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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획, 한 획 역사의 자부심을 得한다”

500년 만에 부활하는 삼국유사 목판

  • 이권효 | 동아일보 대구·경북취재본부장 boriam@donga.com

“한 획, 한 획 역사의 자부심을 得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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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목판 복각은 한민족 얼 새기는 역사 계승
  • ● 일연스님 삼국유사 완성한 곳에 도감소(都監所) 설치
  • ● 각수 7명 하루 100자씩…총 8만9300자 새겨야
“한 획, 한 획 역사의 자부심을 得한다”

삼국유사 목판이 경북 군위군 삼국유사목판도감소에서 500년 만에 복각되고 있다. [동아일보]

고조선(왕검조선), 단군신화, 홍익인간, 연오랑 세오녀, 만파식적…. 이런 말을 듣는 한국인은 거의 반사적으로 ‘삼국유사’와 함께 저자 일연스님을 떠올린다. 삼국유사만큼 한국인에게 친근한 역사서도 드물다. 삼국유사 맨 뒤에는 다음과 같은 발문(跋文)이 있다.

“우리 동방의 삼국에는 본사(本史)와 유사(遺史) 두 책이 있지만 달리 간행된 적이 없고 단지 본부(本府, 경주)에만 남아 있는데, 세월이 흐르며 자획이 닳아 없어져 한 줄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 몇 글자뿐이다. (…) 이 나라에 살면서 역사를 알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다시 간행하기 위해 널리 완본을 구하려 했으나 얻지 못했다. 지금 다시 간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지난 일을 후학들이 알 수 없게 될까 걱정스럽다. (…) 이런 사정을 알아 영원히 전할 것을 후세의 학자들에게 바란다.”

1512년(조선 중종 7년) 겨울에 경주부윤(경주의 행정책임자) 이계복(李繼福)이 쓴 내용이다. 삼국유사가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인쇄본을 구해 판각한 과정을 설명했다. ‘임신본 삼국유사’(조선 중기본)로 불리는 이 목판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세계유산으로 널리 알려진 고려대장경(해인사 팔만대장경)에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한국국학진흥원(경북 안동시)의 장판각에 보관 중인 조선시대 목판 6만4000여 장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국학진흥원이 전국에 흩어진 목판을 10년 넘게 수집한 뒤 완벽하게 보관한 덕분이다.



목판을 새기는 이유

목판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옛날식 인쇄 방법이다. 그런데도 세계유산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얼’과 ‘정신’ 같은 인문적 가치 때문이리라. 목판 인쇄는 공동체의 유지 발전을 위한 소통의 가교 노릇을 오래도록 해왔다. 많은 비용을 들여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제작 방식도 목판의 가치를 높인다.

경상북도가 임신본 삼국유사 목판이 사라진 지 500년 만에 이를 다시 새기는 이유도 이계복의 심정과 다르지 않다. 단절된 삼국유사 목판을 다시 제작하는 1차적 목적과 함께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통해 보여주려 한 역사적 주체성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려는 2차 목적이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문화유산으로서 새로운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도 담겼다.

경북도는 2014년 5월 삼국유사 목판사업 계획을 세웠다. 임신본을 마지막으로 목판이 사라진 점, 경북 경주가 목판 제작의 중심지였던 점,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완성한 곳이 경북 군위군에 있는 인각사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목판 복각(復刻)에 대한 책임이 경북에 있다는 역사의식의 발로다. 지난해 11월 경북도와 군위군, 한국국학진흥원은 군위읍 사라온이야기마을 안에 복각사업을 위한 ‘삼국유사 목판 도감소(都監所)’를 열었다.

도감소에선 전국에서 선발한 각수(刻手) 7명이 판각 작업을 한다. 목판(가로 62㎝, 세로 28㎝, 두께 4㎝)의 한 면에는 20줄을 새긴다. 1줄에 21자를 새기므로 전체 글자는 420자. 뒷면에도 새겨 목판 1장 양면에 840자를 새기게 된다. 전문 각수가 하루 10시간가량 작업해도 100자 정도를 새길 수 있다. 안준영 각수(58·경남 함양 이산책판박물관장)는 “각수의 손끝에서 인쇄를 위한 목판이 비로소 만들어지기에 글자 하나하나에 몰입한다”고 말했다.

각수들은 글자를 ‘파거나 새긴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얻는다(得)’고 말한다. 가로 세로 1㎝ 크기인 글자를 인쇄본의 글씨대로 새기려면 조각칼을 쥔 손과 마음이 조금도 흐트러지면 안 되기 때문. 획수가 복잡한 한자가 많아 더욱 그렇다. 이런 작업을 삼국유사 8만9300여 자를 마칠 때까지 거듭하는 고된 과정이다. 그래서 각수들은 “판각은 수행(修行)의 자세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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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효 | 동아일보 대구·경북취재본부장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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