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호

尹 몰락 위기가 이준석 정치생명 살렸다

[강준만의 회색지대] 윤석열 vs 이준석 갈등 정치학적 의미①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2023-12-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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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협’ 아닌 ‘제로섬게임’에 중독된 이준석

    • 李 구속영장 기각 이후 불어닥친 尹 몰락 위기

    •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이준석 기사회생

    • ‘독단적 리더십’ 놀라울 정도로 닮은 윤석열·이준석

    • 2022년 반창고 봉합으로 이끌어낸 대선 신승

    • 본격적 싸움에서 이성 상실하는 성격이 문제

    • 비전·전략 탁월해도 세력 없으면 평론가일 뿐

    총선을 반년 앞두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진은 11월 1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무실로 향하고 있는 이 전 대표. [뉴시스]

    총선을 반년 앞두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진은 11월 1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무실로 향하고 있는 이 전 대표. [뉴시스]

    “저는 살다가 이런 미친X들 처음 겪어본다” “그게 대한민국 수장이라니까요 지금.”

    전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이 2023년 10월 4일 피부과 전문 개원의 함익병과 대담한 합동 라이브 방송 영상에서 대통령 윤석열을 겨냥해 한 말이다. 이준석이 지난해 10월 당원권 정지 1년 6개월 징계를 받아 사실상 당대표직을 빼앗긴 상황을 거론하면서 위와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이준석의 ‘미친X’ 막말이 시사하는 윤석열·이준석의 정치적 갈등은 심층 연구를 요구하는 중요한 정치적, 아니 정치학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의미에 대한 탐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겠다. 정치적 비전과 전략은 비교적 탁월하지만, 정치적 갈등에서 인성의 특성으로 인해 ‘타협’이 아닌 ‘제로섬게임’에 중독된 정치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는 누구인가. 물론 이준석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각기 다른 이유로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부당한 ‘한 줄 요약’일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연재할 이 글을 다 읽고 나서 평가해 주시기 바란다.

    이준석 퇴출 후 수구꼴통 회귀한 국민의힘

    이준석이 받은 징계는 윤석열을 ‘양두구육’ ‘신군부’ 등으로 비난한 것과 더불어 ‘성상납 증거 인멸 교사’ 의혹 때문이었다. 전자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후자는 적어도 이준석의 사과를 요구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준석은 내내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이준석이 신(神)인가? 그렇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게다. 그는 한국 정치판에서 아마도 가장 말이 많은 탓에 늘 설화(舌禍) 논란을 일으켰지만, 그의 사전엔 내내 사과가 없었다. 늘 자신의 옳음을 확신하고 강변하는 것, 이 또한 그의 인성 문제다.



    나는 국민의힘이 이준석의 당대표직을 박탈했을 때 그 거친 방식에 개탄을 금치 못했지만, 이후 전개될 상황에 대해 그 나름의 대책은 서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일반 유권자들이야 정치와 정치인 알기를 우습게 알지만, 그래도 머리가 제법 잘 돌아가는 사람들이 정치인이 된다는 속설을 꽤 근거가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간 이준석이 추진해 국민의힘의 낡은 이미지를 개선했던 일들을 이준석보다 더 열심히 해서 그 공백을 채워나갈 것으로 기대했다.

    이준석이 대표를 맡기 전 국민의힘의 이미지는 어떠했던가. 키워드 몇 개로 표시하자면 곰팡내, 늙은 꼰대, 보수꼴통, 서열 복종 등이었다. 이준석은 영특한 동시에 발칙했다. 싸가지가 없는 게 오히려 장점이자 매력으로 작용했다. 많은 유권자가 환호하면서 국민의힘을 다시 봤고, 이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동력이 됐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준석 퇴출 후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한 일은 정반대였다. 이럴 수가! 이준석이 상당 부분 불식한 수구꼴통의 이미지를 되살리는 길로 되돌아가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준석의 이미지 개선 작업을 이렇게 망칠 수 있느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준석은 몰락한 동시에 아예 잊힌 건가? 이준석의 완전한 패배로 끝난 줄만 알았던 두 사람의 갈등을 다시 불거지게 만든 건, 아니 이준석을 마치 무슨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분위기를 바꾼 결정적 계기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유창훈이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9·27 사건이었다.

