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호

정수장학회 ‘언론사 매각’ 대화록 평지풍파

박근혜 아킬레스건 터져 타격 부산지역에선 플러스 요인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2-10-18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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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장학회 ‘강탈’ 의혹, 대선용 ‘꼼수’ 쟁점화
    • 최필립 이사장 “MBC는 만났을 뿐, 부산일보는 희망사항”
    • 부산 민심 “골칫덩이 해결…절묘한 카드 될 수도”
    • “대화 도청 누가 했나” 수사까지 갈 수도
    정수장학회 ‘언론사 매각’ 대화록 평지풍파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지원용 언론사 지분매각을 추진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수장학회와 이사장 최필립 씨.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아킬레스건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정수장학회 문제가 마침내 대선 정국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불길을 댕긴 것은 ‘한겨레’의 10월 13일자 기사 내용이다. 한겨레는 “정수장학회가 MBC 지분 30%와 부산일보 지분 100% 등 갖고 있는 언론사 주식 매각을 비밀리에 추진해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또 “정수장학회는 수천억 원에 이르는 매각 대금을 활용해 부산·경남 지역 대학생 및 노인층, 난치병 환자 등을 위한 대규모 복지사업을 계획 중인 사실도 드러났다”고 전했다. 10월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도 덧붙였다.

    한겨레에 따르면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과 10월 8일 만난 자리에서 “(10월 19일 발표에는) 정수장학회가 (MBC 지분 30% 매각 대금으로) 부산·경남 지역 대학생을 대상으로 직접 ‘반값 등록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부산일보 매각 대금에 대해선 “그 돈은 부산·경남지역 노인정이나 난치병 환자 치료시설에 전액 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10월 15일자 기사에서 최 이사장과 이 본부장, 이상옥 MBC 전략기획부장이 서울 중구 정동 정수장학회 사무실에서 만나 한 시간가량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10월 8일 정수장학회 비밀회동 대화록’에서 발췌한 것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이 대화록에는 대선을 의식한 발언이 여러 차례 나온다.

    선심성 의혹 담긴 대화록

    “…그래도 (매각발표 형식의) 그림은 좀 괜찮게 보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게 굉장히, 말하자면 정치적으로 임팩트가 크기 때문에요.”(이진숙)



    “이걸(기자회견) 하게 되면 비꼬는 말이 상당히 나올 거라고.”(최필립)

    “네, 맞습니다. 박근혜에게 뭐 도움을….”(이진숙)

    “뭐 대선 앞두고 잔꾀 부리는 거라고 해가지고 이야기는 나올 거야.”(최필립)

    “이야기 나오겠죠.”(이진숙)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수장학회가 대선 국면에서 언론사 주식을 팔아 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선심성 지원을 하려 한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까닭이다. 정수장학회는 박 후보가 10년 동안 이사장을 지낸 장학재단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강탈’ 됐다며 야권과 언론·시민사회단체로부터 끊임없이 사회환원 요구를 받아왔다. 이와 관련해 부산일보 노조는 2년 동안 파업을 되풀이하고 있다.

    ‘노무현-김정일 NLL 비공개 대화록’ 의혹으로 수세에 몰려 있던 민주통합당은 정수장학회 문제를 반전의 카드로 삼았다. 특히 부산 출신으로, 그동안 부산일보 파업사태에 적극 동조했던 문재인 후보는 이번 대선의 격전지로 떠오른 부산·경남 민심을 잡는 호기로 판단해 국정조사와 청문회 실시를 요구하며 박근혜 후보를 압박했다. ‘장물’인 정수장학회를 대선에 이용하겠다는 것이냐고 몰아붙였다.

