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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④

다이애나와 에비타

그들의 아우라는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다이애나와 에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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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손으로 만져보고 판단하기보다는 눈으로 보고 판단하려 합니다. 사람들은 군주를 바라볼 수 있을 뿐이지 만져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마키아벨리, ‘군주론’ 중에서
다이애나와 에비타

영국의 왕위 계승자 찰스와 결혼하며 동화의 주인공이 됐던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 하지만 그의 이후 삶은 영광과 추락, 동경과 질시가 뒤덮인 신산한 것이었다.

온몸이 거울로 이루어진 존재들이 있다. 그녀들의 온몸은 투명하여 그녀들 자신보다 그녀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과 시선을 더욱 잘 드러낸다. 자신의 삶 자체로 주목받기보다 자신에게 투영된 대중의 욕망을 더욱 생생하게 드러내는 존재들. 미디어라는 현대의 피그말리온이 빚어낸 아름다운 조각상이다. 그녀들은 대중이 열광하는 이미지만 골라 한몸에 담은 ‘편집된 아름다움’의 주인공이다. 인생 자체도 드라마틱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드라마틱한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존재들. 일거수일투족이 늘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아 파파라치의 훌륭한 먹잇감이 되는가 하면 최고의 찬사와 최악의 혹평을 동시에 받는 존재들. 최고 권력자들보다 오히려 더 주목받았던 퍼스트레이디들. 스스로 정치인이 아니었지만 정치인보다 더 강렬하게 대중과 역사에 각인된 이들. 남편보다 더욱 유명한 뉴스메이커. 에비타와 다이애나가 바로 그런 존재들이었다.

대중은 늘 바깥에 있는 ‘그녀 이상의 것’을 그녀들 자신의 것으로 오인했다. 대중은 왜 그들에게 ‘우리에게 결핍된 모든 것’을 투사했을까. 그 투사된 이미지는 그녀들의 이미지에 어떤 후광을 만들었을까. 여왕보다 더욱 사랑받은 왕세자비, 대통령보다 더욱 사랑받은 퍼스트레이디. 그들은 남편의 명성을 확산하는 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지만, 결국 남편보다 더 주목받고 남편보다 더 사랑받음으로써 남편의 존재를 본의 아니게 위협했다. 찰스 왕세자가 아무리 중요한 연설을 해도 신문 보도는 다이애나의 멋진 패션과 스타일링에만 주목했고 찰스는 아내의 유명세가 자신의 ‘중요성’을 위협한다고 느꼈다. 페론 대통령도 에비타로 인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지만, 나중에는 자신보다 더 사랑받는 에비타 때문에 ‘그녀의 후광’을 없애기 위해 골몰했다.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군주의 여인들

에비타와 다이애나는 저널리즘이 맹위를 떨쳤던 시대의 산물이다. 그들은 여성 정치인보다 더욱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지녔고 남성 정치인보다 더욱 흥미로운 저널리즘의 먹잇감이었다. 특히 TV를 통해 전세계에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던 다이애나의 경우, 파파라치의 끊임없는 추적이 그녀를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었다. 다이애나와 연인 도디 파예드가 파파라치의 집단 추적을 받던 중 자동차 사고를 당해 파리에서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세계로 전해졌다. 죽음마저 파파라치와 스캔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지만 그녀를 잃은 대중의 슬픔은 그 모든 추문을 잠재우고도 남았다. “타인을 보살필 줄 아는 다이애나,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The caring princess, no longer with us)는 식의 신문 헤드라인은 다이애나를 통해 대중이 보려고 했던 집단적 환상을 정확하게 압축하고 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는 그녀의 이미지는 단지 영국 왕세자의 아내가 아니라 대중이 갈망하는, 잃어버린 모성의 탈환이었다. 고통 받는 자와 더불어 슬퍼하는 퍼스트 레이디의 모델은 에비타에게도 그대로 투영돼 있다.

그들은 언제나 긴장감 넘치는 양극단 ‘사이’에서 서성이는 존재였기에 더욱 매력적이었다. ‘신성화된 권력’과 ‘세속적인 세계’를 이어주는 교각이고, 최고 권력과 대중 사이에 가로막힌 장벽을 무화시킨 존재였다. 마더 테레사처럼 완전한 ‘성(聖)’의 자리에 있지 않고 팝 가수 마돈나(마돈나는 에비타의 삶을 다룬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처럼 완전한 ‘속(俗)’의 자리에 있지도 않은, 성과 속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존재였다는 점이 그들의 매혹적인 ‘이미지’가 뿜어내는 아우라의 원천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슬퍼하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존재라는 친밀감, ‘나도 그들처럼’ 비천한 자리에서 최고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승의 열망을 동시적으로 자극하는 존재라는 점이 바로 에비타와 다이애나의 결정적인 공통점이다. 그들은 대중이 가장 원하는 이미지를 창출했고 대중이 가장 슬퍼하는 방식으로 마지막을 장식함으로써 영원히 아련한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 등극하였다.

‘그녀에게는 무엇인가가 있었어요. 그것은 제가 전에 딱 한 번, 넬슨 만델라로부터 본 적이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랑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종의 아우라 같은 것이었어요.’ … 다이애나는 최근에 지뢰를 제거한 지뢰밭을 걸어가면서 사진을 찍는 데 동의했다. 그 사진이 그 어떤 호소보다 막강한 힘을 가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에는 신체적 위험이 따를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정말로 겁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해냈다. 수백만 시청자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왕세자비의 걸음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뢰 문제에 대해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무엇보다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다이애나 사랑을 찾아서’, 앤드루 모튼 지음, 유향란 옮김, 이너북, 2005년, 295~296쪽

고통을 전시하는 미디어

그녀들의 막강한 지위만큼 매력적인 것은 그녀들의 고통이었다. 에비타는 끔찍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유랑극단을 전전했던 파란만장한 과거와 다사다난한 연애사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이애나는 불행한 가족사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그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했다. 그녀들의 불행은 그 자체로 대중의 연민을 자극하는 ‘매혹의 요소’였다. 그녀들의 인간적 결점이 오히려 대중의 폭발적인 열광과 공감 어린 연민의 진원지가 된 것이다.

게다가 그녀들의 최대 무기 중 하나는 기존의 정치인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솔직함’이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늘 위기를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기존의 정치인과는 달랐다. 에비타 또한 자신을 창녀라고 비난하는 일부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으며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야 했던 과거를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대중에게 더 큰 사랑을 받았다. 다이애나는 자신의 불행한 가족사, 불륜과 자해, 폭식증과 우울증까지 모두 인정했고 그 솔직함 때문에 더더욱 대중의 공감을 얻어냈다. 특히 다이애나는 모든 걸 다 가졌지만 가장 중요한 것(남편의 사랑)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대중의 연민을 자극하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다 가졌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만큼이나 ‘드라마틱하게 불행’해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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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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