    판사 유창훈이 만든 ‘尹 정권 심판’ 분위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7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등 혐의를 받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7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등 혐의를 받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의 구속은 되살아난 국민의힘의 수구꼴통 이미지마저 일거에 날려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민주당에서조차 이재명의 구속을 예상하고 ‘옥중 공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옥중 공천’을 하는 모습은 민주당을 비루하게 보이게 만드는 추태 중의 추태였을 게다.

    유창훈은 자신의 결정 하나로 정치 지형이 뒤바뀌는 게 두렵고 감당하기 어려웠던 걸까. 다수의 예상을 뒤엎어버린 구속영장 기각의 사유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을 내장한 것이어서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재명은 구속되지 않았고, 그래서 민주당은 “윤석열 검사독재정권의 무리하고 무도한 ‘이재명 죽이기’ 시도가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 열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옛날 동네 아이들 싸움에선 누군가의 코피가 터지면 그걸로 게임은 끝이었다. 코피가 터진 아이의 패배로 간주하는 구경꾼들의 분위기가 사실상 심판 노릇을 한 것이다. ‘옛날 동네 아이들 싸움’과 비슷한 점이 많은 한국 정치에서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기각 결정을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쌍코피를 터뜨린 쾌거로 간주해 환호하면서 대대적인 공세로 전환했다. 어찌나 기세등등했던지 마치 정권이 민주당 진영으로 넘어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중도 유권자들도 기세에 민감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비밀이 아닌가. 민주당은 그런 기세를 몰아 2주 후에 치러진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을 17.15%포인트 차로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후보 공천과 관련된 국민의힘의 오만함에 대한 응징이었다곤 하지만,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혹 영장전담 판사 유창훈이 만든 정치적 분위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민주당이 “구청장 하나 뽑는 선거 아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이다”라고 외친 가운데 선거는 ‘정권 심판론’ 대 ‘거야(巨野) 심판론’의 구도로 흐르지 않았던가. 이재명의 구속은 그간 민주당이 모든 당력을 집중시킨 ‘이재명 방탄’이 멸사봉공(滅私奉公)과는 정반대의 멸공봉사(滅公奉私)였다는 걸 부각했을텐데, 유권자들은 과연 어느 쪽 심판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이건 윤 정권의 완패로 끝난 보궐선거 결과는 마치 무슨 ‘전환점’이나 ‘티핑포인트’가 된 것처럼 보였다. 윤석열의 몰락 위기가 이준석의 정치생명을 살린 걸까.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바닥을 쳤고, 윤석열과 제로섬 경쟁을 벌여온 이준석의 입지도 갑자기 넓어졌다. 물론 언론의 관심도 이준석에게 집중됐다. 그의 기침 소리마저 미주알고주알 기사로 전해졌다. 이런 맛에 정치를 하는 거라면, 이준석으로선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어이하랴. 이준석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을. 정치적 갈등에서 ‘타협’이 아닌 ‘제로섬게임’을 원하는 인성과 기질은 그의 정치적 재기가 윤석열의 몰락을 전제로 한다는 걸 시사한다. 과연 이런 방식이 가능하며, 바람직한 걸까. 이준석이 ‘이런 미친X들’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는 복수의 화신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뒤늦게나마 ‘타협’을 배우고 익히는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건 정녕 불가능한 일인가.

    윤석열은 어떤가. 이재명이 구속됐다면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환호하면서 아무런 성찰 없이 수구꼴통의 이미지를 되살리는 길로 내달렸을 것이다. 이미지는 언젠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건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치명적인 자해(自害)가 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구속영장 기각은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물론 나라를 위해 잘된 일, 아니 ‘축복’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이론적인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마인드와 역량이 윤석열에게 있는 걸까.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해보련다.

