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토굴’ 방문객과 숨바꼭질 신비주의 고행(苦行) 마케팅?

‘셀프 유배’ 손학규 前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송국건 |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5-06-2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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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약용 유배지에 道人처럼 기거
    • “대표님은 저 길로 천천히 내려오신다”
    • 대선 레이스 복귀 시나리오?
    ‘토굴’ 방문객과 숨바꼭질 신비주의 고행(苦行) 마케팅?
    새정치민주연합은 4·29 재보선 참패 충격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친노(親盧)계와 박지원 의원 등 호남 비노(非盧)계가 한동안 책임론 공방을 벌였다. 문 대표는 당을 쇄신하겠다며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영입해 계파를 초월하는 혁신위원회를 꾸리려 했다. 하지만 구성 단계에서부터 계파 간 견해가 부딪쳤다. “혁신위를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야당 관련 뉴스가 묻혀서 그렇지, 야당의 균열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일각에선 위기 탈출을 위한 방편으로 ‘손학규 역할론’을 계속 꺼낸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전 민주당 대표)은 지난해 7·30 경기 수원병 보궐선거에서 무명의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 그를 복귀시켜 야당을 추슬러보자는 움직임이다. 그는 전남 강진의 토굴에 부인 이윤영 여사와 함께 칩거 중이다. 정계 복귀에 대해선 한사코 고개를 가로젓는다. 각종 여론조사기관의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자신을 빼달라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최근 옛 참모들에게 “가끔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정치 마음을 산(山)생활로 닦아내고 또 닦아낸다”고 했다. 묘한 뉘앙스다. 그는 잊을 만하면 지인의 결혼식장이나 상가(喪家), 행사장을 찾아 ‘한마디’를 한다. 정치적 메시지는 아니지만 존재감을 알리는 말들이 간접적으로 전해진다.

    “인기 급상승! 사람 몰린다”

    강진 토굴에 다녀왔다는 야당 정치인도 적지 않다. 허탕을 친 경우도 있지만 이종걸 원내대표,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손 전 고문을 만났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극비리에 만났다고 귀띔하는 사람들도 있다. 5월 10일 토굴 마당에 지지자 수십 명이 음식을 풀어놓고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가운데 손 전 고문이 인사말을 하는 사진이 SNS에 나돌기도 했다.



    나흘 후 MBN 기자가 손 전 고문과 대화를 나누는 데 성공했다. 기자가 정계 복귀 여부를 묻자 그는 “자연 속에서 자연하고 같이 사는 맛을 사람들이 알까” “차나 한잔 마시고 얼른 내려가…”라고 선문답만 했다. 그래도 방송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산속으로 자신을 찾아온 건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요즘 야당 사람들은 “은퇴했는데 인기 급상승! ‘손학규 토굴’로 사람 몰린다”고 전한다. 손 전 고문의 생각이 궁금했다. 정말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는 정치 욕심을 산생활로 닦아내고 있을까. 찾아오는 사람들이 귀찮으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살면 될 텐데, 왜 이미 공개된 흙집에서 10개월째 머무르며 방문객들과 숨바꼭질을 할까. 정계 은퇴를 했다면 서울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게 더 진정성이 있지 않을까.

    기자는 주말인 6월 5일 오전 지인 몇몇과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의 백련사를 찾았다. 서울~목포 KTX 노선이 개통된 뒤로는 서울에서 백련사까지 4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손 전 고문은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는 토굴에서 해결하고 점심식사는 백련사에 내려와 절밥을 먹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가 거처하는 토굴은 백련사 뒤 산길을 따라 10분쯤 올라가면 나온다고 했다.

    토굴 아닌 슬레이트 지붕 집

    절 뒤편의 산길은 두 갈래였다. 백련사에서 만난 손 전 고문의 지인은 절 뒤의 한쪽 산길을 손으로 가리키며 “점심 때가 되면 저 길로 대표님이 내려오신다. 개량한복을 입고 천천히 오신다.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신다”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도인(道人)이 홀연히 산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해될 법했다. 기자는 그 한 폭 동양화 같은 광경이 정말 보고 싶어서 그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어두려 했다.

