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호

文 정권이 버린 민주당 ‘KBS 독립’ 개혁안

“공영방송이 KBS 종사자들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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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19-07-24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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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권 105일 만에 표변한 ‘공영방송’ 개혁안

    • 언론노조 산하 제2노조 “국민이 KBS 이사 선출해야”

    • 제2노조, 양승동 체제에서 주류 세력화

    • KBS, ‘진미위’ 통해 적폐청산 고삐

    • 징계 대상자,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2018년 11월 19일 양승동 당시
 KBS 사장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11월 19일 양승동 당시 KBS 사장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뉴스1]

    공영방송 정책을 두고 여권은 180도 표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시절 KBS와 MBC 이사진을 13명(현행 KBS 11명, MBC 9명)으로 늘리고 여야 추천 비율을 공히 7대 6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현재 KBS와 MBC 이사의 여야 추천 비율은 각각 7대 4, 6대 3이다. 또 민주당은 특별다수제(재적 이사의 3분의 2 찬성)를 도입해 야당 추천 이사도 찬성해야 사장을 선출할 수 있도록 구조를 재편하자고 주장했다. 지금은 과반 의결로 사장을 선임한다.

    유야무야된 ‘박홍근안’

    공약의 모태는 일명 ‘박홍근안’이다. 2016년 7월,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방송법 개정안,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방송통신위원회 설치·운영법 개정안 등 4개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중 KBS에 해당하는 법안은 ‘방송법 개정안’이다. 주요 골자는 앞서 말한 대로다. 민주당은 이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민주당을 포함해 좌파진영은 ‘박홍근안’을 ‘언론장악 방지법’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22일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특별다수제를 두고 “최선은 물론 차선도 아닌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야당이 반대하지 않을 인물을 찾다가 여당이 원하는 인물을 임명할 수 없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집권한 지 딱 105일 만에 꺼낸 말이다. 바뀐 건 ‘야당에서 여당이 됐다’는 점뿐이다. 오히려 지금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박홍근안’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로부터 약 2주 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제2노조)가 고대영 당시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전국언론노조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조직이다. KBS에는 3개의 노동조합이 있는데, 제2노조 외에 KBS노동조합(제1노조)과 조합원 숫자가 가장 적은 KBS공영노조(제3노조)가 있다. 제2노조는 2017년 9월 4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당시 교섭대표노조인 제1노조도 9월 7일 파업에 합류했다. 제1노조는 “고 사장 퇴진과 방송법 개정은 함께 가야 한다”면서 특별다수제 도입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다 제1노조는 고 사장이 “방송법 개정안을 처리하면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사퇴하겠다”고 말했다는 점을 이유로 11월 10일 파업을 중단했다. 반면 제2노조는 “고 사장 퇴진과 방송법 개정은 엄연한 별개의 문제”라면서 2018년 1월 23일까지 142일간 파업을 이어갔다. 

    제2노조가 파업을 끝내기 직전인 1월 22일 KBS이사회는 고 사장 해임제청안을 의결했다. 보도공정성 훼손과 내부 구성원 의견 수렴 부족 등이 주요 사유였다. 총 11명의 이사 중 야당 추천인 3인은 표결 직전 퇴장했다. 이인호 당시 이사장은 건강상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튿날 고 사장 해임제청안을 재가했다. 제2노조는 “적폐 사장을 내쫓았다”고 자평했다. 이후 2018년 4월 6일 고 사장의 잔여임기를 채우기 위해 임명된 인물이 양승동 현 KBS 사장이다. 양 사장은 2018년 12월 10일 연임에 성공했다.

    특별다수제가 KBS 지배구조 포기?

    이 과정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할 방송법 개정안은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제2노조는 전임 정권 시절 특별다수제를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 2014년 6월 26일 길환영 당시 사장 퇴진 운동을 펼친 직후 제2노조는 노조 게시판에 ‘[기자회견문] 이사회는 특별다수제 채택하고 사장추천위원회 구성하라’를 올렸다. 내용은 이렇다. 



