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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의 고통 개인주의의 발견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자기계발서의 진화

  • 이문원 | 문화평론가

집단주의의 고통 개인주의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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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력, 노오력, 더 나아가 노오오력을 해도 시원찮다는 세상에 맞서는 자기계발서들이 나타났다.
  •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 ‘본성이 답이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확 끄는 이 책들을 보면 세태가 읽힌다.
집단주의의 고통 개인주의의 발견

최근 등장한 ‘4세대’ 자기계발서는 개인주의 가치를 중시한다.

우리 출판 시장에서 자기계발서가 스테디 품목이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정확히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이전 30여 년 동안 당연시되던 고도성장에 제동이 걸리고 갑작스레 총체적 불황을 맞이한 충격이 방아쇠가 됐다.

처음은 미국발(發) 자기계발서들이 밀고 나갔다. 2000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시작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아침형 인간’에서 2007년 ‘시크릿’까지 열풍이 이어졌다. 대부분 관념론적 차원의 자기계발, 즉 ‘내가 변해야 내 주변 상황이 변한다’는 논리를 폈다. 어떤 의미에선 ‘자기계발’이란 명제에 가장 잘 들어맞는 책들로 볼 수 있다.



킬링과 힐링을 넘어

이런 콘셉트의 인기가 시들해진 게 2008년경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여파로 전 세계적 경제불황이 닥치면서 더더욱 그랬다. 하라는 대로 시간 쪼개가며 스펙도 쌓고, 없는 돈에 견문도 넓혀봤지만, 보상은 기대에 현저히 못 미쳤기 때문이다. 자기계발 해봤자 딱히 얻는 것도 없으니 그저 위로만 받고픈 심리가 생겨났다.

그래서 이후 ‘힐링’ 서적이 등장했고, 열풍이 일었다. 2010년경부터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같은 베스트셀러가 쏟아졌다. 이 책들은 생존경쟁 속에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던 감성적 요소들이야말로 인생에서 진정 값진 자산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그러다 이 열풍도 곧 잦아들었다. 이전 자기계발서와 마찬가지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힐링은 그저 일시적 진통제에 불과했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게 힐링의 정반대편에 선 ‘킬링’ 서적이다. 위로에 목마른 젊은 세대의 나약함을 가차 없이 공격하며 실질적 대안을 찾으라는 책들이다. 좌파적 접근, 즉 구질구질하게 위로나 받을 생각 말고 뛰쳐나가 네 권리를 주장하라는 주문이 강신주의 ‘감정수업’이라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상식적 판단을 하라는 우파적 접근이 남정욱의 ‘차라리 죽지 그래’다.

하지만 이 열풍도 금세 꺼졌다. 그보다 더 살갑고 더 솔깃하며 덜 고통스러운 ‘4세대’ 자기계발-처세술 콘셉트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중 한 권의 제목 하나만으로도 이 새로운 트렌드의 셀링 포인트를 짐작해볼 수 있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 ‘너무 애쓰지 말아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나는 왜 똑같은 생각만 할까’ 등도 이런 유형이다. 공통점은 명료하다. 첫째, 힐링에 이어 킬링 열풍도 꺼져가던 2015년경부터 우후죽순 등장한 책들이다. 둘째, 대부분 일본발(發) 책들이다. 셋째, 이제 노력도 의미를 못 찾겠고 위로도 필요 없으며 그렇다고 꾸지람 듣는 것도 싫으니 그저 하루하루 무리하지 않고 안분지족하며 살겠다는 내용이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를 보자. 일본 기업들의 고질인 잦은 야근과 야근수당 미지급 건을 중심으로 일본의 기업 문화를 돌아보는 이 책은, 불합리한 사내 규율을 납득시키기 위해 등장하는 ‘사회인으로서의 상식’이란 레토릭을 이렇게 공격한다.


결국 ‘사회인으로서의 상식’이라는 말은 특정 회사나 업계 내에서 암묵적으로 정한 규칙을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것을 ‘상식’이라고 주장하다니, 좀 이상하지 않은가. (…) ‘사회인으로서의 상식’이 어떤 내용인지 진지하게 따져보지 않고 듣자마자 사고를 정지한 채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자기 권리를 지키면서 제대로 일하는 날이 오기는 아직 멀었다.




의도된 트렌드?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목차 챕터만 넘겨 읽어봐도 알 수 있다. 그중 3장 ‘열심히 하지 않아야 더 잘 풀린다?’에 실린 ‘너무 열심히 하지 않는 비결’ 11개 항목이 책 전체의 메시지를 전한다.

①거절할 줄 알기 ②혼자 다 하지 않기 ③때로는 기꺼이 민폐를 ④남들에게도 나를 도울 권리를 ⑤가끔은 대충대충 ⑥맡길 때는 확실하게 ⑦기대에 부응하지 않기 ⑧콤플렉스 드러내기 ⑨‘나만의 규칙’ 깨보기 ⑩‘좋은 사람’ 그만두기 ⑪ 계획하지 않을 자유

다른 책들도 맥락은 비슷비슷하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는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의 여성 에세이 버전이고, ‘나는 왜 똑같은 생각만 할까’는 이 계통에서 드문 미국 저자가 쓴 ‘무작정 노력은 하지 말되 창의력으로 승부 걸라’는 식의 조언서다.

이 책들을 한 묶음으로 묶어 새로운 콘셉트 트렌드라 일컬어도 무리가 없다. 아니, 애초에 그런 신종 트렌드를 ‘의도’했기에 비슷비슷한 책들이 일거에 튀어나오게 됐다는 논리가 더 적절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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