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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강 신드롬

폭력의 세계에서 인간을 질문하다

논문으로 본 한강 작품 세계

  • 권혜린 | 이화여대 국어국문과 박사 수료

폭력의 세계에서 인간을 질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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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뭘까. 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 1980년대 광주를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그린 ‘소년이 온다’ 를 논문을 통해 되짚어봤다.
2016년 한국문학계는 한국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로 들썩였다. 덕분에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과 한강의 인지도가 갑작스레 높아졌다. 하지만 한강의 작품은 논문에서든 당대 비평에서든 그간 꾸준하게 논의돼왔다.

한강은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등 4편이 실린 데 이어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으로 등단해 단편집 ‘여수의 사랑’(1995) ‘내 여자의 열매’(2000) ‘채식주의자’(2007) ‘노랑무늬 영원’(2012)과 장편소설 ‘검은 사슴’(1998) ‘그대의 차가운 손’(2002) ‘바람이 분다, 가라’(2010) ‘희랍어 시간’(2011) ‘소년이 온다’(2014), 그리고 최근에 출간된 ‘흰’(2016)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작품을 써왔다.

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1980년대의 광주를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주목받은 최근작 ‘소년이 온다’ 등을 되짚는 것은 한강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고민하는 일이다.

한강의 작품에서 일관된 주제는 ‘폭력 세계’다. ‘채식주의자’는 가부장제, 남성, 문명의 폭력을 드러내며, ‘소년이 온다’는 국가적·정치적인 폭력을 보여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문학 안에서의 능동적인 저항을 보여준다. 어쩌면 문학의 근본적인 역할이 이렇게 세계의 폭력을 비판하면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질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식물로 변신하기

한강의 문제의식은 그의 작품에 대한 학술논문이나 학위논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한강을 다룬 논문 중에는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에 주목한 경우가 많다. 이들 논문은 ‘채식주의자’를 에코페미니즘이나 욕망과 연결해 해석하고, ‘소년이 온다’를 통해 광주를 애도하거나 반대로 광주를 증언할 수 없다고 본다. 필자는 이 글에서 두 작품을 다룬 논문에 집중해 한강 작품의 의미를 짚고, ‘감정의 증언을 통해 한강 소설을 읽는 법’을 살펴본다.

한강의 소설에는 육식으로 나타나는 폭력적인 세계를 비판하기 위해 식물로 변신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내 여자의 열매’에서 온몸에 푸른 멍이 드는 것으로 시작된 식물로의 변신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의 연작(連作)으로 이뤄진 ‘채식주의자’에서 정점을 이룬다(‘내 여자의 열매’의 주인공은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아내이고, ‘채식주의자’ 연작 소설의 주인공은 영혜다).  

김순옥의 논문에서는 ‘내 여자의 열매’가 전통적인 결혼제도, 아파트로 상징되는 획일화한 도시, 부부 간 소통의 부재, 오염된 환경 등의 폭력 때문에 아내가 식물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김규연도 식물이 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을 치유하고 자연과 관련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 ‘채식주의자’에서는 육식하지 않으려는 영혜가 가족과 부딪치며,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의 몽고반점에서 영감을 얻은 형부가 몸에 꽃을 그리고 영혜와 관계를 맺는다. ‘나무 불꽃’에서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가 먹는 것을 거부하면서 점차 식물이 되는 과정을 언니 인혜가 관찰한다.  

영혜가 식물이 돼가는 과정을 에코페미니즘(환경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의 사상을 통합한 생태여성론)으로 보는 해석이 많다. 에코페미니즘은 남성·여성, 문화·자연, 정신·육체, 이성·감성으로 대립되는 이분법적인 관계에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 것처럼 남성이 여성을 지배한다고 비판하는 시각이다. 이러한 지배에서 벗어날 때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거부와 저항, 채식과 거식

