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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바리스타 박영순의 커피 인문학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커피,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갔을까

  • 박영순 | 바리스타,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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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는 커피를 정말 사랑한다. ‘세상에서 원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많은 원자재’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한국인에게도 커피는 물처럼 많이 마시는 음료다. 성인 1인당 1년에 484잔을 마신다. 그런 커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까. 커피가 주는 행복은 맛과 향뿐만이 아니다. 커피는 그 뛰어난 향미만큼이나 풍성한 이야기를 피워내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세계 커피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는 아라비카 커피의 꽃과 열매. 원산지는 에티오피아다.

커피는 누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이를 두고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오래도록 경합을 벌였다. 아프리카(에티오피아)냐 아라비아 반도(예멘)냐, 그리스도 국가(에티오피아)냐, 이슬람 국가(예멘)냐의 자존심이 걸린 논쟁이기도 했다. 공방 끝에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했지만, 최초로 재배한 곳은 예멘”이라는 쪽으로 절충안이 나왔지만, 모를 일이다. 언제 어떤 숨은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기록된 역사가 반드시 진실이라곤 할 수 없다. 어떤 역사는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더욱이 기록하는 자가 사건의 당사자라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기록을 남기려는 유혹에 빠지리라.



칼디의 전설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에티오피아에선 지금도 전통 방식으로 커피 열매를 햇볕에 말린다. 수확한 열매가 땅에 닿아 썩지 않도록 ‘아프리카 베드’로 불리는 틀을 짜서 건조시킨다.

커피 입문자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재미난 이야기는 ‘염소지기 칼디(Kaldi)의 전설’일 것이다. 내용인즉 이렇다.

“아주 먼 옛날, 에티오피아의 계곡에 칼디라는 목동이 살았다. 염소를 계곡에 풀어놓았는데, 어느 날 늙은 염소가 힘이 솟구치는 듯 활발히 움직이며 젊은 염소들을 제압하는 게 아닌가. 가만히 살펴보니, 빨간 열매가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늙은 염소는 빨간 열매를 먹으면 기운차게 움직였다. 칼디는 그 이유가 궁금해 열매가 많이 달린 가지를 꺾어 마을의 지혜로운 사람(대체로 ‘수도승’으로 기록함)에게 가져다줬다.

칼디는 ‘어르신! 염소가 이 열매만 먹었다 하면 날뜁니다. 이유를 알려주세요’ 라고 청했다. 지혜로운 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거기에 두고 가거라’ 했다. 며칠이 지나 칼디가 지혜로운 자를 다시 찾았다. 그는 칼디를 보자마자 버선발로 뛰어나와 칼디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는 ‘열매를 더 갖다달라’고 애원했다. 그 열매를 먹고는 밤새 졸지 않고 기도를 잘 올렸다면서 마치 열매에 중독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칼디의 전설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우리네 구전동화 같은 이야기인데, 커피의 기원을 설명하는 정설처럼 굳어졌다. ‘칼디’라는 이름을 내건 카페나 원두 상표를 세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칼디가 어느 시대 사람이고, 언제부터 그들이 커피씨를 볶는 법을 깨우쳤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커피가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전해진 9세기보다 훨씬 이전이며, 어쩌면 기원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커피의 기원과 관련해 칼디나 에티오피아가 언급되면 그 시기를 구체적으로 적지 않고 ‘아주 먼 옛날’이라고만 한다.

칼디에 대해 말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지면서 역사적 사실처럼 커피 애호가들을 매료시킨다. 비록 칼디가 우리를 관능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커피의 향미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칼디의 존재 덕분에 커피 마시는 자리의 이야깃거리는 더욱 풍성해진다. ‘스토리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버전으로 전해지는 칼디 이야기의 허점을 파고 들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칼디를 양치기라고 해놓고는 커피 체리를 먹고 춤추는 염소를 봤다고 말하는 모순. 2~3세기의 일이라면서 칼디가 이슬람 수도승에게 커피를 전했다는 역사적 착각.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것이 610년이니, 7세기 초 이전엔 이슬람 수도승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에티오피아 기원설

태초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콜롬비아 명품 커피의 대명사인 안티오키아 커피 열매.

우리도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1896년 아관파천 때라면서 고종황제에게 융드립한 커피를 제공하는 어느 영화 속 한 장면은 커피 애호가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커피를 필터링해 마시는 것은 그로부터 12년 뒤인 1908년 독일의 멜리타 여사가 도구를 만듦으로써 가능해졌다.

