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교롭게도 ‘W’에서 그는 당시 ‘황우석 방송’ 담당PD이던 한학수(韓鶴洙·37)씨와 다시 뭉쳤다. 한 PD는 2006년 6월, 3개월의 독일 연수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뒤 ‘W’팀으로 배치됐다. 황우석 방송으로 자체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던 한학수 PD는 최근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라는 책을 펴냈다. 최 팀장은 자리를 옮긴 이유에 대해 “너무 힘들어서 PD수첩을 떠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12월6일 저녁, 최 팀장을 만나기 위해 MBC로 향했다. 사람들은 “황우석에 대해 더 취재할 것이 남았냐”고 묻겠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적지 않다. 그래서 그에게 “소주나 한잔 하자”며 인터뷰를 제의했다. 그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인터뷰에 앞서 묵은 자료들을 뒤적였다. 자칫 술기운에 인터뷰 분위기가 흐트러질 우려가 있었다. 술자리에서도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때 눈에 꽂히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황 교수를 죽이러 왔다.” MBC PD수첩 취재팀은 미국 피츠버그대에 파견된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연구팀 연구원들을 취재하면서 “황 교수와 강성근 교수를 죽이러 여기 왔다. 다른 사람은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며 회유했다고 해당 연구원들이 뉴스전문 케이블채널 YTN에 증언했다. 이들 2명의 연구원은 또 “(황 교수의) 논문이 가짜라고 증언한 적이 없다”면서 “PD수첩팀으로부터 황 교수의 논문이 취소되고 검찰에 구속될 것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고 말했다. |
2005년 12월4일 YTN이 오후 3시부터 대대적으로 보도한 김선종·박종혁 연구원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제목과 기사에 들어 있는 ‘죽인다’는 단어가 강하게 뇌리에 박혔다. 불에 한번 덴 사람은 유난히 불을 무서워하게 마련. 이번 인터뷰에서 그 단어가 긴장을 유지해주는 히든카드가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분위기가 느슨해질 때마다 그 단어는 인터뷰의 긴장을 되찾아주는 활력소가 됐다.
“파멸의 주체는 황 교수 본인”
최 팀장과 인사를 나눈 후 MBC 근처 한정식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 팀장이 맥주로 시작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우선 맞선 보러 나온 사람들처럼 가족, 고향, 학교 등 신변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아내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음식과 술이 나왔고 서로 맥주를 한잔씩 권했다. 거두절미하고 공격적인 질문부터 날렸다.
▼ 황우석 교수를 꼭 ‘죽여야’ 했나요. 살릴 수는 없었나요.
최 팀장은 일순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웃음을 지으며 “어떻게 하면 살죠?”라고 맞받았다. ‘죽인다’는 단어는 이후에도 몇 차례 사용됐다. 사용빈도가 늘어날수록 최 팀장은 초반의 평정심을 잃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