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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통일전선부 출신 탈북자가 증언한 ‘대남공작부서의 모든 것’

‘우리민족끼리’는 ‘햇볕정책 역이용 전략’, 강온 이중전술로 경제실리 만 챙겨라!

  • 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북한 통일전선부 출신 탈북자가 증언한 ‘대남공작부서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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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가 6월초 발행한 내부간행물 ‘북한조사연구’에 주목할 만한 보고서가 실렸다. ‘북한의 통일전선사업부 해부’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그간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 있던 북한 대남공작조직의 구체적 현황을 공개하며 그 총괄기관으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사업부를 지목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장철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통전부에서 간부로 일하다 수년 전 탈북했다. 보고서는 통일전선사업부의 세부 조직도와 위장명칭, 서해교전 등 2000년대 이후 주요 사건의 기획의도 등도 처음 공개했다. 장 연구위원은 1990년대 말 이후의 대남공작 기조를 ‘햇볕정책 역이용 전략’으로 규정하며, 북한이 남측의 포용정책 기조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은 물론 대남공작에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다.

1998년 김정일 특별지시 “햇볕정책 역이용 전략을 수립하라”

햇볕정책 이후 2배 커진 대남공작 ‘두뇌부서’ 통전부

남조선문제연구소, 한국경제·주요인물 동향 보고서 주1회 김정일에 제출

30년 동안 ‘조선일보’만 분석한 노동당 연구요원

조총련 부담으로 일본 자재 수입해 남한 신분증 위조하는 813연락소

인터넷 맡은 26연락소 뜨자 기구(氣球) 담당 310연락소 절반 축소

통전부에 전교조, 범민련, 통일연대 담당과…한총련 담당과는 2001년 폐쇄

서해교전 계획안 보고받은 김정일, “햇볕정책 역이용하는 새로운 전선” 극찬

“개성공단 인력과 시가지에 제대군인 5만 배치해 군사기지화 강구하라”

경협 창구 ‘아태’는 건물도 없는 유령조직…통전부 정책과 위장명칭일 뿐

인민군에는 군사회담 정책부서 없어… ‘군부 강경론’은 통전부 전술


북한 통일전선부 출신 탈북자가 증언한 ‘대남공작부서의 모든 것’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대외연락부, 작전부 등 대남공작부서들이 모여 있는 ‘3호청사’의 위성사진. 2004년 6월 미국 디지털글로브社가 촬영한 것이다.

오늘날 남북관계는 사실상 남한 정부와 북한 통일전선사업부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경제·안보·민간교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부서가 바로 통일전선사업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통일전선사업부는 대남공작부서들 중 대남정책을 기획하는 ‘두뇌 부서’로서 선두구실을 한다. 이는 권력의 집중화를 통해 조직관리를 최대한 단순화·실용화하는 북한 특유의 유일독재 방식과 맥을 같이한다.

남한에서는 흔히 통전부의 정식명칭이 통일전선부라고 하지만, 통전부의 정확한 명칭은 통일전선사업부다. 이전까지 인민무력부가 주도하던 대남전략과 전술은 1970년 초 김일성이 고려연방제를 내놓으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대외적으로나마 군의 강경 주도권을 일부 약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김대중 후보가 통일 문제를 대선(大選)공약으로 제기해 많은 지지표를 얻은 당시의 남한 내 정치상황도 이러한 변화에 일조했다. 김일성은 남한 내 민주화운동과 통일 열망을 잘 접속시킨다면 대중혁명 방식으로도 적화(赤化)통일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민주화운동을 적화공간으로 확대시키려면 보다 전술적인 유화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남한 내 민주화 역량을 지휘, 조종할 수 있는 지능부서가 필요했고, 이 전략전술을 별도로 수행할 당 주도의 대남공작부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북한, 남한, 해외를 포괄해 김일성을 구심점으로 하는 광범위한 ‘민족통일전선체’ 형성을 주 목적으로 하는 통일전선사업부는 이렇게 탄생했다.

1979~80년대 통전부는 민주화운동을 폭력혁명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남한 내에 지도세력을 구축하고 대중을 상대로 고려연방제를 찬양하도록 선동하는 대남 심리전을 중점적으로 전개했다. 또한 정권 전복 차원에서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사건 등을 함께 기획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에 이르러 통전부의 전략은 ‘햇볕정책 역이용 전략’으로 급선회한다. 내부적으로는 1998년부터 이를 추진하다가, 2000년 6·15 정상회담에서 민족공조를 부각하며 ‘우리민족끼리’라는 표현을 쓴 다음부터는 이를 아예 통일전략으로 공식화해 2001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발표했다.

이후 통전부는 대외적으로는 ‘우리민족끼리’라고 표현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적(敵)들과 ‘끼리’할 수 없다는 체제원칙을 내세워 대내적으로는 ‘햇볕정책 역이용전략’으로 명명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처음 햇볕정책을 발표한 1998년만 해도 통전부는 무조건적인 반대 입장을 고수했지만, ‘햇볕정책을 역이용하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이를 새로운 정책으로 연결한 것이다.

햇볕정책 역이용 전략의 핵심은 현재의 경제난을 인정하고 정세가 성숙할 때까지 한국의 경제를 북한의 발전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동구권 붕괴 이후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북한 지도부는 한국 정치권의 대북정책이 햇볕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장기화하리라는 판단하에 이 전략을 구체화했다. 체제유지를 위해 전면 개방이 아니라 특구 개방 정책으로 경제난을 해소하려는 국가발전 전략도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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