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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갈등 푸는 ‘난폭한 열광’이자 ‘부드러운 평정’

디오니소스의 두 얼굴

극단의 갈등 푸는 ‘난폭한 열광’이자 ‘부드러운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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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오니소스는 토착 신이면서 이방의 신이고, 남성이면서 여성이고, 신인 동시에 인간이며 동물이다. 디오니소스는 양극단으로 나뉘어 다투는 상황에서 갈등을 해소하는 힘과 지혜를 상징한다.
극단의 갈등 푸는 ‘난폭한 열광’이자 ‘부드러운 평정’
디오니소스는 누구인가?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의 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체를 규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철학자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문화와 예술을 지탱하는 두 기둥으로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를 꼽았다. 아폴론적인 것은 형식과 질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형식을 깨는 창조의 충동과 음악, 도취를 나타낸다.

디오니소스는 이처럼 그리스 문화와 예술의 창조적 원리지만 실제로는 고대 그리스인의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신성이다. 디오니소스는 고통을 잊게 하고 잠을 선물하는 포도주의 신이면서 가면으로 자기를 변형하는 연극의 신이고 여신도에게 종교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부활의 신이다.

돌림병처럼 온 디오니소스

디오니소스는 또한 외지에서 도착하는 이방의 신으로 묘사되곤 한다. 기원전 5세기에 벌어진 디오니소스 축제를 살펴봐도 그러한 점을 잘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여러 디오니소스 축제 가운데 3월 초 시작하는 축제인 안테스테리아에서 디오니소스는 바퀴가 달린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행렬을 이끌며 아테네에 도착한다. 4월 초 축제에서는 보이오티아 국경에 위치한 엘레우테라이를 통해 들어온다.

여러 문헌에서 디오니소스는 토착 신이 아니라 외지에서 도착하는 이방의 신으로 나타난다.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멜람푸스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디오니소스와 그 축제를 그리스인들에게 소개하고 남근상 행렬도 도입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가 포도주의 신으로 기원전 8세기경 포도주의 나라 뤼디아에서 그리스 본토로 유입됐다는 가설이 제기된 적도 있다.



니체의 친구이자 고전학자인 에르윈 로데는 디오니소스 종교의 진원지로 트라키아를 가정한다. 이 지역에서 성행하던 야성적이고 분방하며 황홀한 디오니소스 제의가 급작스럽게 그리스 본토로 유입됐다는 가설을 제시하면서 그는 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디오니소스 종교가 마치 종교적 돌림병처럼 흘러들어왔음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고고학의 발굴로 디오니소스 신이 이방의 신이 아니라 기원전 1200년 이전 미케네 문명의 초기 청동기 시대부터 존재했던 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호메로스 영웅들의 정신적 지주인 네스토르의 궁전에서 미케네 ‘선문자 B’로 di―wo―nu―so―jo, 즉 Dionysoio(디오니소스의)가 적힌 점토판이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이 ‘디오니소스의’ 다음 글자는 점토판이 손상돼 더 이상 판독할 수 없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이러한 발굴을 바탕으로 디오니소스가 토착 신이었음이 학계의 중론이 됐다.

그렇다면 토착 신으로 입증된 디오니소스가 여러 외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여러 이방 신과 동일시되는 모순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이 무슨 뜻이고 디오니소스에는 어떤 별칭이 붙어 있고 어떤 이방의 신들과 동일시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여러 고환을 가진 자

우선 디오니소스란 이름의 어원을 분석해보자. Dionysos란 이름에서 디오스(Dios)는 제우스(Zeus)의 소유격으로 ‘제우스의’란 뜻이고, 니소스(nysos)는 요정들이 아기 디오니소스를 양육한 뉘사(Nysa)산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정설로 인정받지 못했기에 디오니소스 어원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별칭으로 불린다. ‘희석되지 않은 포도주의 제공자’ ‘사나운 자’ ‘천둥 치는 자’ ‘해방자’ ‘여러 고환을 가진 자’ ‘통합하는 자’ 등 다양한 별칭이 존재한다. 그리스 신이 대체로 여러 별칭을 갖고 있지만 디오니소스처럼 다양한 별칭을 가진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디오니소스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힌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디오니소스는 정체가 분명하지 않고 언제나 변형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디오니소스와 연관된 여러 단어도 디오니소스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주지 못한다. 이를테면 디오니소스의 또 다른 이름 박코스(Bacchos),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세멜레, 디오니소스의 부속물인 지팡이 튀르소스, 디오니소스 신을 찬양하는 노래 디튀람보스 등도 정확한 의미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이들 모두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소아시아 왕국인 프뤼기아, 뤼디아와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 도입된 신성으로는 아나톨리아의 대모신 퀴벨레가 대표적인데, 이 퀴벨레 여신은 놀랍게도 디오니소스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디오니소스와 퀴벨레 두 신성 모두 프뤼기아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산에서 열광적인 제의가 벌어진다는 것, 제의에서 피리와 드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입문식을 치르는 관습이 있다는 것 등에서 공통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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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정암학당 연구원∙문학박사 kimky@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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