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고등검찰청 김규헌(55) 검사는 장자연씨 사건에 대해 남다른 소회를 갖고 있다. 2002년 서울지검 강력부장이던 김 검사는 연예계 비리를 수사하다 지방지청장으로 전보돼 외압시비를 낳았다. 그의 인사문제는 국정감사장에서 지적될 정도로 검찰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검찰 수사팀이 정·관계 실세들과 여성 연예인들의 성관계를 수사하려 했고 이에 ‘위협’을 느낀 정치권에서 그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나 그는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다. 그런 그가 장자연씨 사건을 맞아 7년 만에 입을 열었다.
김 검사가 소속된 서울고검 송무부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과 행정소송을 수행하고 지휘 감독하는 곳이다. 말하자면 각 부처 장관의 권한을 위임받아 소송업무를 대행하는 것이다. 소가(訴價)가 1년에 2조~2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와이셔츠에 니트를 걸친 김 검사의 첫 인상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묘한 것이었다. 근엄한 표정으로는 서당 훈장이고, 창백한 낯빛으로는 사색형의 지식인이고, 날카로운 눈매로는 사무라이였다.
그는 어학에 조예가 깊다. 영어를 비롯해 5개 국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그의 책상 위에는 케이트 윈슬렛에게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의 원작 소설이 놓여 있었다. 그는 대검찰청 재직 시절 독일어판 법률용어집을 한글과 일본어로 옮긴 번역서를 내놓았다. 몇 해 전 소설 ‘다빈치 코드’가 국내에 처음 수입될 무렵엔 한 출판사로부터 번역을 요청받았는데 업무에 바빠 거절했다고 한다. 김 검사는 “그때 번역을 맡았더라면 떼돈 벌었을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연예계 물을 흐린 장자연 매니저
“장자연씨 사건을 지켜보는 심정이 어떤가”라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7년 전의 내 인사문제와도 관련된 사건이라 착잡합니다. 당시 국정감사장에서 내 인사문제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던 홍준표 의원이 최근 다시 끄집어내는 바람에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저는 그간 인사 때 몇 차례 불이익을 당했지만 한 번도 불만을 표시하거나 토를 단 적이 없습니다. 2002년 7월10일 메이저 기획사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수사를 시작했는데, 그해 8월24일 지방청으로 인사발령이 났습니다. 불과 한 달 만에 수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속 수사팀은 사건을 마무리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때 제기된 의혹들을 적극적으로 수사했다면 이런 사태(장자연 사건)를 막기까지는 못하더라도 경고는 할 수 있었지 않나 해서 유감스럽고 아쉽습니다.”
▼ 장자연씨에게 부적절한 접대를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연예기획사 대표 김모씨가 당시에도 수사망에 올랐다고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수사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대형 기획사 임원들을 입건하는 과정에 그 사람의 이름이 많이 거론됐어요. 어느 세계나 튀는 사람은 눈에 띄게 마련이잖아요. 베팅을 저돌적으로 한다든지, 향응을 세게 베푼다든지….”
▼ 구체적으로 어떤 혐의가 있었습니까?
“확인된 건 아니었지만, 제보나 첩보에 따르면 소속 연예인들을 부적절한 향응 자리에 내몰거나 금품제공 액수가 유난히 컸어요. 다른 매니저들이 주식제공 같은 간접 로비를 하는 데 비해 그 친구는 고급 골프채를 몇 개씩 선물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수사선상에 올린 거죠. 그때도 그 친구는 수사하는 동안 해외에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애’였어요. 지금도 거물은 아니지만. 연예계에서 기존 질서를 깨면서 물을 흐리는 매니저가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그 친구였어요.”
▼ 김씨에 대해 어느 정도 수사가 이뤄졌나요?
“방송사 간부들과 대형 연예기획사가 주된 수사대상이었어요. 수백 개의 기획사를 다 수사할 수는 없어 주요 기획사 위주로 수사했지요. 잠적한 주요 기획사 대표들의 신병 확보가 급선무였습니다. 우리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조폭자금 유입입니다. 자금추적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어요.”
▼ 결과가 신통치 않았지요?
“뒷 수사팀이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탓입니다. 두 번째가 주식 제공 등 기획사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영화제와 가요제 수상자 선정 비리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