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남자들이 모여 앉으면 군대 이야기로 밤을 새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사건, 즉 ‘내가 왜 그 찬란한 젊은 날을 군대라는 삭막한 공간에서 보내야 했는가’에 대한 의미를 찾는 행위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틀에 박힌 대답으로는 의미가 그리 잘 부여되지 않는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군에 가지 않는 나라도 많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특별한 사유 없이 군에 안 가는 사람이 많다. ‘누구나 가는 해병대라면 해병대에 지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는 이들도 있다. 정말 황당하다. 그러나 동네마다 해병전우회 컨테이너를 갖다놓고, 일만 터지면 모이는 해병전우회의 단결력은 나름대로 그런 식의 의미부여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내에게 군대는 평생 해결되지 않는 주제다. 그래서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에서 군대 문제는 빠지지 않고 논란이 된다.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주제도 군대 문제다.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남자들도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동네 예비군 의식수준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그렇게 싫어해도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는 끝이 없다. 특히 군대 축구 이야기는 군을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레퍼토리다. 내 군대 축구이야기도 한 편 보태고 싶다. 나는 원래 축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운동신경도 둔하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내가 갑자기 엄청나게 훌륭한 축구선수가 됐다.
그때, 강원도 화천 북방 백암산 철책 아래에서는 ‘보름달빵’과 ‘베지밀’ 내기 중대대항 축구 경기가 주말마다 열렸다. 내가 처음부터 경기에 출전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반드시 경기가 끝나갈 무렵, 우리 팀이 지고 있을 때에만 나는 운동장에 교체멤버로 투입됐다. 그것도 꼭 끝나기 10분 전이었다. 그만큼 나는 마지막에만 쓸 수 있는 히든카드였던 것이다. 내가 운동장에 들어서서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였다. 상대편 고참의 발을 공과는 상관없이, 냅다 걷어차는 일이었다. 느닷없는 발차기에 열 받은 고참은 바로 나를 패기 시작한다. 우리편 고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떼로 몰려와 그 고참을 팬다. 그러면 상대편 고참들도 우르르 뛰어 들어온다. 이런 식으로 패싸움이 일어나 경기를 ‘파투’시키는 것이 내 임무였다. 참 여러 번 했다.
위대한 기업의 조건 ‘뻥 앤 구라’

한국 남성들은 모이기만 하면 군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사진은 해병대 극기 훈련.
이야기가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어려운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없다. 우리 아버지들이 1·4후퇴 때 동생들 등에 업고 눈바람 맞으며 피난 떠난 이야기, 우리 어머니들이 강냉이죽 끓여먹어 누렇게 뜬 상태로 살아야 했던 이야기가 끝없이 되풀이되지 않는가. 자녀에게 무슨 교훈을 주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형제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그 까닭 없는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반복해도 의미를 그리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래서 그토록 평생 반복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이런 심리적 과정을 직접 경험한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의미요법(logotheraphy)이라는 새로운 정신치료법을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