립시키는 한편 경제적으로 한국의 신용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위험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셋째, 이런 과정에서 북한이 갑작스럽게 붕괴할 위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금기 영역이던 ‘북한 붕괴론’이 올해 8월을 기점으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50대 여성 관광객을 북한 군인이 총으로 사살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은 북한이 한국인의 생명과 안전에 위험요인이라는 사실을 전체 한국인에게 각인시켰다. 사건은 예견된 일이었다. 대남 비방을 계속하던 북한은 6월22일 남북군사회담 북측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발표하고 한국 정부가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3통(통행 통신 통관) 합의’를 이행하지 않아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사업에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금강산·개성 위기론’의 시작이었다.

    북한은 이틀 뒤인 6월24일부터 오전 시간엔 개성공단 입주기업 등이 남측으로 인력과 물자를 이동하지 못하도록 막는 등 압박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고 대북정책을 바꾸기 위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등 남북의 접촉면에서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정보 당국자의 분석이 나온 것이 이 사건 직후인 25일의 일이다.

    한 대북 정보 관계자는 사건이 터진 직후 “북한 당국은 1, 2개월 전부터 금강산 등 ‘남북의 접촉면’에서 일하는 당국자들을 상대로 ‘규정대로 엄격하게’ 사무를 처리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안다”며 “이번 사건도 큰 틀에서 ‘접촉면에서의 긴장 유발’이라는 전술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해석했다. 더 적극적인 해석도 나왔다. 보수 성향의 한 정보 관계자는 “북한이 남북관계의 긴장을 유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건을 일으킨 것”이라며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려 했으나 올림픽을 앞둔 중국의 눈치가 보여 동해를 택했다”고 해석했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은 2007년 10·3합의로 6자회담 프로세스 진전 및 북미관계 개선이 예상되자 체제 유지에 위험이 되는 남북관계의 속도를 조절하려고 했다”며 “이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전면적인 대화재개’를 천명하기로 한 날 새벽에 사건을 일으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북한이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주장대로 군 경계 수칙을 엄격하게 준수한 우발적인 총격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이 무장을 하지 않은 50대 여성 한국인 관광객을 식별 가능한 상태에서 사살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서해 NLL에서 교전으로 군인이 사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건이다. 사건이 알려진 7월12일 통일부가 있는 정부 중앙청사 별관 앞을 지나던 50대 여성들은 “저런 나라에 왜 돈을 주고 가는지 모르겠다. 그 돈 다 김정일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데 돈 주고 목숨도 잃은 꼴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 사건으로 햇볕정책 10년 동안 정부가 쉬쉬하던 방북 한국인의 허술한 신변안전 문제도 여실히 드러났다. 신변안전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당국 간 합의서는 2004년 체결된 금강산 및 개성공단 지구에 대한 것이 유일하다. 개성 관광에 대해서는 사업자들 사이의 합의서가 위 당국 간 합의서를 준용하기로 했을 뿐이다. 나머지 평양과 묘향산, 백두산 등 북한 일반 지역을 방문하는 인도적 지원단체 등의 경우 이런 합의서도 없이 북한이 보내는 초청장만 믿고 현지를 방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북한은 올해 8월부터 초청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방북 요청에 대한 ‘동의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한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국내에서 방북자 신변안전 문제가 커지자 북측이 ‘우리가 언제 당신들에게 오라고 애원했느냐, 당신들이 오겠다고 희망해서 동의해준 것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북할 때 겪는 다섯 가지 위험

