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 부수입 없이 살기 어려웠던 관리들
뇌물 수수 정점은 인사 청탁…관찰사는 60억, 군수는 15억
권성동부터 전재수까지, 여야 초월한 통일교 금품 상납
샤넬 백, 다이아 목걸이, 명품 시계…상상초월 김건희 뇌물 목록
재판서 무죄 나오면 면책? 반성하는 이 찾기 어려워
독초처럼 뿌리내린 부패, 유권자가 ‘청렴’을 기준 삼아야

김병기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월 12일 저녁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윤리심판원 회의 출석을 마치고 밖으로 나서고 있다. 이날 윤리심판원은 공천헌금 수수 등 각종 비위 의혹을 받은 김병기 의원에 대해 제명을 의결했다. 뉴시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1월 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통일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 사건의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不意惠音 兼以歲儀種種(뜻하지 않게 주신 소식과 여러 새해 선물 잘 받았습니다.)
尤見舊情不疏 感荷倍切(더욱 옛정이 멀어지지 않았음을 알겠으니 고마움이 배가됩니다.)
…燈前別錄 卽亡兒妾事也(…편지 옆의 별록은 죽은 내 아들의 첩에 관한 일입니다.)
幸破格細察(부디 격식을 깨서라도 세밀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1644년 영의정 김류가 익산군수 조행립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은밀한 부탁은 별도의 메모에 담았고, 이 별록(別錄)은 불태워져 전해지지 않는다. 조행립이 자신에게 여러 가지(種種) 새해 선물(歲儀)을 보낸 사실은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조선시대 관리들이 상급자에게 물품을 보내는 일은 당연한 ‘관행’이고 ‘예의’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관리들은 부수입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었다. 특히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조정이 초긴축 재정을 실시하면서 관리들에게 주는 미곡을 연간 10만~15만 석에서 4만 석 내외로 줄였다. 영조 때 편찬된 속대전을 보면 정1품 영의정이 매달 쌀 16가마니 8말과 콩 4가마니 5말을 받았고, 최하위 종9품은 쌀 10말과 콩 5말을 받았다. 당시 망건 값이 쌀 1말이고 겨울옷 한 벌이 쌀 4말이었으니, 하위직 관리의 경우 가족 생계를 잇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걸핏하면 흉년 등을 이유로 감록(減祿), 즉 관리 월급을 일괄 감액했다.
뇌물 수수 정점은 인사 청탁…관찰사는 60억, 군수는 15억
그래서 조선의 관리들은 일상적으로 물품을 주고받았다. 이를 ‘예의(禮儀)’ ‘인지(人止)’라는 용어로 포장했다. 윗사람을 섬기는 도리나 선비들 사이의 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본질은 개인적 이익을 구하는 뇌물이었다.시간이 갈수록 뇌물의 규모는 커졌다. 그리고 국가의 모든 기능이 뇌물에 의해 좌우됐다. 양반들의 유일한 취업 기회인 과거 시험도 공정성을 잃었다. 조선 중기 문인 김택룡이 아들의 과거 낙방에 가슴을 치는 이야기를 ‘조성당일기’에 남겼다. 오늘날 유력자들의 자녀 채용 비리가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場中無難 紛紜如市(시험장 안에는 조심하는 기색이 없고, 어지럽기가 시장바닥과 같다.)
强有力者 先據勝地(힘이 있는 자들은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貧弱者 縮手於傍(가난하고 약한 자들은 옆에서 손을 놓고 위축되어 있다.)
…科弊至此 殆不可言(…과거의 폐단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가히 말로 다 할 수 없다.)
借述謄寫 公然無忌(남의 글을 대신 짓고 베껴 쓰는 일이 공공연하여 거리낌 없는데)
考官亦不復嚴査(시험관 또한 엄격히 조사하지 않는다.)
뇌물 수수의 정점은 인사 청탁이었다.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 시기가 되자 매관매직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세도가들은 많은 경우 부인이나 첩을 중개자로 내세웠다. 그리고 관직마다 정가가 매겨졌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관찰사 자리가 10만~20만 냥, 군수는 부임지의 비옥함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가장 좋은 곳이 5만 냥이라고 했다. 당시 쌀값을 기준으로 오늘날 값어치를 환산하면 관찰사는 약 60억 원, 군수는 15억 원이었다.
