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최약체 …여권도 냉랭
- 국정기획에 국정 없고, 정무에 정무 없고…
- 수첩인사라 오래갈 듯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현재 김기춘 비서실장 밑에 국정기획·정무·민정·외교안보·홍보·경제·미래전략·교육문화·고용복지 수석이 있다. 이들이 정부 17부3처17청을 파트별로 맡아 국정을 조율한다. 정무수석은 여야 정치권과 소통하고 홍보수석은 주로 언론을 상대로 대통령과 정부의 홍보를 담당한다.
이런 기능으로 보면 청와대 각 수석비서관은 국정의 분야별 컨트롤타워다. 내각에 박근혜 대통령의 철학을 전파하고 성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과거엔 청와대 수석이 장관과 부처를 사실상 통제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선 정통 관료가 다수 포진한 내각에 휘둘린다는 평이 많다.
김기춘 실장 사의 유보?
김기춘 실장부터 최근 극심한 무력증을 보인다. 자신이 건의한 ‘박근혜 정부 집권 2년차 인적쇄신 방안’이 수용되지 않은 이후 의기소침해한다는 전언이다. 여기다 외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 본인의 건강 문제에 대한 소문도 끊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김 실장이 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지만 ‘정부 각 부처의 업무보고가 마무리될 때까지 일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자리를 이어간다는 얘기도 있다. 비서실의 사령탑이 흔들리는 데다 청와대 참모진 개편설이 꾸준히 나도니 수석들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모습이다.
특히 정권의 성공을 위해 핵심 역할을 담당해야 할 국정기획·민정·정무 등 주요 수석 3인에 대해선 여권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국정과제를 주도해야 할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이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2012년 대선에서의 국가기관 선거 개입 문제가 불거져 박 대통령이 초반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업무 관련성이 많은 홍경식 민정수석이 적절한 대처에 실패했다는 비판도 많다. 아울러 예산안 법안 등과 관련해 여야 정치권의 협조를 얻어 국정을 원활히 해나가야 할 박준우 정무수석도 도마에 올랐다. 새누리당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한 당직자는 “정무수석은커녕 정무수석실 비서관이나 행정관도 얼굴 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의 국정기획·민정·정무수석은 언론 노출 빈도가 거의 없다. 물론 청와대 참모진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그림자 보좌’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는 “그림자 보좌를 한다는 징후도 없다”고 한다. 언론이 평가할만한 성과물이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 보좌의 징후도 없어”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의 국정기획·민정·정무수석을 두고 ‘청와대의 세 허당’이란 조롱 섞인 평가까지 내린다. 관료 출신인 친박계 초선 A 의원은 “다른 수석들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지만 특히 핵심 수석인 국정기획·민정·정무수석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조차 못한다는 말이 동료 의원 사이에서 많다”고 했다.
이는 그동안 보여준 각 수석의 행적과 무관하지 않다.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 ‘실세 수석’으로 간주됐다. 창조경제를 바탕으로 새 정부의 미래 비전을 그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였다. 그러나 대통령급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중추가 되기는커녕 부처들을 조율하고 통제하는 데에도 힘겨워하는 모양새라고 한다.
지난 1년 동안 국정기획과 관련해 내놓은 메시지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유 수석은 출범 초부터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이후 유 수석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유 수석의 캐릭터 자체가 국정의 큰 그림을 그리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제대로 된 국정기획을 위해선 정부 정책, 그중에서도 재정 운영이나 산업 전반에 걸친 폭넓은 경륜과 지식이 필요하다.
유 수석은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잠시 상공부에서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거친 이후 줄곧 행정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일했다. 저서나 논문도 대부분 인사 분야에 관한 내용이다. 정무 감각을 익힐 정도의 정치활동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말 국정기획수석실은 국무조정실과 공동으로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 80개를 제시했다. 복지급여 등 정부지원금의 부정 수급에서부터 정치·사법·노사 분야의 비생산적 관행까지 사회 전반에 복잡하게 얽힌 문제가 손질 대상으로 선정됐다.
박 대통령은 2월 5일 국무조정실 등 3개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들 과제와 관련, “진돗개가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고 한다. 우리는 진돗개 정신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국정기획수석실에서 이를 실천하기 위한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한다.
민정수석은 청와대의 핵심 부서다. 산하 민정비서관실, 공직기강비서관실, 법무비서관실, 민원비서관실을 총괄 지휘한다. 마음만 먹으면 정권 초기 검찰, 국세청, 경찰 등 사정기관을 주무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역대 대통령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민정수석에 앉혔다. 2012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은 정치적 동지인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권재진 민정수석을 오랫동안 곁에 두다가 임기 말에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하지만 현재의 홍경식 민정수석은 박 대통령과 별로 인연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마산중학교 동문인 김기춘 실장이 천거했다고 한다. 따라서 홍 수석에게 큰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관측이 많다. 청와대 내에서 휘둘린다는 말도 끊임없이 나온다.