    일부 친북 인사들은 일련의 사건들이 이명박 새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햇볕정책 10년 동안 방북자들은 개인 신변안전 문제에서 자유로웠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신변안전에 대한 위험이 있었지만 정부와 민간이 스스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쉬쉬하는 바람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현재도 국가정보원이나 군 기무사 등이 보관하고 있는 ‘X파일’에는 방북 한국인이 당한 신변안전 위험과 실제 사건사고 등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북한을 일곱 번 방문한 필자가 파악하고 있는 위험의 유형은 대략 다섯 가지다. 오늘 당신이 북한을 방문하는 순간 아래 다섯 가지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첫째, 금강산 사건으로 확인된 ‘군사적 위험’이다. 민간인이 허술한 군 경계선을 넘어섰다는 이유로 당장 총에 맞을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한국인은 이해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러나 북한은 ‘선군정치’를 강조하는 ‘병영국가’다. 북한 당국의 의도 여부를 떠나 고(故) 박왕자 씨를 사살한 군인은 언제든지 ‘명령준수’의 정당성을 강조할 수 있는 나라다. 비단 박씨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인이 ‘사선’인 군 경계선을 넘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한 대북사업가는 “노무현 정부 시절 금강산을 자가용으로 방문했다가 길을 잘못 들어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 초병의 제재를 받고 다시 나온 적이 있다. 올해 그랬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둘째, 정치적 위험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 당국의 최대 국가목표는 체제의 유지다. 따라서 한국의 정권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 위험이 되는 행동을 하는 방북 한국인은 언제나 공격의 대상이 된다. 금강산 관광 초기인 1999년 여성 관광객 민영미씨가 안내원에게 “귀순자들이 한국에서 잘산다”고 발언했다가 11일 동안 억류됐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에서 함부로 내뱉은 말은 대부분 ‘안내원’을 위장한 대남 요원에 의해 기록돼 언젠가는 세상에 알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말실수를 하거나 아니면 북한의 ‘미인계’에 넘어가 약점을 잡힌 뒤 한국에 돌아와 북한 당국의 요구대로 간첩 행위를 하는 ‘점잖은’ 한국 남성이 적지 않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렇게 죽는구나’

    셋째, 안전사고의 위험이다. 지난해 10월 금강산 구룡폭포 인근 무룡교의 철제 다리가 끊어져 관광객 24명이 추락하고 이 중 3명이 중상을 입는 등 금강산에서 일어난 사고는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북한이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 잘 관리하고 있는 수도 평양 시내 한복판에서도 한국인들이 사고로 피해를 본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는다. 정보 당국자는 “몇 해 전 한 단체가 대규모 방북단을 이끌고 평양을 관광하다가 시내 한복판 건물에서 대형 안전사고를 당하는 등 말하기 힘든 비밀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경제난 때문에 제대로 수리를 받지 못한 북한의 모든 건물과 기계류 등은 위험 덩어리다. 북한은 국적기인 고려항공이 한 번도 추락 사고를 내지 않았다고 선전하지만, 대부분 1950~60년대에 만들어진 소련제 비행기를 운항하는 고려항공을 타고 북한을 들고 나는 일은 언제나 위험하다. 한 변호사의 경험담이다.

    “몇 해 전 난생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아무리 잘 가꾸어놓은 평양 시내도 우리의 1960년대 수준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척 우울하고 슬펐다. 중국에서 낡은 고려항공을 탄 순간부터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늘 조심하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북한을 나오는 고려항공 여객기가 중국 베이징 공항을 얼마 안 남긴 상공에서 기류에 휩쓸려 수십 미터를 직활강하는 거다.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니 너무 억울하고 후회스러웠다. 다행히 별일 없었지만, 나는 이 일로 다시는 북한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고 지금도 그 다짐을 지키고 있다.”