    이준석을 ‘윤석열과의 관계’로 평가하는 민주당

    2021년 5월 31일, 1985년 3월 31일생으로 만 36세 2개월의 젊은이인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예비경선을 1위로 통과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여권 원로인 전 국회 사무총장 유인태는 “이준석 돌풍을 정치권이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특히 민주당 쪽 사람들은 굉장한 위기감을 느끼더라”며 “이준석이 되면 내년 대선 끝난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목소리들도 있다”고 전했다.

    6월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민주당의 그런 걱정을 현실로 만들고 말았다. 이준석이 당원투표(70%)와 여론조사(30%)를 합산한 결과에서 43.82%를 득표해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됐으니 말이다.(나경원 37.14%, 주호영 14.02%, 조경태 2.81%, 홍문표 2.22%). 이준석은 이날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비빔밥론을 내세우면서 “저는 다른 생각과 공존할 자신이 있다”고 했지만, 그의 독특한 인성과 기질은 나중에 이 약속을 배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준석의 승리에 충격을 받은 사람이 많았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범민주당 진영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이후 한동안 이준석을 향해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극우 성향의 시장주의자’에서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의 원리’ 신봉자에 이르기까지 이준석을 피도 눈물도 없는 극우로 몰아가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런 공격이 너무 어이가 없어 6월 16일 ‘UPI 뉴스’에 기고한 “이준석은 ‘정글보수주의자’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반론을 폈다. 나는 칼럼을 끝맺으면서 민주당 진영을 향해 이런 조언을 던졌다. “절대로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러나 민주당 진영의 흐려진 집단적 판단력은 회복되지 못한 채 결국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됐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이준석에 대한 평판의 형성 메커니즘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민주당 진영이 이준석을 평가할 때에 쓰는 기준이다. 그건 바로 ‘윤석열과의 관계’다. 윤석열과의 관계가 좋거나 적어도 충돌할 정도로 나쁘지 않으면, 이준석은 ‘작은 윤석열’ 비슷하게 간주돼 맹공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면 이준석은 ‘의인(義人)’ 비슷한 대접을 받으면서 인기가 치솟는다.

    이건 내가 여러 차례 직접 겪은 일이기도 하다. 내가 살고 있는 전북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에게 82.98%의 몰표를 준 지역인지라 윤석열을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전남은 86.10%, 광주는 84.82%) 여러 지역 사람들이 섞여서 사는 수도권에선 음식점이나 카페 등과 같은 공간에서 그런 비난을 다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80% 법칙’의 지배를 받는 지역은 좀 다르다.

    ‘80% 법칙’은 내가 만든 것으로 이렇다 할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꽤 그럴 듯하니 들어보시기 바란다. 선거에서 특정 정당의 후보에게 80% 이상의 몰표를 줄 정도로 정치적 동질성이 매우 강한 지역에선 그 절대다수에 속한 사람들이 머릿수의 힘에 기대어 정치적 표현을 지나칠 정도로 자유롭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음식점이나 카페 등과 같은 공간에서 남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성량으로 윤석열을 비난해도 괜찮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이 그런 비난을 듣는다면 그건 큰 결례가 아닌가. 걱정할 필요 없다. ‘80% 법칙’이 지배하는 곳에선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20% 미만의 사람은 투명 인간 취급을 받으니까 말이다. 바로 이런 ‘문화’ 덕분에 나는 이준석에 대한 비난과 예찬을 여러 차례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윤석열과 갈등이 없을 땐 비난, 갈등이 있을 땐 예찬이었다.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이런 역선택 민심은 ‘이준석 현상’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이준석 자신의 판단을 흐리는 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충돌을 부르는 ‘독단적 리더십’

    윤석열과 이준석,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2021년 여름 윤석열의 국민의힘 입당 문제를 두고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준석은 7월 19일 당내 대선후보 경선을 ‘비빔밥’으로 비유하는 발언을 하면서 “당외 주자였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까지 추가돼서 이미 비빔밥이 거의 다 완성됐다. 지금 당근 정도 빠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을 당근에 비유한 것이다.

