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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37

오천일 살부(殺父)사건

패륜 삼대(三代), 법의 심판에 앞서 천벌을 받다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오천일 살부(殺父)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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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만여 평의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 오명보가 살해됐다. 그는 살해당하기 몇 달 전까지 면장으로 일했다. 소작료를 가혹하게 징수해 원성을 샀고, 면장도 벼슬이라고 거드름을 피우다 인심을 잃었다. 엄청난 재산으로 고리대금을 일삼다가 이웃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네 명의 첩을 거느리는 것도 모자라 수시로 젊은 아낙네들을 농락해 물의를 일으켰다. 금품 관계, 치정 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있었다. 그의 아들 오천일이 피의자로 지목돼 재판을 받았다.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선 무죄 판결. 그러나 3심에서 결국 사형을 선고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오천일 살부(殺父)사건

오천일 관련 사건 동아일보 기사들. 일제 강점기 재판은 1심 지방법원, 2심 복심법원, 3심 고등법원 순으로 진행됐다.

1929년 7월22일. 자정이 지나도 찜통 같은 무더위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쉰다섯 초로의 전직 면장 오명보는 네 번째 첩 김씨와 함께 평양 교외 대동군 율리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 안채에서 문이란 문은 모조리 열어젖힌 채 모기장만 쳐놓고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새벽 2시, 검은 복면을 쓴 괴한이 오명보의 집 담장을 넘어 들어왔다. 괴한은 대문 빗장을 열어두고 주인 내외가 자는 안채로 조용히 다가갔다.

“애고머니!”

인기척에 눈을 뜬 김씨가 놀라 소리쳤다. 괴한이 품에서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을 빼어들고 모기장을 향해 돌진했다. 김씨는 남편을 깨울 겨를도 없이 모기장을 빠져나와 괴한이 달려드는 쪽과 반대 방향으로 문지방을 넘어 달아났다.

“으악…으악…악…악…아…으….”

맨발에 옷고름 풀린 속옷 차림으로 마당을 가로지르던 김씨의 등 뒤에서 나이든 남자의 비명이 들렸다. 김씨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별채를 향해 내달렸다. 별채에는 오명보의 큰아들 오천일이 두 번째 첩 하복녀와 함께 자고 있었다. 오천일은 평양에서 정미소를 경영했는데, 어쩐 일인지 몇 달 전 고향에 돌아와선 그대로 눌러앉았다.

“천일이! 이봐, 천일이!”

오천일이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서른다섯 살의 오천일은 김씨보다 네 살이나 많았지만 아버지의 애첩을 깍듯이 대했다.

“작은어머니가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가…가…강도가 들었어!”

김씨가 숨을 헐떡거리며 간신히 말을 맺었다. 오천일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의 안부부터 물었다.

“아버님은요? 아버님은 어떻게 되셨어요?”

어린 서모(庶母)는 난처한 듯 고개를 숙이고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오천일은 대청 기둥에 걸어둔 낫을 들고 안채로 달려갔다. 안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괴한은 이미 달아났고, 오명보는 마구 찢긴 모기장을 뒤집어쓰고 검붉은 선혈을 흘리며 널브러져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오천일은 핏덩어리가 된 아버지의 육신을 부둥켜안고 오열했다.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

“젠장, 도대체 이 인간은 인생을 어떻게 산 거야!”

평양경찰서 사법주임 고야마(小山) 경부가 살해당한 오명보의 원한 관계 보고서를 들척이다가 책상 위에 거칠게 내던지며 분통을 터뜨렸다. 친인척 몇 명을 제외하곤 율리면 주민 태반이 오명보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오명보는 율리면 일대 5만여 평의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였고, 살해당하기 몇 달 전까지 그곳 면장으로 일했다. 소작료를 가혹하게 징수해 원성을 산 데다, 면장도 벼슬이라고 거드름을 피우다 인심을 잃었다. 수십만원에 달하는 재산으로 고리대금을 일삼다가 이웃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네 명의 첩을 거느리는 것도 모자라 수시로 젊은 아낙네들을 농락해 물의를 일으켰다. 금품 관계, 치정 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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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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