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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탐방

장군총의 비밀

광개토왕·장수왕 묘가 아니라 고구려 시조 모신 신전(神殿)

  • 윤명철│동국대 교양학부 교수(고구려사) ymc0407@yahoo.co.kr│

장군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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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에 성스러운 숫자(聖數)로 여겼던 3과 7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장군총은 하늘나라에서 온 해모수가 유화와 만나는 곳이자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주몽을 모시는 곳이다. 고구려인들은 어떤 수학적 기반을 갖고 이곳을 성스러운 장소로 만들었나.
장군총의 비밀

맨 아래 계단을 상대석으로 보면 장군총은 3개 계단을 가진 7층 구조다. 고대에 3과 7은 성수로 여겨졌으니 21계단을 가진 장군총은 특별한 이의 무덤이 된다. 윗부분 구멍이 뚫린 곳이 묘실이 있는 곳이고 아래 1층에 기대놓은 큰 돌이 ‘정호석’이다.

흔히 만주라고 일컫는 지역은 필자에겐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보다도 더 애착이 가고 가슴 뭉클한 곳이다. 잃어버린 땅이요 강제로 잊힌 역사를 품은 곳이라 생물학적 회귀본능이 그곳을 돌아다보게 만드는 모양이다.

만주 땅이 시작되는 곳, 지금의 중국 지린성 지안(集安)시에 고구려는 서기 3년에 도읍하고 국내성이라 이름하였다. 이후 420여 년 동안 이곳은 한민족의 핵, 동아시아의 핵 역할을 수행했다.

이곳에서는 시내 한복판에 있었던, 둘레가 2.7km인 사다리꼴 성을 고구려의 수도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궁성(宮城)과 도성(都城) 행성(行城)을 구분하지 않은 탓에 나온 오류다. 국내성은 남쪽으로는 압록강, 서쪽으로는 통구하(通溝河)가 흐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동서 10km, 남북 5km에 달하는 분지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지안 시내에서 발견된 둘레 2.7km의 사다리꼴 성터는 궁성이었을 것이다.

장군총의 비밀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오룡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해모수 그림. 평양 동명성왕릉 옆 기념관에 있다.

궁궐의 동쪽 문으로 나서면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압록강이 흐르는 그다지 넓지 않은 들판 한가운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장중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돌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윗부분은 잘려나간 듯 편평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피라미드 모양을 닮아 중국인들은 ‘동방의 금자탑’이라고 부른다.

고구려의 옛터를 찾는 사람들은 장군총을 보는 순간 놀라워하다 금방 의문에 휩싸인다.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특이한 모양, 색다른 의미를 지닌 듯한 위치, 복잡한 구조 때문이거나 혹은 망해버린, 격파당한 역사의 상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오기가 작용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 건축물은 왕의 무덤이다”라고. 규모나 크기 위치로 보아 특별한 임금의 무덤임이 틀림없다. 주몽의 묘, 고국원왕의 묘, 광개토태왕의 묘, 장수왕의 묘라는 설이 난무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장수왕릉으로 부르는 사람이 늘어났다. 정말 그럴까? 이 독특하고 복합적인 형태의 기념물이 그저 임금의 묘일 뿐일까?

고구려의 神市?

고대사회에서는 공공성이 강한 건축물에 집단의 시원이나 가치관, 자연과 만나는 태도, 조상을 맞이하는 방식, 백성들에게 전하는 정책, 후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등을 상징과 은유로 담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건축물에 숨은 코드를 추적해보면 장군총의 주인뿐 아니라 이 건축물에 담긴 논리와 시대정신, 지향성 등을 알 수도 있다.

장군총을 축조한 사람들은 그 위치에 어떠한 의미를 두었을까.

장군총의 비밀

사진 오른쪽 위에 있는 장군총은 왼쪽 아래에 있는 광개토태왕릉비 및 광개토태왕릉과 일직선으로

장군총은 북으로 우산(禹山)을 바라보며 동북으로 약간 기울어진 용산(龍山)에서 흘러 내려오는 줄기가 낮아지는 편평한 언덕에 있다. 산골 분지답지 않은 너른 터에 서남쪽으로 통구평야와 이어지면서 지안분지 전체를 내려다보는 곳이다. 또한 멀지 않은 곳에선 압록강이 묘실 입구의 방향과 거의 동일한 각도를 이루며 서남 방향으로 흐른다. 자연경관은 물론이고 풍수상으로도 생기가 넘치는 명당으로 혈(穴)자리에 가까워 보인다.

주몽신화에는 천손이 강림한 장소에 의미를 두려는 ‘중심’ 사상이 있다. 단군신화도 유사하다. 천상에 살던 환웅이 인간세계를 구하려는 의지를 강력히 표방했다.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무리(徒) 3000명과 함께 하늘을 모방한 ‘신시(神市)’라는 중심공간을 창조한다. 고구려는 여러 면에서 (고)조선 계승을 표방한 나라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수도에는 신시에 해당하는 신성 구역이 있어야 한다.

궁궐의 동문으로 빠져나가면 장군총을 비롯해서 광개토태왕릉, 임강총(臨江塚) 등의 대형 적석계단묘와 무용총, 각저총, 5회분 등 벽화를 담고 있는 고분을 만나게 된다.

장수왕이 414년에 세운 광개토태왕릉비문에서는 추모(주몽)를 ‘부란강세(剖卵降世)’한 존재로 표현했다. 여기서 ‘알(卵)’은 해를 상징한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모두루총(牟頭婁塚)의 묘지석에서는 추모를 ‘일월지자(日月之子)’라고 했다. ‘삼국사기’는 어두운 공간에 유폐된 유화부인이 햇빛을 받아(感應) 임신했다고 적어놓았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태백산(太伯山)’의 ‘백(伯)’과, 환인(桓因) 환웅(桓雄)의 ‘환(桓)’자는 태양을 상징한다. 고구려도 해와 관련이 깊어서, 하늘(天)이란 곧 일월(日月)을 의미했다. 부여의 천제가 해모수(解慕漱) 또는 해부루(解夫婁)였듯이, 고구려 2대인 유리왕의 이름은 ‘해유(解孺)’, 왕이 되지 못한 그의 아들은 ‘해명(解明)’, 3대 대무신왕은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 4대 민중왕은 ‘해색주(解色朱)’, 5대 모본왕은 ‘해우(解憂)’란 이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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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동국대 교양학부 교수(고구려사) ymc040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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