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중심에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김용갑(金容甲·71) 의원(한나라당)이 있었다. 김 의원은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1980~85)을 거쳐 1986년 1월 청와대 민정수석이 됐고, 1987년 6월 직선제 수용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의 사면복권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6·29선언을 탄생시키는 데 동참한 게 더없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5월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 의원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6·29선언에 관심을 가져줘 고맙다. 5·6공의 도덕성 문제 때문에 6·29정신이 훼손되고 잊히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6·29선언의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평가받기를 바랐다. 김 의원은 오는 6월29일 6·29선언 20주년을 맞이해 재평가 세미나를 마련할 계획이다.
6·29선언의 의미
“누가 뭐래도 6·29선언은 민주화의 분수령이자 밑거름이었습니다. 민주화의 시발점이었지요. 대통령 직선제, 정치금지법 폐지, 정치인의 사면복권, 지방자치제 도입, 언론의 완전한 자유 보장 등 현재의 정치적 기반이 모두 그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 6·29선언의 주역이 누구냐를 놓고 논란이 있었지요.
“누가 주도했느냐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단지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제대로 평가하는 게 중요해요. 네가 했다, 내가 했다 공을 다툴 게 아니라 제대로 올바른 평가를 받자는 겁니다.”
직접 표현은 안 했지만 김 의원은 박철언 전 의원(6·29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별보좌관)을 겨냥한 듯했다. 박 전 의원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6·29선언의 주역인 것처럼 써놓았기 때문이다. 박 전 의원은 6·29선언문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인된 사실은 없다. 또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시 민정당 정세분석실과 이종찬 전 의원도 6·29선언을 적극 추진했던 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6·29선언의 실질적 주역을 놓고 설왕설래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6·29선언에 동참한 데 대한 자부심이 무척 큰 것 같습니다.
“통치권자인 대통령의 참모로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지요. 거기에 동참했던 한 사람으로서 영광스럽고 자부심을 느낍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6·29선언이 왜곡 또는 왜소 평가되거나 무시당하며 잊히는 게 안타깝습니다. 5·6공 수구 꼴통이라고 할까봐 지금껏 제대로 말을 못했는데 20주년이 되면서 욕을 먹어도 평가는 제대로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6·29선언 20주년 세미나도 그런 차원에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정치사적으로 6·29가 민주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집중 조명할 생각입니다.”
▼ 6·29선언은 국민의 저항에 부딪힌 군사정권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 아닌가요.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져왔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시 시위를 주도한 쪽에서는 ‘항복’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상황을 수습하는 처지에서 본다면 전두환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과 당시 민정당 대통령후보이자 대표위원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결연한 수용, 이 두 가지가 맞물려서 가능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