    “방송법을 반드시 바꿔 KBS의 정치 독립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3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차기 사장 선임까지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당리당략에 매몰되어 있는 여야 정치권이 이 시간 내에 합의를 도출해내리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KBS 양대 노조(제1노조, 제2노조)와 각 직능협회들은 이사회에서 먼저 특별다수제를 채택할 것을 요구한다. 법 개정 이전에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이사회가 합의만 하면 차기 사장부터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는 특별다수제로 선임할 수 있다. 영국 BBC와 일본 NHK, 독일 ZDF 등 세계의 공영방송사들이 이미 특별다수제로 사장을 뽑고 있는 만큼 더 이상 미루거나 망설일 이유가 없다.” 

    정작 양승동 사장은 특별다수제 없이 두 차례나 임명됐다. 제2노조는 사장 임명 과정에서 ‘시민자문단 평가’가 40% 반영된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제2노조의 ‘제도개혁안’이 미묘하게 달라진 흔적도 엿보인다. 

    2019년 1월 22일과 5월 11일, 5월 31일 같은 게시판에 각각 실린 ‘공영방송지배구조개선 방송법 개정과 통합방송법안 발의에 대한 언론시민단체 입장’ ‘누구를 위한 기자회견…또 자유한국당과 손잡나?’ ‘경영평가는 어디 가고 뜬금없는 지배구조 의견서?’를 종합하면 현재 제2노조는 이사회 구조를 여야 추천 인사 7대 6으로 바꾸는 것과 특별다수제에 대해 “KBS의 지배구조를 정치권의 몫으로 오롯이 넘겨주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금세 특별다수제가 ‘적폐’가 된 형국이다. 

    제2노조는 이사 추천과 사장 임명에 있어 “시청자의 참여 비율을 늘려야”하고 “시민 참여와 공개 검증을 제도화하고, 종사자들과 이사회의 의견을 일정 비율 반영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요구하는 현재의 ‘방송법 개정안’은 여전히 각 정당이 이사를 선임하고, KBS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욕망에 다름 아니”라면서 “국민들이 KBS이사를 선출할 수 있도록 방송법 개정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홍근안’을 냈던 민주당도 ‘국민참여형 사장선출제’로 궤도를 바꿨다.

    “10년 과오 책임 소재 가리겠다”

    2017년 9월 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제2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KBS본부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뉴스1]

    2017년 9월 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제2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KBS본부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뉴스1]

    이를 두고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애초부터) 법 개정이 안 될 거라고 봤다. 정부·여당이 현재 자신들에게 유리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놓을 리 없다”면서 “(이런 와중에) 미디어 쪽 시민단체 등이 합세해서 ‘시민 주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 주장하면서 정치권은 빠지라 하고 (이것이) 법 개정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윤 교수는 서울대 신문학과(現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에는 896쪽 분량의 역작 ‘미디어 공정성 연구’를 출간했다. 최근에는 일간지 칼럼 등을 통해 공영방송의 현주소에 대해 비판적인 진단을 해왔다. 그는 지난 정권 당시 제2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공영방송은 국민이 주인인 방송이라는 뜻이죠. KBS 종사자들의 방송은 아니잖아요. 노조 파업을 통해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지켜내겠다? 특정 입장을 대변하는 모습을 그렇게 과격한 행동으로 옮기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방송 편성 파행 등이 ‘왜 공정성을 증진시키는 거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죠. 저는 노조가 과도하게 거창한 명분을 들고 파업 등을 일삼는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이에요.” 