    그러나 예정된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그는 내려오지 않았다. 기자의 일행 중 한 명이 “아마 기자가 와 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듣고 일부러 피하는 것 같다”고 했다. 손 전 고문의 지인이 일러준 산길 쪽으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얼마 안 가 한 스님이 “그리로 올라가면 안 된다.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이라고 제지했다. 실제로 산길 입구에는 ‘선원입니다. 절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손 전 고문의 토굴로 가는 길 옆으로 ‘다산초당’으로 가는 오솔길이 나 있었다. 다산초당으로 발길을 옮기며 스님의 눈을 피한 뒤 토굴 쪽으로 슬쩍 방향을 돌렸다. 10분쯤 산길을 따라 걸으니 손 전 고문 부부가 기거한다는 토굴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손 전 고문이 처음 강진으로 왔을 때 일부 언론이 표현한 ‘토굴’과는 거리가 멀었다. 굴은 아니고 산속 오래된 시골집이었다. 흙으로 벽을 쌓아 그 위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이다.

    ‘토굴’ 방문객과 숨바꼭질 신비주의 고행(苦行) 마케팅?
    여기서도 손 전 고문을 만나지 못했다. 집 마당에 있던 부인 이윤영 여사는 “대표께서 지금 집에 안 계신다”고 했다. 백련사에서 한참 기다렸지만 그를 못 봤고, 외부로 나가는 다른 길도 없는 것 같기에 집 안에 손 전 고문이 있다고 짐작됐지만 그냥 돌아왔다.

    다산초당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손 대표가 ‘신비주의 고행(苦行)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 전 대표의 측근이던 A씨(대학교수)에게 이 얘기를 했다. A씨도 “정계 은퇴를 선언했으면 그냥 서울에서 일상생활을 하면 되는 거 아니냐. 본업인 대학교수로 돌아가든지. 그러지 않고 스스로를 ‘셀프 유배’ 시키며 ‘토굴’로 간 건 그 자체가 ‘토굴 정치’로 자신을 신비롭게 포장하는 것”이라며 동의했다.

    A씨는 손 전 고문이 다산초당 인근을 거처로 택한 것에도 주목했다. 다산초당은 조선시대 실학(實學)의 대가인 다산 정약용 선생이 순조 1년 신유사옥에 연루돼 10여 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서 ‘목민심서’를 저술한 곳이다. 손 전 고문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감안한 것 같다는 게 A씨의 생각이다. ‘정약용 이미지’는 유권자에게 호감을 준다.

    손 전 고문은 ‘정치부 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여러 차례 선정된 바 있다. 이에 대해 A씨는 “손 전 고문은 기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굉장히 신경 쓴다. 언론의 평가를 늘 염두에 두면서 움직인다. 지금도 기자들이 멀리 토굴까지 찾아오는 걸 은근히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끊임없는 변신과 이벤트”

    손 전 고문의 서울대 정치학과 동창인 B씨(전 고위공무원)는 “동문들 중 일부는 손학규의 끊임없는 변신과 이벤트를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학생운동권 출신의 진보적 대학교수였다가 보수 성향 정당에서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를 지낸 뒤 탈당해 진보 성향 정당의 대표가 된 손 전 고문의 경력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설명이다.

    만약 ‘신비주의 고행 마케팅’이 손 전 고문의 대선 레이스 복귀 시나리오라면 이 시나리오는 제대로 작동할까. 정치권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상황에 따라서’라는 전제를 붙였지만 그가 완전히 정치를 떠난 것으로는 여기지 않았다. 다만 정계 복귀 후 성공 여부는 불확실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손 전 고문의 핵심 측근이던 C씨(전 국회의원)는 “복귀할지 모르지만 성공은 못하리라고 본다”고 잘라 말했다. 야권엔 그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C씨는 “친노가 장악한 새정연에 손학규의 기반은 없다. 안철수도 못 버티는데 손학규가 뭘 하겠는가”라며 “그렇다고 여당으로 갈 수도 없고 독자 신당을 창당할 수도 없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다만 “한 가지 경우는 있다. 야당이 여러 갈래로 쪼개져 비노계의 한 정파가 그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손 전 고문이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도 손 전 고문이 정치적 부활을 시도하겠지만 유력 대권주자로 다시 자리매김할 가능성엔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황 평론가는 손 전 대표의 약점으로 ‘콘크리트 지지층’ 부재를 꼽았다.

    “손 전 고문이 진심으로 정계를 은퇴했다고 믿는 사람은 정치판 언저리엔 거의 없다. 일단 어려운 순간을 피하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강진으로 간 거다. 그러나 국민 앞에서 은퇴를 선언해놓고 이를 번복하려면 최소한 김대중 전 대통령 정도의 지역적 기반에다 열성적 지지층의 열화와 같은 소망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국민 15~20%가 ‘당신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을 쳐줘야 한다. 손 전 고문에겐 그런 지지층이 없다. 참모들과 팬클럽이 지지한다고 그걸 믿고 복귀했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난세가 닥치면…

    반면 손 전 고문에게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지금 새정연의 내부 사정은 워낙 복잡해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다. 더구나 내년 4월엔 총선이 있다. 친노와 비노가 분열되고, 호남이 비노를 선택하는 것 같은 야권발(發) 지각변동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손학규가 움직일 공간이 커진다.