    비교적 가벼운 수준일망정 해선 안 될 실언이었다. 당내에서 “고명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준석은 “저는 당근이 없으면 밥을 안 먹는다”는 말로 대응했다. 그건 이준석 개인의 스타일일 뿐 일반화하긴 어려운 반론이었다. 일부러 당근을 빼고 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게 어찌 올바른 반론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앞으로 내내 보게 되겠지만, 이준석은 모든 언행을 철저한 자기중심주의로 일관했다. 당근이 없으면 밥을 안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문제 제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직 자신의 취향만이 유일한 기준이었다. 이준석이 정말 당근이 없으면 밥을 안 먹는지는 별도로 따져볼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이준석은 자신의 휴가 일정을 앞세워 윤석열·안철수의 입당을 압박했다. 이에 윤석열 측이 불쾌감을 내비쳤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준석은 7월 29일 페이스북에 “이미 몇 주 전에 정한 일정으로 당대표가 휴가 가는데 불쾌하다는 메시지를 들으면 당대표가 불쾌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윤석열은 8월 2일 국민의힘에 입당할 예정이었으나 이준석이 지방을 방문하고 있던 7월 30일 갑작스럽게 국민의힘 당사를 방문해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 사건이 시사하듯, 대선 후보들과 당대표 사이에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8월 5일 대선 지지율 상위권 주자인 윤석열, 최재형, 홍준표는 연이틀 이준석이 참석하는 당의 공식 대선주자 행사에 불참했다. 이준석은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 국민들이 판단을 할 것”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당내에선 “대선주자들은 지지율을 끌어올릴 최적의 일정을 짜고 있는데, 당에서 공식 행사라는 이유로 참석을 강요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발도 나오고 있었다.

    이에 진중권은 “불필요한 갈등인 것 같다”며 “이준석 대표가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사진을 찍으면 (이준석 대표는) 자기가 중심에 서려고 한다는 거다”라며 “후보를 딱 중심에 세우고 대표가 옆에 있어 줘야 되는데, 이 대표의 스타일은 자기가 딱 중심에 있고 옆에 후보들을 데리고 있고 싶어 하는 거다. 후보 입장에서는 기분 나쁘다”라고 했다.

    참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준석이 당대표가 됐을 때 많은 사람이 걱정했던 건 국민의힘의 꼰대들이 젊은 이준석을 우습게 보고 함부로 대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경선준비위원회의 정책 토론회를 둘러싼 논란도 그랬다. 이 정책토론회는 대변인 토론 배틀로 재미를 본 이준석의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구상일 뿐, 당헌 당규에 어긋나는 ‘월권’이었다. 대선 경선 후보 원희룡도 “토론회 백번이라도 하고 싶고 진면목을 보여줄 자신이 있다. 그러나 당헌 당규상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 당대표의 아이디어라고 밀어붙이는 독단에 대해선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원희룡은 8월 13일 ‘이준석 대표의 오만과 독선, 좌시하지 않겠다’는 글에서 “그간 우리 당이 무엇 때문에 망했었는지 모르는가? 지도자의 오만과 독선 때문이었다”라고 했다. 그는 “이 대표는 당의 민주적 운영이 얼마나 중요한지 잊고 있다”며 “경선 룰을 정하는 것처럼 중대한 사항은 구성원들의 의사를 널리 수렴하고 당헌 당규상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창고로 땜빵한 불안한 봉합”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그런 독단적 리더십에 관한 한 이준석과 윤석열은 닮은꼴이었다. 두 사람은 그 점에선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다른 점에서 비슷하면 이른바 ‘케미’가 잘 맞을 수 있는 관계가 됐겠지만, 독단적 리더십과 관련된 성격은 둘의 평화로운 공존마저 어렵게 만들었다. 이제 남은 건 전면적인 충돌뿐이었다.

