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 전 마지막으로 출연한 나꼼수에서 “이제 교도소가 밝아질 거예요. 제가 해피 바이러스 아닙니까”라며 명랑한(?) 작별인사를 했던 그는 출소 후 처음 찾은 국회에서 “정치인이 만기 출소하기는 단군 이래 내가 최초”라며 ‘봉도사’다운 복귀 인사를 했다.
1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났다. 말쑥한 슈트 차림의 그는 건강해 보였고 표정도 밝았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뜸 들이는 법이 없었다. 심심한 국에 소금을 치듯 ‘깔대기’(자기 자랑을 뜻하는 인터넷 은어)도 종종 들이댔다.
▼ 교도소에서 식스팩 만들어 나왔다면서요.
“대법원 판결 나오기 2, 3주 전부터 전문 트레이너에게 ‘맨손으로 운동하는 법’을 배웠어요. 감옥 들어갈 준비를 한 거죠. 총 366일, 나오는 날까지 운동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축구를 했고, 고교시절엔 복싱을 했지요.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김광선이라고, 절친한 후밴데, 지금도 ‘형님 챔피언 먹는다, 아마추어 대회 나가자’고 해요. 그 정도로 운동을 좋아합니다. 감옥에 있는 애들은 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내가 지들보다 더 열심히 하니까 홍성교도소에 운동 바람이 불었죠. 올봄에 맨손으로 하는 헬스 책을 낼 거예요. 책 제목은 ‘진보의 마음, 보수의 몸매’. 식스팩은 그때 가서 공개하죠.”
‘진지한 봉도사’
지난 크리스마스 새벽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충남 홍성교도소 문을 나선 정 전 의원은 서울 평택 부산 제주 등을 돌며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강정마을 등 첨예한 갈등의 현장을 찾아 다녔다. 1월 5일에는 제주에서 토크 콘서트를 열고 출소 후 처음으로 일반 대중과 만났다.
▼ 1년 만에 대중 앞에 선 소감은.
“제주에서 팬카페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이하 미권스) 친구들을 만났는데, 가급적 술자리는 만들지 말자 싶어 토크 콘서트를 마련했습니다. 술자리는, 특히 선거에서 진 상황에선 도움이 안 되거든요. 여러 사람 얘기를 들어봐야 하는데, 술자리는 결국 과격한 분위기로 흘러가게 마련이니까요.
일방적인 강의는 지양하려고 해요. 21세기 지도자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집합적 리더십을 보여야 합니다. 또 제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면 열정이 지나쳐 공격적 발언을 많이 하거든요.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북스럽게 느끼는 사람도 있죠. 내 관심은, 48%는 온전히 지키고 51% 중에서 일정 부분 우리와 교감하는 분들을 끌어오는 겁니다(48%와 51%는 각각 문재인과 박근혜의 대선 득표율이다).
그러려면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콘텐츠 못지않게, 방법도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주 콘서트는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내가 90분간 혼자 얘기한 것도 그렇고 말투도 여전히 공격적이더라고요.”
▼ ‘감옥 다녀오더니 정봉주가 진지해졌다’고들 합니다.
“원래 진지해요. 나꼼수 때는, 정치인은 모두 진지하니까 ‘정봉주는 쉽게 다가갈 여지가 있다’고 느끼게 할 필요가 있었죠.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죠. 이제는 모두들 내가 얘기하는 정치는 재미있다고 여기잖아요. 워낙 위대한 정치인이다보니까(웃음). 정봉주는 여전히 위트 있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지만 그 비중은 조절할 필요가 있죠. 이제는 내용 중심으로 가야죠.”
▼ 약해진 건가요.
“MB를 공격할 땐 최전방에 선 상황이었습니다. 쌍방이 무차별 공격을 했었죠. 총, 칼, 대포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했어요. 지금은 저쪽 기운은 올라가고 우리 기운은 내려가는 때입니다. 군자의 중용은 시의적절한 때를 맞추고, 소인의 중용은 기탄없이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싸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나꼼수 때의 60mm 대공포 말고, 600mm를 장착하고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다만 진검은 뺐다 끼웠다 하면 녹슬어요. 한번 뺄 때 제대로 빼야지.”
