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오오 모이면 황 걱정”
“성인지감수성, 언론인지감수성, 청년인지감수성에 문제”
“종이에 안 써주면 말 안 나와”
[동아DB]
정규재 펜앤마이크 대표가 지난 6월 17일 ‘황교안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쓴 내용이다. 정 대표는 2017년 1월 25일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유일하게 인터뷰한 친박 성향 논객이다.
친박계 핵심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6월 18일 우리공화당(옛 대한애국당)에 입당했다. 정 대표의 글이 나온 시점을 전후한 시기에 일어난 친박계 정당 우리공화당의 움직임을 보면,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황교안 대표 체제의 자유한국당과 차별화다.
엉덩이춤에 격려라니
황 대표는 1차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저의가 담긴 발언 같지만, 정 대표의 지적은 최근 보수진영에서 공감대가 확산되는 추세다. 두 가지 의구심이 보수진영을 감싸고 있다. 첫째, 황교안 대표가 전면에 나서 내년 총선을 이길 수 있을까? 둘째, 황 대표를 내세워 2022년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을 수 있을까?이 두 질문에 대해 누구도 “그렇다”는 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당 안팎이 어수선하다. 한국당 소속 의원들도 친박계와 비박계를 불문하고 수군거린다. 당 밖에서도 친박 태극기 집회 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중도보수성향의 지지자들도 웅성거린다. 아마 황교안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인사들도 우려할 것이다.
6월 24일부터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대표의 백(그라운드)브리핑 축소를 예고하고 나섰다. 상황 관리에 나선 것인데, 황 대표의 핵심 측근 사이에서도 황 대표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의 어떤 점이 문제일까? 정치전문가들은 그 하나로 ‘낮은 감수성’을 지적했다. 황 대표가 백브리핑을 중단한 다음 날인 6월 26일에도 대형사고가 터졌다. 한국당 중앙여성위원회가 개최한 ‘2019 우먼 페스타’에 등장한 엉덩이춤이 화근이었다. 시·도 당별 장기자랑 행사에서 경남도당 여성 당원 5명이 갑자기 뒤로 돌더니 허리를 숙이고 바지를 내렸다. 드러난 바지 속에는 ‘한국당 승리’라는 글이 한 글자씩 쓰여 있었다. 누가 봐도 민망한 광경이었다.
정작 문제는 그다음에 나온 황 대표의 격려 발언이다. “오늘 한 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좀 더 연습을 계속해 정말 멋진 한국당 공연단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더욱이 환하게 웃기까지 했다.
검사스러운 감수성
곧바로 다른 정당에서 비난이 쇄도했다. “성인지감수성이 빵점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역시 감수성이 문제였다. 이런 비난에 대해 황교안 대표는 오히려 언론을 탓하고 나섰다. “언론이 좌파에 장악됐다. 좋은 메시지를 내놓으면 하나도 보도가 안 되고, 실수하면 크게 보도된다.” 백브리핑 중단에 이어 ‘언론인지감수성’도 낙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정치전문가들은 황 대표의 감수성 부족 원인으로 ‘검사스러움’을 지목한다. 검찰 내부에서 터져 나온 미투운동을 생각해볼 때, 일견 타당해 보이는 측면이 없진 않다. 하지만 ‘모든 검사가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가 아닐 수 없다.
황교안 대표의 청년 관련 발언도 ‘청년인지감수성’ 부족을 보여준 사례일 것이다. 6월 20일 황 대표는 숙명여대 1학년 학생 대상 특강에서 자신이 아는 어떤 청년은 스펙이 하나도 없었지만 기업 5곳이나 최종 합격했다고 했다. 이어 그 청년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했다. 아버지 스펙 때문에 합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황 대표는 다음 날인 21일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해명했다. “요즘 부쩍 힘들어하는 청년들, 대학생들을 격려하고 응원하고 싶었다.”
그 발언이 논란이 될 수 있고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청년민중당은 황 대표 아들에 대해 KT 특혜채용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에 고발했다. 숙명여대 발언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황교안 아들 이슈가 문재인 정부에 불리한 이슈를 덮었다.
황 대표는 색소폰 연주 앨범을 2장이나 발매했다. 아내 최지영 씨도 유명한 기독교 대중음악 가수로 알려져 있다. 그 나름대로 ‘한 예술’ 하는 부부인 셈이다. 이런 황 대표의 감수성이 자꾸 논란이 되는 것이 기이하기조차 하다.
한국당 관전자들은 황 대표의 콘텐츠도 문제 삼는다. “경제, 입법, 민주주의, 자유주의 같은 보수적 가치를 모른다” “종이에 써주지 않으면 말이 안 나오는 타입”이라고 지적한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런 지적이 사실이면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들 법한 일이 벌어졌다. 6월 19일 부산상공회의소 조찬 간담회에서 내놓은 외국인 노동자 임금 삭감 발언이 그것이다.