    이준석과 윤석열, 두 사람이 끊임없이 갈등을 빚으면서도 정면충돌은 하지 않은 가운데 윤석열은 2021년 11월 5일에 치러진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그로부터 20여 일 후인 11월 29일에서 12월 3일까지 수일간 유권자들은 이준석과 윤석열 사이에서 벌어진 때 아닌 ‘치킨 게임’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준석이 11월 29일 밤 SNS에 “그렇다면 여기까지”라는 짧은 글을 남기고 잠적해 버리는 기상천외한 정치투쟁법을 선보인 것이다. 윤석열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연일 하락세를 보였으니,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고 윤석열로선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이준석은 잠행 기간에 ‘책략적’ 발언을 많이 쏟아냈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발언은 12월 2일 ‘JTBC 뉴스’ 인터뷰에서 나왔다. 그는 윤석열 캠프의 자신에 대한 ‘모욕 주기’를 비판하면서 “그런 식의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후보 주변에 있다는 것은 선거의 필패를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나온 다음 발언이 중요했다. “정작 선의로 일해 보려고 하는 사람은 악의로 씌우고 본인들은 숨어서 익명으로 장난을 치고. 그게 다 후보의 권위를 빌려서 호가호위하는 것이고 저는 그런 실패한 대통령 후보, 실패한 대통령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겠습니다.”

    정말 그랬던 것인지 어떤 오해가 있었던 것인지 알 길은 없었다. 유권자들이 알 수 있었던 건 그의 최후통첩 메시지였다. 즉 정권교체가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실패한 대통령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치킨 게임’ 메시지였다. ‘치킨 게임’은 담력이라기보다는 광기를 겨루는 게임이다. 완전히 미친 사람이 덜 미친 사람에 비해 우위를 누린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실제론 이와 유사한 현실 세계의 게임에선 상대편에게 자신의 광기나 자신은 죽어도 잃을 게 없다는 점을 미리 우회적으로 알리는 등 각종 책략이 동원된다.

    물론 잃을 게 더 큰 쪽은 윤석열이었다. 이준석이 잠적한 지 나흘 만인 12월 3일 저녁 윤석열은 울산에서 이준석과의 전격 회동을 통해 그간의 갈등 해소와 더불어 김종인의 총괄선대위원장직 수락 소식을 발표함으로써 치킨 게임을 종식했다. 윤석열의 정치력을 높게 평가한다는 긍정 평가가 우세한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윤석열이 ‘백기 투항’을 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런 결과를 영 마땅치 않게 여긴 민주당은 성명을 통해 “윤석열 후보의 부재한 정치철학과 무능한 리더십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며 “반창고로 땜빵한 불안한 봉합”이라고 했다. 날카로운 진단이었다. ‘울산 회동’ 18일 만인 12월 21일 땜빵한 반창고가 풀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날 이준석은 “선거대책위원회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론 최고위원 조수진의 ‘항명’에 따른 것이었지만, 심층적으론 윤석열과의 갈등이 다시 폭발한 것이었다.

    16일 만인 2022년 1월 6일 밤 윤석열과 이준석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일이 또 벌어졌다. 그간 왜 싸웠으며, 그 싸움의 원인은 어떻게 해소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윤석열은 “원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피 같은, 같은 당원입니다”라는 말로 얼렁뚱땅 때워 넘겼다. 이 화해는 “반창고로 땜빵한 불안한 봉합”의 새로운 버전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게 나중에 드러나지만, 대선과 지방선거까진 국민의힘의 승리를 망치지 않은 효과를 낸 건 분명했다.