감옥 벽에 등 닿는 순간…
▼ 나꼼수로 한창 주가 올릴 때 수감됐습니다.
“19대 총선이 임박하면서 삶이 자꾸 관성으로 흘러간다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또 국회의원 하면 뭘 하지? 과연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숲 속에 들어가 나무만 보게 되지 않을까?… ‘황금 뇌를 가진 사나이’처럼 채우진 않고 자꾸 머릿속을 떼먹고 있다는 느낌. 그때 ‘꿈’이라고 여겼던 세 가지가 공부 실컷 하고 싶다, 20대 몸매로 돌아가고 싶다, 술을 끊고 싶다였어요. 그땐 내가 죽냐 술이 죽냐 하며 마시면서 그걸 정치라고,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여겼어요. 껍데기의 삶을 살았던 거죠. 감옥 들어가서 이 세 가지 꿈을 실현했으니 하늘이 응답해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죠.”
▼ 억울하진 않던가요.
“저는 MB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전 누굴 원망해본 적이 없어요. 그분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애잔한 동정심이 들 정도로 ‘왜 저러고 살까’ 싶었는데, 프로이트 심리학을 들여다보니 MB의 심리적 상황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 어떤 점에서?
“본인이 기억하기 싫은 것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넘어오면 정신질환을 겪는다는 거예요. 본인이 싫어하는 것이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파수꾼이 딱 막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각하께서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하면서 사는 거예요. 우리가 보면 잘못한 게 있잖아요. 정봉주를 BBK로 감옥 보낸 것도 잘못했다고 보지 않는 거예요. 그래도 저는 누구 탓으로 돌리지 않아요. 어릴 때 남 탓으로 돌리는 건 덜된 사람이란 얘기를 듣고 머릿속에 깊게 박혔습니다.”
▼ 감옥 생활은 어땠습니까.
“20대 초반에 수감됐을 때와 달리 육체나 정신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그땐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번엔 아내와 자식들도 있고, 부모님도 노령이시고, 사회적으로 쥐고 있는 것도 많으니까…. 마음이 평안해지는 데 4, 5개월 걸렸어요.
우리가 평소에 벽을 느끼며 살지 않잖아요. 갇혔다는 건 엄청난 공포감을 주거든요. 등이 벽에 탁 닿으면 움찔해요. 양반다리 하고 앉아 벽에 허리만 살짝 댔지, 등이 닿으면 얼른 떼곤 했어요. 벽을 인식하면 돌아버리거든요.
그래서 생활을 철저하게 해야 했어요. 미권스 회원 중에 마취과 의사가 있어요. 두세 달 밤잠이 오지 않아 그분과 편지 주고받으며 진단도 받고요. ‘마음을 들어온 손님이라고 보면, 저 혼자 왔다가 저 혼자 사라진다’는 혜민스님의 책, 기구한 삶을 산 명진스님의 책 등이 위안이 됐습니다. 저녁마다 독방에서 1시간 반씩 운동한 것도 피곤해야 잠을 잘 자니까.”
20만 명이 넘는 미권스의 회원들은 ‘봉도사’가 감옥에 있는 동안 매일 면회를 오고 하루에 수십 통씩 편지를 보내왔다. 1년간 받은 편지가 1만여 통. 그는 “친구가 엑셀 파일로 정리 중인데 일주일 반이 지나도록 아직도 못 끝냈다”며 “단군 이래 정치인이 받은 최다 편지량”이라며 웃었다.
김어준과 틀어지지 않았다
▼ 지난해 10월 모범수가 됐는데도 가석방되지 않았죠.