    넷째, 이유 없이 경제적 손해를 볼 위험이다. 북한을 방문한 한국인 애주가들은 달러 창고로서 이른바 ‘봉’ 취급을 당한다. 북한의 양각도호텔 등에서는 2000년대 들어 한국인들의 방문이 잦아지자 이들을 노린 술집이 성업 중이다. 애주가 3~4명이 우리식 단란주점에서 맥주 몇 병에 접대원 노래 몇 곡 들으면 500달러는 기본이다. 환율을 1000원으로 계산해도 50만원이면 서비스가 좋은 한국 단란주점과 비교할 때 비싼 편이다. 하물며 달러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에서 일반 노동자의 한 달 월급이 1달러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바가지인 셈이다. 한국인을 접대하는 북한 술집들은 대부분 조선노동당이나 조선인민군 등 권력기관이 운영하는 곳이다. 이들은 수중에 가진 돈이 없다고 하면 차용증을 받아 아침에 돈을 받으러 오기도 한다. 이렇게 악착같이 모은 달러는 대부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호주머니로 들어가 그가 당과 군의 권력자들을 ‘당근’으로 다스리는 데 사용된다.

    마지막 다섯째, 선량한 북한 주민을 다치게 할 위험이다. 북한에 가면 ‘안내원’이라는 사람들이 전체 일정을 따라다닌다. 명분은 안내지만 일종의 보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감시와 정탐도 한다. 한국인이 접촉할 수 있는 북한인은 이들과 식당 및 상점의 종업원뿐이다. 가끔 평양 지하철에서 주민들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연출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진짜’ 북한 사람을 접촉하고 싶은 욕심 많은 한국인들은 안내원을 따돌리고 몰래 길거리의 북한 주민을 접촉하려고 시도한다. 2000년대 초반 평양을 방문한 한 인사의 경험담은 그가 얼마나 북한 주민에게 몹쓸 짓을 했는지 보여준다.

    “일행 10여 명이 안내원을 졸라 밤에 불이 밝혀진 평양역 광장에 나갔다. 일행이 안내원을 따라 역 구내를 둘러본 뒤 다시 숙소인 고려호텔로 돌아가는 틈을 타 나는 동료 한 명과 뒤로 처져 한 건장한 청년에게 접근해서 사진 한 장을 함께 찍자고 부탁했다. ‘진짜’ 북한 사람과 내가 나란히 서고 동료가 사진을 찍는 동안 ‘요즘 살림살이가 어떠냐’고 한마디 물어보았다. ‘그럭저럭 살 만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두 사람이 사라진 것을 알아챈 안내원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그러더니 북한 주민을 죽일 듯 노려보며 ‘이 동무에게 무슨 말을 했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주민은 순간 겁에 질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벌벌 떠는 것이었다. 황급히 안내원을 잡고 호텔로 돌아와야 했다.”

    이 인사는 아직도 그 주민에게 별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한 고위직 출신 탈북자는 “그 주민은 주변에 포진해 있던 감시원들에게 끌려가 간첩이 아닌지 조사를 받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안내원이 저녁에 평양역을 방문하도록 했다면 이는 분명히 연출이며, 역 주변에는 주민으로 위장한 감시 요원들이 쫙 깔린 상태였음이 분명하다”며 “만일 주민에게 다른 수상한 점이 발견됐다면 간첩으로 몰려 심한 경우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도발, 그리고 시장의 출렁임

    탈북 위장 여간첩 원정화 사건은 북한이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면서 여전히 한국 사회를 내부에서 분열시키려 했음을 드러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한 김정일 친위조직인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이 우리 군 장병에게 52차례나 안보교육을 했다는 데 있다. 원정화는 “핵은 자위용” 등의 북한 선전을 전파하면서 군의 안보의식을 무력화하고 한국 내 보수와 진보, 반북과 친북세력의 틈을 벌리는 데 주력했다.

    북한은 2008년 촛불시위 사건에도 모습을 드러내며 한국 내부를 분열시키고 남남갈등을 조장하려고 시도했다. 북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 대남 선전선동 조직인 반제민전(반제국주의민족민주전선)이 한국 내 촛불시위가 최고조에 달한 올해 6월10일 3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한국 내 친북세력들을 상대로 반정부 및 반미 투쟁을 선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반제민전은 인터넷 사이트 ‘구국전선’을 통해 3개 항의 지침을 선언했는데 “전 국민은 이명박 정권의 최후의 항복을 받아낼 때까지 투쟁의 촛불을 더욱 높이 치켜들자”

    “반(反)이명박 투쟁을 반미 자주화투쟁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자” “반이명박 투쟁을 조국통일운동과 결부시켜 나가자” 등 반정부와 반미가 골자였다.

