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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조회, 주번이 없는 학교 남한산초등학교

“비가 새도 좋다, 반지하도 좋다, 우리 아이를 이 곳에 보낼 수만 있다면!”

시험, 조회, 주번이 없는 학교 남한산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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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조회, 주번이 없는 학교 남한산초등학교

남한산초등학교는 모든 교과 학습을 몸으로 배우고 익히게 한다. 그래야 입체적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강남 8학군 명문학교와 대치동 학원가에 아이를 보내야 부모 노릇 제대로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게 요즘 세태다. 그런데 왜 불편함을 감수하며 산골 작은 학교에 자녀를 보내려 기를 쓰는 것일까.

“처음 장만한 아파트 입주를 몇 개월 남겨놓고 남한산으로 이사하기 위해 1960년대 판자촌을 연상케 하는 빈집을 얻었습니다. 전입신고 하러 면사무소로 가는데 남편의 전화를 했어요. ‘이혼 도장 찍고 남한산 가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추억도 없이 죽어라 공부만 하는 초등학교 시절을 겪게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공교육만으로 아이를 잘 키우고 싶기도 했고요.”

‘산성 생활’ 5년째인 학부모가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남한산초등학교는 국가 교육정책이 그대로 반영되는 공립학교로 7차 교육과정을 따라야 한다. 국가가 정한 교과목을 국정 교과서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학교 운영방식은 정해진 틀에서 자유로운 대안학교를 떠올리게 한다. ‘함께 꿈꾸고 성장하는 교육공동체’라는 슬로건 아래 자율성을 길러주며, 아이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학교, 학부모가 적극 참여하는 학교, 교사의 자율적 교육활동을 존중하는 학교를 지향한다. 최 교장은 “초등생 시기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온몸으로 배우고 익힌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과학습과 방과 후 특기적성수업 등을 모두 체험학습 형식으로 진행한다.

첫 일과는 ‘숲속 산책’



아이들이 학습에 흥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 교육과정이 독창적이고 다양하다. 매일 아침 수업을 여는 시작은 교사와 아이들의 숲속 산책이다. 아이들은 나무 냄새를 맡고 식물이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무와 교감한다. “겨울 숲속에서 살아 있는 것들을 찾아보라”는 교사의 말에 한 아이는 “바람이 나를 약간 춥게 하고 기운이 펄펄 나게 만들고 열도 조금 나게 해서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답한다.

숲속 산책에 이은 본격 수업은 ‘80분 수업 30분 휴식’의 블록수업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 과목 수업을 교사가 설명하고 아이들이 받아 적는 여느 학교의 단순반복 수업 대신이다. 교사 강의, 그룹별 토론과 발표 등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면 최소한 80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수업 후 ‘쉬는 시간 10분’ 대신 ‘노는 시간 30분’으로 정한 휴식시간에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뒷동산에 매어놓은 그네를 타며 논다.

여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7~10일간 열리는 계절학교는 교과과목 대신 목공예, 도예, 퀼트, 연극, 춤 등 아이들이 관심 있는 과목을 선택해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도록 한다. 생활공예와 예술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과정이다. 여름방학 일주일을 앞두고 열리는 숲속·바다학교는 자연에서 야영하며 자연친화적, 생태적 사고를 기르게 한다.

독특하고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은 교사와 학부모들이 각종 모임과 회의, 공개수업을 통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머리를 맞댄 끝에 만들어졌다. 학교 교육의 실질적 의결기구는 교장을 포함해 교사 전원이 참석하는 주례회의다. 이 자리에서 토론을 거쳐 결정된 사안에 대해선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한다. 학교 운영에 관한 한 교장은 교사들에게 100% 자율권을 부여한다. 민주적인 학사운영과 교사들의 자발성이 아이들 중심의 재미있고 즐거운 교육과정을 만들어냈다.

안순억 교사는 “우리 학교는 틀이 완성된 학교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기체다. 학부모와 교사, 아이들, 지역사회가 함께 좋은 학교 만들기를 책임져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을 갖고 움직인다. 이 작은 학교에 학부모와 교사 모임, 학부모끼리의 모임, 아카데미와 강좌, 교사 워크숍 등 크고 작은 모임이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학교가…”

교육청의 ‘2001년 폐교 확정’ 위기를 넘기고 ‘공교육 혁명’으로 불리는 지금의 학교로 거듭나기까지 교사와 지역 시민단체의 힘이 컸다. 2000년 전교생이 26명이던 학교는 이듬해 9명의 졸업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입학이 예정된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때 경기도 성남지역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의 여름캠프에 학교 운동장을 빌려줬다. 그들 사이에 “이렇게 아름다운 학교가 없어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우리 아이 몇을 보내면 폐교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얘기들이 오갔다. 얼마 뒤 이 모임 회원들을 주축으로 성남지역 시민단체와 더불어 ‘전·입학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당시 곤지암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안순억 교사는 공교육에 절망해 해외 출국을 고민하던 중 위원회로부터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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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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