에코페미니즘은 남성이 여성을 열등하게 보고 지배하는 것으로 가부장제를 꼽는데,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를 억압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이를 잘 볼 수 있다. 급기야 ‘여수의 사랑’에서 보여준 가족 상실은 더 나아가 가족과 적대적인 관계로 이어진다. 이때 가정은 안락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폭력의 공간이 된다.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는 것은, 영혜의 뺨을 때리고 영혜에게 억지로 탕수육을 먹이며, 어릴 때 영혜를 문 개를 잔인하게 잡아먹은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다. 나아가 ‘나무 불꽃’에서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물구나무를 서면서 나무를 형제로 보는 영혜의 모습을 이찬규·이은지는 자연과의 합일로 본다. 장명훈도 영혜가 구토와 피를 통해 동물적인 것을 거부하면서 자본주의를 벗어난다고 말한다. 채식에서 거식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자기 거부’이자 ‘저항적인 움직임’으로 보는 것은 신수정의 논문에서도 이어진다.

이를 욕망과 연결 짓는 시선도 있다. 김만석은 작가론에서 영혜의 채식은 꿈이라는 한순간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몸이 채식을 욕망하기 때문이라고 보며, 정미숙도 도살하는 현장에 대한 꿈은 존재를 바꾸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하지만 꿈을 고백하는 영혜를 신경증 환자나 트라우마를 가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가족의 관찰이 중심이 되는 상황에서 관찰자의 처지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주인공들의 독백을 통해 그들이 누구보다 예민하게 세계의 폭력을 느끼고 있다고 볼 필요가 있다. ‘내 여자의 열매’의 아내는 어머니처럼 살까 봐 도시로 떠났지만 행복한 적이 없었고, 식물이 되어 시각·청각·후각·미각을 잃은 뒤 오히려 모든 것을 더 생생하게 느낀다. ‘채식주의자’의 영혜 역시 날고기가 씹히는 감촉과 더불어 죽어가는 목숨들의 고함과 울부짖음이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소년이 온다’는 하나의 서사로 꿸 수 없을 만큼 7개의 장이 광주를 겪은 이들의 목소리를 독립적으로 담아냈다. 1장엔 동호를 ‘너’라고 지칭하는 서술자, 2장엔 유령이 된 정대, 3장엔 출판사 직원 김은숙, 4장엔 복학생, 5장엔 방직공 출신의 임선주, 6장엔 동호의 어머니가 등장하며 에필로그인 7장에는 작가의 말이 소설 속에 들어간다. 이를 통해 1980년대의 광주를 ‘증언’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증언할 수 있다면 죽음을 애도한 뒤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고, 증언할 수 없다면 증언이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논문 역시 증언이 ‘가능하다’는 것과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나뉜다. 그중 ‘광주는 증언이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식의 주장이 우세하다.



‘지금, 여기’의 문제

먼저, 증언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살펴본다. 이숙은 광주에서 죽은 소년 동호를 기억하는 이들이 애도하면서 슬픔을 극복한다고 말한다. 특히 살아남은 자들이 기록할 때 ‘사회적 애도’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애도가 이뤄졌다는 것은 사건이 종료됐다는 뜻일 텐데, 소년이 ‘온다’는 현재진행형 제목은 광주가 아직도 ‘지금, 여기’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그 문제들을 펼쳐 보이는 다양한 목소리는 ‘광주는 무엇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게 한다. 동일한 시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일을 겪어도 그 사건이 개인에게 흡수되는 방식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강소희는 광주에 대해 증언이 불가능한 상황을 그리는 것은 ‘고통의 치유’가 아닌 ‘고통의 현재화’라고 말한다. 이는 검열된 대본 때문에 소리를 내지 않고 공연하는 장면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모습은 증언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 움직임, 시선 등의 비언어를 통해 고통에 머무르겠다는 다짐을 보여준다.

조연정도 광주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고문 등 육체적인 고통과 연결되기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라고 본다. 황정아도 소설이 트라우마를 회피하지 않으면서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트라우마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전승되는 ‘역사적 트라우마’라고 본다.

이렇게 고통을 증언하는 것은 폭력 세계에서 인간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 폭력은 잘못된 것이며, 없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면서 폭력을 남의 문제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그 상황에 참여하게 만들면서 폭력이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전달하기에.