    무엇보다 호남이 손학규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 손학규에겐 고무적이다. 지금 호남은 문재인에게 실망했지만 문재인의 대타를 뚜렷이 찾지 못한 상태다. 박원순? 안철수? 손학규?…이러고 있다. 손 전 고문도 아마 ‘셀프 유배지’를 정할 때 ‘정약용’ 외에 ‘전남’도 고려했을 것이다.

    지금 새정연 주변엔 ‘큰 정치’를 할 만한 인물이 별로 없다. 난세가 닥쳤을 때 깃발을 들고 야당 정치의 복원에 나설 만한 리더가 부족하다. 손학규를 선호하는 호남인들은 ‘문재인은 못 믿겠어. 친노는 이제 질색이야. 박원순은 서울시장으로만 봐와서 정치는 어떤지 잘 모르겠어. 안철수는 아직 어딘가 좀 불안해. 더구나 이 셋은 다 부산 출신이야. 경륜이나 안정감으론 손학규 만한 인물이 없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손 전 고문은 6월 2일 강진 흙집을 떠나 대구로 깜짝 외출했다. 그가 찾은 곳은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새정연 김부겸 전 의원이 일합을 겨룰 가능성이 높아진 수성갑 지역이다.

    손 전 고문은 이날 ‘한국서화 평생교육원’ 개원식에 참석했다. 교육원 원장과의 인연으로 초청에 응했다고 한다. 행사에 앞서 김부겸 전 의원을 만난 손 전 고문은 “어려운 곳에서 고생이 많다. 멀리서나마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행사 후 김 전 의원 등과 저녁도 함께했다.

    손 전 고문은 김 전 의원의 서울대 정치학과 선배로 서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선 김 전 의원이 손학규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만일 김 전 의원이 내년 총선 때 적지(敵地)인 대구에서 여당 거물인 김문수 전 지사를 꺾는다면 단숨에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 새정연의 미래 블루칩인 김 전 의원은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다음은 김 전 의원과의 대화 내용이다.

    “에이스 카드로 써야”

    ▼ 대구 저녁자리에서 무슨 말을 나눴나요.

    “정치 얘기는 없었어요. 행사 주최자가 손 전 고문과 인연이 깊어서 참석했다가 온 김에 만난 것뿐이죠.”

    ▼ 손 전 고문이 정계에 복귀할 것 같습니까.

    “지금 상태론 안 돼요. ‘야권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하는 상황까지 가면 몰라도. 야권이 분열 위험에 빠지면 당에서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 당을 맡아달라고 요청할 순 있겠죠.”

    ▼ 그 이전엔….

    “그분의 자존심이나 지금까지 해온 걸 보면 본인 입으로 말을 바꾸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약속을 어길 분은 아니죠. (정계 복귀를) 작위적으로 할 순 없는 일이죠. 누가 바람을 잡아서도 안 되고.”

    ▼ 복귀할 상황이 된다면 언제쯤일까요.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분열될 수도 있는 지경이잖아요. 모두 제 목소리를 내고 엉망이 될지 모르죠. 그런 때 당을 추스를 인물이 필요할 수 있고, 그 인물이 손 전 고문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죠.”

    ▼ 당 혁신위가 제대로 된 혁신안을 내놓지 못하면….

    “(당 혁신이) 만만치 않아요. 혁신위원 중에 발언권이 센 사람이 몇 명 있잖습니까. 8월에 혁신위 활동이 끝나는데, 이 사람들이 이 눈치 저 눈치 안 보고 두드리면…. 가령 야권의 외연 확장이나 재편이 아니라 ‘정체성 강화’ 운운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죠. 이러면 야권에 희망이 없겠다, 절박한 상황이다, 이렇게 판단해 범계파가 (손 전 고문에게) SOS를 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거죠.”

    ▼ 정치인 손학규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누구보다 준비와 훈련이 돼 있죠. 지역정치, 패거리 정치의 함정을 메울 몇 안 되는 리더죠.”

    김 전 의원은 “야권이 손학규를 다시 불러내더라도 값싸게, 국면 전환용 불쏘시개로 써먹으려 하면 안 된다. 에이스 카드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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