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LPGA는 인생 2막 ‘대체불가 선수’ 되고 싶다”

우아한 승부사 유소연

  • 엄상현 기자 | gangpen@donga.com

    입력2015-12-29 10: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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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PGA는 인생 2막 ‘대체불가 선수’ 되고 싶다”

    KLPGA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선수 대(對)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선수들의 팀 대항전으로 치러진 ING생명 챔피언스트로피 2015. 마지막 날인 11월 29일, LPGA 12명의 선수 중 11번째로 출전한 유소연(26)은 KLPGA의 조윤지(25)와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다. 이미 LPGA의 승리가 확정된 상태였지만 자존심을 건 승부였다.
    마지막 18번 홀 10m 퍼트. 쉽지 않은 경사(傾斜)였지만 유소연은 깔끔하게 버디 퍼트로 마무리하며 승리를 챙겼다. 대회 성적은 2승 1무. 유소연은 팀 승리를 견인하면서 대회 MVP에 뽑혔다.   
    “매치게임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요.”
    유소연은 타고난 승부사다. 2009년 최혜용(26)과 맞붙은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무려 9홀 연장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승리를 거머쥐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싸움닭’ ‘스나이퍼’ 같은 별명이 붙었다. ‘우등생’이나 ‘엄친딸’로 불리기도 한다. 특목고 중에서도 명문으로 꼽히는 대원외고를 거쳐 연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했다. 영어도 잘하고 어린 시절 배운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등 악기 연주 실력도 수준급이다.
    “LPGA는 인생 2막 ‘대체불가 선수’ 되고 싶다”

    조영철 기자


    기복 없는 우등생

    유소연의 통산 성적은 13승. 2008년 KLPGA에 입문해 2011년까지 4년 동안 8승, LPGA에 진출해 2014년까지 3승을 올렸다. 여기에 2015년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1승과 KLPGA 1승을 추가했다.
    2015년 12월 7일 현재 세계 랭킹 5위. 미국 진출 이후 별 기복 없이 꾸준하게 성적을 유지해온 비결은 뭘까. LPGA에서 지난 4년간 그가 배우고 느낀 것은 무엇일까.
    LPGA 동료 아사하라 무뇨스(스페인) 선수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스페인에 가느라 난생처음 ‘홀로 여행’을 준비 중이라는 유소연을 만났다. 그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여행 생각에 설렘으로 가득했다.
    “여행하는 걸 참 좋아하는데, 그동안 한 번도 혼자 가본 적이 없어요. 이번 기회에 혼자 여행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알고 싶고, 조용히 제 자신을 돌아보고도 싶어요. 친구 결혼식에 가서 만난 친구들과 사흘 정도 같이 지낸 뒤 저 혼자 나흘가량 바르셀로나와 그 주변 지역을 걸어서 여행하려고 해요. 제 인생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하하.”

    ▼ 모교인 연세대에 장학금을 기부하기로 했던데요(인터뷰 당일 오전 조간신문에 유소연의 장학금 기부 소식이 실렸다).
    “어릴 때 의무감으로 하던 기부는 무의미한 것 같아서 하다가 중간에 그만뒀거든요. 어떤 게 의미 있는 기부일까 고민하다가 먼저 모교 후배들부터 도와주고 싶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꼽는다면 바로 대학 다닐 때 거든요. 저를 도와준 친구들이 정말 많았는데, 그들 덕분에 제 학창 시절이 더욱 특별했던 것 같아요. 그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어서 시작한 겁니다. 이게 제 진짜 기부의 첫 걸음이 될 것 같아요.”

    ▼ 현재 세계 순위 5위인데요.
    “솔직히 지금은 순위에 신경 별로 안 써요. 주변에서 이야기해줘서 알기는 하지만.”

    ▼ 정말?
    “그런 걸 자꾸 신경 쓰고 얽매이다보면 제 할 일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사람들도 순위로 저를 평가하는 것 같고. 어느 순간부터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했는데, 이제 무덤덤해진 것 같아요. 순위라는 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제 할 일도 다하면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거죠. 제 목표인 세계 1위에 근접하면 그때는 좀 신경을 쓰게 될 거 같아요.”


    ‘긍정’으로 상처 치유

    ▼ 2015년 시즌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는다면.
    “제 경기보다 박인비 프로가 영국에서 열린 리코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랑 아주 친한 언니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한국 선수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순간을 제 눈으로 직접 목격한 거잖아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도 컸고, 나도 정말 잘하고 싶다는 동기부여도 됐죠. (그 대회에서) 진영이(고진영)가 2위를 했고, 제가 3위를 했으니까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요.”



    ▼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LPGA 2015년 시즌 마지막 대회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이 제일 아쉬워요. 그해 LPGA 우승이 없었고, 제가 그 대회 우승하는 꿈을 꿨다는 분들이 있어서 시즌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욕심을 부리기에는 샷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어요. 유종의 미를 거둬야 했는데….”
    유소연의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최종 성적은 4오버파 공동 62위.

    ▼ 그래도 ING생명 챔피언스트로피 대회에서 MVP를 받았잖아요.
    “마지막 홀에서 긴 버디 퍼트를 넣어서 MVP가 됐거든요. 2015년 마지막 샷을 잘 마무리한 거라서 정말 기뻤어요.”

    ▼ LPGA 진출 이후 매년 상금 순위 10위 안에 들 정도로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는데 비결이 뭔가요.
    “절친한 친구가 저한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20개 대회 연속 톱10 하는 것과 우승 한 번 하는 것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어느 걸 고를래?’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답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꾸준히 잘 치고는 싶은데, 우승에 대한 갈망도 버릴 수 없고. 아직 답은 내리지 못했어요. 아무튼 저는 골프가 재밌어요. 잘되든 못되든 고민하고 도전하는 게 재밌고 행복해요. 그래서 성적도 꾸준한 게 아닌가 싶어요.”