모독하지 않고 고통 증언하기

그렇다면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에서 나타난 폭력의 고통을 모독하지 않고 어떻게 증언할 수 있을까. 한강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폭력을 증언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폭력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증언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감정’을 증언하는 것이다. 폭력과 관련된 감정은 살아남았다는 수치심과 고통에 대한 공감이다.

심영의는 ‘소년이 온다’에서 광주의 주체가 민초나 민중, 무장시민군 등의 정치적인 이름이 아니라 사건을 겪은 개인의 감정이 모인 ‘집합적 감정’이라고 말한다. 동호, 은숙, 선주 등 소년과 소녀들이 도청으로 간 것은 저항의식 때문이 아니라 감정이 자연스럽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한 살아남은 자에게는 증오와 복수뿐 아니라, 죽음을 목격하는 경험을 통해 연대의 감정도 나타난다. 조연정도 애도를 통해 사건이 종료되는 것을 거부하고, 슬픔의 감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고통을 함께 겪는 것과 연관된 ‘공감’은 ‘채식주의자’에서는 찾기 힘들다. 이귀우는 ‘채식주의자’에서 영혜와 인혜가 같은 약자로서 진정한 공감을 한다고 해석했는데, 인혜는 자신을 영혜와 동등하게 놓지 않고 영혜를 관찰하면서 ‘이해’하므로 고통을 함께 겪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감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진정한 공감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 포함될 것이다.

양현진이 ‘희랍어 시간’을 통해 공감을 증언한 것은 긍정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주인공인 그녀는 죽어가는 백구를 안음으로써 백구의 고통을 느낀다. 이는 죄의식 혹은 동정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실명한 그가 소리로 느낀 병원을 설명하고, 말을 할 수 없는 그녀가 이를 들은 뒤 다시 그 장면을 떠올리는데 이는 ‘감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폭력의 세계에 놓인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희랍어 시간’의 주인공들도 언어라는 폭력의 세계를 살아내는 인간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때 인간은 개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다. 한강에 대한 최근의 논의에서 신샛별은 작가가 개인주의적인 인간이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로서의 인간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이분법을 넘어서

한강도 인터뷰에서 다른 이의 고통에 몸을 기울이는 것이 인간의 고귀함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작가가 말한 것처럼 폭력적인 세계에서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역할일 것이다. 이러한 고민들을 이어가는 한강의 소설과 더불어, 한강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은 진행 중이다.

한강의 소설은 이분법을 넘어서 볼 수도 있다. ‘채식주의자’에서 식물로 변신한 영혜가 동물의 성격도 가졌다고 보는 시각 또한 그에 해당한다. ‘채식주의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혜는 동박새를 물어뜯고, ‘몽고반점’에서는 몸에 그린 꽃을 보고 성욕을 느낀다. 강지희는 이를 ‘동물적인 식욕과 성욕을 보존하고 있는 기이한 식물의 몸’이라고 말한다. 김미현도 육식성을 제거할 수 없다고 말하며, 우미영도 영혜는 식물도 동물도 아닌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소년이 온다’에서도 죽은 정대의 ‘혼’을 통해 광주를 증언할 때 육체와 정신의 대립을 넘어선다. 죽은 사람은 증언할 수 없지만, 상황을 가장 잘 증언할 수 있는 사람도 죽은 사람이다. 혼의 증언들은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리얼할 수 있다.

동호가 “혼한테는 몸이 없는데, 어떻게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볼까”(‘소년이 온다’ 12쪽)라고 질문하는 것은 몸과 분리될 수 없는 혼이 어떻게 광주를 증언하는지 보여준다. 고문 때문에 혼이 없는 몸으로 살아남거나, 이미 죽어서 몸이 없는 혼으로 나타나는 것은 어느 쪽의 고통이 더 무거운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니 몸과 혼의 우열을 가리는 것도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동호를 모독할 수 없도록 기록으로 남겨달라는 에필로그의 말처럼, 이들의 고통을 잊음으로써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함으로써 증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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