지방관들은 재임 중 이 돈을 뽑고, 다른 관직을 살 돈으로 모으고, 자신의 몫까지 챙겨야 하니 몹시 바빴다. 죽어나는 건 가난한 백성이었다. 가렴주구가 극에 달했다. 왕들이 암행어사를 수시로 파견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이익의 ‘성호사설’ 내용이다.
今世間 一爲守宰(요즘 어떤 사람이 수령이 한번 되면)
家忽潤澤 田庄充饒(그 집안이 갑자기 윤택해지고 토지가 가득 차게 된다.)
或御使告貪狀 百端伸雪(혹시 암행어사가 탐관오리로 고발해도 온갖 방법으로 해명해 빠져나간다.)
朝彈劾疏入 暮堂堂受接而出(아침에 탄핵 상소가 들어와도 저녁에는 당당하게 접수되고 풀려나온다.)
부정부패에 찌든 나라가 오래 버틸 수는 없다. 조선이 망하고, 오랜 투쟁을 거쳐 1948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기반한 국가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권성동부터 전재수까지, 여야 초월한 통일교 금품 상납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2022년 4월 말의 일이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회 간사였던 김병기 의원에게 강선우 의원이 찾아와 살려달라며 읍소했다. 20대 유학생인 아들이 주택을 11채나 보유한 사실 때문에 공천에서 배재됐던 김경 시의원이 강 의원 사무국장에게 전화해 1억 원을 준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녹음 속 대화에서는 김병기 의원이 도와줄 수 없다며 거절했지만, 다음 날 김경은 민주당 서울 강서구 시의원 후보로 단수 공천됐다.김병기 의원 본인도 공천헌금 의혹을 받고 있다. 전직 서울 동작구의원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김 의원 부인에게 2000만 원을 줬다 몇 달 뒤 돌려받았고, 또 다른 구의원도 같은 해 김 의원 측근을 통해 1000만 원을 전달했다 돌려받았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2023년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의원실에 탄원서를 보냈는데, 검증위원장인 김병기 의원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탄원 대상에게 탄원서가 갔으니 어떻게 처리됐을지는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2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통일교의 김건희 여사 금품 제공 의혹을 수사하던 중 단서가 포착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특검 조사에서 2022년 대선 두 달 전 권성동 의원을 만나 윤석열 후보를 위해 사용하라는 취지로 현금 1억 원을 줬다고 진술한 것이다.
그런데 돈을 줬다는 사람이 권성동 의원만이 아니었다. 민중기 특검팀은 이미 지난해 8월 윤영호 전 본부장으로부터 여야 중진의원들에게 금품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 가운데 권성동 의원만 골라 사법 처리한 것이다.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라고 만든 특검팀이 민주당 쪽 비리를 덮어뒀다는 의혹은 많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민중기 특검팀은 지난해 12월 나머지 연루자 3명의 내사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다. 그중 가장 서둘러야 할 수사 대상은 전재수 민주당 의원이다. 윤영호 전 본부장은 ‘전재수 의원이 천정궁을 방문해 한학자 총재에게 인사하고 현금 4000만 원가량과 시계 2개를 받아갔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해당 시점이 2018~2019년이어서 정치자금법 공소시효 7년이 이미 지났거나 거의 임박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재수 의원은 해양수산부 장관을 자진 사퇴했지만 관련 의혹은 모두 부인했다. 또한 통일교에서 각각 3000만 원을 받은 의혹이 있는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과 김규환 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서도 경찰이 수사 중인데, 당사자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을 받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서 피의자 조사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뉴시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통일교 청탁·뇌물 수수 의혹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9월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샤넬 백, 다이아 목걸이, 명품 시계…상상초월 김건희 뇌물 목록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와 통일교 관련 부분도 드러나고 있다. 윤영호 전 본부장은 2022년 4월에서 8월까지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해 김건희 여사에게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2개를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김건희 여사가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그 뒤 자연스럽게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김건희 여사는 지난해 11월 변호인이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샤넬 가방 2개를 받았다고 인정하고 국민들께 사과했다. 그 밖에 특검이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한 통일교의 그라프 목걸이와 서희건설 회장의 ‘나토 3종’ 귀금속, 모 사업가의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 등은 앞으로 법정에서 수수 여부가 가려질 것이다. 김건희 여사 이전에도 권양숙 여사가 고(故)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고 김정숙 여사의 관봉권 사용이 확인되는 등 역대 대통령 부인들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돼 왔다.