    ▼ 성격이 무척 긍정적인 것 같네요.
    “프로 입문을 19세 때 했잖아요. 어리고 모든 게 불완전한 나이인데도 ‘프로’라는 타이틀 때문에 사회에서 제게 요구하는 것도 많고, 기대치도 높았던 것 같아요. 스폰서 분들 대하는 것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고요. 그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저 스스로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 끝에 얻은 해결책이 ‘긍정’이었던 것 같아요. 매사에 늘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고 노력하다보니 저 스스로도 긍정적인 사람이 된 거죠.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힘도 됐고요. 이제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또 제 나름의 소신도 생겼어요.”

    ‘여자 유소연’

    ▼ 자신이 어떤 사람인 것 같나요.
    “처음엔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깨졌죠. 뭐든지 완벽하려다보니 저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했더라고요. 지금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저는 특히나 더 그런 면이 강한 것 같아요. 골프도 내가 행복하기 때문에 치는 것이고, 사람들도 내가 행복하기 때문에 만나는 거예요. 새로운 것에 대해 배우고 도전하는 것도 아주 즐겁고 재밌어해요.”

    ▼ 골프채를 쥐고 있지 않을 때는 어떻게 지냅니까.
    “책 읽는 시간이 가장 많아요. 예전에는 자기계발서 같은 책을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소설을 주로 읽어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많지만, 그 속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다보면 저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되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뭐지? 내가 진짜 어떤 걸 했을 때 행복하지?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저 스스로를 잘 알아야 기고만장하지 않고, 늘 겸손할 수 있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알거든요. 안 그러면, 프로라고 대접해주고 ‘예쁘다’ ‘잘한다’ ‘잘났다’고 하면 정말 그런 줄 알고 자만에 빠지기 쉬워요. 아, 요즘은 요리에 관심이 많아 요리하는 것도 좋아해요.”

    ▼ LPGA에 진출한 지 4년 됐는데, 만족하나요.
    “제 인생을 두 파트로 나눠야 한다면 LPGA의 투어를 시작한 때부터가 인생 2막인 것 같아요. 그전까지가 1막이고요. 누가 ‘미국에 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제 인생의 로또라고 생각해요’라고 대답할 겁니다. 저는 미국에 가서 골프를 더 사랑하게 됐고, 또 제 인생을 조금 더 많이 즐기게 된 거 같아요. 4년 동안, 우승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새로운 문화를 접했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게 됐죠. 한국에 있을 때는 ‘운동선수 유소연’과 ‘학생 유소연’만 있었다면, 미국에서는 ‘여자 유소연’으로서 삶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됐어요. 골프 기술도 많이 배우고 늘었어요.”
    “LPGA는 인생 2막 ‘대체불가 선수’ 되고 싶다”

    박인비(왼쪽)와 유소연은 ‘실과 바늘’로 불릴 만큼 가깝다. KLPGA



    ▼ 가장 자신 있는 샷을 꼽는다면.
    “한국에 있을 때는 아이언 샷이라고 말했는데, 미국에 와서 보니까 저만큼 잘하는 선수가 정말 많더라고요. 그런 선수들에 비하면 트러블 샷은 좀 자신 있어요.”

    ▼ 퍼트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해법은 찾았나요.
    “브리티시오픈 우승자 출신으로 지금은 골프 해설을 하는 이안 베이커핀치를 만나서 지난 5, 6월부터 같이 고민하면서 찾고 있어요. 그분은 세계적으로 손에 꼽힐 정도로 퍼팅을 잘하는 선수였죠. 덕분에 예전보다 더 잘한다기보다는, 한결 편안해졌어요. 선수 생활을 해본 분이라 그런지 제 마음을 많이 이해해주더라고요. 스피드 컨트롤도 좋아져서 긴 퍼트를 할 때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배우는 즐거움

    ▼ 골프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것. 그래서 끝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데, 저는 그게 좋아요. 나무 냄새를 맡고, 새소리와 바닷소리를 들으면서 자연과 함께한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 골프나 인생의 롤모델이 있나요.
    “골프는 박지은 프로가 제 롤모델이에요. 운동선수지만 필드에서 여성미를 한껏 뽐내면서 카리스마도 있고, 또 학업도 계속하셨잖아요. 인생의 롤모델은 어머니예요. 굉장히 현명하시고 힘든 상황에서도 에너지가 넘치시거든요.”

    ▼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요.
    “음…유소연다운 선수? 뭐랄까, 제가 은퇴했을 때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골프도 잘 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한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 미국에 진출할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골프가 저한테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제 인생의 전부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골프가 전부’인 선수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골프 선수로서의 삶보다 한 사람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사는 삶이 훨씬 긴데 그 중요성을 모르는 선수가 많은 듯해요. 준비가 안 된 선수도 적지 않고요. 골프 선수의 틀에서 잠시라도 빠져나와서 자기를 돌아보고 인생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선수로서 삶의 질도 더 좋아지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 2016년 목표는 뭔가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과 LPGA 메이저대회 우승하는 것이 목표예요. 세계 1위까지 올라가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았어요. 2016년에는 그 자리에 조금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어요.”

    ▼ 인생의 최종 목표는.
    “운동선수들이 공부를 병행할 수 있도록 뭔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돼서 그런 쪽에 기여한다든지, 운동과 공부를 함께 할 수 있는 선진 스포츠스쿨을 한국에 설립하거나 교육자로서 도와주는 것도 방법이죠. ‘행복한 운동선수’가 더 많아질 수 있도록.”
    “LPGA는 인생 2막 ‘대체불가 선수’ 되고 싶다”

    KL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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