나름 ‘한 예술’ 하는 부부인데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그동안 기여해온 바가 없기에 산술적으로 똑같이 임금 수준을 유지해줘야 한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다른 정당들이 일제히 이 발언을 공격했고 황 대표는 물러서야 했다. 황 대표의 발언 중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나라에 그동안 기여해온 바가 없다”는 지적은 과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근로를 통해 소속된 한국 업체와 한국 경제에 기여한다. 이들은 한국에 세금도 낸다. 또한 황 대표의 외국인 노동자 임금 삭감 주장은 국적이나 인종에 의한 임금차별 논란을 유발할 수 있다. 황 대표 발언에 수긍하는 몇몇 재계 인사도 “표현 방식에 문제가 있다. 역공을 피할 만한 좀 더 정제되고 세련된 어법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황 대표는 전직 총리에다 대통령직무대행까지 지냈다. 그런데 너무 쉽게 공격당할 정책 발언을 내놨으니 모두가 의아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발언은 자유한국당 지지의 한 축인 중소기업인들에게도 공감을 얻기 어려운 내용이다. 중소기업인들이 현장에서 겪는 인력 부족 현실과 다소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 임금 삭감이 내국인 취업 기회까지 축소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황 대표는 옹색한 처지로 내몰리고 말았다. 총리 경력은 황 대표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런 경력이 없었다면, 황 대표는 보수진영에서 대안으로 떠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계에 입문하자마자 당 대표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황 대표는 국정 수행 경험조차 의심케 하는 발언으로 화를 자초했다.
삼삼오오 모이면 황교안 걱정이지만, 정작 본인은 이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그가 모르는 사실이 또 있을까? 최근 한국당 안팎에서는 ‘선수 교체설’이 힘을 얻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내년 총선을 황교안 대표 체제로 치르더라도 차기 대선엔 선수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황교안으로 총선·대선 패배가 확실시되면 총선 이전에라도 대표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힘 얻는 ‘선수 교체설’
선수 교체설은 현실로 가시화할 수도 있다. 먼저 황 대표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이 하락할 수 있다. 한국당의 정당 지지율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 총선 패배 가능성이 높아지면 의원들 사이에서 “대표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 있다.총선 공천과 관련한 갈등이 극에 달할 수도 있다. 친황교안계 공천을 무리하게 추진하면 반황교안 전선이 형성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질 수 있다. 친박계와 비박계가 극적 공조를 취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황 대표가 최근 가장 공을 들이는 일은 인재 영입이다. 친황계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황 대표는 홍문종 의원이 탈당하는 와중에도 이 일에 집중했다. 6월 17일 무려 39명에게 특보단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런 행보를 지켜보는 이들은 ‘제2의 이회창’을 떠올린다. 이회창 전 총재는 두 차례 대선후보로 나섰지만 집권에 실패했다.
보수진영은 이런 이회창 학습효과 때문에라도 황교안 리스크를 그대로 두진 않을 듯하다. 황 대표는 정치 기반이 취약함에도 이 전 총재에 비할 때 손쉽게 보수정당에 안착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황 대표에게서 긴장이나 결연함을 읽기 어렵다. 강렬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울림이 적다. 이 또한 감수성의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지금쯤이면 본인도 자각할 만한데, 최근 구설에 대한 반응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황 대표가 이런 글을 쓰는 필자도 좌파로 지목할지 모르겠다.
마지막 화두는 황 대표 스스로 던진 것으로 잡아봤다. 황 대표는 5월 12일 경북 영천 은해사 봉축 법요식에서 합장을 하지 않았다. 이후 불교계는 반발했고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5월 22일 ‘개인 신앙을 우선하려면 공당 대표 자격은 내려놓으라’고 지적했다. 황 대표는 5월 28일 불교계에 사과하면서 “앞으로 잘 배우고 익히겠다”고 언급했다. 사실 황 대표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잘 배우고 익히는 일’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잘해야 한다.
과거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과정에서 공을 들인 일이 대통령 학습, 그중에서도 정책 과외였다고 한다. 오랫동안 학습을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 맥락에 닿지 않는 언급을 해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곤 했다. 이런 위기를 타개하려고 박 전 대통령이 선택한 대응전략이 ‘침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침묵의 덕을 톡톡히 봤다. 신비주의로 포장돼 장점으로 작용했다.
벼락치기 외길
황 대표의 백브리핑 축소도 박 전 대통령의 침묵과 맥락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또 통할 것으로 본다면 오산이 아닐 수 없다. 황 대표는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콘텐츠 부족 논란을 겪었다. ‘서울대생들이 본 2012년 총선과 대선 전망’이라는 책에서 서울대 재학생들은 문재인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청렴·소박함 등의 매력은 있으나 총선에서 실패했고 자신만의 콘텐츠가 부족하다.”2012년 대선 당시 경쟁자인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도 이점을 파고들었다. “저는 스스로 콘텐츠가 있는 후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문 상임고문은 좋은 분이지만 한 국가를 책임지기에는 부족한 부분도 있다.”
2017년 대선에 임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 과외교사였던 김광두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영입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도 콘텐츠를 충분히 보강했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황교안 대표가 벼락치기로 국민으로부터 얼마나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노력은 해볼 일이다. 거의 외길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