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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의 작가열전

장수하늘소를 닮은 시인 문태준

“시는 가죽나무 같아요, 비릿하고 어두운 울음을 우는…”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장수하늘소를 닮은 시인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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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은 문태준의 시는 비 온 다음 뻘밭을 기는 지렁이인가 싶더니, 어느새 뿌연 수면을 내리찍는 물총새 부리처럼 날카롭다. 아니다. 장수하늘소 한 마리가 달빛 없는 밤, 세상의 갈라터진 껍질 사이로 배어나오는 수액을 느리게 음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외롭지만 깊고 맑고 투명하다.
장수하늘소를 닮은 시인 문태준
시를 읽는 시간은 외로운 시간이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시를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사람을 만나도 외로울 때가 있다. 아니 사람을 만나면 더 외로워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혼자가 되면 차라리 덜 외롭다. 어제 낮에는 과로했고, 밤에는 과음을 했다.

어젯밤 술자리에서 친구가 말했다. “우리 참 많이 외롭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과 깊은 새벽에 헤어져 새벽에 잠이 들었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문태준(文泰俊·37) 시인과 약속한 장소에서 잠시 졸았다. 그를 만났다. 그 역시 어제는 피곤한 하루였다고 한다. 피곤한 두 남자가 만났다. 그에게서 몇 마디 들은 것 같지 않은데 돌아와 생각하니 옥수수 알처럼 많은 것이 내 마음에 박혀 있다.

서재에서 그의 시집을 다시 펼쳐 들고 읽다가 ‘너무 빠른 것은 슬프다. / 갈 곳이 멀리 / 마음이 멀리 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자꾸 먼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항상 멈추어 있는 내 몸을 보고 슬퍼한다. 외롭다. 슬프다. 이런 추상적인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닌데, 나는 자꾸 거기에 머물고자 한다.

요즘은 누가 그리운 것인가. 나도 문태준처럼 ‘너무 먼 바깥까지’ 가버린 것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 시인 문태준이 문득 이런 말을 한 것이 떠올랐다.

“시 쓰는 일도 쓰면 쓸수록 외로운 곳으로 가는 것 같아요. 점점 더 외로운 곳으로 들어가고, 그것을 견디는 것. 그것이 시 쓰는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듯 마는 듯한 향기

삶이 동굴 같을 때가 있다. 멀리 희미하게 빛이 보이는 동굴, 그러나 걸어 들어갈수록 점점 더 그 빛이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 그 어둠 속에서 호롱불 하나 들고 사방을 가늠하면서 되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하는 시간은 혼란스럽다. 우리의 생은 되돌아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가다가 쓰러져 그 자리에서 멈추어버릴지라도 계속 가야만 한다.

마치 한 발자국을 옮기면 그 뒷자리는 바로 절벽으로 변해버리는 그런 동굴과 같은 삶일 수도 있다. 과거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시는 그런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인간의 평범한 삶이 비범해지는 순간에 시는 탄생한다. 그런데 시의 모습은 평범함 그 자체다. 쉬운 말로 다룰수록 더 깊은 비의가 드러나는 것이다.

문태준 시인은 외로운 곳으로 가는 것과 그것을 견디는 것이 시 쓰는 일이라는 말로 나름의 결론을 내린 셈이다. 그의 외로움은 시를 통해 읽을 수 있다. 두꺼비가 고요한 절간의 앞마당을 건너가듯이,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깊은 우물 속으로 낙하하듯이. 그는 뚜벅뚜벅 소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시인 문태준이 근무하는 불교방송에 조금 이르게 도착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소리보살’ 같은 불교방송 아나운서에게 그의 행방을 물었다. 그녀가 친절하게 전화를 걸어주었다. 다시 약속을 정하고, 잠시 그의 작은 책상 위를 보았다. 주인 없는 책상에는 불교 관련 서적과 시집을 포함한 책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의 직업은 방송국 PD다. 그것도 12년차 되는 고참 PD다. 그의 책상 위치는 다른 PD를 통솔하는 높은 자리였다. 입사 이후 불교방송 라디오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거쳐 지금은 편성부에 근무한다. 불교방송국 지하에 있는 허름한 찻집에서 만나, 우리들은 지상으로 나가자고 했다.

오전의 마포 인도는 사람들로 붐볐고, 차도에는 크고 작은 차들이 즐비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우리는 실외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았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도 얼굴을 응시하는 기회는 많지 않다. 자세히 보니 여전하다. 가끔 본 얼굴인데 그의 얼굴에는 중심이 확실한 안정감이 머문다. 나보다도 젊은 시인인데 성숙한 사람의 향내가 난다. 그 향기는 내 책상 위에 피어 있는 치자나무의 꽃처럼 강한 향이 아니다. 풀잎이거나, 뿌리에서 나는 듯 마는 듯하는 마음의 향기, 사람의 향기다.

문태준은 깊은 사람이다. 그 깊이는 맑고 투명함에서 나온다. 그 맑은 것의 뿌리를 나는 그의 유년에서 더듬어보았다. 눈먼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고 그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유년시절로 들어가본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뿌리는 부드러운 흙으로 덮여 있어 파 들어가기가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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