    2004년 한국에 온 고위 탈북자는 북한이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적극적으로 선전선동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당시 조선노동당 산하에 대남 인터넷 선전선동 부대가 존재했으며 이들은 이미 수집하고 있던 한국인 정보를 이용해 제3국을 거쳐 인터넷에 접속한 뒤 반미 반정부 선동을 하는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다는 방법으로 한국 내 친북좌파들을 선동했다”고 증언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고립시키려는 고전적인 노력도 계속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시끄럽던 7월 한국 정부는 북한이 6·15공동선언 및 10·4정상선언 이행 문제를 국제적으로 이슈화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북한은 이를 위해 7월 말 박의춘 외무상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과 테헤란에서 열린 비동맹운동(NAM) 장관급회담에 파견했다. 정부가 선언문에 북한의 주장이 실리는 것을 막는 과정에 ARF 선언문에서 금강산 관련 내용이 함께 빠지는 등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때 북한은 노동신문 등 각종 선전물을 통해 “남북관계를 잘 하지 않고 남한의 경제 살리기가 마음대로 되는지 두고 보자”는 식으로 한국 정부를 협박했다. 북한의 존재가 국제경제 무대에서 한국의 국가위험(country risk)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국가 신용도를 떨어뜨린다는 점을 북한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이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무력도발을 할 때마다 외국자본의 이탈과 한국 경제의 가치 저하 우려가 금융시장 등을 강타했다. 2006년 10월9일 북한이 핵 실험을 강행하자 코스피지수는 장중 최고점인 1365.59에서 무려 61.97포인트가 낮은 1303.62까지 떨어졌다. 종가 기준으로는 핵 실험 직후 3일 동안 27포인트가 내렸다. 비록 이후 증시가 상승안정세를 회복했지만 북한 리스크가 시장에 나타난 대표적인 경우였다.

    10년 만에 고개 드는 북한 붕괴론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이 잠잠해진 8월 한 달 동안 국내 보수진영과 해외 북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북한 붕괴론’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북한이 어느 날 갑자기 붕괴할 위험은, 앞서 제시한 개인이나 국가 차원을 뛰어넘는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 체제 차원의 리스크라고 할 수 있다. 북한 붕괴론은 1990년대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던 시절 활발하게 전개되다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논의 자체가 금기시됐다. 물론 이 시기에도 북한 붕괴에 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간헐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논의는 집중적이고 연속적이라는 점에서 10년 전을 연상케 한다. 뉴라이트재단이 발간하는 계간지 ‘시대정신’ 은 최신호인 2008년 가을호에 북한 붕괴에 대한 특집좌담과 논문을 실었다. 안병직 재단이사장은 발간사에서 “북한 붕괴에 대한 대책으로서는 제대로 된 준비가 없어 보인다”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이 이미 붕괴 단계에 접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대처에 있어 국제공조가 필요하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획에는 유호열 고려대 교수, 김연수 국방대 교수,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손광주 데일리NK 편집국장, 오승렬 한국외대 교수, 이석 한국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 등 보수적 연구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에 앞서 안성호 충북대 교수는 8월 21~23일 한국정치학회 등이 주최한 ‘건국 6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북한 위기에 따른 국가 위기관리 방안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보수 논객 김태우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도 7월31일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한미관계 진단 - 한미동맹관리 중심으로’ 토론회에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한미간 작전계획 5029에 대한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비슷한 시기 정부 당국자들도 사석에서 “북한 체제가 길게 보아 10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해외 인사들도 ‘북한 붕괴론’ 확산에 한몫을 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교수(8월24일)와 조지프 필 주한 미8군 사령관(8월15일) 등이 이 문제를 언급하는 등 북한 붕괴와 이에 대한 한국 및 국제사회의 대응이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과 군부 쿠데타 등 내파(內破)와 외국과의 전쟁 등 외파(外破)에 의해 북한에 큰 변화가 오는 상황을 말한다. 북한의 붕괴는 이로 인해 최고지도자나 정권이 교체되는 상황을 넘어 일당독재와 국가소유제 등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변화 및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의 소멸을 의미한다.

