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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매너리즘에 빠진 당신에게

‘카불의 사진사’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삶의 매너리즘에 빠진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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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매너리즘에 빠진 당신에게

‘카불의 사진사’ : 정은진 지음, 1만2000원,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 : 새뮤얼 프리드먼 지음, 조우석 옮김, 1만원

‘카불의 사진사’ 정은진을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봄. 큰 선글라스로 얼굴을 반쯤 가린 자그마한 몸집의 여자가 출판팀으로 찾아왔다.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뉴욕대학에서 사진학을, 미주리대학에서 포토저널리즘을 공부했으며, ‘미주 한국일보’ 기자, ‘LA타임스’ 인턴 생활을 했다. 2004년 동남아에서 발생한 쓰나미 사진을 찍어 ‘뉴욕타임스’ 1면 톱을 장식했고, 2006년 5월에는 ‘타임’ 아시아판 커버사진을 맡기도 했다. 포토 에이전시 ‘월드 픽처 뉴스’ 소속으로 세계 주요 일간지와 잡지에 사진을 게재하는 프리랜서 사진기자. 듣기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이력인데, 나는 그의 크고 도전적인 눈을 바라보며 ‘저렇게 화사하고 예쁜 얼굴로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에 살며 취재를 할까’만 궁금했다.

정은진은 곧 자신이 카불에 머문 지 1년이 되는데 그동안 써온 일기를 책으로 펴낼 수 있을지 타진했다. 그러나 한두 달 취재도 아니고 아예 주소지를 카불로 옮기고 1년씩 그 험한 지역에서 버티고 있는 그에게 당장 호기심이 발동했다. 게다가 그의 부모는 딸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진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폭탄 테러에 로켓이 터지는 땅에 자식을 보내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2006년 5월 인도네시아 지진을 취재하러 갈 때도 부모의 반대로 워낙 혼이 난 터라, 그는 처음부터 아프가니스탄행을 비밀에 부쳤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찍은 사진은 ‘김주선’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2007년 여름 그가 아프가니스탄 산모 사망률 취재로, 세계적인 보도사진전 중 하나인 ‘페르피냥 포토 페스티벌’에서 ‘케어 인터내셔널 휴머니티 르포르타주’ 그랑프리를 수상했을 때도 모든 언론은 검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반쯤 가린 정은진의 사진과 함께 ‘김주선’의 수상 소식을 전해야 했다.

기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정은진의 진가를 확인한 것은, 2007년 7월 탈레반에 의한 한국인 납치사건이 벌어졌을 때였다. 마침 잠깐 한국에 들어온 그가, 원고를 상의하러 사무실에 들렀다. 책의 목차와 원고 정리에 대한 회의를 하던 중 갑자기 그의 휴대전화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0여 명이 납치되었다는 첫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국내외 기자들이 일제히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외국 기자들은 한국 측 반응을 알고 싶어 했고, 한국 언론은 시시각각 현지 소식을 전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진 청(정은진의 영어이름), 카불 언제 다시 들어가? 내일 당장 들어가면 좋을 텐데.” 영어로, 우리말로 정신없이 통화하는 그를 지켜보며, 그가 왜 아프가니스탄을 고집했는지 알 것 같았다. 기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탈레반의 한국인 인질사건은 ‘카불의 사진사’ 정은진에게 기회이자 불행이었다. 그는 납치사건이 해결되는 마지막까지 ‘김주선’으로 한국 언론에서 맹활약했다. 납치기간 한국인에게도 익숙했던 ‘탈레반의 입’ 아마디 대변인과 수차례 통화하며 속보를 전했고,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따냈다. 위험지역인 가즈니 주로 들어가려다가 카불 경찰국장으로부터 “당신, 스물두 번째 인질이 되고 싶냐?”는 호통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2007년 8월10일까지 한국교민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2008년 8월 16일 아프가니스탄으로 와서 1년을 며칠 못 채우고 그는 떠나야 했다. 눈물을 머금은 철수였다.

예상치 못한 인질 사태로 카불에서 조기 철수하는 바람에, 대신 본격적으로 책을 위한 원고 정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필자는 그를 세계적인 사진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포토 스토리 ‘아프가니스탄 산모 사망률’ 취재기에서 시작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낸 1년을 엮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나는 이렇게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되었다’는 식의 성공한 여자의 당당한 삶을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은진은 너무 솔직했다. 원고에는 20~30대를 보도사진 기자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그 바닥에서 존재감이 없다는 좌절감, 함께 사진을 찍던 기자들이 이라크다 아프가니스탄이다 현장으로 뛰어갈 때 뉴욕에서 허송세월했다는 자책감, 소속사도 없고 돈도 없이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불안감, 이렇게 찍은 사진들이 과연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까 하는 회의감이 가득했다.

험난한 분쟁지역을 사명감 하나로 거침없이 누비는 카메라 기자 정은진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나는 ‘솔직한 그녀’가 좋았다. 일기를 토대로 했기 때문에 그날그날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다.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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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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