“당 지도급 의원들이 면회 와서 놀라더라고요. 은진수는 석방하고, 은진수보다 절대적으로 사건 성격이 약한 정봉주는 석방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저렇게 못해요. 우리 쪽 석방해줘야 하면 저쪽과 매칭했어요. 그런데 MB는 은진수는 내보내도 저는 안 내보내잖아요. 홍성교도소 교도관 중에 새누리당 지지자가 많았는데 날 안 내보내는 걸 보고 문재인 지지로 여럿 돌아섰어요.”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은 부산저축은행 측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정 전 의원과 비슷한 시기에 구속 기소돼 복역하다 전체 형기의 70% 이상을 채운 뒤 지난해 7월 말 가석방됐다. 이에 민주당은 “일반 범죄사범은 형기의 70%를 복역하면 가석방 대상자가 되지만 공무원 금품수수 등 범죄사범은 형기의 90% 이상은 복역해야만 가석방 대상자가 되는 것이 관례”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한 배려다”라고 비난했다.
그는 ‘나꼼수 신드롬’의 주역이다. 그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중심이 되어 2011년 4월 시작한 나꼼수는 대선 전날인 지난해 12월 18일 마지막 방송까지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모 일간지와의 옥중 인터뷰에서 나꼼수를 질타했다. “팬덤에 빠져 비판은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고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고 했다.
▼ 김어준 총수와 사이가 멀어진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는데.
“김어준이 나한테 기분 나빠 마음이 틀어질 수는 있지만, 저는 대인의 풍모로 누구하고 틀어지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 김 총수와 주진우 시사인 기자는 유럽에 왜 갔나요.
“검찰 소환 같은 걸로 자칫 억울하게 당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시간을 버는 과정인 것 같아요. 추정컨대 그 두 사람을 처리해주는 걸로 이 정권을 끝내면 새로 출범하는 정권은 부담 없잖아요. 가끔 전화도 와요. (유럽으로) 놀러오라고 하는데 난 시간이 없으니까.”
▼ 나꼼수 4인방이 다시 뭉칠 계획은 없는지.
“나꼼수는 ‘가카헌정방송’이 모토였습니다. MB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고 국민이 바로 알게 하겠다는 거였어요. 지난해 12월 19일로 MB 정권이 사실상 종료됐으니 나꼼수의 물리적 시간은 끝났습니다. 제 역할도 그때 끝났고요. 그들은 언론인이고, 저는 정치인입니다. 이제 제 갈 길을 가야죠. 하지만 나꼼수의 비판 정신은 ‘국민TV’ 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사회운동으로 갈 수도 있어요.”
가칭 ‘국민TV’는 나꼼수 멤버이던 김용민 시사평론가 등이 주축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안방송이다. 김용민은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친노나 친민주당같이 특정 세력을 대변하지 않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을 견제하고 힘없는 사람을 대변하는 대안방송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 국민TV에 동참하나요.
“대안방송을 만드는 것은 참 좋은 방향이고, 각계각층의 여러 분이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서 참여해야 하나? 의문이에요. 나꼼수로 싸울 때는 육해공군이 나눠 있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전방위적으로 다재다능한 전투능력이 필요해서 이거저거 다 했던 거지요.”
나는 ‘대기선수’
▼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어요. 정말 성공해야 합니다. 국민의 삶이 달린 문제니까. 그런데 전제는, 비판하는 세력을 동업자로 인정하는 겁니다. 지난 5년간 MB 정권은 브레이크 없이 차를 몰고 왔어요. 브레이크가 뭐냐? 차의 비판 기능, 즉 제어장치예요. 비판은 위험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기능입니다. 내용과 정책 공개하고, 좀 늦더라도 동의 구하고…. 빨리 간다고 5년을 달려봤지만 원점은커녕 후진한 국가가 됐잖아요. 조금 가더라도 국민에게 혜택이 고루 퍼지고 행복한 사람이 늘어나고…. 이게 성공한 나라 아닙니까. 박근혜 당선인이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하기로 약속했으니 그랬으면 좋겠어요.”
▼ 박 당선인은 잘하고 있다고 보나요.