    2008년판 북한 붕괴론은 북한이 자체적인 변화를 통해 일어서기 힘든 ‘실패한 체제’라는 공통된 인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령화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02년의 경제개혁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는 2006년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경직된 1인 독재체제로 인해 북한에선 위기를 극복할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66세인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 소식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또 한국의 새 정부는 지난 10년처럼 북한에 무조건적인 경제지원은 하지 않을 방침이다. 진전을 보이던 북미 핵 협상도 미국 대선국면이 본격화하면서 동력을 급격히 잃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와 이에 따른 붕괴는 한반도의 반쪽인 한국의 정치와 경제, 동북아 국제정치 전반에 엄청난 격변을 초래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에 대해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붕괴상황은 한국 정치력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위기가 왔을 때 신속하게 기본 입장을 정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통일 미래상에 대한 논의를 지금부터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석 연구위원은 “통일은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이익이지만 통일로 경제적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세대와 그 혜택을 누리는 세대가 다르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을 다녀온 한 국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지식인들은 북한에 급변사태가 올 경우 초기 수습을 한국이 아닌 중국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인들은 한국이 북한을 접수한 뒤 핵 능력을 갖출 욕심을 감추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피와 관리와 원인제거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서 말하는 위험(risk)은 “투자자가 특정한 투자를 했을 때 이익을 볼지 손해를 볼지 모르는 불확실성”이다. 일반적으로 위험에 대한 투자자의 태도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위험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고, 둘째는 관리하는 것, 마지막으로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첫째 방법은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피하고 대신 수익의 기회도 버리는 방법이다. 둘째 방법은 위험을 관리하며 수익의 기회를 극대화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다행히 리스크는 합리적으로 관리 또는 통제가 가능한 대상이다. 리스크는 우선 계산이나 파악이 가능하다. 따라서 대비할 수 있다. 외환 거래를 하는 기업들은 환차손에 대비해 거래금액만큼 환 헤지(hedge)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환 헤지는 비용이 들지만 기업이 손실을 당해 정상적인 경영이 마비될 위험을 제거해준다. 셋째 방법은 위험이 없이 이익을 낼 수 있는 투자기법, 즉 ‘아비트리지(arbitrage)’를 찾는 것이다.

    이런 리스크의 개념을 남북관계에 적용해 생각해보자. 남북관계를 통해 수익이 기대되는가? 그렇다. 지금처럼 절반으로 나눠진 비정상적인 상태로 한국은 세계 1등 국가가 될 수 없다. 분단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한국의 도약을 저해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올해 8월15일 경축사에서 “남과 북 8000만 겨레가 하나가 돼 세계로 뻗어나가는 꿈”이라는 화두를 통해 통일의 ‘그랜드 비전’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유라시아-태평양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전제하고 통일한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해양과 대륙을 잇는 세계 중심국가로 도약할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분단이 초래한 ‘닫힌 공간’이 ‘열린 공간’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북관계에 따르는 위험은 그 자체를 회피할 수는 없다. 즉 북한이 위험하고 장차 부담이 될 것 같다는 이유로 그 운명을 중국이나 미국의 손에 맡기는 것은 분단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한국이 정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또 북한의 존재 및 남북관계가 주는 위험을 없애는 방법은 우리 힘만으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한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거나 봉쇄하는 것은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어긋날 뿐 아니라 그럴 힘도 없다.