    결과적으로 제2노조는 ‘양승동 체제’에서 주류 세력으로 떠올랐다. 제2노조는 2019년 1월부터 교섭대표노조의 자격도 얻었다. 그러면서 KBS에서 본격화한 게 적폐청산이다. 양 사장은 2018년 4월 9일 첫 임기 취임식에서 “10년 과오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겠다”고 공언했다. KBS는 2018년 6월 ‘진실과 미래위원회’(진미위)를 꾸리고 ▲‘KBS 기자협회 정상화 모임’의 편성규약·취업규칙 위반 여부 ▲강압적 취재 지시·징계·전보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 ▲ 2008년 대통령 주례연설 청와대 개입 문건 ▲가수 윤도현 TV·라디오 동시 하차 등 22건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진미위는 19명에 대해 징계 권고를 내렸다. 이 권고에 따라 KBS는 7월 8일 입장을 내고 5명은 징계, 12명은 징계가 아닌 ‘주의’ 처분을 했다고 밝혔다. 이 중 ‘KBS기자협회 정상화 모임’(이하 ‘정상화 모임’)을 징계 대상에 올린 게 입길에 오른다. 2016년 3월 11일 출범한 ‘정상화 모임’은 당시 KBS기자협회를 두고 “정치적이고 편향적”이라면서 “민주노총 산하 특정노조 2중대라는 비판을 곱씹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를 두고 진미위 측은 “‘정상화 모임’ 소속 구성원들에게 특혜를 제공한 흔적이 있다”고 발표했다. ‘정상화 모임’에 가입한 직원들이 KBS에서 ‘화이트리스트’의 혜택을 입었다는 것이다. 징계 대상자가 된 KBS 직원들은 “임의단체인 KBS 내부 회원들의 성명 채택에 대해 사측이 뒤늦게 개입할 근거가 없다”면서 반박 공세를 펴고 있다. 

    앞서 6월 진미위의 조사 대상이 됐던 십수 명의 전직 국장, 부장 등이 서울남부지법에 징계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KBS공영노조(제3노조)는 7월 2일 “이미 제기한 신청을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으로 변경해 법원 판단을 받겠다”고 밝혔다. 

    법정공방에서 KBS 측 법률대리인은 L.K.B 파트너스다. 이 법무법인의 대표는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법조계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광범 변호사다. 이 변호사는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창립 멤버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내곡동 사저 터 매입의혹’ 사건을 수사할 특별검사를 맡기도 했다.

    유일한 희망은 소명의식

    정권이 바뀔 때마다 KBS에 잡음이 그치지 않는다. 근본 원인은 늘 그렇듯 ‘정치 외풍’에 있다. 이를 막아낼 지배구조 개선이 빈번히 논의돼왔지만 현 정부에서도 방송법 개정은 물 건너간 모양새다. 

    익명을 원한 서울 사립대 언론학 전공 A교수는 “보수 정권 당시 KBS가 위기에 처했다고 학생들에게도 공·사석을 가리지 않고 여러 번 말했다. 현 정부는 다르리라 봤고, 진보 성향 학자인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에게 거는 기대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지금 봐서는 (이들이) 혹시 스스로 도덕적 우월감을 과신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이외에 ‘신동아’가 접촉한 복수의 언론학 교수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하자”며 취재를 사양했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권력자의 선의를 기대해왔지만, 그런 선의는 있지도 않고 그런 식으로 정치권력이 미디어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금에 와선) 법 개정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비현실적 가정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또 다른 의미의 제도 개혁이 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미디어 공정성에 천착해온 학자의 고언이라는 점에서 곱씹어볼 대목이 많다. 

    “최근 유일하게 희망 갖는 건 일선 기자나 PD들이 가진 언론인으로서의 소명의식 즉 전문직주의 같은 것이죠.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지켜야 할 취재 및 보도규범, 직업윤리를 성문화하고 촘촘하게 정립해 누가 사장·보도본부장·국장이 되건 원칙에 따라 프로그램을 제작하면 방영해야 하는 ‘보텀-업’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공영방송은 사회적 가치재입니다. 우리 사회가 혜택은 보면서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책무에서 쏙 빠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학교에 있는 저도 그런 역할을 못 했다는 반성을 해요. 그 노력이 진정한 공영방송 제도 개혁의 출발점 아닌가 싶습니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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