민정의 심각한 업무 실수
민정수석실에는 경찰청에서 파견된 직원이 많다. 지난해 말 경찰인사가 있었다. 이때 청와대의 실세 일부가 자신과 가까운 경찰 간부들을 민정수석실에 배치하기 위해 기존 경찰관 9명을 원대복귀시키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 홍 수석과 상의도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렇지만 실행은 되지 않았고, 민정수석실에 파견된 경찰 가운데 승진이 됐거나 본인이 희망한 사람 가운데 일부만 원대 복귀한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홍 수석이 이끄는 민정수석실은 심각한 업무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로 보도된 채모 군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지난해 말 자체 조사하면서 ‘엉터리 결과’를 내놓았던 것이다.
당시 민정수석실은 청와대 조모 행정관이 인척 관계인 안전행정부 소속 김모 국장의 부탁을 받고 평소 친하던 서초구청 조이제 행정지원국장에게 요청해 채 군의 인적사항 등을 불법으로 확인, 전달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일에 안행부 김모 국장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중에 확인됐다. 조 행정관의 거짓 진술에 휘둘리면서 청와대 스스로 혼선과 불신을 초래했고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부담이 됐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야기하는 홍경식 민정수석(왼쪽 사진에서 오른쪽). 박준우 정무수석.
청와대 정무수석은 특히 이명박 정부와 달리 정무 기능을 담당하는 특임장관마저 없는 상태에서 정권과 정치권을 연결하고 소통하는 기능을 도맡아야 한다. 하지만 박준우 수석체제의 청와대 정무라인은 감당을 못 한다는 평이다. 여당 내에 친박 실세들이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어 청와대 핵심이 이들과 직거래하는 탓이라고는 하지만 정무수석이 너무 무기력하다는 지적이 많다.
박 수석은 지난해 말 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직후 경호지원 경찰관으로부터 뒷덜미를 잡힌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4차례나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박 수석은 그 이유에 대해 “제가 쓰고 있는 (휴대전화) 전화번호에 입력이 안 돼 있어서…”라고 말했다. 정무수석이 국회의원의 전화번호조차 저장해놓지 않았던 것이다.
새누리당 B 의원은 “지난 6개월 동안 정치권이 얼마나 시끄러웠느냐”고 반문하면서 “그러나 정무수석실이 여의도에 나타나서 정황을 살피는 모습조차 보기 어려웠다”고 혀를 찼다. B 의원은 “하도 답답해서 (정무수석실에) 왜 활동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활동비가 부족해서 못한다’고 하더라”고 했다.
여당의 한 중간 당직자는 “정무수석실이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 인력부족이나 활동비 탓을 하던데 적은 인력이라도 열정만 있으면 충분히 일할 수 있다. 역할만 제대로 하면 청와대의 특수활동비 예산을 사용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도 “과거에는 청와대 정무수석실 직원이 국회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우리와도 정국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곤 했다”며 “지금은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데, 아마 정무수석실 안에 야당과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여권의 다른 관계자는 “존재감이 별로 없는 수석들이지만 수첩인사라 오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와대의 각 수석실이 위축된 것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 핵심 요직에 있었던 C씨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수석을 이렇게 분석했다.
“기업가 출신인 MB는 참모들에게 접시를 깨뜨려도 좋으니 접시를 닦으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안정을 중시한다. 또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과학 지식이나 전문 기술을 보유한 테크노크라트를 참모진에 배치하려 한다. 그런데 이들은 애써 일을 찾지 않는다. ‘창조’를 강조하면서 ‘창조적인 일’을 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시엔 내각에 비해 대통령비서실에 힘이 너무 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대통령 친정(親政)의 강화로 책임 총리제, 책임 장관제가 실종될 것이라고도 했다.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보면 책임 총리제와 책임 장관제는 물론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컨트롤 타워여야 할 대통령비서실도 눈에 띄지 않는다. 청와대는 단지 대통령의 명(命)을 출납하는 기관 정도로 위축된 느낌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의 분석이다.
“막 탄력 받는 시점”
“지난 한 해 국정원 댓글 의혹을 둘러싸고 야당의 집요한 특검 요구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대통령비서실이 너무 무기력했다. 대통령의 비서실 운용 스타일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수석들 간 수평적인 분업, 협조, 대통령과 수석들 간 치열한 논의를 통해 하나 된 목소리로 정부를 이끌어야 한다. TV에 비치는 건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통령이 훈시를 하고 수석들이 받아 쓰기 바쁜 모습뿐이다. 이래서야 수석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다.”
반면 소수이긴 하지만 청와대 수석들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친박계 재선인 조원진 의원은 “지금은 수석비서관들이 막 탄력을 받는 시점”이라며 “당정청 회의 같은 데 참석해보면 청와대 수석들이 자신감이 붙었다. 박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