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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신동아 논픽션 공모 우수작

차고 나면 기우는 달

  • 유희인

차고 나면 기우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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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 나면 기우는 달

일러스트·조은명

내게 의지하시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시어머니와 친정아버지를 모셨다. 사리분별이 정확하고 준비에 철저하며 당신의 일에 흠 잡히는 것을 싫어하셨던 시어머니와 평생 동안 남의 밑에서 일해본 적이 없는 게 자랑이었으며 남달리 건강했던 친정아버지.

두 분 다 젊은 시절에는 한몫을 하시던 분들이었으나 세월에는 장사가 없어 노후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웰다잉

40대의 가장으로 식구들을 겨우 이끌고 있는 어느 중년 남자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시설에 모시려고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면 두 가지 방법밖엔 없는 것 같다. 어머니를 버리거나 아예 그만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것. 날더러 나쁜 놈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치매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어르신들이 집에서 자녀들의 수발을 받는 비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어르신들을 모시는 시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지만 어떤 수준의 시설에 계시건 속마음으로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 하신다. 다만 자녀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할 뿐.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친정아버지가 건강하신 동안에는 혼자서 지내셨지만 거동이 불편해지신 이후로는 내가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13년 동안 친정아버지의 수발을 들었다. 마지막에는 시설의 도움을 받았지만 어르신이 중증이 아니라면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전생수 목사님은 생전에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이런 당부를 하셨다고 한다.

첫째, 나는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지 않을 것인즉, 병원에 입원하기를 권하지 말라.

둘째, 나는 병에 걸려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어떤 음식이든 먹지 않을 것인즉 억지로 권하지 말라. 또한 내가 의식이 있는 동안에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나누기를 꺼리지 말라. 셋째. 내가 죽으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알려 장례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 넷째, 내가 죽으면 내 몸의 쓸모 있는 것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내가 예배를 집례할 때 입던 옷을 입혀 화장을 하고,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고향 마을에 뿌려주기를 바란다. 다섯째, 내가 죽은 뒤에는 나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땅 위에 남기지 말라. 와서 산 만큼 신세를 졌는데 더 무슨 폐를 끼칠 까닭이 없도다.

노력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남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잘 죽을 준비는 노년이 된 다음에 시작해서는 너무 늦다. 웰빙(well being)도 좋지만 웰다잉(well dying)도 일찍부터 준비하는 게 옳다.

모자란 사람

일본에서 살고 있던 시어머니가 귀국한 이후로 함께 지내던 작은 시숙 댁에서 시어머니와 문제가 생겨 남편의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일본에 있는 막내동서까지 포함하여 며느리가 넷인데 내가 셋째다. 큰형님은 그동안 시어머니에게 너무 무시를 당해서, 작은형님은 시어머니의 억지소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시어머니를 모실 수가 없다고 했다.

시어머니의 거취를 두고 형제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때에 큰 시숙 내외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이 없었고 그때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작은 시숙 내외는 누군가는 해야겠지만 우리는 이제 더 못하겠다고 했다.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남편이 자진해서 이번에는 자기가 모셔보겠노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일주일에 서너 번 다니는 성당에도 자기가 출근길에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막상 우리 집으로 모시고 온 다음에 남편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성당에 간 것은 대여섯 번뿐이고 실제로는 그게 다 내 몫이었다. 아이들은 내게 아버지 한 사람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서 아버지하고 똑같은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날 텐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놀렸다.

그래도 남편이 효자노릇 한 건 나와 시어머니 사이에 끼어들지 않은 일이다. 남편은 내가 시어머니와 무슨 일을 하던, 무엇을 먹던, 어디를 가던 전혀 참견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시어머니와 그런대로 잘 지낼 수 있었는데 이제 생각하면 남편의 고단수에 넘어간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친구 말대로 내가 좀 모자라서 시어머니를 모시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작은 시숙 댁에 있다가 우리 집으로 오신 일을 두고 당신이 여우를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만났다고 하셨다. (그럼, 나는 좀 모자란 호랑이?)

포르노

시어머니가 재일교포 거류민단 부인회에서 일을 보실 때였는데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으면 국회의원이건 사업가이건 교수이건 거의 모두가 포르노극장에 가고싶어 하더란다. 그럴 때마다 늘 남자직원들을 시켜 안내하게 했었는데 어느 날 도대체 그게 무엇이길래 일본에 오는 사람마다 보고 싶어 하는가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부인회 임원 몇 명과 함께 포르노영화를 보러 가기로 하고 저녁 늦게 만나 머플러를 뒤집어쓰고 표를 사서 들어갔다고 하셨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서 시어머니께 여쭈어보았다.

“그래서 재미있게 보셨어요?”

“재미있는 게 다 뭐냐? 구역질이 나서 도중에 나와버렸다.”

그래도 왕성한 호기심은 충족되셨을 테지.

시어머니는 미모가 뛰어난 데다 머리도 좋고 사리에 밝았다. 예의범절에도 어긋남이 없었다. 소년·소녀가장을 지원하기도 했고 양로원 등의 복지시설에도 많은 돈을 기부하셨다. 시어머니의 방은 언제나 청결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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