어쨌든 아랍의 적지 않은 역사학자가 자신들의 논문이나 저서에 칼디를 예멘의 목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계인을 열광시키는 커피가 ‘자랑스러운 이슬람의 문화’라는 논리를 완성하려면 커피의 기원 역시 이슬람 국가 어느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세월이 드러내주는 법. DNA 분석을 통해 커피나무의 기원이 아랍인들이 주장하듯 인류사에서 커피를 처음 경작한 자신들의 땅 예멘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고원이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힘을 잃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티오피아 고원에선 재래종 커피나무가 속속 발견된다. 커피의 기원지라고 말하려면 이처럼 원종(native variety)이 있어야 설득력을 지닌다.

에티오피아는 3000년 전 이스라엘의 솔로몬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메넬리크 1세가 초대 황제가 됐다는 건국신화를 가진 그리스도 국가다. 지금도 크리스마스에 염소를 잡아 가족과 함께 나누며 축하하는 풍습이 있다. 에티오피아가 외세의 지배를 받은 것은 16세기 이슬람 교도에게 14년, 20세기 이탈리아에 5년뿐이다. 앞서 6세기쯤엔 당시 아비시니아(현재의 에티오피아)가 예멘을 포함한 아라비아 남부지역을 공격했다. 아마도 이때 예멘으로 커피가 전파됐을 것이란 게 에티오피아의 시각에서 본 커피의 역사다.

그렇다면 에티오피아인은 왜 커피의 기원에 대한 자신들의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야기를 만들긴 했지만 퍼트리지 못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4대 커피 기원설(뒤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중 칼디, 오마르, 마호메트의 전설은 ‘커피의 각성효과’를 토대로 이슬람 쪽에서 만든 이야기라고 본다. 나머지 하나인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각성효과가 아니라 ‘에너지 원천으로서의 커피’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로 흐른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유래설은 기록이 아니라 구전인 탓에 생명력을 지니기엔 부족했다.

커피의 기원에 대한 인류의 첫 기록은 이탈리아 로마대 언어학 교수인 안토니 파우스트 나이로니가 1671년에 쓴 ‘잠들지 않는 수도원’이다. 이 책에 “이슬람 수도승이 칼디가 준 커피 열매의 쓰임새를 몰라 불에 내던졌는데, 기분 좋은 향이 나자 볶은 콩을 갈아 따뜻한 물에 타서 먹었다”라고 적혀 있다. 칼디 때 이미 커피씨를 볶아 먹는 단계를 깨우쳤다는 말인데, 비약이 이 정도면 대단한 이야기꾼임에 분명하다. 이 이야기는 1922년 커피의 기원을 심도 있게 추적한 윌리엄 유커스의 ‘커피의 모든 것(All About Coffee)’에 인용되면서 정설처럼 됐다.

반면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커피나무 열매를 다른 곡류와 함께 갈아 식량으로 먹었다”는 기록 말고는 별 재미가 없다. 그렇다보니 칼디나 오마르, 심지어 지극히 종교적인 마호메트 기원설보다도 파급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기원설은 뿌리가 더 깊고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커피 그 자체에 대한 첫 기록은 나이로니보다 700년 이상 앞선 서기 900년쯤 페르시아 의사 라제스가 남겼다. 그는 커피를 ‘번컴(Bunchum)’이라고 적었는데, ‘따뜻하면서도 독한, 그러나 위장에 유익한 음료’라고 표현했다. 이어 1000년경 무슬림 의사이자 철학자인 아비세나는 커피나무와 생두를 ‘분(Bunn)’, 그 음료를 ‘번컴’이라고 구별해 적으면서 약리효과도 기술했다.

두 사람의 기록은 커피의 기원지가 에티오피아임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지구상 어디를 뒤져도 커피를 ‘분나(Bunna)’ ‘부나(Buna)’ ‘분’ ‘번컴’이라고 부르는 곳은 에티오피아밖에 없다. 커피 원산지로 꼽히는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에선 지금도 커피를 지칭할 때 ‘c’나 ‘k’는 발음조차 하지 않는다. 에티오피아인들이 스토리텔링을 잘했다면 커피는 오늘날 번컴으로 불렸을지 모른다. 에티오피아인들 사이에 전해지는 커피 기원설도 꽤 흥미롭다. 사연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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