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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자살, 고독사… 죽음의 공간 ‘특수청소’ 현장

  • 박은경 객원기자 |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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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이의 손길이 닿은 모든 흔적을 지우는 특수청소업. 자살, 고독사, 강력범죄 피해 현장 등에서 고인의 유품을 정리해 폐기하고 주인이 떠난 빈 공간을 말끔하게 되돌리는 ‘극한 직업’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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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 원룸에서 작업에 한창인 특수청소업체 직원들. [조영철 기자]

이른 아침, 길게 늘어선 도심 아파트촌을 벗어나 숲 속에 자리한 그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샛길을 5분여 걸었을까. 느닷없이 네댓 채의 민가가 나타났지만, 회사 건물로 볼 만한 곳은 없었다. 맨 끝의 오래된 2층 단독주택을 기웃거리며 ‘길을 잘못 든 건가’ 싶었을 때, 무거운 짐을 들고 1층 현관문을 밀치고 나오는 건장한 남성이 눈에 띄었다. 문 위엔 ‘일반음식점’이라고 적힌 빛바랜 아크릴 표지판이 붙어 있다.

“원래 여긴 오리고기 음식점인데, 장사가 잘 안 돼 문을 닫았어요. 민원이 제기될까 봐 사람들 눈치를 살펴 사무실을 구하다 보니 이곳까지 들어오게 됐죠.”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화물차로  부지런히 짐을 나르는 그는 김새별 바이오해저드특수청소 대표다. 자살, 고독사, 강력범죄 피해 현장 등에서 고인의 유품을 정리해 폐기하고 주인이 떠난 빈 공간을 소독, 탈취해 말끔하게 하는 특수청소가 그의 직업이다. 가족이 고독사하거나 자살 혹은 살해당한 우울하고 처참한 현장을 유가족이 직접 목격하고 정리까지 하기란 쉽지 않다. 죽음 직전에 고인이 겪었을 고통, 충격이 새삼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유가족을 대신해 현장의 흔적과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는 게 일이다. 우리는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작업 현장에서 쓰는 고압 스팀 살균기, 살균분사기(초고미립자 시취(屍臭) 제거용), 자외선 살균기(피비린내 제거 및 바이러스 박멸용), 압축분무기 등 전문 장비와 약품 상자가 벽면마다 가득하다. 특수청소업체가 사용하는 장비와 약품은 입주청소, 건물청소 등 일반 청소업체가 사용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사무실 벽에 걸린 스케줄 현황판엔 매일 1~2건씩 2주치 스케줄이 빼곡하다. 이날 첫 작업 현장은 경기 ○○시 소재 오피스텔의 원룸. 오전 10시, 김 대표와 30대 중반 직원 L씨를 따라 회사를 출발, 한 시간 남짓 달려 작업 현장에 도착했다.



목맨 중년 남자

굳게 닫힌 원룸 문 앞에 다다르자 L씨가 병원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마스크를 꺼내 쓰면서 취재진에게도 건넨다. “냄새와 먼지 방지용”이란다. 특수청소 작업 현장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는 흰색 방진복을 착용하는 게 원칙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너무 눈에 띄는 복장을 한 사람들이 드나들면 이웃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김 대표가 창문을 열고 방역 작업을 시작한다. 순식간에 실내에 가득 퍼진 뿌연 연기 사이로 바닥에 뭉쳐진 옷가지들이 보였다. 걸레 대신 사용한 옷가지들이 미처 다 흡수하지 못한 검붉은 액체가 주변 바닥에 넓게 퍼져 말라붙어 있다. 김 대표는 “사람이 목을 매 자살한 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혈액을 비롯한 체액이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며 “이건 장례업자가 시신을 수습한 뒤 남은 분비물의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시선이 절로 천장을 향했다. 침실 난간에 가위로 잘려나간 넥타이 조각이 단단히 묶인 채 남아 있었다.

김 대표는 익숙한 동작으로 옷가지를 쓰레기봉투에 쓸어 담고 기름 분해제를 분사한 다음 여러 차례 물걸레질을 해서 분비물 흔적을 꼼꼼하게 닦았다. 말라붙은 얼룩이 말끔히 지워지자 다시 대걸레로 마무리한 뒤 집안 여기저기 널린 유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L씨는 붙박이 옷장이 있는 골방에서 고인의 옷을 꺼내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잠깐 사이에 가득 찬 대형 봉투 8개가 방 한구석에 쌓였다. 이어 주방 정리에 나선 L씨가 냉장고 문을 열자 채 포장을 뜯지 않은 두부와 달걀, 사과 한 알, 생수 한 통이 들어 있다.

집 안을 가득 채운 연기가 가신 뒤 선명하게 드러난 방 안은 말 그대로 ‘살풍경’했다. 가구라곤 작은 장식장과 책상뿐. 바닥엔 1인용 전기요와 주인 잃은 베개가 나뒹굴었다. 빨래건조대엔 미처 걷지 못해 바싹 마른 양말이며 속옷이 널려 있다. 책상 위에서 발견된 4개의 통장은 잔고가 ‘0’이거나 겨우 몇 만 원. 서류 박스를 정리하던 김 대표가 설명을 이어갔다.

“중년 남자가 혼자 살다 자살한 현장이다. 사업자등록증, 사채 끌어다 쓴 차용증, 회사 관련 서류가 가득한 걸로 봐서 폐업하고 사무실을 접은 것 같다. 사업 실패가 자살 이유일 수 있다. 가족이 있을 텐데, 유품 정리와 청소를 부탁한 사람은 친척이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다가 쓸쓸한 죽음을 맞은 것 같다.”



본드 튜브, 신체 포기 각서

유품을 정리하다 보면 별별 인생과 사연을 접한다. 한 40대 남성이 죽은 집에선 빈 본드 튜브가 무려 1만 개나 나왔다. 현장 수습 때 동네 사람들이 모여 술렁거렸다. “집 근처만 가면 본드 냄새가 심하게 나고 야동(음란물)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 때문에 미치는 줄 았았다”고 했다. 남성은 본드를 흡입한 뒤 음란물을 보며 자위행위를 하다 최후를 맞았다.

김 대표는 “일을 떠나 심정적으로 ‘죽어야 할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 현장도 있었다”고 했다. 딸이 집을 떠난 뒤 홀로 살다 지병으로 사망한 50대 남성의 집에서 낡은 서류가방이 발견됐다. 그 속엔 21세 여성에게 1000만 원을 빌려준 뒤 4년에 걸쳐 이자로만 매달 꼬박꼬박 700만 원씩 받은 기록과 그녀에게서 받은 신체 포기 각서가 들어 있었다. 딸이 아버지를 떠난 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사채업자인 그를 증오했기 때문. 유품 중엔 연락이 끊긴 딸에게 고인이 남긴 편지가 있었다. ‘다 널 위해 한 일이다.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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