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호

인터뷰

“닥터헬기 소리는 생명… 야간 소음 이해해줘야”

24시간 닥터헬기 운항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9-07-2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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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경기 아주대병원에 닥터헬기가 배치된다. 인천, 전남, 강원, 경북, 충남, 전북에 이어 전국에서 7번째다. 새로운 것도 있다. 경기 닥터헬기는 국내 최초로 24시간 상시 운항한다. 기존 6대는 일몰 후 비행하지 않았다. 그동안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낮이든 밤이든 닥터헬기를 띄워야 한다”고 주장해온 이국종 교수의 꿈이 마침내 이뤄지는 걸까. 7월 초 아주대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신동아=송화선 기자]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는 외상외과 전문의다. 동시에 닥터헬기 전도사로 통한다. 닥터헬기는 응급환자의 신속한 이송과 의료처치 등을 담당하는 헬기를 일컫는다. 응급상황 발생 시 인공호흡기, 제세동기, 초음파 장비, 각종 약물 등을 탑재하고 현장으로 출동한다. 소방, 해양경찰의 구급헬기와 다른 점은 의료진이 탑승한다는 점. 헬기 내에서 간단한 수술까지 가능해 ‘날아다니는 응급실’로 불린다.

    ‘석해균 프로젝트’ 8년 만에 닥터헬기 운항

    이 교수는 2011년부터 줄곧 우리나라에 닥터헬기의 중요성을 알려왔다. 그해 1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이 불의의 총상을 입었다. 정부는 석 선장을 구하고자 총상 환자 수술 경험이 있는 이 교수를 현지로 급파했다. 이후 석 선장이 기적처럼 생환하면서 이 교수와 중증외상외과에 대한 관심이 크게 커졌다. 

    이 교수는 이 기회를 우리나라 중증의료체계 개선의 계기로 삼았다. 대중 앞에 설 때마다 석 선장이 사고 직후 미군 헬기에 태워져 즉시 응급처치를 받은 걸 소개했다. 또 우리나라에 닥터헬기가 도입되면 수많은 중증외상환자를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역설했다. 

    곧이어 아주대병원에서 ‘석해균 프로젝트’로 알려진 ‘중증외상환자 더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관내 기관들과 협력해 응급상황 발생 시 의료진이 소방헬기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후 이 교수를 비롯한 의사들이 헬기를 이용해 중상 환자를 살려내는 사례가 계속 알려지면서 이른바 ‘골든 아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 ‘헬기 타는 의사들’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가 커졌다. 

    마침내 2011년 9월 전남(목포한국병원), 인천(가천대길병원)에 국내 최초의 닥터헬기 2대가 배치됐다. 이후 강원(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경북(안동병원), 충남(단국대병원), 전북(원광대병원)을 거쳐 경기에 닥터헬기가 배치되기까지 8년이 더 걸렸다. 이 교수는 그동안 줄곧 소방헬기를 타고 환자에게 날아갔다.
     
    - 지금도 아주대병원 의료진은 소방헬기를 이용해 응급 현장에 출동한다. 닥터헬기가 배치되면 뭐가 달라지나. 

    “출동 시간이 줄어든다. 지금은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경기 소방재난본부에 헬기를 요청한다. 소방헬기가 아주대병원에 도착해 의료진을 태우고 다시 현장으로 출동하기까지 약 18분이 걸린다. 우리 병원에 헬기를 두면 이 시간이 단축된다. 응급 상황 접수 즉시 의료진이 환자를 향해 날아갈 수 있고, 그러면 환자가 목숨을 구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또 닥터헬기는 소방헬기와 달리 환자 이송 및 의료처치에 특화된 장비다. 기내에서 환자에게 좀 더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아주대병원 닥터헬기가 국내 최초로 24시간 운항하기로 한 점이 화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7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로 5028명, 낙상(추락)사고로 267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중증외상 사고는 상당수가 야간에 발생한다. 해가 졌다는 이유로 헬기가 출동하지 않으면 응급환자가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병원 의료진은 지금도 주·야간 가리지 않고 출동한다. 경기도 재난안전본부 소속 헬기조종사들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복지부가 지원하는 닥터헬기는 현재 안전문제 등을 이유로 야간 운항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번에 아주대병원에 닥터헬기가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24시간 운항을 하게 됐다. 이것을 계기로 다른 지역에도 닥터헬기 상시 운항 시스템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안전하게 더 멀리

    이국종 교수는 아주대병원에 도입되는 닥터헬기에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호출부호 ‘ATLAS(아틀라스, 그리스 신화에서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거인)’를 새겼다. 우리나라 응급의료 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한 고인을 기리는 의미에서다.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이국종 교수는 아주대병원에 도입되는 닥터헬기에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호출부호 ‘ATLAS(아틀라스, 그리스 신화에서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거인)’를 새겼다. 우리나라 응급의료 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한 고인을 기리는 의미에서다.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 아주대병원 닥터헬기는 다른 헬기보다 크기도 크다고 들었다. 

    “기존에 배치된 닥터헬기 6대는 기령(機齡)이 평균 2년 7개월이다. 반면 아주대는 2010년 7월 생산된 헬기를 도입했다. 사용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어 저렴한 비용으로 큰 헬기를 구매할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노후 헬기라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해양경찰청 항공운영 규칙을 보면 헬기의 내구연한 기준이 26년이다. 일본 해경보안청도 항공기를 평균 26.4년 사용한다. 우리 병원 의료진이 그동안 이용해온 소방헬기 또한 운행한 지 10년 넘은 것들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항공기는 기령 19~20년 사이에 노후로 인한 사고율 증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달리 말하면 그 전까지는 문제가 없다. 이런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헬기를 선택했다.” 