“그런 각론은 얘기 안 하겠습니다. 축구로 따지면 나는 대기선수예요. 필드에 있는 11명의 선수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 내 포지션으로 적절한 게 아닙니다.”
▼ 민주당은요?
“민주당 선수들에게 훈수하는 것 역시 감독이 할 일이지 제가 아닙니다. 다만 게임에서 졌거든요. 그럼 무엇이 문제였는지 아주 치열하게 논쟁하라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당장 내일 모레 지방선거나 총선 같은 게임이 있는 게 아니니까.”
▼ 민주당에서 역할을 맡을 계획인가요.
“그럴 계획은 없습니다. 물론 민주당이 잘되게 도와야지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잘 돕는 건지…. 어제 문재인 전 후보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문 후보는 ‘당이 잘되도록 당신이 열심히 도와야 하지 않느냐’ 하셨고, 저는 ‘아직은 시간이 좀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했습니다. 당에서는 미권스 회원도 많고 인지도도 높고 하니 도와달라는 사람도 있고, 국회의원도 아니고 징역 한 번 갔다 온 게 무슨 대수냐며 주접떨지 말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슨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계산이 안 나왔습니다.”
▼ 안철수 전 후보와 민주당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돼야 할까요.
“그건 잘 모르겠고…. 내가 왜 위대한 정치인이라고 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갑작스러운 ‘깔대기 질문’에 기자가 당황하자 그는 헛헛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정치 필드에서 뛴 지 20년이 넘었어요. 인간의 본성을 유지하는 정치인이 거의 없어요. 현실에 오염되거나, 부패하거나, 자기중심적인 쪽으로 가지 않고 버텼기에 내가 위대한 정치인이라는 거예요. 계파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제가 그러잖아요. ‘정봉주의 계파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하나의 계파라면 나의 계파는 국민이다.’ 돈 욕심 내지 않고 살기 참 잘했다 싶은 게, 내 보좌관들 통장을 죄다 조회하고 그랬대요. 근데 돈 문제 하나도 안 나왔잖아요.
많은 이가 구태를 비판하며 정치권에 들어와도 구태에 물들지 않기가 쉽지 않아요. 정치를 시작한 이상 빨리 이 판을 익히면서 자신의 깨끗한 정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보여줘야 해요. 안철수 전 후보는 여전히 외곽에 있는 듯한 느낌이에요. 진흙탕이라면 진흙을 묻히고, 똥통이라면 똥을 묻히면서 그 안에서 연꽃을 피우려고 노력해야죠. 참신한 아웃사이더 역할은 끝났어요. 정면으로 부딪치다보면 별 사람을 다 만날 겁니다.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문제가 있는 정치인이라도 부정적인 면을 없애고 긍정적인 면을 취하면서 같이 가려는 노력. 이런 게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이에요. 다 쳐내봐요. 마지막엔 저 혼자 남지.”
정치보다 思惟 먼저
그는 감옥에서 혼자 있는 시간엔 주로 독서를 했다. 도올 김용옥 원광대 석좌교수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그가 해설한 ‘맹자’ ‘중용’ 등 중국 고전과 경제 석학 제레미 리프킨 등의 책을 주로 읽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무엇이 정치의 본질이며 국민을 위해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그는 “감옥에서 책을 읽으면서 이 정도 공부 안 하고 정치하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시류에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는 걸 정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인이 이러면 국민은 불행해져요. 오바마 자서전에 ‘수도승처럼 공부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감옥에서 게을러질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렸어요.”
그는 감옥에서의 사색을 정리한 책 ‘대한민국 진화론’을 1월 말에 펴낸다. 출판사로부터 미리 초고를 받아 읽었다. 200자 원고지 1200여 장 분량이다. 우리 사회, 우리 정치의 문제를 진단하고 경제 노동 언론 교육 남북문제 등 각 분야 정책에 대한 자신의 제안을 담았다. 핵심은 ‘광의의 정치’다. 그는 서문에서 ‘정권을 교체하거나 유지하는 것이 패도(覇道)의 정치라면 국민의 마음, 천심(天心)을 얻어나가는 것이 왕도(王道)의 정치’라고 썼다.