    따라서 한국 입장에서는 남북관계를 계속하며 북한이 주는 리스크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보인다. 즉 앞서 제시한 바와 같이 개인 차원, 국가 차원, 한반도 및 동북아체제 차원에서 북한이 한국에 주는 리스크 요인은 어떤 것이 있으며(얼마나 위험한가),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떻게 적절하게 관리하고 통제할 것인지, (위험이 발생했을 경우)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지혜롭다는 것이다.

    이렇게 북한을 ‘리스크’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북한이 적이냐 동족이냐는 낡은 시대의 이념적 구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또 북한이 ‘나쁘고(bad)’ ‘미친(mad)’ 존재라는 패러다임과 ‘애처롭고(sad)’ ‘합리적인(rational)’ 행위자라는 패러다임의 이분법, 역시나 낡고 오류가 검증된 접근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리스크는 그 자체로 ‘나쁘고’(bad) ‘합리적인’(rational) 존재이며 북한 정권의 역사적 궤적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의 대북 햇볕정책도 북한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의 전도사인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2003년 11월 한 대학원에 특강을 나온 자리에서 햇볕정책의 목표에 대해 “접촉을 통해 최고지도자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고 아래로부터 인민들을 변화시켜서 북한의 대남 의존도를 높이고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10년 동안 정부 당국자들은 ‘남북관계의 안정적인 관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본래의 취지를 잃어갔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왜곡되기 시작했다.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애초의 목적은 희미해지고 남북관계는 외교와 경제 등 제반 분야에서 벌어진 정부의 실정(失政)을 가리기 위해 허겁지겁 맹목적으로 추진됐다. 이를 위해 때로는 한미동맹을 위험스러운 지경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 북한에 비현실적인 ‘퍼주기’ 약속을 한 2007년 10·4 정상선언은 그 결정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9월1일 “따뜻하면 옷을 벗어야 하는데 옷을 벗지는 않고, 옷을 벗기려는 사람이 옷을 벗었다”고 햇볕정책을 비난한 것은 이런 대목을 지적한 것이다.

    리스크 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남북관계의 미래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더욱 정밀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 글이 제시한 개인 차원-국가차원-체제 차원의 구분은 위험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개념틀이 될 것이다. 학자들의 탁상공론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과거 10년 동안 북한을 경험한 많은 사람이 이제는 침묵과 금기를 깨고 이 문제의 논의에 동참할 것을 제안한다.

    정부는 우선 개인 차원의 위험 방지를 위한 제도화에 노력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해마다 방북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홍보하는 데 급급했지만 정작 방북자 신변안전 및 사후처리 문제에 대한 제도화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이번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국가 차원의 위험 가운데 내부 분열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대남 분열 전략전술 등에 대한 통일안보교육이 전 국민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북한을 더 공부하고 이해할수록 맹목적이거나 감상적으로 북한을 찬양하고 동경하는 세력들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 등 한국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한미동맹 강화는 물론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들과의 외교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북한 때문에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북경제공동체라는 비전하에 북한을 개방시키고 경제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비핵·개방 3000 구상’은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구체화되어야 한다.

    북한 붕괴위험에 대한 논의를 더 확대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새 정부는 정권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북한 바로 알기’를 표방하며 통일 안보교육을 강화했다. 그러나 새 정부가 수정 발간한 어떤 통일교육교재에도 북한 붕괴와 이에 대한 국민적 대비방안을 담은 것은 없다. 북한 붕괴가 초래할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위험을 밝히고 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국민에게 교육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독일 통일 등 해외 사례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활용이 필수적이다.

    많은 전문가가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등 유관기관이 합동으로 북한 붕괴의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북한 급변사태나 붕괴 시에 작동하게 될 동북아 국제정치를 최대한 통일 한국의 국익에 맞도록 유도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와 협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귀기울일 만하다.

    물론 한반도 통일과 민족통합이라는 먼 미래의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유지하면서 인도적 지원사업과 사회 문화 교류사업도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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