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그는 왜 국회 대신 화장실로 갔을까

‘강남역 10번 출구’가 보내는 시그널

  • 이나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nylee@cau.ac.kr

그는 왜 국회 대신 화장실로 갔을까

1/2
  • ● ‘성폭력 필리버스터’…그들의 아픔이 ‘소환’됐다
  • ● ‘혐오’는 구조적 차별에 대한 성찰 요구하는 말
  • ● 시간 걸리더라도 공존하는 사회구조로
그는 왜 국회 대신 화장실로 갔을까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차별 반대 메시지를 들고 나선 시민들.

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에서 한 젊은 여자가 죽었다. 어쩌면 내가 갔었을, 앞으로도 가게 될 공간에서 한 남자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그 남자의 살해 동기는 “평소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해서”였다고 한다.

이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발화한 추모 열기가 강남역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됐고, 릴레이식 ‘성폭력 경험 나누기’가 강남역을 비롯해 온·오프라인 공간을 넘나들며 진행됐다. 놀라운 것은, 경찰이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살해사건’으로 결론지었음에도 시민 상당수가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에 기반을 둔 살인’이라 명명했다는 점이다.   



“네가 나를 무시해?”

나는 이 사건을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여성혐오 문화가 배태한 여성 살해의 한 형태로 본다. ‘무시’라는 말을 들여다보자.

무시는 행위다. 많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무시한다. 자기 의사를 조금만 표현하면 “여자가 뭘 안다고…” 하며 소리 치고 윽박지른다. 그래도 어머니는 “무시당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가 한 마디만 해도 “네가 나를 무시해서 그래?”라며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언어화한다.

남자들은 아버지, 상사, 선배 등으로부터 훨씬 많은 폭력의 대상이 되지만 “무시당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고 화를 내며 증오감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냥 참는다. 교수는 학생에게 “네가 나를 무시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학생은 그러지 못한다. 무시당했다는 느낌, 그에 동반되는 굴욕감, 언행을 통한 분명한 대응(reaction)은 적어도 권력관계가 동등하거나 대개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하는 행위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발단은 성차별 사회에서 여성을 일상 속에서 무시해온, 무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의 무의식적 리액션에 있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그 남자는 평소 수많은 남성으로부터 더 많은 무시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비가시적이지만 구조적인 차별에 많은 피해를 입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피의자가 “평소 여자들이 무시해서”라고 말했다는 것은 “내가 무시해 마땅한 너(여자)가” “감히 나(남자)를 무시해” “그러니 내가 화내는 건 당연해”라는 생각의 다른 표현이다.

표현은 우월적 지위의 상징이자 도구다. 사회적 약자인 남성에게도 모든 여성은 상대적 약자다. 그가 청와대나 국회 앞으로 가지 않고, 화장실에서 여성이 오기만을 기다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화로서 여성혐오(misogyny)는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구성원이 체화한 관습이다. 여성혐오는 일상 속에서 늘 일어나는 아주 교묘한 방식의 성차별주의에서부터 극단적이고 집단적인 강간과 살해까지 포괄한다.

성차(性差)를 강조하고 성별 구분에 따른 행위규범과 노동분업을 당연시하는 관행부터 노골적인 조롱, 멸시, 비하, 비인간화, 성적대상화, 배제, 위협 등으로 나타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식부터 제도화한 차별과 물리적 폭력까지 광범위하다. 제노사이드, 집단강간, 연쇄살인, 성폭력, 데이트강간, 아내 구타, 학대, 영아 낙태와 살해, 성매매와 인신매매, 음란물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는 마치 공기처럼 누리는 특권 같아서 여혐은 의도나 동기조차 필요 없을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개인이나 집단의 상대적 우월감을 드러내기 위해 의지적으로 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혐 문화 속에서 상대적 약자는 불안하고 불편하며, 분노하고 공포스럽고, 상처받고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지만, 상대적 강자는 유사한 감정을 느끼거나 공감하기 어렵다. 이러한 혐오 문화는 상대적 약자가 저항을 시작해야만 비로소 수면으로 떠오른다.


1/2
이나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nylee@cau.ac.kr
목록 닫기

그는 왜 국회 대신 화장실로 갔을까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