▼ 정봉주가 하겠다는 광의의 정치는 어떤 건가요.
“당에서 역할을 맡고, 선거에 출마해 현직이 되고…. 이런 건 협의(狹義)의 정치입니다. 사회를 건강하게 체질개선하고, 구조를 바꿀 기반을 만드는 게 광의의 정치예요. 광의의 정치를 잘하면 정권을 잃어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이제 주전선수로 나서기보다 사회구조를 탄탄하게 만드는 데 전념하고 싶어요. 미권스를 오프라인 단체로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농촌공동체, 환경단체 등 사업을 해서 일자리도 만들어야죠. 초기엔 ‘벙커원’(나꼼수가 서울 대학로에 차린 카페)도 괜찮은 모델이라고 봐요. 수익을 올리면서 여러 주제로 토론회를 여는 거죠. 이런 공간이 전국으로 확대됐으면 좋겠어요.‘봉닭’이라고, 미권스에서 닭가슴살 사업을 할까 해요. 종잣돈을 만들면 현실에 뿌리내린 정치학습의 장을 만드는 거죠. 이게 되면 보수진영도 좋아요. 정치를 함부로 할 수 없으니 위험한 쪽으로 안 가는 거죠.”
▼ 정치, 정치인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하는데요.
“도올 선생이 ‘한국 정치가 왜 이렇게 천박하냐. 사유의 체계를 먼저 정리하고 그다음 정치를 하면 후퇴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를 먼저 시작하면 사유의 체계를 형성할 시간이 없다’고 했어요. 우리 정치인들은 정치를 먼저 생각하죠. 국회의원 되고, 장관 되고, 정권 잡고 하는 패도정치를 하죠. 스웨덴 사민당의 복지체계를 세운 건 정치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 비그포르스(Wigforss)입니다. 유럽은 사유 먼저 정치 다음이죠. 우리도 그렇게 달라져야죠.”
I may be wrong
▼ 달라질 수 있을까요.
“도올 선생이 감옥으로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정봉주가 유일하다. 그래서 당신을 주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암만 깔대기를 들이대도 이건 너무한데?(웃음) 한국 정치의 흐름을 본다면 사유체계를 가진 정치인이 많이 나오는 것이 발전이요, 국민 삶을 바꿀 수 있는 변혁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은 ‘구(舊)정치질서의 막내’ 쯤으로 볼 수 있죠. 그럼 새로운 정치 질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사유의 측면, 정치철학의 측면이 깊어질 필요가 있어요.
정치인은 끊임없이 자기 안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제가 안철수 전 후보가 얘기한 ‘I may be wrong’이란 표현에 딱 꽂혔어요. 정치인이라면 가슴속에 새겨야 할 표현이에요. 사람들의 비판을 경청하고 내가 한 이 선택이 과연 옳은지 끊임없이 의심해야죠. 도마복음에 ‘귀 있는 자, 들어라’는 구절이 있어요. 정치인은 비판에 귀를 닫고 멀리합니다. 그럼 그 피해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날아오고, 종국엔 국민에게까지 갑니다.
동료 정치인들이 ‘어떻게 하면 국민과 소통을 잘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저는 ‘전화번호 공개하세요’라고 해요. 제가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 공개한 단군 이래 최초 정치인이에요. 저는 인터넷에도 올리고 토크 콘서트에서도 받아 적으라고 해요. 우리가 (대선에서) 진 거, 사실은 우리가 벽을 쳐놓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래서 들어오고 싶어 하는 국민을 못 들어오게 한 건 아닌지, 원인이 내 안에 있지 않나 고민하는 정치인이 되자는 거죠.”