    바보야, 문제는 성격과 스타일이야

    2022년 3월 5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서울 노원구 노원역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2022년 3월 5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서울 노원구 노원역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2022년 3월 9일에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은 대선 사상 최소 표차(24만7077표, 0.73%포인트)로 간신히 승리했다. 5월 10일 윤석열은 제20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국민의힘은 3주 후에 치러진 6·1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다. 승리의 기쁨은 여기까지였다. 윤석열의 취임 첫 주 지지율은 52%(부정 37%)였지만, 그는 취임 한 달 만에 지지율이 떨어진 첫 대통령이 됐고, 6월 하순엔 ‘부정’(47.7%)이 ‘긍정’(46.6%)을 앞지른 데드크로스를 거쳐, 취임 두 달 만인 7월 초순에 30%대로 추락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이런 지지율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윤석열과 이준석 사이에 빚어진 갈등이었다. 지방선거가 끝난지 며칠 후인 6월 6일부터 20여 일간 유권자들은 이준석이 ‘윤핵관’이라는 이름을 붙인 친윤 정치인들과 말과 글로 싸우는 이준석의 원맨쇼를 질리도록 원없이 구경해야 했다. 사람들은 싸움 구경을 즐기면서도 내심 “저게 집권 여당의 수준인가?” 하는 의아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런 싸움의 와중에서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징계 대상으로 삼은 이준석의 ‘성접대 및 증거인멸’ 의혹 문제가 다시 거론되면서 국민의힘은 갈등의 소용돌이로 휘말려 들어갔다.

    ‘한겨레’ 선임기자 성한용은 ‘“이준석 진짜 가만두면 안 된다”…토사구팽 뒤 ‘윤핵관 시대’ 올까’(7월 2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민의힘 의원들도 이준석 대표에게 점점 더 등을 돌리는 분위기”라며 일부 의원들의 강한 반감을 소개했다. “의원들한테 물어봐라. 이준석 좋다는 사람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준석은 본인만 옳고 다른 사람은 다 적으로 몰아붙여 공격하고 있다.”

    윤석열이 점잖게 대통령으로서의 체통만 지켰어도 이준석은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었건만, 윤석열은 이준석 못지않은 다변가로 ‘실언 제조기’가 아니었던가. 윤석열은 자신이 은밀하게 비밀로 해야 할 것마저 다 드러내고야 마는 스타일이라는 걸 만천하에 과시하고 싶진 않았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7·26 자해(自害) 사건’이 그걸 잘 보여주었다.

    이는 7월 26일 국민의힘 의원 권성동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과 화기애애하게 주고받던 텔레그램 메시지가 취재 카메라에 포착돼 만천하에 공개된 엽기적 사건을 말한다. “우리 당도 잘하네.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윤석열의 말에 권성동이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답한 것인데,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는 말이 문제가 됐다. 이준석이 본격적인 전투 모드로 들어가면서 사건의 파장은 더욱 커졌고, 국민의힘이 쪼개지거나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2022년 7월 26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주고 받은 문자를 보던 중 그 내용이 사진기자에게 찍혀 논란이 일었다. 이 문자에서 윤 대통령은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고 권 원내대표에게 문자를 보냈다. [공동취재사진]

    2022년 7월 26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주고 받은 문자를 보던 중 그 내용이 사진기자에게 찍혀 논란이 일었다. 이 문자에서 윤 대통령은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고 권 원내대표에게 문자를 보냈다. [공동취재사진]

    권성동의 부주의가 문제였지, 윤석열은 잘못한 게 없다고? 그렇지 않다. 그런 메시지는 아예 생산하지 않거나 증거를 남기지 않게끔 하는 게 원칙이다. 윤석열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주의하거나 둔감한 스타일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다. 그 대신 ‘뚝심’이라는 장점이 있다곤 하지만, 엉뚱한 일에 뚝심을 보이면 그건 더 골치 아프다. 따라서 “그까짓 스타일”이라고 일축할 일이 아니다.

    윤석열의 지지율에 큰 타격을 입힌 사건 대부분은 스타일의 문제였다.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라는 걸 감안하자면, 알맹이의 문제라는 것도 상당 부분은 스타일의 문제다. 물론 이준석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비전과 전략이 아무리 탁월하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같이 일할 세력이 없거나 약하면 학자나 평론가지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준석이 당내 여론을 자신에게 우호적으로 만들거나 적어도 중립을 유지하게끔 하면서 윤석열과 싸우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가면 이성을 상실하고야 마는 성격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이 말을 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보야, 문제는 성격과 스타일이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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