그런데 비리가 드러나도 재판에서 절차적 사유로 무죄가 나오거나 유죄 선고 뒤 선거에서 당선되면 면책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공직자가 많다. 예를 들어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관련자 일부가 그러하다.
지난해 12월 항소심 재판부는 민주당 소속 허종식 의원과 임종성·윤관석 전 의원에게 원심과 달리 무죄를 선고했다. 그들이 돈봉투를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는 게 아니다. 검찰이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다른 범죄를 수사하다 휴대폰에서 돈봉투 관련 녹음을 발견했는데, 법원은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지 않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그런데도 임종성 전 의원은 “검찰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던 억지 기소였다”라고 하는가 하면, 윤관석 전 의원은 “명예 회복에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잘못한 게 없는데 기소됐다는 식이다. 또한 송영길 전 대표도 항소심에서 돈봉투 살포에 무죄가 나오면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말한다. 다시 정치권으로 들어가 “의정 활동으로 보답하겠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정당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매표 행위를 저지른 데 따른 반성은 찾기 힘들다.
유권자가 ‘청렴’을 정치인의 핵심 자격 삼아야 부패 근절
그러면 우리 정치에 독초처럼 뿌리내린 부패를 어떻게 척결할 수 있을까. 부패의 원인부터 살펴보면, 후원금은 적은데 비용은 과다한 정치구조가 지목된다. 또한 학연·지연 등을 강조하는 연고주의 문화로 인해 뇌물을 성의로 포장하기 쉽다. 그것이 반복되면 ‘남들도 다 하는 관행’이라는 자기합리화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권력은 위임된 것이라는 ‘정치 윤리’의 회복이 절실하며, 유권자인 국민이 ‘청렴’을 정치인의 핵심 자격으로 삼아야 부패를 근절할 수 있다.그러나 의식과 문화의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나 실현이 요원하다. 우리가 예측 가능한 기간에 결과를 통제할 수 있는 건 제도의 개선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싱가포르는 강력한 처벌과 고임금을 묶어 공직자 부패를 예방한다. 북유럽은 공직자의 e메일과 영수증까지 모든 문서를 공개해 감시한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못 해’라는 벽을 깨는 만큼 우리 정치도 맑아질 것이다.
국회의원 지역구 활동비의 상당 부분을 국고에서 지원하고, 국회의원 연금을 부활해 개인 노후를 보장할 것을 제안한다. 부패에 벌 대신 상을 주느냐는 비판도 있겠지만, 그게 국민 입장에선 싸게 먹힌다. 동시에 현재 300명인 국회의원 수를 파격적으로 줄이면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공무원 부패가 줄어든 이유로 공무원연금을 꼽는 사람이 많다. 자기 봉급 9%에 국가가 9%를 더해 국민연금 두 배에 달하는 연금소득이 보장되는데, 부정한 돈을 받았다가 그중 절반을 날리는 건 수지가 맞지 않는다. 국회의원도 그러할 것이다.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가 지난해 6월 25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묘지를 찾아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의원도 공수처 수사 대상, 정치권 비리 정조준해야
마침 우리는 고위공직자 범죄를 수사하는 기구를 따로 가지고 있다. 검찰의 힘을 빼려 만든 기구였지만, 이제 검찰 수사권도 없어졌으니 제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을 야당이 추천할 것을 제안한다. 국회의원도 당연히 공수처 수사 대상이니 정치권의 비리가 정조준될 것이다.매관매직 등 권력형 비리를 시정하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제도 개혁부터 실시하자. 그것을 하겠다는 정당이 있으면 지지하고, 그것을 하겠다는 정치인에게 투표하자. 그러면 천형처럼 우리를 옥죄던 부패의 관습과 문화도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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