‘대한민국 진화론’이란 책 제목은 그가 직접 지었다. ‘진화’를 강조한 것은 보수, 진보가 대립구도로 치달을 것이 아니라 서로 진화해 많은 교집합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이런 극한적 대립상황에서는 누가 이기든 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가 우리 쪽 아이디어를 차용해서라도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야당도 ‘좋은 정책을 만들면 저쪽이 듣는구나’ 신뢰가 생깁니다. 또 야당도 정책적으로 더 진화하겠죠.”
▼ 이 책을 누가 읽기를 바라나요.
“왜 이렇게들 싸우냐, 미래 비전은 뭐냐…하며 답답하신 분들,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이 좀 덜 고민하며 살 수 있게 될까 고민하는 분들. 이쪽저쪽 진영 떠나서 우리 사회에 애정 있고 미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전 국민 필독서가 돼야죠(웃음).”
정 전 의원은 1960년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강했고 고등학생 때는 ‘전설의 일진’이었다고 한다. 한국외대 영어과 재학 중이던 1983년 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구속돼 1년 6개월을 복역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시 시의원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하고 프랜차이즈 영어학원인 ‘외대어학원’ 사업을 시작했다. 2004년 17대 의원으로 당선된 후 어학원 지분을 청산하고 ‘전업 정치가’로 여의도에 입성한다. 2007년 17대 대선 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실소유주라는 주장을 펼쳐 ‘BBK 스나이퍼’라는 별명을 얻었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아내와 새 학기에 고1, 중1이 되는 아들, 딸이 있다. 그는 무척 가정적인 성격이라며 아내와 주말마다 심야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다. 출소 후 ‘레미제라블’과 ‘반창꼬’ 두 편의 영화를 봤다. 그는 “애들이 ‘레미제라블’을 다 이해하지 못해 감옥에서 읽은 6권짜리 ‘레미제라블’을 A4 18장으로 요약해줬더니 ‘영화보다 아빠 글이 더 감동적’이라더라”며 웃었다.
그는 홍성교도소에서 도올과 사제의 연을 맺었다. 출소를 앞둔 그에게 도올은 ‘정확한 판단력과 들뜨지 않은 모습으로 무게 있는 행군을 할 것’을 당부했고 그는 ‘경쾌하되 경거망동하지 않겠다, 심사숙고하되 우유부단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출소하면서 자신에게 부친 편지에서 그는 ‘오만하고 흔들릴 때 홍성의 1년을 기억하라’고 썼다.
“도올 선생을 비롯해 여러 멘토와 상의한 끝에 삼봉 정도전의 고향인 경북 봉화로 내려가 공부를 더 하기로 했습니다. 사회구조 변화를 어젠다로 한 폴리콘서트를 종종 개최해 국민과 대화하되, 감옥에서 못다 한 공부에 집중하려고 해요. 동양철학과 우리의 역사, 에너지, 환경문제 등에 대해 더 공부할 생각입니다.”
BBK는 역사 흐름에 맡길 것
▼ BBK는 어떻게 할 건가요.
“BBK는 역사의 흐름 속에 있는 사건이라고 봅니다. 이 흐름을 함께하는 분들이 그냥 넘어가지 않겠죠. 그렇게 좀 공유하고 싶어요. 내가 또 주장하고 재심하고 어쩌고 하는 좁은 차원 말고, 큰 흐름 속에서요. 만약 내가 거짓이라면 이미 벌을 받았으니까 끝난 것이고, 저쪽이 거짓이라면 다시 뒤집히는 프로세스를 밟을 텐데, 그걸 제가 주도하고 싶진 않습니다. 역사의 흐름은 정상적인 궤도로 간다는 믿음이 있어요.”
▼ 복권되길 바라나요.
“바라면 되고 바라지 않으면 안 되나요, 복권이? 무슨 얘기냐면, 제 이슈가 아니라는 거예요. 저들의 이슈라는 거예요. 저들의 이슈를 고민할 만큼 제 삶이 여유롭진 않아요. 판단은 저들이 하는 거니까 그쪽에서 알아서 하겠죠.”