    ‘강탈’과 ‘꼼수’ 이슈 될 듯

    같은 부산 출신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도 공영방송인 MBC의 민영화 등을 아무런 공론화 과정 없이 밀실에서 추진한 점을 비판하면서, 민감한 선거 시기에 장학회 지분을 팔아 특정해서 쓴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가세했다. 새누리당은 “정수장학회와 박 후보는 현재 관계가 없고, 이번 사안 역시 정수장학회와 MBC 사이에 불거진 문제일 뿐”이란 입장이지만 속으론 여론동향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정수장학회 부분은 박 후보의 대선가도에 놓인 여러 지뢰밭 가운데 하나로, 박정희 대통령의 공보비서관을 지낸 최 이사장이 지뢰밭을 밟아버린 만큼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이 즉각 최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 전원의 사퇴를 요구한 데는 꼬리를 잘라 파문을 단기간에 수습해야 한다는 박 후보 진영의 절박감이 묻어 있다. 그렇다면 최 이사장 스스로 박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꼴이 된 이번 파문은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 이사장은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MBC 이진숙 본부장을 만난 것은 맞지만 MBC 측으로부터 브리핑을 들은 것이 전부다. MBC 매각은 장학회에서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고 말했다. 부산일보 매각에 관련해선 “이사회에서 결정할 문제이며, 현재 재판이 걸려 있어서 (매각은) 꿈같은 희망사항”이라고 일축했다. 또 자신을 겨냥한 퇴진론에 대해 “남의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 내가 (장학회에서) 인기가 있는데 누가 나한테 그럴 수 있는가”라며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특히 세 사람만의 대화가 녹취록 형태로 유출된 것으로 보아 누가 자신을 함정에 집어넣으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이사장은 MBC 측과의 대화 내용이 보도된 직후 주변사람들에게 “미치겠다. 너무 억울하다. MBC나 부산일보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게 이상하고, 대화 내용이 새나간 것도 이상하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정수장학회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의 말이다.

    “장학회 내에서 부산일보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강탈’ 부분을 인정하는 것인 만큼 차라리 팔아서 공익단체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자는 얘기는 쭉 있어왔다. 그런 내용이 녹취록 형태로 공개되니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진 것처럼 돼버렸다. 대선을 앞두고 최 이사장이 모양 좋게 일을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런 일이 일어나니 최 이사장은 박 후보에게 크게 누를 끼쳤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이번 일은 가뜩이나 지지율 정체로 고민하는 박 후보에게 심각한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 타격의 방향은 두 가지, ‘강탈’과 ‘꼼수’다. 박 후보는 선거 초반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과거사 문제에 시달리다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사과하면서 이 문제를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 정수장학회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야권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전반적인 폭압을 부각시킬 수 있는 빌미를 줬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의 기업인 고(故) 김지태 씨가 1958년 설립한 ‘부일장학회’가 모태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1962년 김지태 씨는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됐고, 공소취하의 대가로 땅 10만여 평과 MBC, 부산MBC, 부산일보의 지분을 ‘기부’했다. 박정희 정권은 이 재산을 기반으로 ‘5·16 장학회’를 설립했고, 1982년 박정희의 ‘정’과 육영수의 ‘수’자를 따서 ‘정수장학회’로 개명했다. 이 부분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와 2012년 2월 김씨 유족이 낸 소송 1심에서 재판부가 인정한 내용이다. 따라서 정수장학회가 보유한 MBC와 부산일보 지분을 박 후보가 출마한 18대 대선을 앞두고 매각해 부산지역의 복지사업에 쓰겠다는 구상은 ‘장물을 팔아 선심을 쓰겠다는 것’이란 야권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아울러 정수장학회가 언론사 지분매각 사실을 ‘모양새 있게’ 발표하기 전에 언론 보도가 먼저 나오고, 특히 대화록 내용이 장학회와 MBC 측이 밀실에서 흥정을 벌인 것처럼 비쳐진 점은 박 후보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주고 있다. 사회문제가 돼 있는 중차대한 문제를 ‘꼼수’를 부리듯 몇 사람이 모여 해결방안을 숙의했다는 비판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부산 민심은 다르다

    반면, 대선 격전지인 부산지역에선 이번 일이 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부산의 한 언론사 기자는 “사실 부산일보 문제는 너무 오래 끌어왔기 때문에 시민은 어떤 형식으로든 정리되길 바라고 있었다. 정수장학회가 골칫덩이인 부산일보를 팔아 부산지역의 복지사업에 쓰겠다는데, 그것을 마냥 ‘대선용’이라고 고깝게만 보겠느냐, 정수장학회의 구상은 시민들 입장에서 볼 때 절묘한 카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대선 국면에서 불거진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지분 매각 파문은 전국적으론 박근혜 후보에게 마이너스가 되지만 동향 출신 두 명의 야권 후보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부산에선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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