    - 닥터헬기가 크면 어떤 점이 좋은가. 

    “최장 1135km까지 비행할 수 있어 환자 구조 및 이송 범위가 넓어진다. 또 필요 시 환자를 위로 끌어올리는 호이스트(권상기)를 장착할 수 있다. 응급사고는 닥터헬기가 착륙할 수 없는 곳에서도 발생한다. 꽉 막힌 고속도로 한가운데, 바다 위 선박 같은 곳에 환자가 있을 때는 호이스트가 매우 유용하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용 중인 닥터헬기 6대는 모두 중소형이라 호이스트를 달지 못한다. 한정된 예산으로 신형 헬기를 구매하다 보니 크기가 작은 걸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새 헬기보다 환자를 더 잘 구조할 수 있는 헬기를 운항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 우리나라에서 닥터헬기 사업이 본격화한 지 어느새 8년이 됐다. 그간의 과정을 어떻게 보나. 

    “닥터헬기가 여러 지역에서 운항하면서 응급환자를 위한 항공망 구축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2010년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가 ‘한국형 권역외상센터 설립타당성’ 등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일이 있다. 당시 김 교수는 ‘전국에 권역외상센터를 6개 설치하고 닥터헬기를 20대 운항하면 항공이송 성공률이 90%를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권역외상센터가 지어진 반면 닥터헬기 수는 매우 부족하다. 닥터헬기가 자유롭게 뜨고 내리며 응급 환자를 구조 및 이송할 수 있는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 닥터헬기 항공망 구축 및 관련 인프라 정비가 왜 중요한가. 

    “병원 응급실을 환자 앞으로 바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병원전단계 의료를 책임지는 존재는 사실상 구급대원이다. 응급사고가 발생하면 구급대원이 현장에 가고, 의사는 병원 안에서 들어오는 환자를 기다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 환자가 사고 현장이나 병원 이송 과정에서 사망한다. 

    닥터헬기는 의사가 직접 현장으로 나가게 만드는 장치다. 영국 사람들은 이것을 ‘emergency room to the roadside’라고 표현한다. 병원 응급실을 길에 내보낸다는 의미다. 일본 자료에서도 닥터헬기를 ‘emergency room with wings(날개 달린 응급실)’라고 표현하는 걸 봤다. 닥터헬기는 의사가 타고 출동한다는 점에서 일반 구급차나 헬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가 닥터헬기를 더 많이 운항하면 시민들이 병원전단계에서부터 의사의 처치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날아오르는 닥터헬기에 환호”

    “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입니다” 캠페인에 참여한 이국종 교수.

    “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입니다” 캠페인에 참여한 이국종 교수.

    - 그러나 일부에서는 닥터헬기 운항 시 발생하는 소음, 먼지 등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 또한 출동 과정에서 민원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일이 제법 있다. 아직 닥터헬기의 중요성이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의료 선진국 사람들은 닥터헬기가 뜨면 그 안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살리고자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니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유튜브에서 닥터헬기를 검색하면 인상적인 영상이 하나 나온다. 영국 런던의 한 럭비 경기장 인근에서 중증 외상환자가 발생했다. 즉시 경기가 중단되고 닥터헬기가 착륙한다. 관중은 화를 내기는커녕 환자를 태우고 날아오르는 닥터헬기를 향해 환호한다. 

    영국에서는 닥터헬기가 학교 운동장에도 곧잘 착륙하는데, 그러면 수업을 받다 말고 아이들이 뛰쳐나가 의료진을 응원한다. 내가 런던에서 연수를 받던 시절 한 영국시민에게 ‘저 소음이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은 일이 있다. 그는 내게 ‘닥터헬기 소리가 어떤 오케스트라 음악보다 더 아름답다’고 답했다. 이런 게 선진국 분위기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닥터헬기가 움직일 때 나는 소리를 ‘사람을 살리는 소리’ 곧 ‘생명의 소리’라고 생각하게 되면 좋겠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 현재 동아일보가 진행 중인 ‘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입니다(소생)’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그는 “나와 우리 가족도 언젠가 닥터헬기의 도움을 받게 될 수 있다. 소생 캠페인이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한발 더 나아가는 데 디딤돌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소생 캠페인에는 이 교수 외에도 여러 의료계 관계자와 지방자치단체장,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 2002년 월드컵 4강 주역인 안정환 축구해설위원, ‘배구 여제’ 김연경 선수 등 수많은 명사가 동참하고 있다. 

    시민도 누구나 직접 영상을 만들어 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풍선 터뜨리기, 소생캠페인송에 맞춰 춤추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닥터헬기를 향한 응원의 마음을 표현한 뒤 그것을 영상에 담아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올리면 된다. 이때 반드시 ‘#소생캠페인 #닥터헬기응원 #닥터헬기소리는생명입니다’라는 해시태그를 입력해야 한다. 닥터헬기를 응원하며 풍선을 터뜨리는 것은 풍선 터지는 소리가 닥터헬기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 닥터헬기 대수는 더 많아지고, 더 자주 운항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이 닥터헬기를 볼 기회가 점점 많아질 것”이라며 “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을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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