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제30대 비타쓰왕이 백제 왕족임을 밝힌 일본왕실 족보 ‘신찬성씨록’. 아래는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
그러나 우에다 박사가 자택에서 필자에게 보여준 것은 훨씬 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집안에서 조상 대대로 고이 간직해온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을 꺼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제30대 비타쓰왕은 백제 왕족입니다.”
서기 815년 일본 왕실이 편찬한 ‘신찬성씨록’은 일본 고대의 왕도(王都)였던 ‘헤이안경’(지금의 교토시)의 왕족과 귀족 1182개 가문의 신분을 기록한, 일종의 일본 고대 왕족 및 귀족 족보다. 우에다 박사는 일본 왕족 30개 가문이 나열되어 있는 대목을 펼쳐놓고, 그중 12번째에 씌어진 ‘大原眞人’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大原眞人’이라는 일본 왕족이 누구인지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씌어 있었다.
‘大原眞人. 出自諡敏達孫百濟王也. 續日本紀合.’
(대원진인, 그의 조상은 시호가 비타쓰(敏達)라는 백제 왕족이니라. ‘속일본기’ 기록에도 부합한다.)
풀이하면, ‘대원진인의 조상이 일본 제30대 비타쓰왕이며, 비타쓰왕은 본래 백제 왕족이다.’ 또한 이 내용이 ‘속일본기’라는 왕실 편찬 역사서(서기 797년)에도 부합한다고까지 적시하고 있다. 우에다 박사는 이 대목이 “비타쓰 천황이 백제 왕족 출신임을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순간 필자는 말을 잇지 못했는데, “비타쓰 천황이 백제 왕족”이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우에다 박사의 학문적 양심에 가슴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구다라 천황(百濟天皇)’
‘일본서기’(서기 720년, 일본왕실 편찬)에 보면, “제30대 비타쓰 천황(敏達·572~585 재위)은 나라(奈良)에 ‘구다라오이궁(百濟大井宮)’을 지었다”는 대목이 있다. 비타쓰왕이 나라의 백제인 집단 거주지 ‘구다라오이(百濟大井)’에 왕궁을 지었다는 얘기다. 이 기록 또한 비타쓰왕이 백제 왕족 출신임을 방증한다. 그뿐만 아니라 비타쓰왕의 친손자인 제34대 조메이왕(舒明·629∼641 재위)도 나라의 ‘구다라강(百濟川) 옆에 구다라궁(百濟宮)과 구다라노데라(百濟寺)라는 큰 가람을 지었다. 조메이왕이 구다라궁에서 살다가 서거했을 때 ‘구다라노오모가리(百濟大殯)’로 장례를 치렀다’는 내용도 있다.
일본 학자 마유즈미 히로미치씨는 ‘일본서기’의 조메이왕 대목인 ‘조메이기(舒明紀)’에 대한 주해(註解)에서 “여기서 말하는 빈소는 그 의식을 성대하게 거행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백제대빈(百濟大殯)’이란 백제 왕실에서 행한 3년상(喪)을 가리킨다. 백제 제25대 무령왕(501∼523 재위)이 왕도(王都)였던 곰나루(웅진, 공주) 지역에서 ‘백제대빈’을 치렀다는 사실은 1971년 출토된 무령왕의 ‘묘지명’을 통해 입증됐다. 백제 왕실의 성대한 장례 의식을 왜에서 거행했다는 것은 당시 나라 땅을 지배한 백제 왕가의 세력이 절대적이었음을 추찰케 한다.
한편 일본 고대 사학자인 세이조대 사학과 사에키 아리키요 교수는 비타쓰왕의 친손자인 “조메이 천황은 생전에 ‘구다라 천황(百濟天皇)’이라고 불렸을 것이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서기 572년에 등극한 비타쓰왕이 ‘백제대정궁’을 세운 오이(大井)는 어디인가. 지금의 나라현 ‘고료초 구다라(廣陵町 百濟)’라는 게 일본 사학계의 통설이다. 이곳에는 2007년 11월 현재 ‘구다라 우편국(百濟郵便局)’도 영업 중이다. ‘고료초 구다라(百濟)’는 지금까지 일본에서 ‘백제’라는 행정 지명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두 곳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