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앞에 정박한 배에서 멋진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고 있다.
페라스트 앞 바다에 두 개의 섬이 그림처럼 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만 하더라도 그 먼 옛날 드넓은 바다 습지에 말뚝을 박고 찬란한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그런가 하면 요즘에는 중동의 두바이에서 거대한 미래형 해상도시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 서해 위에 떠 있는 거대한 풍력발전기를 보고 감탄한 적이 있지만 그다지 비현실적으로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페라스트(Perast) 앞 바다의 섬 두 개가 선뜻 나의 지각 속으로 다가오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는지 모른다. 그건 두 섬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근처의 작은 도시 코토르(Kotor)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왔을까. 길 아래로 펼쳐진 멋진 풍경에 급히 차에서 내렸다. 하마터면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한없이 느리게만 가던 버스가 조금은 고맙게 느껴졌다. 길 위에는 마땅히 버스 정류장도 없고 안내표지판도 안 보인다. 물론 이정표는 조금 전 페라스트에 진입했음을 알려주었다. 곳곳에 엄중한 국경초소가 있는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거쳐 몬테네그로에 들어서면서부터 알았다. 몬테네그로는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한적한 산골마을 같은 곳이라는 것을. 이런 곳에서 유명관광지에 있는 친절한 안내표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가는 설렘이 그런 불편쯤은 가볍게 날려버린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풍경이 정겹다.(좌) 광장에는 이 도시 출신으로 섬의 성화(聖畵)를 제작한 화가의 동상도 서 있다.(우)
바다로 다가가려면 가파른 계단을 꽤 내려가야 한다. 계단이 끝나고 광장이 나왔다. 광장 바로 앞에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커다란 배가 정박해 있고 그 안에서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기에 레스토랑인가 싶어 배에 올랐다. 앉을 자리를 찾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 지금 결혼식 피로연을 하고 있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어쩐지 사람들의 옷차림이 화려했다.
1 교회당 제단에는 15세기에 그려진 그림인 ‘Our lady of the Rock’이 걸려 있다. 2 마을의 작은 광장에서 야자수 너머로 보이는 다른 교회당. 3 Our lady of the Rock은 여성적인 느낌의 차분한 건물이다.
광장에서 두 섬까지는 매우 가까워서 Our lady of the Rock까지 작은 모터보트가 가끔씩 오간다. 달리 정해진 선착장도 없고 사람이 부르면 보트가 오는 식이다. 웃통을 시원하게 벗어젖힌 청년사공과 가격을 흥정한 후에 섬으로 가는 작은 배에 올랐다. 가까이 다가가자 섬은 멀리서 보던 것보다 더 아름답다. 왼쪽의 St. George에는 키 큰 소나무 숲이 둘러싼 적색의 건물이 있어 조금 남성적인 느낌이라면, 오른쪽의 Our lady of the Rock은 흰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는 건물이 자리 잡고 있어 정숙한 여성의 느낌을 준다. 마치 신비의 성(城)으로 가는 기분이랄까. 이윽고 배는 섬에 도착했다.
Our lady of the Rock에는 교회당과 미술관이 같이 있다. 내부로 들어서자 동방 정교회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콘(종교 ·신화 및 그 밖의 관념체계상 어떤 특정한 의의를 지니고 제작된 미술양식)과 성화들이 눈길을 끈다. 전반적으로 색채가 조금 어둡고 투박한 느낌을 주지만, 초기 기독교의 분위기는 화려한 서유럽의 그림들보다 더 살아 있는 듯하다.
지금이야 작은 마을이지만 페라스트는 역사적으로 보면 오랜 옛날부터 무역에 종사하면서 번성한 도시였다. 해적과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는데, 외부의 침략을 용맹스럽게 막아낸 페라스트의 시민들은 15세기에 이 교회당을 세웠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침략을 받았는데, 그중에서 17세기에 회교도인 터키인들의 침입을 막아낸 것을 도시의 자랑으로 여겨 지금도 매년 축제를 벌인다.
페라스트의 해변으로 해수욕을 하러 가는 사람들.(좌) 섬으로 가려면 버스에서 내려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한다.(우)
교회당에서 안으로 더 들어가면 미술관이 나오는데, 예상외로 알찬 소장품이 많다. 이 작은 해양도시의 오래된 유물부터 근대 작품들까지 볼 만한 것이 꽤 있다. 여행객을 위한 가이드도 있다. 미술관에서 나오면 작은 등대가 있고 그 뒤로 배들이 한가로이 떠다닌다. 이 작은 섬이 도시의 수호천사 노릇을 톡톡히 해냈음을 알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배가 이 작은 등대를 불빛 삼아 페라스트를 드나들었을까.
섬 반대쪽으로 가자 바로 마주하고 있는 섬 St. George가 보인다. 그런데 저 섬에는 노래로도 전해오는 슬픈 전설이 있다.
한때 페라스트를 점령했던 프랑스 군인과 한 처녀가 사랑에 빠졌다. 어느 날 그는 명령에 따라 그녀의 집을 포격하게 되었는데 그만 포격으로 사랑하던 연인도 같이 죽고 말았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군인은 결국 수도사가 되어 죽을 때까지 섬에서 살았다고 한다.
전설 때문일까. 왠지 두 개의 섬은 비극으로 이별한 두 연인을 닮은 것도 같다. 어쩌면 그 수도사는 건너편의 아름다운 섬을 보며 사랑하던 여인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멀리 사공의 배가 보인다. 이제 섬을 떠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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