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5년,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옹기를 구우며 살던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 산골마을인 배론(배론은 골짜기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에 프랑스인 메스트르 신부가 찾아들었다. 메스트르 신부는 마을의 한 초가에서 사제가 되려는 학생을 받아 한문, 라틴어, 신학 등을 가르쳤는데, 이 초가집 학교가 한국 최초의 서구식 근대 교육기관인 성요셉신학교다. 그전까지는 천주교 사제가 되려면 외국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지만 성요셉신학교가 세워지면서 비로소 우리 땅에서 사제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따라서 가톨릭대의 역사는 한국 천주교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가톨릭대가 배출한 사제는 1700여 명. 이는 1784년 천주교가 한국에 전파된 이래 배출된 3000여 명의 한국인 사제 중 절반이 넘는 숫자다. 1962년 광주가톨릭대를 시작으로 지방 7곳(광주, 대구, 대전, 목포, 부산, 수원, 인천)에 신학교가 세워지기 전까지 가톨릭대는 국내 유일의 사제 양성 교육기관이었다. 김수환 추기경, 정진석 추기경, 정의채 몬시뇰 등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신부들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성요셉신학교는 1866년 병인양요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박해가 끝난 1885년 강원도 원주에서 ‘예수성심신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신학생 교육을 다시 시작했다. 1887년에는 서울 용산으로 학교를 이전했으며, 1942년에는 일제에 의해 폐교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1945년 예수성심신학교는 지금의 서울 혜화동 성신교정에 자리를 잡고 ‘경성천주공교신학교’로 문을 열었다. 그러다 1947년 ‘성신대학’으로 승격되고, 1959년 오늘날의 ‘가톨릭대학’으로 그 이름을 바꿨다.
가톨릭대 하면 신학과 함께 의학이 떠오른다. 신학대와 함께 가톨릭대의 또 다른 중심축인 의과대학은 1954년 명동성당 구내 건물을 빌려 성신대학 의학부로 출발했다. 그보다 먼저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가톨릭교회는 영적인 치유뿐만 아니라 육적인 치유로 학문 분야를 넓히고자 의료봉사 사업을 시작, 명동에 ‘성모병원’을 개원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현재 서울 여의도에 있는 성모병원, 서울 반포의 강남성모병원, 서울 전농동의 성바오로병원, 인천 부평의 성모자애병원, 부천 소사동의 성가병원, 수원 지동의 성빈센트병원, 대전 대흥동의 대전성모병원 등 8개 산하 병원을 두고 있다.
가톨릭대는 1995년 성심여대와 통합하면서 비로소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성심여대는 1964년 성심수녀회가 강원도 춘천에 설립한 학교로(1982년 경기도 부천 역곡으로 교사 이전), 소수 정예의 엘리트 교육을 표방했다. 현재 가톨릭대는 신학과가 있는 성신교정(서울 혜화동), 인문·자연·예능계열이 있는 성심교정(부천 역곡동), 의과대와 간호대가 있는 성의교정(서울 반포동)의 3개 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로써 선진국형 멀티캠퍼스를 갖춘 종합대학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인성·교양교육 강화
2005년 초, 가톨릭대는 ‘2015 플랜’을 발표했다. ‘2015 플랜’은 2015년까지 국내 종합대학 7위 안에 진입하고 세계적 수준의 명문 사립대학으로 자리잡는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발전전략이다. 가톨릭대 임병헌 총장에 따르면 ‘2015 플랜’은 인성 및 교양교육 강화를 통한 인간화, 전세계 600여 개 가톨릭계 대학과의 연계 체제를 통한 세계화, 연구의 특성화 3가지가 중심축을 이룬다.
가톨릭대의 건학이념은 ‘인간 존중의 대학’이며, 교육이념은 가톨릭 정신에 바탕을 둔 ‘진리 사랑 봉사’다. 가톨릭대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인간학교육원과 교양교육원 같은 별도의 프로그램들을 마련해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